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울음 보는 이, 다음 같이 우는 시

박준 ─ 시인

시인은 봄을 맞으러 남행南行을 한다 했다. 나는 그가 봄도 봄이지만, 울음을 보러 갔다고도 생각했다. 병처럼 남쪽으로 가서 그 계절에 제철인 눈빛을 발견하는 사람. 외자 이름 안에 ‘깊다’는 뜻이 있어 자꾸만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 시 쓰는 박준을 만났다.

Interview
시인 박준

힘없고 화려하지 않은 말을

빛나게 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사실 인터뷰 대신 편지를 주고받자고 했어요. 그런데 거절하셨죠(웃음). 거절이 물론 충분히 이해됐지만요.

죄송해요. 제가 이번 달에 펑크를 많이 냈어요. 기간 내에 어떻게든 억지로 써서 내면 망하는 길이라서요. 죄송하지만 안 하는 게 서로에게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기획 자체는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으면 읽을수록 편지라는 방식이 어울린다고 느꼈거든요. 요즘은 편지를 좀 쓰시나요?

80년대 스테디셀러 중에는 ‘편지 쓰는 법’에 대한 책이 많았어요. 편지를 많이 쓰던 시대니까요. 유명한 작가들도 그런 책을 많이 썼거든요. 상황별로 아름다운 편지를 하나씩 써주는 거죠. 연애하기 전에, 한참 연애할 때, 헤어질 때,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고 싶을 때 등 예문 편지가 몇 개씩 그대로 실린 책도 있었어요(웃음). 

 

아, 정말요?

유치하죠. 그런데 어릴 때 배운 편지 쓰는 법을 더듬어 보면, 우선 인사하고 지난번에 만난 일 같은 과거의 경험을 쓴 후에 본론을 쓰는데, 그 방식이 되게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딱 본론만 얘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방식이 사실 인간관계에서 편하긴 하죠. 괜히 사정 안 달고, 긴 얘기 안 하고. 그런데 친밀한 관계에서는 좀 귀찮아도 되거든요. 

 

친밀한 관계에서는 오히려 직설적인 방식이 편하지 않나요?

저는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가 더 많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종이 편지를 자주 쓰지는 않지만, 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때도 편지처럼 쓰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지 않고, 인사도 하고 이것저것 쓸데없는 말도 하고. 결론은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면 만나서 술 마시자’인데, 그 말은 제일 마지막에 하고 우선 우리가 왜 만나야 하는지, 지난번 만났을 때 날씨가 어땠는지 이런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그 사람들도 재미있는 게 열 명에게 보내면 여덟 명은 안 받아줘요…. 그런데 두 명은 받아주거든요. 직접 해보시면 알 텐데, 열 명 중에 두 명 정도는 덥석 물어요(웃음).

 

보통 그렇게 보내면 열심히 답장해줄 것 같은데요.

아니, 사실 좀 웃기기도 해요. 누군가 문득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면 무슨 일 있나, 생각하게 되니까요. 아무튼 그중 두 명과 주고받는 이 필담 같은 형식의 글이 편지 같아요. 종이 편지를 쓸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요. 다들 그러겠지만 제 주변의 젊은 사람들은 슬프게도 주소가 자주 바뀌니까. 편지 쓰기 전에 주소 물어보기가 좀 그렇거든요. 그 불안한 주소들로 편지를 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아서요.

 

편지를 제안한 다른 이유도 있어요.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본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무언가를 쓴 글이 있다면, 꼭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고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글도 있을 텐데, 박준 시인의 글은 후자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꾸 바보 같은 말을 하게 되는데, 저는 시나 산문 쓸 때 옷 입고 써요. 인터뷰할 때 입은 이런 옷, 밖에 나가는 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옷을 입어요. 민소매를 입거나 파자마 바람으로 앉아서 글을 쓰진 않고, 적어도 이렇게 단추가 있는 옷을 입게 돼요. 그런데 글 쓰는 일이 성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분명 혼자 방에 앉아서 글을 쓰지만 자주 어떤 상대를 생각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제가 민소매를 입고서는 못 쓰는 거예요. 

 

상대가 불특정 독자인가요?

