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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갈 수 있는 아침의 가게
문을 일찍 여는 가게를 상상해 본다. 아직 지난밤의 분위기가 묻어 있는 테이블, 낮잠에 빠져들기 몇 시간 전 분주한 얼굴로 가게를 돌보고 있는 주인. 그리고 문득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독 일찍 일어나는 친구가 두 명 있다. 그중 한 명인 K는 예닐곱 시쯤에 자꾸 동네 개천이나 주변 낮은 산의 풍경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다른 한 명 H는 그보다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 매일 일기를 쓴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들. 이른 산책에 관한 얘기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의 깨끗하고 기계 같은 분주함이, 어두운 새벽의 일기에는 엉뚱함과 비논리, 신비로움이 서려 있다. 그것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들 각자의 몸에도 희미하게 묻어 있는 것 같다. 여행이라도 함께 가보면, 대부분 함께 먹고 함께 이동하곤 하지만, 아침 시간만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내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눈을 뜰 때쯤이면 그들은 늘 방 안에 없다. 숙소 근처 어딘가를 걷고 있거나 거실에서 이미 말끔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지난밤 어질러 놓은 테이블이 모두 정리되어 있을 때도 있고, 이미 한 차례 티타임을 끝낸 흔적이 보일 때도 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모습.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깬 친구들과는 다른 빛이 드리워져 있다. 느지막이 깨어난 다른 친구들의 멍한 얼굴과 한데 섞이며 숙소를 채우는 이질감은 내가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아끼게 된 오랜 풍경이다.
‘일찍 일어난 사람의 얼굴 같은 가게’에 관해 K와 나는 종종 이야기 나누곤 했다. 그곳은 이른 아침에 문을 열었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영업을 마치는 곳이었는데, 수프를 파는 가게였다가 샐러드 가게도 되었다가 또 빵을 굽기도 하는 가게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한번 시작되면 우리는 그곳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거며 간판 불빛의 종류, 그릇들의 진열 방식까지 자세히 상상하곤 했다. 막상 생각해 보니 귀찮은 마음이 들어 메뉴를 자꾸 줄여가다가 결국 한 가지만 남게 되기도 일쑤였는데, 늘 바뀌지 않던 의견은 음악을 틀지 말자는 것이었다. 주로 한가한 산책길에, 후미진 골목들을 지날 때 나누던 대화들이었다. 그 가게가 결국 열릴지 아닐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이렇게 상상 속에 계속 등장하는 일만은 이제 나에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 상상을 하는 동안 ‘아침의 얼굴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고, 잠깐이더라도 당장의 기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상상의 힘을 알게 모르게 감지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미래의 일, 상상 속의 일들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어렴풋한 믿음에 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돌아보면 K와 내가 나눈 이야기 속 풍경에는 우리가 늘 원하던 것들만 담겨 있었는데, 계속해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 장소에 실제로 입장해 있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되곤 했던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처럼 기분이 좋고, 그 기분에 감사함까지 느꼈다. ‘감사함은 현재를 누리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감사함을 느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없는 가게를 통해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즐거움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감정들이 이미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미래 사용하기. 그것을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해본다.
알람 없이 일어나 아직 어두운 창밖을 본다. 내 발을 베게 삼아 자고 있던 완두도 작은 기척에 함께 눈을 뜨고 우리는 동시에 기지개를 켠다. 물을 한 잔 마시고 거실을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집 전체가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한다.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완두에게 가슴줄을 매준다. 완두 물통과 물그릇, 빈 텀블러는 읽지 않은 책이 늘 한 권 들어 있는 가방에 함께 넣는다. 조용한 거리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멀리서부터 걸어와 멀리까지 갈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고 있다. 어느새 어둠은 걷혀서 정확한 아침이 되어 있다. 완두 발톱이 바닥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 개천에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가게들이 모두 닫혀 있는 시간,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이 분명 열려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잠깐 의심하는 기분을 즐기며. 길 끝에 켜져 있는 밝고 노란 조명, 완두도 길을 헷갈리지 않고 직진하는 구간. 이 동네에서 가장 깨끗한 유리문을 가진 가게 앞에 다다라서, 문을 열기도 전에 주인과 눈인사를 나눈다. 완두가 앞발로 주인의 허벅지를 한 번 민다. 커피가 만들어지고 있는 소리. 스콘이 구워지며 내는 갈색 냄새. 아무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면 가게 전체가 무음으로 대답한다. 하품을 하며, 빈 메시지 함을 열어 보며 멀뚱히 앉아 있다가 오늘의 약속들을 생각해 본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구나. 가방에 들어 있는 책 《내 마음의 무늬》를 꺼내 조금 읽어본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읽어본 게 몇 개나 된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커피를 다 마시고, 스콘을 하나 사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바닥에 누워 있던 완두가 갑자기 문 쪽으로 뛰어나간다. 아침 산책을 마친 K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번에는 완두가 K의 허벅지를 세 번 네 번 민다. 오늘 수프는 당근입니다. 스콘과 커피와 수프까지 모두 주문해서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며칠 전 들었던 H의 일기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둘 가게에 들어오고 눈치 없는 완두가 한 차례 크게 짖는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웃고 나는 완두 주둥이를 꽉 잡아 보인다. ‘아무 날도 아니다.’를 스페인어로 어떻게 표현해? K에게 물어보며 우리는 상상 속 가게에 이름 짓는 일을 또 해보고 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