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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차영은 가족
마주보고 스치고 돌아보는
가족의 얼굴
장진, 차영은 가족
영화감독, 디자이너
금요일 오후 네 시, 가을볕이 마당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탐스러운 감나무를 마주하고 앉은 아빠는 두 아들에게 번갈아 공을 던졌다. 한 손에 글러브를 낀 아이들은 서로 공을 받으려 뛰고 웃고 투닥댔다. 주위를 맴돌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까지 모두 마당으로 모였다. 이들은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위트를 선보이는 장진 감독과 어린이 놀이 제품 및 책을 만드는 ‘장차’의 대표 차영은의 가족이다. 마당 어귀에서, 감나무 아래에서, 바람 사이로 그들의 표정이 뒤섞였다. 마주보고 스치고 돌아보는 얼굴이 쌓여 가족의 얼굴이 된다.
최근 어떻게 지내나요?
장진 개인 작업은 비슷하고 처음으로 드라마를 1년 넘게 준비하고 있어요. 글을 쓰고 있어서 머리로는 힘들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이라 한가한 편이에요.
차영은 장차에서 곧 새로운 그림책 두 권이 나와요. 하나는 요리 그림책인데 우리나라 대표 음식 스무 가지를 꼽고, 요리 과정 중에 엄마 옆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표시해 함께 하는 책이에요. 아이들이 넘겨 보면서 요리의 즐거움을 찾으면 좋겠어요. 다른 하나는 태극당 빵집 이야기예요. 3대째 이어져 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역사를 그림으로 소개하는 책이에요.
감독과 디자이너로서 원하는 일을 설계하고 몰두하고 계신데요. 서로의 일에 의견을 나누기도 하나요?
차영은 거의 그렇진 않아요. 남편이 글을 쓰거나 제가 디자인을 하는 과정은 서로 잘 모르는 분야예요. 남편도 도와주려고 하는데 잘 모르니까 거의 도움이 안 돼요(웃음). 하지만 힘들었을 때 극복하는 법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같은 건 주로 제가 조언을 얻어요. 결정적일 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두 분의 유년 시절 꿈도 감독과 디자이너였나요?
장진 전혀 아니에요. 허무맹랑한 것들이었어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한 게 기억나요. 공으로 노는 건 다 좋아해서 저학년 때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요.
차영은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바뀌긴 하던데, 그래도 거의 일관되게 디자이너를 꿈꾼 거 같아요. 아이들이 “엄마는 꿈이 뭐였어?”라고 물어서 말해주면 엄마는 꿈을 이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빠의 성과 엄마의 성을 모아 아이의 이름을 지었어요. 이름은 부부가 함께 지었나요?
차영은 남편의 아이디어였어요. 아들이면 장차인, 딸이면 장차연으로 하고 싶다고 했죠. 장차인은 장진과 차영은의 사람, 아빠 엄마 안에 있다는 뜻이에요. 한자는 아니고 한글 이름으로 했죠. 둘째 차윤이는 제가 지었어요.
책과 어린이 놀이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 이름도 장차예요.
차영은 처음부터 이거다 하고 정한 건 아니었어요. 고민 많이 했거든요.무엇으로 해도 질리거나 마음에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절대 질릴 수 없는 이름인 장차에 의미를 부여해 브랜드 이름으로 정했죠.
가족을 보자마자 느낀 건데, 첫째는 엄마를 닮고 둘째는 아빠를 닮았어요. 얼핏 보기에 성격도 많이 달라 보이네요. 어떤 아이들인가요?
차영은 사실 둘 다 저희의 어릴 적 모습과는 다른데 말이죠(웃음). 첫째 인이는 학교에서도 말을 잘 들으려 애쓰는 편이라서 말썽부리는 게 거의 없어요. 친구들이랑 놀다가 혼나기도 한다고 해서, ‘그래 너도 애구나.’ 할 정도예요. 아빠에게 인이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에요. 남편은 운동을 좋아하는데 인이가 운동을 잘하거든요. 윤이는 종이 접는 거,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해요. 키워보니 아이들에게 특기가 있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너는 영어 공부를 안 했으니까 영어를 못할 수 있어. 그런데 축구를 잘하니까 괜찮지?” 하면 수긍해요. 뭔가 못했을 때, 특기가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윤이는 형이 있으니 친구들도 비교 대상이 안 돼요. 윤이에게 형은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멋있는 존재죠. 종이접기를 하면서 자기가 형보다 잘하는 게 생겼다는 데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하지만 인이는 동생보다 못하는 게 싫어서 절대 안 해요(웃음).
