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작은 부엌 안의 열쇠들

직접 요리를 해서 끼니를 해결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해 나가기 시작하자 부엌은 꽤나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엔 자연스럽게 나의 습관과 바람들, 생활의 흔적들이 쌓여 간다. 자주 드나드는 곳에 늘 삶의 힌트가 있는 법. 부엌 풍경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조용한 설거지

깨끗이 닦여 차곡차곡 세워져 있는 식기 건조대의 그릇들은 나를 편안한 상태로 이끈다. 금방 비를 맞은 식물처럼 물방울이 맺힌 그릇들이 천천히 말라가는 시간. 저녁을 차려 먹고 나서 곧장 설거지를 해 두면, 잠들기 전 그리고 아침까지도 깨끗한 그릇들 옆을 지나다닐 수 있다. 내 걸음과 팔 움직임의 속도, 마음의 온화함이 식기 건조대 풍경에서 시작된다니. 나의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아닌가. 

이전에도 설거지를 좋아하긴 했지만, 쌓아 뒀다가 한꺼번에 30분씩 하는 꼴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생활이 길어서인지, 내게는 이처럼 단단히 게으른 구석이 있었다. 혼자 먹은 그릇은 휙휙 닦아서 넣을 때가 더러 있긴 해도, 좁은 싱크대 안에 그릇과 냄비가 반 이상 찰 때면 막막한 기분이 들어 일단 그대로 놓고 돌아섰던 것이다. 이런 습관을 고치게 된 계기가 있다. 이슬아 작가의 산문 중 초벌 설거지하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였다. 이야기 속 그 친구는 본격적인 세척 과정 이전에 수세미로 그릇에 묻은 기름때와 이물질을 한번 닦아 놓고서 그 이후에 세제를 묻혀 닦고, 물로 헹구는 식으로 설거지를 마쳤다. 이 과정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같은 방식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혹은 (이전의 나처럼) 많은 세제를 사용하며 정신없는 설거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설거지하는 내내 물을 틀어 놓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말이다(물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초벌 설거지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그대로 따라 해보면서, 나는 조용한 설거지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소리에 나도 모르게 쫓기지 않고, 이미 반쯤 깨끗해진 그릇들을 천천히, 꼼꼼히 문지르는 기분을 알게 된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과정 속에 내가 꿈꾸던 차분하고 고요한 생활의 열쇠가 하나 들어 있었다. 설거지하며 누군가와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하면 설거지.’ 그것이 하나의 공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설거지는 점점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작은 명상이 되었다가 산책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목욕의 기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용한 설거지의 장점은 어떤 행위를 차근차근 해 나갈 때 느낄 수 있는 자신감이다. 이 속도로, 이 기분으로 나아가면 못할 것이 없겠네, 하며 마음속으로 휘파람을 분다. 잘 정돈된 식기 건조대는 내가 세상 속에서 싸워 나갈 때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다.

나무 숟가락

내게는 오래전에 깎은 나무 도구들이 몇 개 있다. 그중에 머리 부분이 꽤나 큰 숟가락 하나는 어쩌다 보니 거의 모든 요리 과정에 사용된다. 재료가 담긴 팬을 불에 올리고 나면 언제나 나는 그 숟가락을 들고 있다. 요리가 완성된 후에도 접시 오른쪽엔 스테인리스 포크가, 왼쪽에는 요리에 쓰인 나무 숟가락이 또다시 놓인다. 꿀이나 요거트를 퍼서 옮길 때도 좋고 국물 요리를 먹을 때도 한 숟갈에 가득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부드러운 곡선이 어떤 그릇이든 싹싹 잘 닦아내고 유리에 긁히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용도를 정하지 않고 재미로 만든 숟가락이 모든 곳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작은 부엌의 중심이자 상징이 된 것이다. 이 대목 역시 나의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점은, 5년 전 만든 이 숟가락 이후에 또 다른 도구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목공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 물건을 사용하며 이만큼 만족하는 일도 드문데 어째서 더 이상 늘리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나 대신 요리를 하다가 달궈진 스테인리스 팬에 숟가락을 걸쳐 놓고 잠시 잊어서 손잡이 부분이 까맣게 그을렸다.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흔적은 숟가락을 더욱 특별히 여기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안 그래도 직접 깎아서 세상에 하나뿐인 숟가락이었는데 더 이상 새로운 걸 깎지도 않고, 이런저런 추억들이 숟가락 위에 대책 없이 쌓이고 있다. 

말린 껍질들과 채수 끓이기

직접 요리를 하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가 참 많이 나온다. 당근 껍질, 양파나 배추의 밑동, 즙을 짜낸 레몬 껍질 등등. 젖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저마다 있을 텐데, 나는 잘게 잘라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그대로 두고 말리는 편이다. 잘 말리고 나면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 혼자 살며 한두 끼 해 먹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이 과정은 조용한 시인의 행동처럼 아름다운 구석이 있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료를 다듬으며 나오는 여러 부분들을 커다란 지퍼백에 그대로 구겨 넣고 냉동실에 넣어 둔다. 여기에는 마늘이나 양파의 껍질은 물론 자르고 난 대파 뿌리, 당근 밑동, 마늘 꼭지까지 상하지 않은 거의 모든 재료를 넣을 수 있다. 며칠이 지나 가득 찬 지퍼백 속 재료들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생강, 통후추, 월계수 잎, 허브, 소금 그리고 이 모두가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대여섯 시간을 끓이는 것이다. 거름망을 통해 병에 옮겨 담은 채수는 나중에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모아둔 채소 잔여물들도 이제 지퍼백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섯 시간 동안이나 뭉근하게 끓이는 동안 내 작은 부엌에 어떤 냄새가 퍼져 나갈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레시피로 그동안 여행지에서나 맛보던 요리를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었다. ‘채수를 사용하는 요리.’ 오늘은 새로운 검색어를 생각한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늘 이런 식으로 호기심과 작은 아름다움을 좇는 것이었다. 늘 나에게 달렸다고 믿는다. 사람을 좋아할 땐 사람에게, 일을 좇을 땐 일 속에, 부엌에 자주 드나드는 동안에는 부엌 안에, 내가 원하는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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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