시장에 존재하는 문학 독자가 아니라 어떤 대상을 생각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요. 존재하는 어떤 상대를 생각할 때도 있고, 가상의 상대를 생각하고 쓸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제는 술을 먹었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상대방을 가정하는 것에 따라 글이 달라지거든요. 제가 술 마시는 걸 싫어했던 가족이나 연인이라면 ‘어제도 나는 네가 싫어하는 짓을 했어’로 출발할 테고, 만약 어디 멀리서 쑥쑥 크고 있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글이라면, ‘아직 안 마셔봤겠지만, 어른이 되면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걸 마시면 기분이 되게 좋아’부터 시작하겠죠. 첫 번째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만 두 번째쯤 되면 이 말을 누구에게 할까,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돼요. 전 두 번째 고민이 길어서 쓰는 글이 약간 편지처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시집이나 산문집의 남행, 미인, 자랑, 제철, 열, 단비 같은 단어들은 ‘박준의 말’이 된 것 같아요. 가재미는 문태준의 가재미인 것처럼, 저는 철봉을 떠올리면 이제 슬퍼지니까(웃음). 이런 점을 염두에 두나요, 오히려 경계하나요?

시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문장이나 시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흔히 아는 미리내, 가람 같은 순우리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잘 쓰지 않는, 희소성과 시간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말을 다 모아서 시를 쓴다고 아름다운 시가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 시어가 자연스럽게 어느 상황에서 녹아들 때는 좋지만, 일부러 아름다운 말을 찾아 쓰진 않아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을 어떤 국면이나 상황에 적절하게 놓을 때, 흔한 말이지만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있어요. 힘세거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말을 데리고 와서 그 언어가 가진 것에 기대는 것보다는 힘없고 화려하지 않은 말인데 어느 순간 그것을 빛나게 하는 지점이나 국면을 만드는 게 더 좋아요.

 

낙서라는 시 속에 나오는 ‘제철’이라는 단어도 그렇죠.

‘제철’이라는 말은 사실 수산물이나 농산물에 쓰잖아요. 자두가 제철이야, 참외가 제철이야, 방어가 제철이야. 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봄날에는 눈빛이 제철’이라고 쓰면 뭔가 변신을 한 것 같거든요. 그런 순간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아름다운 말은 가까운 사이에서 쓸데없는 대화를 하다가 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어요. 무용한 것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요?

이건 자기비하인데, 제가 잘하는 게 없었거든요. 지금도 없고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하든, 공부를 잘하든, 대인관계를 잘 맺든, 하다못해 무슨 조립이나 게임같이 잘하는 게 있어야 타인에게 좀 당당한 목소리로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잘하는 게 전혀 없으니까, 약간 시무룩하고 소극적인 시간을 자연히 보낸 거죠. 그래서 제가 잘하는 게 없는 거랑, 무용한 일을 좋아하는 거랑 어떤 상관이 있느냐면, 무엇을 잘하려고 해봐야 잘 못하고, 그러면 뭘 해도 안 될 게 뻔하니 어떤 목적을 두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겠다. 남들이 다 하는 걸 하면 제가 하위 90퍼센트에 가 있을 텐데. 그래서 사실 시 쓰기도 처음에 그런 치기였어요. 

 

아무도 안 쓰겠지, 그런 거요?

네, 처음 시를 쓸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시를 쓰는 줄 몰랐어요(웃음). 긴 시간 살진 않았지만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내니까 유망한 것이나 주목받는 것, 점수 내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시는 점수가 나지 않거든요.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잘해도 보상이 없고 못해도 처벌받지 않고. 시 못 쓴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하거든요. 자신 없는 유년기를 보낸 것에 대한 반항 비슷한 것으로 쓸모없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신춘문예 응모할 때 한지에다가 시를 써서 낸 적도 있다고 했죠.

네, 그런 또 무용한 짓을 했죠. 시는 점수가 안 나니까 제가 제일 잘 쓰는 줄 알았어요. 스무 살 때부터 신춘문예 응모를 했는데, 6년을 떨어졌거든요. 문예지까지 다 합치면 백 번 가까이 떨어졌어요. 한동안 제가 뭐가 문제인지 몰랐어요. 나는 시를 이렇게 잘 쓰는데 왜 떨어질까? 한번은 무슨 뽑기처럼 형태적으로 튀어서 눈에 들면, 이것만 읽으면 나는 된다는 생각으로 ‘가훈 무료로 써드립니다’ 하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인쇄한 시랑 한지를 드리고 붓글씨로 써달라고 한 거예요. 그 할아버지들이 서예가이자 캘리그라퍼예요. 제가 만약 시에 북어를 썼다면, 실에 매달린 북어 모양처럼 북어라는 글자를 써줘요. 그렇게까지 했는데, 당연히 안 됐습니다(웃음). 

