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일

웹툰 작가 난다

만화가의 일

웹툰 작가 난다

책 속 문장에 감탄하거나 영화의 한 장면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건, 일상에서는 잡아둘 수 없거나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생각과 감정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실은 나 같은 인간은 나밖에 없다며 끔찍하게 여기다가도, 우울한 날이면 간사하게도 딱 나만큼 못난 타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를 그리는 작가 난다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단행본이 벌써 여덟 권이나 나왔어요. 이렇게 오래 연재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 시즌1 할 때는 ‘다음에도 할 수 있을까?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죠. 원래는 올해 차기작을 하고 싶었는데 준비가 길어져서 다시 <어쿠스틱 라이프 시즌 10>을 연재하게 됐어요. <내가 태어날 때까지>는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인데, 그것과도 다른 스토리 만화를 구상하고 있어요.

연재 중인 작품의 장르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보통 웹툰 작가님들의 마음인가요?
제가 만나본 작가님들은 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생활만화가 더 맞거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겠죠. 그래서 저도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요. 물론 차기작보다 <어쿠스틱 라이프 시즌 11>이 먼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계속 도전해야죠.

처음 만화를 그릴 때와 지금 마음이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에는 분량도 짧았고 일하는 프로세스가 정해지지 않았었죠. 지금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똑같은데 마감하는 기술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웃음)? 그전에는 마감까지 이런저런 일을 순서대로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갈수록 몇 시에는 이걸 끝내야 맞출 수 있다는 게 생겼죠.

마감의 기술이 도대체 뭐죠(웃음)?
예전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넣으면 더 괜찮을 것 같아서 마감이 계속 늦춰졌어요. 소재도 다른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으면 작업하다가도 계속 바꾸고 그랬죠. 전에는 마감 시간을 어겨도 재미있고 완성도를 내가 만족할 때까지 끌어내야 하는 게 1순위였고 마감은 2순위였어요. 그런데 시즌이 더해갈수록 내가 만족하지 못해도 마감이 다가오면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정말 많이 늦었었는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일상에서 소재를 얻었을 때 웹툰이 되는 이야기와 아닌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요.
생활 만화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일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결국 생활 만화도 이야기의 선상 위에 있어야 하거든요. 감정이 100이라면 그걸 다 토해냈다고 완성도가 높은 만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니 주제를 표현하는 정확한 에피소드가 필요해요.

기록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을 기록하는지 궁금해요.
데뷔하기 전에는 기록에 대해서 집착하진 않았거든요. 기록해서 무언가에 쓴다는 의식이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귀찮잖아요. 그런데 연재 시작하니까 이 기록에서 모든 게 나오더라고요. 예전에는 노트에 적었다가 바로 콘티로 만들어서 기록해놓고, 그게 안 될 때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활용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일단 제가 휴대전화를 들면 팔에 매달려서 우니까(웃음). 아마 흘려보내는 것도 많았겠지만 가능하면 에버노트나 안드로이드에서 버튼만 누르면 메모할 수 있는 ‘1초 메모’라는 앱을 활용해요. 괜찮은 앱 있으면 남편이 추천해주기도 하고요.

육아 일기도 꾸준하게 쓰신다고요.
안 쓰면 놓치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이제 세 살 지나니까(웃음)… 예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썼다면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쓰고 그래요.

쌀이의 탄생이 만화에서도, 일상에서도 큰 변화였을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일상의 묘미를 찾아내는 표현이 좋았다면, 지금은 쌀이를 통한 아이의 언어 덕에 완전히 새로운 표현을 종종 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변화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웃음). 아이가 태어나도 생활의 구심점은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예상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일단 아이를 너무 좋아하게 되니까 생활외 중심이 되는 거고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런데, 좋은 것 같아요(웃음).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이니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왜곡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잖아요. 특별히 조심하는 부분이 있나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계속 불편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생각하면서 표현을 순화하기도 하고 남편한테 의견을 묻기도 하면서 이유를 찾아요. 특히 아이 낳고 나서는 욕이나 비속어가 걸리더라고요. 비속어가 약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많잖아요. 예전에는 실제로 쓰는 말이니 특별히 신경 안 썼어요. 실제 쓰였던 뉘앙스를 정확히 표현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저에게 아이라는 약점이 생기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남에게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가 되다 보니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일부러 실생활에서도 욕과 비속어를 쓰지 않으려 신경 써요. 그러다보니 만화에도 다른 표현으로 바꾸게 되고요. 무엇보다도 아이가 따라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물론 이건 제가 생활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더 신경 쓰는 것이고 완전히 픽션이라면 당연히 또 다르겠죠.

주 1회 연재할 때 작가님의 생활은 어떻게 흐르나요?
<어쿠스틱 라이프>는 금요일 연재니까 화요일이나 수요일부터 머릿속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요. 수요일에 콘티 짜고 목요일에 계속 작업하고 완성해서 금요일에 올려요. 제일 품이 팔리는 작업이죠.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예스24에 <두 번 본 영화>라는 칼럼을 연재하거든요. 그런 작업도 있고 중간에 단행본 준비도 하고 가끔 광고 만화를 작업해야 할 때도 있어요.

생각보다 짧은데요? 저는 더 오래 걸릴 거로 생각했어요.
그림이 간단하다 보니 다른 극화 작가들보다는 작업 시간이 짧아요. 콘티 짜는 일이 제일 오래 걸려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구상하고요. 금요일 연재라 주말은 꼭 쉬려고 하거든요. 가족들이랑 보내려고요.