형제는 영원한 경쟁자인 셈이네요. 감독님도 유독 남성이 많은 집안에서 컸다고 들었어요. 형제들은 보통 어떻게 자라나요?
장진 지금은 둘이 으르렁대요. 온전히 갖고 싶은 거를 나눠야 하니 불편하겠죠. 큰애한테는 부모가 본의 아니게 “네가 형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벌써 장남으로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아요. 형제가 좋다는 건 아마 살면서 느낄 거예요. 감흥도 없는데 직접 말하며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형과 애틋한 관계가 되었어요. 남성주의적인 집안이라 형이 완력적이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를 안아주고 이해하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도 형에게 헌신적으로 되었어요. 지금 우리 둘은 가장 친한 친구예요. 서로에게 매우 큰 힘이죠.
차영은 남자애들은 정말 단순해요. 방금 막 치고받고 싸우다가 30초만 지나도 둘이 다시 낄낄낄 웃고 그래요. 바보인가 싶기도 할 정도예요.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엄청 심심해하고, 같이 있으면 무심한 척하고 그래요. 싸우기도 하는데 크면서 같이 잘 노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냉장고에 엄마 그림이 붙어있네요. 두 아들이 그린 그림인 거죠?
차영은 얼마 전 제 생일이었거든요. 작년에는 제 생일날 아침에 둘이서 카드를 써서 식탁에 올려놨더라고요. 이번에는 추석이라 정신이 없긴 했는데, 케이크만 하고 아무것도 안 가져온 거예요. 그런데 받아내야겠더라고요. 남편한테 시켜서 엄마 생일 내일 한 번 더 할 거라고 했죠. 엄마는 연필, 지우개, 노트가 갖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골랐어요. 그림은 제가 그려달라고 한 거예요. 아이들한테 이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어른들 생신에는 꼭 카드 쓰게 하고 윤이는 종이접기 하나씩 드려요.
감독님이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로 차영은 대표는 육아와 일에 열정이 넘치는 편이라고요.
차영은 어릴 적부터, 일찍 결혼하고 아이도 빨리 낳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지만 힘들다기보다 재미있게 아이를 키웠어요. 첫 아이를 낳는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예전 어떤 영화에서 본 거 같은데 “나는 어떤 엄마로 불리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이었어요. 제 심정이 딱 그랬어요. 저는 디자이너 차영은보다 디자인을 하는 엄마 차영은이라 불리는 게 좋아요. 아이는 제 삶의 원동력이고 주 관심사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어요.
장차에서 선보이는 놀이 도구들도 그런 관심에서 시작된 건가요?
차영은 육아가 제가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지만 그것만으로 안 채워지는 게 있었어요. 둘째를 낳고 10개월쯤 일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일을 하길 바랐던 남편도 제가 간절하니까 일단 사업계획서를 써보고 구체적으로 방향을 정해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애들 재워놓고 밤에 구상하고 그랬죠.
어린이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 만든 건 유아 팬티예요. 한창 인이가 기저귀를 뗄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전공과 관련된 ‘놀이로 한글’이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여서 그 책으로 한글을 가르치면서 아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인이의 조언을 반영해 수정하고 보완해서 만든 책이에요. 최근에는 키티버니포니와 색종이를 만들었는데, 윤이가 색종이 접기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서로 주고받으며 관심 있는 책이나 교구를 만들고 있어요. 배운 거랑 하고 싶은 거를 엮어서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더 크면 관심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게 좋아서 하고 있어요.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가족만의 규칙도 생기게 마련이에요, 양육 방식이 궁금해요.