 

글을 쓰고 난 후에 보면 처음엔 잘 썼다 싶다가도, 나중에는 정말 이런 걸 썼나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잖아요. 박준 시인도 그런가요?

저는 시를 쓰고 나면, 혼자 집에서 기립 박수 쳐요. 내가 남조선에서는 시를 제일 잘 쓴다(웃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음 날 보면 ‘아, 어제 내가 이거 쓰고 좋다고 술 마시고 잤나?’ 싶죠. 그런데 시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 활동에는 어느 정도 자아 존중감 혹은 자만심이 있어야 하거든요. 이걸 잃으면 못해요. 해봤자 어차피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만심까지 없으면 어렵죠. 그런데 나머지 절반의 자아에는 독설가나 비평가가 있어야 해요. 둘 다 있어야 할 수 있죠.

 

2년 전쯤엔 공무원으로, 지금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시죠. 앞으로 또 무용한 시인과 쓸모의 직업을 갖게 될 텐데,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건 어떤 마음인가요.

시인의 자아라는 게 별다른 건 아니고, 세상의 모든 기척들에 대해서 예민한 상태로 사는 거거든요. 예민한 상태로 예민하게 발견하고 예민하게 말하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말들을 궁리하고. 그런데 이런 상태로 일상을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또 시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벌 수는 없으니까.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일이 철저히 분리돼요. 그리고 소설가는 전업으로 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율이 높아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드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시인들은 파트타임으로 시를 쓰고 정기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당연한 일이에요. 시는 노동이 아니거든요, 특히 저에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니까 저도 노동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시는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 같은 것이죠. 

 

‘시만’ 쓰고 싶은 바람은 없나요?

생계 때문에 일할 때는 일이 너무 많이 치고 들어오니까 제가 여행을, 도망을 다니죠. 그렇다고 직업을 버리고 시를 쓰면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저도 이 책을 읽을 독자들하고 거의 비슷한 사람이어야 해요. 일을 무서워하고, 아침 출근 시간에 끼어서 가고,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그 안 좋은 일 끝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이런 비슷한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파장되는 일이나 기억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신선처럼 허허, 하면서 거리를 두고 글을 쓰진 못해요. 그래서 앞으로 그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을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머릿속에 확실한 세계가 있어서 현실과 유리된 상태에서 글을 써야 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에, 저는 그런 부류의 작가는 못 되는 거죠. 똑같이 삶의 비루함을 느끼면서 살아야 해요. 

 

이런 구조에 대한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요.

시인이라는 텍스트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에 대한 불만은 있을 수 있어도, 음… 한 번도 대우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있지를 않아요(웃음). 내가 뭐 잃어봤어야 불만이 있지. 그리고 저도 시 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눈을 뜨고

가로등을 번지게 했던 시절

고분처럼 뚱뚱한 동네 엄마들이 깨어날 시간입니다 저는 아직 제 방으로도 못 가고 천마총에도 못 가보았지만 이게 꼭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어서요 결국 무엇을 묻어둔다는 것은 시차(時差)를 만드는 일이었고 시차는 그곳에 먼저 가 있는 혼자가 스스로의 눈빛을 아프게 기다리는 일이었으니까요.

– 박준, 〈천마총 놀이터〉 중에서

박준의 시를 읽으면 작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보다는, 자연스레 시인 주변의 타인들을 생각하게 돼요. 아버지와 미인, 그리고 당신. 시집 서문의 ‘두엇쯤 있는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사실 두엇이라고 썼지만 더 많죠. 시집에 ‘미인’이라는 말도 한 여덟아홉 번 정도 쓰여요. 그런데 다 사람은 아니에요. 다 여성을 일컫는 말도 아니고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인데, 공통점은 부재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아름다웠다. 지금은 없다.’ 생물학적으로 죽었거나, 저와의 관계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요. 미인이라고 쓴 대상 중에는 ‘강’도 있어요. 제가 4대강 일주 비슷한 것을 하면서 강을 의인화한 거죠. 그 강은 지금은 더러운 강이 되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것이니까요. 아, 경북 안동에 ‘조탑’이라는 시골 마을이 있는데요. 《몽실 언니》, 《강아지똥》 등을 쓴 권정생 선생님의 유해가 뿌려진, 살던 집이 있어요.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이라는 시는 그 마루에서 졸다가 일어나서 쓴 시예요. 그분도 닮고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미인 중에는 정치인도 있고, 가족도 있고, 좋아하고 사랑했지만 다시 못 보는 사람들도 있고. 한 사람은 아니고, 또 사람만은 아니고, 다 여성은 아니고.

