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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기
이리저리 뛰노는 완두를 바라보며, 잠시 완두가 되어 본다.
끈을 풀어주고 산책할 수 있는 산 입구에 도착하면 완두는 발사되듯 뛰어나간다. 그래야만 했다는 듯이 우선 내게서 멀어지고, 몇 초 후에 나를 찾는다. 다시 묶이면 안 되니까 거리를 두면서 산에 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끽한다. 다른 동물들 냄새를 쫓고 얼굴에 풀을 스치며 파고든다. 땅에 등을 비벼서 가려운 곳을 긁고 묻히고 싶은 냄새가 있으면 몸에도 묻힌다. 요즘 같이 더워진 날씨에는 걱정될 정도로 혀를 빼놓고 다니는데 그마저도 산을 껴안는 방법이라는 듯 계속해서 모든 것을 반복한다. 나는 적당히 깊은 숲까지 가서 어제 저녁부터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물을 작은 그릇에 부어 놓고 기다린다. 잡으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것이 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10-20분 정도가 지나면 완두는 물을 마시러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걸 줄 수 있을까?’ 나는 자주 생각한다. 개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때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는 걸 보면 인간관계에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 연인들, 나와 시절인연을 보내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받기보다는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게 한 가지라면 나는 완두가 내게 주는 어떤 기분을 선물하고 싶다. 갑자기 등장해서 평생을 선물 받게 하는, 그런 경험까지는 애초에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평생 밥을 제공하는 경험을 선물할게.’라고 말하는 것도 지금 하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떠오르는 걸 적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가끔 물 수도 있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않기, 반갑게 인사하기, 나 말고 다른 누구와 함께 있든 결국 이해해 주기, 이상한 행동을 해도 옆에 있어주기, 외모나 마음의 변화가 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기 등등. 모든 걸 완두만큼은 잘할 수 없겠지만, 그걸 모두 선물 받은 사람으로 참 행복했기에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순간적이었지만, 골똘히 몇 가지 적어본 것들 중에서 어쩐지 나를 가장 떨리게 하는 선물은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기’다. 산에서 보는 완두 모습에는 묘한 감동이 있다. 풀어 놓기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여름 밤바다에서 갑자기 터지는 폭죽놀이를 바라보는 기분이 된다.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멍하니 보고 있게 되고, 한 번 더 터지길 기다리는 마음. 어떤 존재가 그렇게까지 몸과 마음의 요동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사실 살면서 보기 드문 일인데, 완두와 살면서는 자주 구경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한 번 더, 한 번 더,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여준 적 있을까? 한 번이라도 더, 꾸밈없이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듬직한 어른으로 옆에 있어주는 모습도 좋고, 돈 잘 쓰는 사람, 잔소리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되려 내가 받고 싶은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역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는 모습. 물론 나 때문에 행복한 것도 좋겠지만, 사실은 내가 제외되어도 괜찮다. 나를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한 어떤 순간에 내가 그 옆에 잠시 머물며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이 마음은 순간의 풍경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아주 긴 관계 속 여러 이야기에 적용해도 변하지 않는 힘을 지녔다. 우리가 서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 못하는 순간에도 상대의 기쁨을 감사해하고 도울 수 있다. 완두가 나를 좋아하면서 또 나를 잊은 채 산속을 누비길 좋아하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는 나를 사랑하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읽고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짧은 시를 옮겨 적는다. 이 시는 내가 완두를 사랑하게 되고서,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새로 읽을 수 있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