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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라는 이야기
이십 대 후반의 일이었다. 문래동 어느 전시장에서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몇몇 작품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놓았다. 몇 해가 지나 우연히 사진들을 다시 봤을 때, 그중 하나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제 보니 그건 내가 어릴 적 반복해서 꾸던 꿈의 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깨어 있을 때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를 우리가 잠든 동안 뇌에서 편집하고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중에 무얼 오래 기억할지, 무얼 지울지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이전 기억 중 일부를 내일로 운반하고 무언가 새로운 정보들을 받아들일 공간을 확보하는 회복의 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잠들었을 때, 뇌가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히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마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처럼 말이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이 구간(Rapid Eye Movement Sleep)을 렘수면 상태라고 하는데, 꿈을 꾸는 구간이 바로 여기다. 꿈이란 게 뭘까. 가끔 멍하니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기엔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등장하고, 서사도 뒤죽박죽인 이야기들.
그런데 또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면 내가 만든 영화 같기도 하고 말이다. 잠들어 있는 사이 렘수면 구간이 몇 번 반복되면서 우리는 하룻밤 보통 스무 개가량 꿈을 꾼다고 한다. 꽤나 많은 꿈을 나도 모르게 꾸고 있고, 그중에는 깨고 나서도 기억에 너무 선명하거나 꿈속에서 실제로 의식할 수 있는 꿈, 반복해서 꾸게 되는 꿈도 있다. 내게는 중학생 무렵 하도 자주 꿔서 익숙해져 버린 꿈이 있었다. 노을 질 무렵 집을 나선 뒤 동네 친구들을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우린 늘 넓은 공터를 향해 걸었다. 공사가 진행되다가 멈춘 대단지 건설 현장이었다. 얼마나 넓었는지,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굴뚝이 버섯처럼 작게 보이고 트럭들도 장난감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작은 모래알 같았을 것이다. 완성된 도시를 등지고 황량한 쪽으로 친구들과 걷는 동안 굴뚝이 점점 커지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작아졌다.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물론 정확한 문장 같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입만 벙끗거리고 소리는 안 들렸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럼에도 나는 친구들 옆에서 사랑과 설렘을 느끼며 무척 편안한 기분 속에 있었다. 자욱한 모래 연기도 이불처럼 느껴지고 거대한 콘크리트 교각, 거기에 삐져나온 철근들도 껴안고 싶을 정도로 애틋했다. 그 꿈을 사랑했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그림을 다시 봤을 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작가의 연락처를 찾아 그림이 찍힌 사진을 보여줬고 며칠 뒤 원화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오래도록 가보지 못했던 꿈속 장소에 다시 가리라는 기대로, 그림이 담긴 액자를 침대 위 머리맡에 걸었다.
침대 근처에는 그것 말고 그림 두 점이 더 있다. 새로운 그림을 걸기 전부터 있었는데, 인식된 건 오랜만이었다. 창가의 탁상용 액자에는 연필로 급하게 그린 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내가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마음으로 그려준 것이다. 왜 거기에 뒀는지 그럴싸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가끔 그걸 바라보며 내 삶이 거기에 있었구나, 믿어보려 할 뿐이었다. 지금의 나를 빚어준 소중한 순간들. 하지만 남의 생처럼 낯선 기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 말고도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가곤 한다. 어떤 기억은 오랜만이어도 순간 따끔하게 통증을 만들고, 어떤 기억은 한없이 뭉클하다. 모두 죽지 않고 살아 있는데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분하다가 막상 다시 만난 그들과 나의 모습이 그려지면 얼른 지우고 싶게 막막한 기분이 든다. 삶이란 게 참 어렵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언젠가부터는 무얼 정확히 구분 짓지 않게 된 것 같다. 특히 사는 일, 살며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들에 관해서는 늘 모르겠다고 답하며 지낸다. 덮어두고 지나는 게 최선이라 여겨질 때도 많다. 더 어릴 때는 모든 걸 몸 밖으로 꺼내서 실컷 지켜보고 남한테 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 봤자 소용없이 답답하고 외로워져 이제는 너무 중요한 것들과는 거리를 잘 두려고 노력하며 지낸다. 그림들에 관해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들은 또 그런 것들뿐 아닐까. 꿈속 장소가 그려진 그림, 예전 내가 그려진 그림들. 거기에는 판단과 해석의 여지가 아닌 이미 채워진, 변하지 않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렘수면이 시작되면 뇌는 보다 자유롭게 활동한다고 한다. 상식의 연산을 넘어 결코 얽힐 수 없는 것들을 서로 이어 붙이는 것이다. 꿈속의 말도 안 되는 디테일이 그렇게 탄생된다. 완전히 창의적인데, 요소 하나하나는 다 내 기억 속에 있기에 꿈은 참 알쏭달쏭하다. 모든 사실과 자잘한 기억과 상상과 바람이 잠든 나의 자유로운 뇌 속에서 마음대로 얽히며 발생되는 이야기. 꿈은 딱 잘라 말하는 법 없이 무언가가 합쳐지며, 무언가를 연상시키며 작동된다. 다름 아닌 은유인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꿈과 삶이 닮아 있다고 느낀다.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공통점.
그 두 세계는, 꿈속에서의 발 차기가 현실에서 이어지는 것처럼, 종종 연결되어 버리기까지 한다. 내가 이끌어 갈 수 있는 세계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속 여러 내 모습을 지켜보며, 꿈속 장소가 그려진 그림을 보며 나는 내게 묻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나는 운전대를 제대로 잡고 내 삶을 어딘가로 잘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게 펼쳐진 이야기보다 잘 쓸 자신이 없으니까. 뒤죽박죽이던 내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더라도 빈틈없이 잘 짜인 좋은 이야기였다. 나는 내 삶 앞에서, 가능하다면 오래 앉아 있고 싶은 관객일 뿐이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