 

시집과 산문집에서 종종 아버지 얘기가 나오는데, 타인의 슬픔을 내면화할 줄 아는 아버지의 성격을 좋아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봤어요.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을 생각하는 것’과 닮은 이 정서가 시집을 관통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받은 유산을 물어도 될까요?

일단 가난이고요(웃음). 절대적인 가난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집에 라면이 있는 정도의 가난, 상대적 가난이죠. 그런데 얼마나 가난했느냐가 문제는 아니에요. 가난이 사람에게 주는 기질 같은 게 있거든요. 산문집에도 이런 글을 썼어요. “일을 많이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할까, 다 하지도 못할 일들을.” 생각해보니까 가난해서 기질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계속 있는 거죠. ‘얼마의 빚을 물려받아서, 얼마를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가난이 아니라 기질의 가난을 물려받는 일이. 이건 좀 슬프더라고요. 

 

그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없나요(웃음)?

슬픔은 자랑이 안 되죠, 사실.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서 쓴 건 이런 거예요. 나에게 생기는 어떤 일로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게 생긴 슬픈 일로 같이 슬퍼지거나 혹은 우리 사이의 어떤 곳에서 사람들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일은, 자랑이 되겠더라고요. 그걸 공감이라고 부르든 연대라고 부르든, 부르기야 다양하겠으나. 어쨌든 그런 감수성을 가장 많이 배우고 보고 자란 게 부모일 테니까, 아버지…. 가난함에서 벗어나려는 기질도 물려받았고, 타인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혹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도 아버지 보고 배웠어요.

 

정서적 유산에 대해 왜 여쭤봤느냐면, 저도 나중에 깨달았지만 유년의 어떤 장면 자체가 제가 가진 정서와 너무 닮아있더라고요. 

어떤 기억인지 물어봐도 돼요?

 

명절에 친척들이 돌아갈 때, 다정한 말도 못 하는 아빠가 담배를 피우면서 마을 끝으로 멀어지는 친척들 차의 불빛이 아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장면 같은 거요.

저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아버지가 배웅하는 친척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있어요. 어떤 어른을 뵙고 가는데 길을 한참 가도 뒤편에 서서 계속 휘휘 손짓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그 길을 다시 돌아갔어요. 멀리서 보면 그게 오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다시 갔더니 가다 왜 왔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야 그게 가라는 인사라는 걸 깨달았죠. 되게 좋더라고요. 그 장면이 굉장히 다정하죠. 그런데 실제로는 무뚝뚝하셔요. “가!” (웃음)

 

슬픈 일도 좋은 일도 되새김질을 자주 하는 성격이라고요.

제가 개인적 성향이 소심해요. 소심해서 오래 담아두고, 잘 삐지고. 삐지는 티도 바로 내지 않고 한참 후에야 얘기할까 말까 하고. 그러니까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죠. 타인의 말부터 장면까지. 사소한 것을 기억하니까 전 너무 괴롭죠. ‘아까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한 거지, 걔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핵심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게 핵심 기억이 다 그런 것들이에요. 상처받은 기억, 무시받은 기억. 그런 걸 저만 보는 곳에 다 적어두고 일 년에 한두 번, 어느 날 할 일이 없으면 초등학교 때부터 적어둔 걸 다시 봐요. 핵심 일기장이 따로 있거든요. 아, 이건 뒤끝 있고 오래 기억하는 사람의 장점인데, 좋았던 것도 많이 적어둬요. 그런데 좋았던 것들을 적어놓으면 좋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좋았지, 이때 즐거웠지, 그때 누구 있었지, 하면서 보다 보면 먹먹하고 슬퍼져요. 지나간 일이니까. 그래서 이 성향이 글쓰기에는 좋은데 살기에는 좋지 않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가장 자주 되새김질하는 유년의 기억이 있나요?

제가 어릴 때부터 잘 울었는데요. 울고 나면 뭔가 다 슬퍼했어도 눈가에 눈물은 남아있잖아요. 어릴 때 살던 집이 2층이었는데, 울고 나면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가서 가늘게 실눈을 떠요. 그런 눈으로 가로등을 보면 빛이 번지거든요. 그렇게 빛을 눈으로 그리면서 놀았죠. 제가 그걸 마음대로 만들 수 있거든요. 길게 늘여도 봤다가, 휙 돌리기도 하고. 그걸 꽤 오래 한 것 같아요. 울고 난 뒤에 눈물 아까워서 빨리 올라가고(웃음). 

