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엄마와 교회

나를 만들어 준 일요일의 기억들.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지만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 기간은 얼마나 긴가. 나를 정의할 정도의 습관들은 어쩌면 그때 다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이 종종 지난 여행을 떠올리는 것처럼 짧게 느껴지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이제는 이따금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그 집에 찾아간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에, 비어 있던 내 방으로. 그곳엔 내가 없어도 계절마다 이불을 바꿔 놓는 침대, 쌓이지도 않은 먼지를 닦아 놓은 옷장이 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성경책과 하얀 노트. 나 없는 방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는 엄마의 흔적이 있다.

교회에 관한 내 기억은 교회와 관련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여유롭기도 하고 분주하기도 한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교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잠든 척 연기를 하다가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리는 아이였다. 그렇게 잠시 비어 있는 집에서 눈을 떴을 때 느끼는 행복이 참 좋았다. 만화영화를 틀고, 엄마처럼 냉장고를 열어 놓은 채로 무얼 꺼낼까 고민도 해보다가 정오가 지나면 베란다 창가에 서서 엄마가 걸어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길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걸어오던 엄마는 언제나 갈 때보다 조금 차분해져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교회란 좋은 곳이구나.’ 나는 일요일이 좋았다.

잠든 연기가 통하지 않을 때부터 나는 엄마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 말씀이라고 하는 건 언제나 졸렸지만, 나는 주보에 쓰인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거나 찬송가를 부를 때 혼자 음을 바꿔 부르는 식으로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다. 그 안에서 친구들이 생겼고, 친절한 어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수련회에 따라갔을 때 촛불을 켜 놓고 각자 힘든 일을 말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슬픔은 너무 크기가 작은 것 같아서 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남자가 내게 말했다. 슬픔의 크기는 다른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니까,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편하게 말해 보라고. 나는 아무 말 안 했지만 그 말이 좋아서 계속 떠올리곤 했다. 그 뒤로도 교회에 가서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어쩐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그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동네 친구들을 거리낌 없이 그곳에 데리고 갔다. 그냥 앉아 있어 보라는 식으로.

‘어딘가, 무엇인가 있겠지.’ 세상이 보다 신비롭게 느껴지고, 작은 것과 큰 것, 나쁜 것과 좋은 것에 상관없이 어디에든 있는 존재를 생각해 본 건 대학에 다닐 때였다. 그때 나는 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있었다.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오히려 솔직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예수님, 너무 지켜보는 거 아니냐.” 친구와 그런 농담이나 하고 그랬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신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오히려 더 단단한 상태였다. 교회에 나가면 오히려 신이 없는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몇 번은 의무감에 나갔다가 도중에 빠져나와서 거리를 걸어 다녔다. 풀을 손으로 만지고 땅을 밟아 보고 개천에 가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신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신이라는 게 있다면 교회에도 있고 개천에도 있고 또 감옥이나 전쟁터에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교회로 다시 돌아갈 거야.” 엄마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나를 한 번도 혼낸 적 없다. 그저 가끔 저런 말을 할 뿐이다. 얼마 전 집에 갔을 때 엄마를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에 교회에 함께 갔는데, 그때 마침 운영비가 모자란다는 내용이 설교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목사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옆을 보니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늘 이상하게 그러시네. 너가 온 줄 아나 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런 농담을 하는 엄마는 참 사랑스러웠다. 사실 교회에 가는 것보다 교회에 다녀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게 더 좋다고 내가 말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을 설명해 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그래도 너는 교회로 다시 돌아갈 거야.” 내 얘기가 끝나자 엄마가 또 말했고 나는 할 수 없이 웃었다.

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게 될까? 엄마를 차분하게 해주는 울타리 그리고 내가 앉아서 눈을 감고 있던 그 의자를 떠올리면 가끔 그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교회에 다시 가지 않을 것 같다. 멍하니 목사님을 바라보며 속으로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가 교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그 길에서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싶다. 베란다에 기대서 엄마가 돌아오는 걸 바라보던 나는 이제 엄마 옆에 나란히 걷고 있다.

“러시아 동물원에 시베리아 호랑이가 한 마리 있는데요. 먹잇감으로 넣어준 염소와 친해져 3주째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둘이 산책도 하고 잠도 붙어서 잔다네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언젠가 엄마랑 함께 아침에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이현우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이런 사연이 나왔다. 왠지 마음이 찡해지는 사연이었다. 호랑이 집 지붕에 올라가 주인 행세를 하는 염소에게 동물원 사람들은 중앙아시아 최대의 정복자인 ‘티무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고. “천국이네.”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말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천국은 뱀과 염소, 호랑이, 새, 아이들, 모든 생명이 함께 싸우지 않고 지내는 곳이었다. 엄마가 해 준 이 이야기는 교회와 관련된 것이라면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되었다.

“너는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될 거야.” 

엄마가 또 말하면 이제는 나도 대답을 해야겠다. 

“나도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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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