생활툰이라는 장르 특성상 계속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어쿠스틱 라이프>를 그리는 것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 그린 에피소드를 보면, 기억이 박제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게 만화가 되지 않았으면 내 머릿속에서 그때의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기억이 만화화되면 만화 속 장면 자체로 남게 되니까요. 어떤 기억이 내가 생각하고 있었을 때와 만화가 됐을 때가 정확하게 똑같진 않아요. 그래서 만화 그릴 때 심한 과장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면 제가 나중에 봤을 때 위화감이 들어서요. 결국 내 이야기이다 보니 꾸미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쿠스틱 라이프>를 그리는 일은, 음… 20권쯤 되면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요(웃음)? 지금은 휴재 중이라 자꾸 계속 질문하면서 나 자신을 괴롭히려고 하지는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나에게 질문하는 이야기보다 주변을 보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요.

집에서 규칙적으로 하는 일 있나요?
일을 규칙적으로 해요. 제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웃음). 원래는 일을 조금 하고 많이 놀고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시간이 생겼을 때 일하지 않으면 마감을 맞추지 못하니까요. 요즘은 생활이 다 규칙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운동? 최근에 무에타이를 시작했는데 격투기라서 엄청 재미있어요.

요새는 웹툰에 남동생(토깽)이 잘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여자친구도 생기고, 일이 바빠졌거든요. 아이 생기니까 아무래도 예전처럼 매일 집에 불러서 밥 먹기도 힘들고, 이사 오면서 집도 좀 멀어졌거든요. 근황을 묻는 분들에겐 말해주고 싶은데 갑자기 뜬금없이 여자친구 생겼다고 하기에도 좀 그래서(웃음).

이 동네에서 쭉 사셨나요?
네. 부산에 있던 친구들이 먼저 올라와서 터를 잡아놨어요(웃음). 그때는 강남으로 출근해야 해서 가까우니 다른 데는 알아보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괜찮더라고요. 

집이 참 예뻐요. 만화에서 보던 그대로인데, 여전히 집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나요?
그렇죠. 마당 있는 집. 얼마 전 군산에 여행 갔을 때도 처음에 묵었던 숙소가 옛날 집 재현한 목조주택이었어요. 단층이니까 아이들이 아무리 뛰어도 안 울리고, 자기 전에 춤도 추고. 뛰지 말라고 잔소리 안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덜 받고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주택의 단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네요. 자기가 다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금으로선 아파트가 최선인 것 같긴 해요. 아파트인데 테라스가 있다던가, 작은 정원이 딸려 있으면 좋겠죠.

집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아이의 장난감 수납장 위를 좋아해요. 아이 장난감과 물건들로 늘 정신 없는 집이지만, 수납장 윗부분은 아이가 관심 두지 않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 개인적으로 즐기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의미 있고 예쁜 것들만 모아서 꾸며두었어요. 창문 옆쪽 벽이라 그쪽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런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매일 관리하고 있어요.

웹툰을 보고 집에 식물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적은 느낌이네요.
원래는 정말 많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는 떼죽음 당했어요. 그나마 다시 신경 쓸 수 있게 된 게 최근이에요. 거실에 있는 식물은 ‘섬시호’라는 식물이에요. 딸 이름이 시호거든요. 그전에 창경궁 온실에서 처음 봤는데 다른 식물원에서 팔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사 왔죠. 얘는 안 죽이려고 엄청 애지중지하고 있어요(웃음).

동화책도 자주 읽어주세요?
네. 저도 그림책 무척 좋아하고, 어릴 때 봤던 동화책들의 이미지가 머릿속 에 많이 남아있어요. 그래서 저도 가능한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남겨주고 싶거든요. 가끔씩 아이한테 읽어주다 보면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최근에 읽어준 것 중에 《개구쟁이 아치》라는 동화가 있는데 이불에 오줌 싸서 이불을 쫙 나무에 걸어놓은 장면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어렸을 때 봤던 기억이 나는 거예요. 찾아보니까 40~50년 된 책이더라고요.

지금의 저한테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생각나는 유년 시절의 이미지들이 있어요.
맞아요. 그런 걸 계속 생각하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참, 시호가 <어쿠스틱 라이프>를 보려고 하진 않나요?
제가 일하는 걸 매일 보니까 자기를 그린 그림이라는 건 알아요. “왜 시호 그렸어? 시호가 뭐 하고 있어?” 하면서 물어보고요. 가끔 웹툰 관련 팬시 상품 나오면 자기 그려진 거 쓰고요. 엄마가 정확히 뭐 하는지는 모르는데 일을 한다는 것만 알죠.

커서 읽게 되면 참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아이 낳기 전이나 직후에는 가능한 직업을 감추고 싶었어요.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만화에 나오는 딸은 제가 어떤 이미지로 객관화해서 만든 거잖아요.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기 전부터 내가 투영한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게 좋지는 않을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부모란 보호는 해주지만 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거든요. 만약 쌀이가 관심 가지려고 하면 감출 것 같아요. 그런데 집에 증정받은 책이 너무 많아서(웃음). 

저는 만화에서 헛된 로망이라도 조금씩 그걸 향해 움직이면 어떤 로망은 은근슬쩍 현실이 되어있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현재 작가님의 로망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생각 못했는데 좀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남자의 체력에 부치지 않게 여자로서 강해지고 싶고, 또 차기작 하는 거요. 그게 제 로망인 것 같아요. 생활적인 부분보다 일에 대한 로망이 가장 큰 듯 해요. 음.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또렷한 눈을 가지는 것? 사노 요코 할머니처럼요.

인생, 보사노바처럼 살 줄 알았는데
7할이 고속도로 메들리
인생, 수필일 줄 알았더니
7할이 개그만화
인생, 로맨틱코미디일 줄 알았더니
그냥 코미디
그래도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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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