 

저는 유년 시절이 많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꼭 적어둬야겠다, 생각만 해요.

적어두셔야 해요. 그리고 기억이 점점, 사진을 예로 들면 초점이 한곳에만 맞춰져요. 나머지는 흐릿해지거든요. 나머지까지 다 적어두는 것도 좋아요.

외로운 방들을

찾아

봄이 오면 나는 병을 앓을 것이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통영에 가려 하는 병. 따지고 보면 병도 내 삶의 취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인터뷰 전 연락하기가 조금 어려웠잖아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고성에 다녀왔어요. 애견 동반이 가능한 펜션에 쉬러요.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을 피해서 갔는데 전화가 안 터지더라고요. 건물 안에 와이파이는 터지는데 제가 카카오톡도 안 하거든요. 그런데 둘째 날부터는 와이파이도 안 된대요. 게다가 비가 많이 와 길이 없어져서 못 나갔어요. 하나로마트에 가서 라면을 사 오고 싶은데 못 가고. 오랜만에 오지에 갔는데 저는 주인이 살인마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개들은 즐겁게 놀다 왔어요. 

 

원래 이렇게 훌쩍, 연락두절 상태로 여행을 떠나나요?

자주 가요. 두절 상태로 가죠. 셀프 두절이에요. 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면 되니까요. 

 

별 문제가 생기지는 않고요?

누가 저 보고 그러더라고요. “네가 진짜 권력자다.” (웃음) 수일 내로 연락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미리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얘기해주죠. 저도 직장 다니니까, 이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 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일이 열흘 정도 남았을 때도 하루 연락이 안 되면, 약속한 일이 취소되기도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이 잠수의 행태를 바꿔야 하나,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여행인가요, 도피인가요?

직장 다니면서 시 쓰는 일이 사실 쉽지 않거든요. 일단 시나 글 쓰는 일이 하기 싫고(웃음). 글 쓰는 시간이 종일 빛나는 건 아니라서요. 내가 쓰고자 하는 것과 화해도 해야 하고, 싸우기도 해야 하고, 재평가도 해야 하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로 글을 쓰지는 않아요. 괴롭거든요. 무엇을 호출해내고, 고민하고. 즐겁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거죠. 저녁을 먹고 퇴근을 한 뒤에 ‘나는 언제 잘 거니까 몇 시간 쓸 수 있어’ 생각하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오늘 종일 회의를 하고 이상한 말 하고 농담하고 혹은 언쟁을 하다가 집에 와서 난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하고 쓰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잖아요. 되게 이상한 일이거든요. 회사 다니면서 시적 장면을 적어두고 메모는 해도, 글 쓸 수 있는 정서적인 시간이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이삼 일 정도 그냥 떠나서 자신을 가두는 거예요. 여행 간다고 해서 관광지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낯선 곳에 가서 혼자 있죠. 이때, 글 쓸 때 가장 도움을 주는 감정이 그리움이거든요. 셀프 그리움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자주 가는 도시가 태백인가요?

네, 자주 갔었어요. 내일도 태백에 가네요.

 

자주 가는 도시에서는 머무르는 곳도 같나요?

제가 최근에야 생각했는데, 저야 남자니까 여행 가서 그냥 방을 잡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여성분들은 어렵겠더라고요. 혼자 다닐 수 있는 것도 어떤 의미의 남성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죠. 요즘에서야 반성하긴 했지만요. 아, 태백에는 호텔이 없어요. 제가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숙소 잡고 방에 있는 것들을 좋아했어요. 그러면 괜히 쓸데없는 것들이 그리워지거든요. 미안해, 나 이번 주에 못 만나. 약속을 거절하고 왔는데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글 쓰는 것 외에도 우리 생활에서 긍정적인 일을 많이 하니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여행을 자주 가요. 

 

그래서 자꾸 낯선 도시의 외로운 방들을 찾아다니는 거네요. 사람 말고도 그리워지는 게 있어요?

혼자여서 할 수 없는 일들. 예를 들면 구운 고기가 먹고 싶다던가, 생선찜이 먹고 싶다던가. 조금만 가면 바다인데 바다가 그리워진다던가. 혼자 가서 무슨 수영을 하고 놀아요, 못 하죠. 그래서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일어났을 상황들,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들, 있었을 법한 상황들도 함께 그리워지죠. 

 

박준 시인은 서울 사람이잖아요. 산문집에 ‘서울은 사람의 고향이 되기에는 너무 크고 뻔뻔한 도시입니다.’라고 썼는데, 서울 사람에게 서울은 어떤 곳인가요?