차영은 남편이 장기로 집을 비우는 편은 아닌데, 늦게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주로 아이들을 아침에만 보곤 했어요. 아빠와 계속 같이 있으면 아빠의 규율, 엄마의 규율도 있을 텐데 이 집에선 저의 규율이 너무 큰 거죠. 두 아이를 제가 통제 못 하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잔소리도 많이 하고 엄해졌어요. 아이들 양육이나 교육에 관해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남편은 제가 결정한 대로 믿고 맡겨줘요. 다행히 의견이 다른 적도 거의 없고요. 아이들에게 안전에 관해 지켜야 할 규칙은 엄격한 편이에요. 1층에서는 공놀이 안 하기, 계단에서 뛰지 말기. 그 외에도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규칙도 있어요. 주말에만 텔레비전 보기, 평일 오후에 보드 게임하기 같은 것들이요. 공부도 아직은 제가 봐줄 수 있어서 같이 해요. 비록 제 화가 많아지긴 하지만(웃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요. 집안일은 아이들한테 많이 도와달라고 하는 편인데요, 싫어하고 귀찮아하면서도 해주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든든할 거 같아요.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더라도, 아빠만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아빠로서 장진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장진 늘 부족하다 느껴요. 재화적인 가치가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진 않는 거 같아요. 사실적으로 풍부한 시간을 같이 못 가져서 늘 미안하죠.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게 부담돼요. 애들은 가끔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아봐주면 으쓱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주어지는 거 말고, 아빠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 때 거기서 스스로 감동을 받고 따라 하고 싶어야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감독이나 아빠의 재능이 뭔지 모르고 누군가가 알아봐 준다는 거 자체로 ‘아빠가 대단한가.’ 생각하는 건 제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아이들과 있을 때도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걸 해요. 그게 큰아이와는 비슷해서 서로 더 좋은 거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이가 원해서 할 때 아빠들의 얼굴에는 드러나거든요. 무료하고 심심하고 그런 표정이요. 저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표현해요. “너하고 놀아주긴 하지만 나도 좀 재미있는 거 하자.” 그러고요.
차영은 애들이 아빠를 너무 좋아해요. 특히 인이는 저랑 있을 때는 큰 애같이 굴려고 말도 껄렁하게 하고 그러는데 아빠랑 있으면 말투부터 상냥하게 달라져요. 같이 농구나 야구를 하면 무조건 좋아하고, 아빠랑 서점 가고 영화 보고 별거 안 해도 되게 행복해하더라고요. 그냥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가 봐요. 남편도 바쁘다가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애들에게 집중하려 노력해요. 요리해주고 야구장 가고, 영화관도 가고 그래요. 그런 다음 또 얼마간 바쁘죠(웃음).
동전 하나를 쥐면 마음이 부풀어 한걸음에 달려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결정인양 장난감을 고르던 기억이 있어요. 무엇으로 노느냐가 생각보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줘요. 두 분의 삶에서 장난감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장진 장난감은 자동차나 프라 모델, 공 같은 거 좋아했어요. 하지만 장난감으로 놀던 시대는 아니어서 동네 전봇대가 놀이 도구고 친구였어요. 그 옆에서 종이도 접고 나무를 깎아 방망이도 만들고 멀쩡한 땅을 파서 뭔가를 놓기도 했어요. 잘은 모르지만 장난감이라는 게 남이 만들어서 파는 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돈을 주고 사서 쓰면 되는 거잖아요. 어린이들의 놀이, 즐거움이라는 거는 가공되는 공산품에서 줄 수 없는 그 이상이 있는 거 같아요. 가끔은 애들한테 배우기도 해요. 그냥 청소기 줄 하나를 가랑이에 꽂으면 지팡이가 될 수도 있죠. 놀이기구를 어른의 생각에서 상상하는 건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차영은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서 엄마 반짇고리 열어 바느질, 뜨개질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하드보드지로 필통 만드는 걸 잘해서 친구들이 와서 구경하면 엄청 뿌듯했죠. 그때부터 외국 서체와 이미지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집에 있는 영자 잡지 뜯어서 필통을 만들기도 했고요. 장난감은 다이아몬드 게임을 무척 좋아했어요. 엄마와 늘 함께하던 기억이 있어요. 힘들 법도 한데 엄마는 몇 번이고 해주셨거든요. 도구로 봤을 때 장난감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용도지 너무 의존해서 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잘 노는 아이들은 아무거나 잡고 “이거 칼이라고 치자.” 하고 노는 애들이래요. 윤이는 갖고 싶은 장난감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거보다 더 재미난 게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걸 찾아서 만들 수도 있고 만들다 보니 재미를 찾을 수도 있죠.
두 아들이 좋아하는 놀이 도구는 뭔가요?
차영은 인이는 어릴 때부터 공만 가지고 놀아서 집에 종류별 공이 다 있었어요. 공으로 하는 걸 다 배우고 싶어했어요. 공이 다른 장난감에 비해 가격이 싸고, 저도 아이가 좋다고 하니까 관심 있게 찾아 사주기도 했어요. 이제는 인이가 커서 장난감은 좀 시시해하는데 과학키트, 로봇키트 같은 건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윤이는 종이접기를 할 색종이와 포켓몬 카드를 좋아해요. 아마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켓몬 카드를 원할 거예요.
2014년 크리스마스,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른 새벽부터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장난감과 관련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을 거 같아요.
