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밤의 달리기

 

시간은 자정 무렵, 낭떠러지를 향해 가듯 인적이 드문 쪽으로 향하지만, 나의 달리기는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평평한 기분

달리기라는 게 뭔가. 시시한 이야기라도 해보자면, 그건 스스로 온몸을 움직여서 작동시키는 정지 버튼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반복 또 반복. 물론 숨이 턱 끝까지 차곤 하지만, 힘을 최대한 빼고 비슷한 동작을 몇십 분간 해나갈 때 찾아오는 단순하고 평평한 상태. 시작점에서의 분주함은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거의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상태는 신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일단 평평한 상태에 다다르면 그때부터는 무얼 생각해도 특별하게 여겨진다. 고요한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지는 것처럼 그 작은 알맹이에서 비롯된 모든 일들에 집중할 수가 있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면 그건 하나같이 깊은 인연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떠오르는 게 어떤 종류의 사건이라면 괜스레 업보나 예언처럼 쉽게 부풀려진다. 평소에 잘 느낄 수 없는 평온함과 증폭들. 삶이 밋밋한가. 아니면 밋밋함을 못 견디는 사람인가.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눌러지는 그 정지 버튼을 위해 종종 달리곤 한다.

보통은 자정 무렵에 나가 40-50분 정도를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면 길 위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향을 떠나 혼자 서울에 살게 된 지 10년 남짓이 된 낯선 사람 하나가 도시의 상점 불빛들을 등지고 한강을 향해 달리고 있고, 나는 그게 나라고 믿으며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마포구청을 지나고 저쪽으로 가면 월드컵경기장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곳곳에 묻어 있는 서울살이의 기억들을 뛰어서 통과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 관한 담담한 애착과 한편으로 여전히 낯선 세계. 달리는 내 뒷모습에서는 외로움과 단단함이, 거친 숨소리에서는 생기와 몽롱함이 함께 깃들어 있을 것이다.

고양이 다루기

언젠가 한번은 목표로 한 거리를 모두 달렸을 때 결승 지점을 통과하는 마라토너처럼 두 팔을 높이 들어 무언의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었다. 지켜보는 이도 없고 결승 테이프도 물론 없었는데 말이다. 약간의 민망함을 느끼며,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ʻ방금 정말 기뻤는데.’ 마음이라는 단어는 왠지 중요해 보여도 어쩌면 무시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완주 세리머니를 하며 느낀 좋은 기분이야 만끽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들 이를테면 시기, 우울, 미움 같은 부정적인 마음들 말이다. 내 마음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면, 그건 예측 못 할 변칙성과 무책임함, 순수함을 지닌 한 마리의 들고양이 같다. 내 마음이라는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루기는커녕 조종만 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달리기를 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몸이 마음을 이끈다는 점이다.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고자 하면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잡히지도 않는 고양이가 호랑이처럼 변해 버리는 걸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런데 일단 밖에 나가서 달리기 시작하면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거의 없어진 것처럼 홀가분할 때가 있다. 아무렴, 하는 기분이 되어서 뜬금없이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말이다. 뛰고 있는 나는 바로 지금처럼, 어떤 상황이든 겪어보고 싶어 하는 내가 된다. 그게 나를 좀 아프게 해도, 거짓이라거나 순간적인 것일지라도 문제없다는 태도가 생기는 것이다. 삶은 그저 체험이라고 믿는 내게는 꼭 필요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함께하기 위해 혼자 뛰기

운동을 하거나 일을 지나치게 해서 몸이 고단해지면, 물론 성취감도 있지만, 본질적인 기분은 막막함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껏 늘어놓다가 하는 이야기라 다소 일관성이 없어 보이겠지만, 이 막막함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의 일부다. 달리면 달릴수록 나는 정말 나약하구나 하는 생각이 뿌리처럼 깊어진다. 그래도 무언가를 실행했다는 생각은 나뭇잎처럼 피고 흔들리고 툭툭 떨어진다. 서로 너무 다르게 보이는 이 두 기분은 내가 달리기 위해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실은 하나다. 막막함과 안전함을 함께 느끼기. 방금 생각난 말이지만, ʻ이게 바로 내가 사는 방식이야.’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물론 다른 것도 있다). 자정 무렵의 분위기, 쓸쓸하게 텅 빈 길, 고단한 몸. 왠지 낭떠러지로 향하는 슬픈 사람의 기분이지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어둠으로 잠시 다녀오는 이유는 뭘까. 시시하지만 한편으로 진지한 것. 나는 눈이 부시는 게 좋고 그러다 불편해질 때 찾아오는 어둠이 또 편안하다. 
다음에 같이 뛸까요? 달리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가 누군가 내게 몇 번 물어온 적 있다. 나는 거절의 의미로 장난스레 대답한다. 그럼 각자 뛰고, 출발점에서 다시 (살아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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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