서울은 무국적, 무시간의 도시 같아요. 어떤 지역과 지역의 시차와 정서 차이가 엄청나죠. 충주 출신이시면, 음성이나 제천 사람만 봐도 좀 반갑잖아요? 그런 게 있으시죠? 그런데 제가 종로가 본적이고 어릴 때는 불광동에 살았는데, 바로 옆 동네 녹번동, 홍제동만 살아도… 반갑긴 뭘 반가워(웃음).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인데도 동향이란 감정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제가 또 글 쓰는 사람으로서 불만인 것은, 서울의 언어가 없거든요. 언어가 없다는 것은 문화가 없다는 말이거든요. 사투리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피라미라는 민물 어종을 어디에서는 피리라고 하고, 어디에서는 피래미라고 하고, 피라미라고 부르지만 쏘가리의 다른 방언인 경우도 있고. 서울은 그런 언어가 너무 부족한 곳이에요. 

 

저는 서울 사람이 늘 신기하고, 서울이 좋지만 여전히 낯설어요.

물론 서울에서는 어떤 것을 횡단하는 즐거움 같은 건 있어요. 제가 살던 곳이 북한산국립공원 쪽이었는데 군사보호지역,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서 2층 이상 건물이 올라가지 않았어요. 서울인데 아궁이 때는 집도 꽤 있었거든요. 시골과 진배없는 서울이었죠. 그런데 버스 타고 한 여섯 정거장 가면 광화문 교보문고인 거죠. 그럼 그곳은 너무 도시이고요. 점심에 웬디스 버거를 먹고 돌아와서 아궁이에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 잠드는 삶이, 이상한 혼동의 삶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저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거든요. 박준 시인은 이곳저곳 많이 다니잖아요. 여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제가 시집에 “나는 연화라는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 한다”라고 썼는데요. ‘연화’는 지명이에요. 전국에 연화리가 열 몇 개가 있어요. 이미 시를 쓰고 있지만 더 쓸데없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화, 이름 이쁘네. 전국의 연화리에 가봐야겠다.’ 한 거예요. 이제 열 군데 정도 가보고 세 군데 정도 남은 것 같아요. 가면 아무것도 없어요. 연화리라 써 있기만 하고. 옛사람들의 작명 센스가 그렇게 발달하지 않아서, 연꽃 모양의 산이 있으면 산 위에는 연상리, 아래는 연하리, 가운데는 연화리가 돼요. 이게 제가 하는 쓸데없는 일 중에 하나인데요. 왜 쓸데없는 일을 여전히 하느냐면, 예전에 필름 카메라 많이 찍을 땐 충무로에 가서 인화를 했어요. 사진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냥 인화할 땐 거기 가야 하는 거예요. 제 삶에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일이죠. 어떻게 얘기하면 강박이겠지만, 사람이 특정 시기마다 어떤 일을 반복하는 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적어도 자신의 삶을 배신하고 영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은 안 되거든요. 잘 찍은 사진도 아니지만, 충무로에 인화하러 가면 자연스럽게 그 근처 도가니 집을 가요. 그 전에 도가니 찜을 좋아하는 친구를 부르는데, 그 친구는 그때만 만나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말하는 투가 달라지잖아요. 태도도 달라지고요. 그래서 이 사람을 만나면 오랜만에 이 태도를 꺼내는 거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게 나름 즐거워요.

 

그런 반복 외에도 박준의 여행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저도 최근에 하기 시작한 일인데요. 어려운 일이지만 하루 정도는 내비게이션이나 사전에 공부한 것 없이 다녀요. 계획을 세워서 갈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하니까 여행에 모험이 사라졌더라고요. 너무 안정적이고, 줄 오래 서고. 그런 방식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유명한 곳에 가서 사람들 먹는 거 먹는 게 나쁜 일은 아니죠. 실제로 입소문 탄 게 기대에 부응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하루 정도는 여행지에 대한 공부나 책, 내비게이션 없이 정말 자유로운 여행을 해요. 쉽지는 않죠. 일단 배가 너무 고프고(웃음). 원하는 곳에 식당이 없으니까. 

 

겨우 식당에 갔는데 맛없고(웃음).

들어갔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식당에서 개 먹고 있고. 그러면 나오게 되거든요. 개를 판다고 써놓지도 않았는데 왜 개를 팔아, 울면서 나오고. 어려운데 그렇게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 

 

먼저 봄 보는 것을 좋아해서 남해의 도시로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봄도 봄인데, 먼저 울음이나 슬픔을 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디에서고. 요즘 시인의 눈에 자꾸 밟히는 것들은 뭔가요?