차영은 얼마 전 위매거진 마켓에서 두 아이들이 키즈 셀러로 종이접기를 해서 돈을 벌었어요. 번 돈을 인이한테 2만 원, 윤이 2만 원을 줬어요. 엄마 생일 선물과 지우개를 살 거라고 문방구에 갔는데, 터닝메카드 신형이 윤이 눈에 들어왔나 봐요. 저를 안으면서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격을 봤더니 4만 원이 넘었어요.
그 순간 갑자기 흐느끼며 우는 거예요. 갖고 싶은 마음과 창피함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던 거 같아요. 한 시간을 울길래, 정말 사고 싶으면 종이접기 마켓을 더 해서 돈을 벌어보자고 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팔고 숙모한테 팔아서 돈을 조금 더 모았죠. 모으고 며칠 뒤 “엄마 나 그거 안 살래. 그냥 산타할아버지한테 말할래.” 하더라고요.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몇 밤 남았는지 물어보고 있어요(웃음).
아이들의 완구에 대한 호불호를 보면, 노력한다 해도 확실히 어른의 시선으로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고르는 편인가요?
차영은 아이 때는 정말 장난감이 넘쳐났어요.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면 일단 다 경험을 해보게 했어요. 함께 찾아보거나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아이들도 장난감을 고르는 눈을 키워가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뽑기 장난감은 기쁨은 그 순간이고 불량품을 얻는 거라는 걸 겪어보니까 이제는 조르다가도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산타할아버지에게 빌기도 하지만요(웃음). 책은 서점에 갈 때마다 한 권씩 사주고 있어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사줘도 아이들이 전혀 안 보는 책도 있었어요. 함께 고르면서 아이에게 좋은 책 찾는 법을 익히게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크면서, 가족의 생활공간이나 삶의 방식도 변했을 거 같아요. 현재 가족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차영은 3년 전에 조금은 충동적으로 마당과 계단이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왔어요. 아이들도 이제는 엘리베이터 보면 “우와.” 하고 신기해하죠. 남편도 불편함이 주는 삶의 재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안으로 들어와요. 먼저 학교 숙제를 끝낸 뒤에 하고 싶은 놀이를 하죠. 이사하고 나서는 외출도 줄었어요.
애들이 크면서 밖에 나가서 노는 시간이 줄고 집에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늘려가게 돼요. 보통 윤이는 종이접기를 한 시간 넘게 해요. 어려울 때는 가져와서 물어보죠. 인이는 공부 욕심이 있어서 원하는 책을 파고들면서 보는 편이에요. 학습지나 문제집을 풀기도 하고요. 학원도 가고 싶어 해서 보내봤는데, 몸이 힘들고 재미있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고 집에서 공부하네요. 제가 원했던 방향이기도 하고 아이 성향상 자신이 선택한 부분을 공부하는 방법이 맞는 거 같아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세계가 만나 어긋나는 경우도 있죠. 이럴 때 어떻게 조율하는 편인가요?
장진 사실은 남편으로는 그나마 적응이 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아빠로서는 아직 많이 모자라요. 아이한테 소리 지르고 나면 후회하고, 한창 노력 중이에요. 아이들도 우리 아이로 처음이지만, 우리도 부모로 처음이거든요. 충돌이 일어나면 나와 사고나 세계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면 좀 더 편해지는 데, 자꾸 그걸 부정하게 되죠. 열 살짜리는 아직은 그런 걸 하면 안 되고 아빠 말을 들어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나 봐요. 당연히 대화로 풀어야 해야 하는데 아직은 잘 안돼요. 제 언어 자체가 이해하기 편하고 쉬운 대화로 훈련이 부족한 거 같아요.
차영은 이제는 대화를 안 하면 모른다는 걸 서로 알아요. 원래 제 성격이 기분 나쁘면 말 안 하고 속으로 삭이는 편이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몇 번의 일들을 겪고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고, 이건 아닌 거 같다고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되었어요. 남자들은 얘기 안 하면 정말 몰라요. 예를 들어 어질러 놓은 걸 혼자 정리하다가 애들이 오면 “됐어 하지 마.” 그러잖아요. 그러면 정말 가버려요. 너무 화가 났다는 표현인데 모르는 거죠. 그래서 “그냥 가면 어떡해? 치워야지!” 하면 우리 엄마 이상하다고 되게 황당해하더라고요.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나는 지금 행복해.” “네가 이걸 했으면 좋겠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죠. 아이들도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에요.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