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옷이라는 작은 공부

나는 늘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하지만 새로 산 옷인데….) 옷에 관해 할 이야기가 풍부하지 않기에, 무언가를 말하다 보면 자꾸만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흘러가 버리곤 한다. 그런데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버린 옷들과 남아 있는 옷들에게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버리기

지난해 이사를 앞둔 나는 가진 옷의 절반을 네 차례에 걸쳐 없앴다. 한두 번은 의류 수거함에 넣어서 처리했지만, 이 방법은 옷을 수거함에 넣으면서 또다시 고민을 하게 되는 점, 도중에 몇 벌을 다시 가지고 오게 되는 단점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쓰레기봉투에 바로바로 처리했다.

그 옷 중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도 포함되어 있어 조금 과장하자면 내 평생의 의복들이었다. 수선한 흔적과 해진 부분들이 에피소드를 하나씩 떠올리게 하는. 그런 것들을 버리게 된 이유는 언제부턴가 그저 쓸모없는 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져 보니 입지 않고 걸려만 있는 옷이 참 많았고, 그런 옷들은 먼지 덩이가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생겨 버린 것이다. 한번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많은 옷은 나를 답답하게 하고 둔하게 하고 지저분하게 하는 무엇이었다. 이걸 정리해 내지 못하면 내내 머릿속이 복잡할 거야. 나는 작은 결심을 내렸다.

예전에 베를린에서 연락이 닿아 만났던 한국인 친구 D가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또 다른 내 친구와 함께 우리 셋은 많이 걷고 또 많은 얘길 나눴다. 거짓말처럼 편안하고 뭉클했던 일주일이었다. D를 베를린에 남겨 두고 친구와 나는 한국에 돌아와 술자리를 가졌다. 많은 대화가 대부분 D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의 대화가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 기억하고 있다. D가 늘 입고 나타났던 한 벌의 외투가 참 아름다웠다는 얘기였다. 그 외투는, 물론 그의 모든 표정과 행동과 함께 섞여야 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옷차림이었다. 말하자면 사라지는 옷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 외투는 인식되지 않다가, 종종 D를 그리워할 때 인사하듯 떠올랐다. 옷이란 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말하고 표정 짓고 소리 내고 눈빛을 만드는 것처럼, 옷도 그런 아름다운 표현을 돕는 것이라고 인정되었던 것이다. 꼭 한 벌의 외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지난 겨울옷을 한 무더기 내다 버리며 나는 D의 외투를 자주 생각했다.

놀림 받기

D를 만났던 베를린 여행에서의 일이다. 뒤늦게 합류한 내 친구 A와 나는 노이쾰른Neukölln 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지내며 아침이면 헝클어진 머리로 거리에 나가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 굳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길거리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아보카도가 들어간 브런치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원래는 손으로 먹었을 텐데 괜히 나이프를 쓰며 먹었다. 롤링 타바코를 만들며 마음속으로 약간 멋진데,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 A는 그 당시 청학동 스타일로 머리를 길러서 묶고 오클리 선글라스를 썼으며 리복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가 공중으로 던진 견과류 같은 걸 뒷짐 지고서 받아먹으며 기뻐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 분위기에 취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피해를 줬던 것 같다. 어쨌든 그때 나는 그 친구가 개그맨 분장 수준으로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몇 해가 지나 2024년이 되었다. 술자리에서 어쩌다 그때 얘기를 꺼내자 주변 친구들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견과류 같은 걸 받아먹는 영상이 마침 있어서 나는 A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꺼내 보여줬다. 그랬는데 예상외로 패션 감각이 좋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그 흐름이 오히려 내 쪽으로 밀려오더니 전진우가 패션에 관해 말하는 게 우습다느니, 맨날 청바지에 스웨터만 입는 겁쟁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전개가 됐다. 친구들이 꽤 진지하게 얘기했기 때문에 내 쪽에서는 반박하거나 의논하기보다는 듣고 있는 게 좋아 보였다. 친한 친구의 여자 친구도 있었는데, 나한테 “혹시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게 중요한데.”라고 물었다. “응, 있지.” 나는 약간 멍한 느낌으로 대답했고, 그 대화는 그렇게 해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 술자리 중간중간 A는 귓속말하듯 다 들리게 “리복 바지 어디서 샀는지 알려줘?” 하며 웃었다. 나는 그 술자리가 여전히 꿈같고 어려운 공부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혹시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서 베를린에서의 사진을 첨부해 두었다.

구멍 난 스웨터와 완벽한 티셔츠

옷장에 남긴 것 중에는 오래된 남색 (겁쟁이) 스웨터가 두 개 있다. 둘 다 무인양품에서 산 건데 하나는 2015년 즈음에, 하나는 2022년에 샀다. 무인양품에서는 아마 2030년에도 이 스웨터를 만들어서 판매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이 브랜드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아무튼 오래전에 산 스웨터가 (내 생각에는) 유독 잘 어울려서 해질 정도로 입다가 몇 년 후 같은 스웨터를 발견해서 또 구매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새로 산 스웨터는 재질과 사이즈가 똑같은데도 다른 옷처럼 낯설었다(물론 친구들은 둘 다 똑같다고 했다). 몇 번 입다 보면 비슷해지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전혀 변함이 없어서 언제부턴가 손이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둘 다 버리지 않았다. 특히 오래된 스웨터에는 소매 부분에 완두(개)가 물어뜯은 흔적이 있어서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구멍은 사실 다른 이들이 더 좋아해 주었다. 너 옷에 구멍 났어! 놀라서 내게 말해주면, 나는 기분 좋게 어린 완두 얘기를 늘어놓는다. 호감을 얻기에 그만인 아이템이라고 해야 할까. 다들 귀여운 완두 얘기를 좋아해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좋은 한 방이 필요할 때 이 옷을 입고….

언젠가 친구들과 완벽한 반팔 티셔츠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두께와 길이, 목 부분의 재봉 형태나 색깔 등 나름 평범하고 간단한 조건을 말하는데, 그 모든 조건이 담백하게 합쳐진 반팔 티셔츠는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완벽했는데….’ 하는 식의 이야기도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이유는 티셔츠에 딱 들어맞던 몸이 변했거나, 주변을 인식하는 시선이 변했기 때문이다. 고정값이 없는 상황에서 공식을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무래도 완벽한 반팔 티셔츠는 ‘우연히’, ‘잠시’ 마주치는 행복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인간관계처럼, 또 매일 하고 있는 일처럼 옷을 고르는 일도, 옷을 버리는 일도, 옷을 잘 입는 일도 참 쉽지가 않아 보인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패션을 ‘누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울리지 않더라도 자꾸 입다 보면 언젠가 어울리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시시한 진리처럼 말이다. 옷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이런 질문이 문득 남는다. 옷은 보여야 좋은 것일까. 사라져야 좋은 것일까. D의 외투와 A의 리복 추리닝 바지 그리고 구멍 난 무인양품 스웨터를 번갈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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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