눈에 밟히는 불길 같은 게 있어요. 면봉이나 일회용 봉투나 장갑을 살 때, 두 개 사는데 하나 얹어주면 꼭 사게 되잖아요. 면봉 같은 건 한 봉지에 천 개가 들었다고 가정하면, 삼천 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면봉을 매일 하루에 하나씩 쓰진 않거든요. 삼천 개면 하루에 하나씩 써도 8년 좀 더 쓰나. 그런데 제가 그것보다 오래 살까? 생각이 드는 거죠. 끊임없이 생활에, 일상에 어떤 죽음이나 불길이 들어올 때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숙연해지기도 하고요. 수량이 많은 물건을 살 때 그런 기분이 들어요. 

 

늘 어떤 의미에서 불안함 같은 것이 있나 보네요.

잘 보면, 큰일이 생긴다고 할 때 정말 큰일이 생기는 경우는 많이 없어요. 물론 있기야 있죠. 그런데 작은 일들이 그만 생길 때, 큰일이 생기거든요. 가족이랑 밥 먹는 건 작은 일인데, 가족과 밥을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부터요. 이 무수한 작은 일들이 언젠간 정지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문득문득 와요. 그때 우리가 큰일 났어, 하고 얘기하죠. 그래서 큰일 날까 봐요. 내가 매일 면봉을 쓰는 일이 중단되면 어떡하지, 그런 거죠.

한 이틀 후에 오는

좋은 것들

이 질문은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망설였는데, 물어볼게요. 처서가 지난 계절, 지금 제철인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 이제 시 얘기 좀 해야 하나. 지금 시가 제철인데(웃음). 그죠? 


그런데 음료 좀 더 드실래요? 아메리카노나.

저만 시켜주실 거면 안 마시고요, 같이 마시면 마시고요. 그런데 여기 맥주도 있나요? 


네, 여기 있을 거예요.

그 저는 아무 맥주나 한 잔.

(맥주를 주문하고 온 뒤, 그가 가방에서 세 편의 시가 실린 종이를 꺼냈다.)

아, 이건 시집에 안 실린 시들인데요. 가을에는 술이 제일 좋죠(웃음). 독주를 마실 때가 온 것 같아요. 여름엔 아무래도 못 마시죠.


어떤 술 좋아하세요?

독주는 다 좋아해요. 몰트위스키도 좋아하고요. 시인이 무슨 위스키를 좋아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가 무슨 귀한 위스키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위스키가 싸거든요. 한 병에 6만 원짜리 위스키를 마시면 6천 원으로 열 번 취할 수 있는데,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이면 만 원이니까 훨씬 저렴한 거죠. 저희 짠 할까요.


산문집에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어요. 혹시 이 순간 마지막이라면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어요?

그런데 혹시 죄책감 느끼실 거예요? 이게 진짜 유언이 되면?


저는 인생에 죄책감이 별로 없어요.

어, 되게 재미있는 캐릭터다. 죄책감이 별로 없으세요? 없다니까 신기하네. 


사실 제가 별로 죄를 짓고 살지 않아서….

아, 잘못을 안 한다(웃음).


그래서 오히려 가끔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고등학생 때 가파른 언덕에서 어느 할아버지랑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언덕 밑에서부터 버스가 올라오는데, 어떤 고등학생 형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 버스를 제치며 지그재그로 버스를 놀리면서 갔어요. 저는 회수권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저 새끼 저러다 죽지”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오토바이가 고개를 넘어섰는데 갑자기 끽 소리가 나고, 오토바이는 안 보이고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걸 봤어요. 할아버지가 그 말을 한 3초 후에. 그리고 저희는 버스를 탔죠. 사고 현장을 버스가 지나갔고, 아마도 죽었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더라고요. 속으로는 모르지만요. 저분이 저승사자인가, 그런 감정으로 봤죠.


어, 제가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닌데….

(웃음) 아, 그래서 유언. 저 대답할 거예요. 사실 유서를 본 적이 많았는데, 유서 내용이 빤해요. 누가 쓰든 다 빤하거든요. 제가 산문집에도 유서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의 반복이라고 썼잖아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든, 처음 쓴 글이 유서든 비슷한 감정인 것 같아요. 아, 저는 좀 더 멋있게 얘기해야 하는데(웃음). 제가 마마보이거나 어떤 모성을 신화화하는 건 아닌데, 좋아하는 신기섭 시인의 시에 “엄마, 언제부턴가 세상의 모든 비명은 엄마였다”라는 문장이 있거든요. 놀랄 때 어떻게 말씀하세요? 


엄마야.

뭐 떨어트릴 때도 그러잖아요. 그런데 사실 비명도 그거예요. 엄마, 하면서 어떤 일이 생겨요. 저도 접촉 사고 나면 엄마, 하더라고요. 접촉 사고가 아닌 큰 사고였더라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저도 의도하지 않은 죽음이라면 ‘엄마’가 마지막 말이 될 것 같고요, 의도한 죽음이면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런 얘기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이년 전쯤 어떤 시 수업에서 박준 시인을 처음 봤을 때 참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어떤 선배 시인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준이야, 너는 시가 공부한 티를 안 내서 좋아.” 그래서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아세요?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웃음). 농부가 농부처럼 보이는 일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경찰이 경찰처럼 보이는 일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요. 시인이 시인처럼 보이는 일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그때는 퇴근하고 생활인 버튼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가서 그럴 거예요. 사실 저 산문집 내고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글을 보면 굉장히 어둡고 말도 더듬더듬할 것 같은데, 왜 사람을 웃기려고 하느냐. 제가 지킬 앤드 하이드처럼 의도적으로 가면을 바꿔 쓰는 게 아니거든요. 타인을 만나면 많이 들으려고 하고 말도 따뜻하게 하려고 하는, 이런 강박감이 있는 것도 제 모습이고 아무도 만나기 싫어서 고개 숙이는 것도 제 모습이죠.


그래도 박준 시인은 꽤 다정한 사람 같은데, 사실 저는 다정함을 경계하는 편이거든요. 혹시 경계하는 종류의 다정함이 있나요?

저도 요즘에서야 이 강박을 깼는데, 일하면서 메일 보낼 때나 미팅 잡는 메일을 쓸 때도 편지처럼 썼어요. 시인으로서의 나를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어떤 계약을 할 때, 제가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 것으로 시인의 정체성을 보일 순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웃음). 복사해서 붙여넣기가 안 돼요, 잘. 그러다가 이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겠더라고요. 제가 아까 문자 보낼 때 편지 쓰듯 한다고 했잖아요. 예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한테 그렇게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승인되는 관계 안에서만 하게 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정하고 친절한 게 어떻게 보면 약간 폭력 같기도 하고.


함부로 오는 다정함이라던가 혹은 말로만 오는 다정함이라던가. 미묘한 차이인 것 같아요. 저도 다정한 사람이고 싶은데, 제가 받는 어떤 느낌처럼 이 감정이 타인에게 제대로 닿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대부분 안 닿죠. 손실이 있죠. 내가 100을 얘기하면, 100은커녕 80도 전해지지 않죠. 잘못된 120이 전해져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래도 끊임없이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요, 다정함을 전하는 일은.

시인 박준이 추천하는
주변의 슬픔을 다독이는 책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 주니어김영사 | 32쪽

《이게 정말 사과일까?》, 《이게 정말 나일까?》로 알려진 요시타케 신스케의 신작이다. 아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다 공책을 발견한다. 그 속에는 할아버지가 죽음을 상상하며 쓴 글과 그림이 가득하다. 죽음을 생각하며 동시에 현실을 말하는 책이다.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 까치 | 278쪽

시인은 침묵을 알고, 글 안에 침묵을 둘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침묵이 수동적이고 말하기를 멈추는 행위가 아닌, 말의 포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신과 타인 사이의 침묵을 발견하는 시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을의 말
박준

그렇게 들면 허리 다 나가 짐은 하체로
드는 거야 등갓 잘 보고 모서리 먼저
바닥에 놓아 아니 왼쪽으로 조금 더
왼쪽으로, 가는 말들 지나

외롭지 그런데 그것은 외로운 게
아니야 가만 보면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외로운 거야
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게
아니다, 하는 말들 지나

왜 자면서 주먹을 쥐고 자 피 안 통해
손 펴고 자 신기하네 자면서도 다 알아,
듣는 말 지나

큰 비 지나, 물길과 흙길 지나, 자라난
풀과 떨어진 돌 우산과 오토바이 지나,
오늘은 노인 셋에 아이 둘 어젯밤에는
왠 젊은 여자 하나 지나, 여름보다
이르게 가는 것들 지나, 저녁보다 늦게
오는 마음 지나, 노래 몇 자락 지나,
과원果園지나,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 한 이틀 후에 오는
좋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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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