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구석에 남은 숙소들

아름다웠던 여행의 순간

아름다웠던 여행의 순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숙소들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숙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지에서라도 화려하게 보내길 바라고, 조그만 여관방에서의 하룻밤이 그리운 이도 있다. 누가 뭐래도 나에겐 그 숙소가 최고였다고 자부하는 공간들. 여기 모인 숙소들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꺼내온 기억들이다.

한 평짜리 방

배낭을 메고 떠돌던 어느 밤, 피곤에 지쳐 무작정 찾아간 숙소다.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나무 침대 하나와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다음날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잘 개어놓은 햇볕 한 모금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김건태 어라운드 에디터

크루아 드 말트 호텔

파리 마레 지구 부근에서 묵었던 작은 호텔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에릭 로메르의 사계절 연작 속 배경으로 나올 법한 산뜻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촌스럽고 밝은 색깔의 낡은 가구들과 벽면에 걸려 있던 화가 왈라세 팅Walasse ting의 화사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작은 공간들이 여러 층을 구성한 구조로 객실도 아주 작고 방 안의 나선형 계단을 타고 다락으로 올라가야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다. 가장 귀여운 곳은 조식을 먹는 1층의 식당이었다. 온실 느낌의 큰 유리창들에 둘러싸여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권은진 패션 MD

최고의 숲

발길이 드문 숲엔 화장실이 없다. 수풀 사이나 강가에서 일을 해결해야 했다. 낯설었지만 묘한 쾌감이 있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몰래 산책하는 척 다녀왔는데 몇 번 반복한 후론 좋아서 자꾸 가게 되었다. 취한 밤, 이런 얘길 했다. “숲에서 볼일 보는 거 되게 좋다. 밑에 바람이 막 불고, 위를 보면 하늘도 보이고, 밤엔 별도 보이네. 캠핑이 뭐가 좋은지 잘 몰랐는데, 이게 좋네. 나만 좋은 거야? 나만 자유롭다고 느끼는 거 아니지?”

박선아 프리랜서 에디터

기린 장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신혼여행을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그곳에서 동화 속 마법 같았던 나날을 선물해주었던 기린 장원. 2층 침실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기린 덕에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주었던 숙소였음이 분명하다. 우리 부부는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하는 아프리카 여행을 꿈꿔본다. 그리고 그 여정엔 주저 없이 기린 장원을 넣으리라.

김두희 프리랜서

칵슬라우타넨 리조트

밤새도록 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비나 눈이 오는날에는 천장에 맺힌 빗방울과 눈꽃을 보며 잠이 든다. 운이 좋다면 밤새 머리 위로 반짝이는 오로라를 감상할 수도 있다. 유리로 이루어진 이글루라 매우 추울 것 같지만 특수유리로 만들어져 방안 가득 온기가 가득하다. 창밖으론 북극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준 숙소다.

박진 회사원

굴업도 민박집

잡지를 만들면서 좋은 사진과 글을 접하니, 마감을 하고 나면 항상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언젠가 기사에서 읽었던 굴업도. 벼르고 벼르다가 조용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굴업도행 티켓을 끊었다. 시골 할머니 집이 생각나는 익숙한 냄새와 이불, 벽지가 있는 곳에서 이틀을 묶었다. 굴업도는 작은 섬이어서 하루 이틀 안에 섬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개머리 언덕에 올라가서 텐트 하나 치고 멍하니 누워 있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 물길이 열리는 토끼섬에 들어가서 경치를 보고 오기도 했다. 여섯 시 이후가 되면 마을에 불빛이 사라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마을 할머니의 생활 습관에 맞춰야 했다. 섬에 혼자 있는 것처럼 한적했던 그날의 굴업도는 잊혀지지 않는다.

구혜민 어라운드 디자이너

이글루 도르프

스위스의 축복이라 불리는 마터호른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글루 도르프는 봄이 되면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겨울마다 새롭게 지어진다. 따라서 매해 겨울 위치와 모양이 달라져 내가 갔던 이글루 호텔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던, 그리고 다시는 갈 수 없는 추억 속의 호텔이 된다. 사방이 눈 천지인 하얀 세상에서 로맨틱하고 조용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살을 에는 추위를 잊게 해주는 뜨끈한 자쿠지 안에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은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다. 체크아웃 시 이글루 도르프부터 목적지까지 직원들이 나눠주는 미니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는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엄청난 속도를 내며 내려가는 눈썰매는 나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송주용 호텔 매니저

알키미스트 그랜드 호텔&스파

1517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을 호텔로 개조했다고 한다. 호텔 자체의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서 더 세심하게 손님들을 신경 써 주는 점이 좋았다. 신혼여행이라 미리 말을 해놓아서 그런지, 방에 샴페인 한 병이 준비되어 있었고 마사지 오일과 티, 초콜릿 등이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루는 클럽 라운지의 응접실에서 지배인이 각종 와인을 투숙객들에게 소개하며 시음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좋은 것을 보면 함께 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하는데, 머무는 내내 부모님 생각이 났다. 늦지 않게 모시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정윤화 인테리어 디자이너

카우치 서핑

며칠 동안 누군가의 소파를 빌린다며 많은 여행자들과 호스트들이 즐기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독일로 이사 온 인도인,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연고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 온 사랑꾼 프랑스 인,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홀로 살고 있는 번역가 폴란드 할머니, 카우치 서핑으로 사랑을 키워 결혼한 폴란드 신혼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의 현관문을 마음 놓고 두들길 수 있는 일은 함께 닭볶음탕을 해 먹고, 홈메이드 맥주를 나눠 마시는 행운을 준다. 그곳에서 내가 얻은 것은 공짜 숙박이 아니라 철저한 타인이었던 누군가와의 눈맞춤이었다.

야간열차

유럽 여행에서 경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야간열차를 타는 것이다. 이름하여 쿠셋Couchette 열차. 그중에서도 나는 가장 저렴한 자리를 구매했고, 그게 재앙의 시작일 줄 몰랐다. 한쪽 벽에 침대 세 개가 붙어 있다. 그러니 한 방에는 여섯 개의 침대가 있는 것.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러게.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여섯 명의 사람이 기계처럼 누워 있는데 슬금슬금 발 냄새가 올라온다. 그때 한 남자가 작은 창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창문이 ‘뿅!’ 열리자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이자연 어라운드 에디터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호텔

해발 3천5백 미터를 훌쩍 넘기는 곳에 자리한 소금 호수는 하늘빛이 그대로 호수에 투영되어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냈다. 포토그래퍼가 아닌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면 환상적인 풍경이 담긴다. 잘박잘박 발을 휘어 감는 소금 호수를 찰랑거리던 잔물결의 잊지 못할 감촉들. 소금 호텔은 주로 사막을 건너는 중간 기착지가 된다. 유일무이한 리플렉션으로 도배된 또 하나의 행성, 소금 호텔은 세상에서 제일 큰 거울을 정원으로 가진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농장 숙소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북극권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다채로운 자연과 매력을 품은 곳이다. 135억 년이라는 우주의 시간을 오롯이 품은 신비의 땅, 아이슬란드에서 만나는 풍경과 휴식은 놀랍도록 생경하다. 광활한 대지와 초록이 빛나는 들판, 깎아지른 듯한 두 개의 빙하가 만나는 접점에 농장 숙소가 있다. 아이슬란드를 일주하는 링로드에 무심하게 자리한 농장 숙소는 손 내밀면 금세 다가오는 말, 고양이, 양들과 함께하는 농장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경인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빚어낸 농장 숙소에서의 하루는 완벽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 룹알할리Rub’Al Khali
속 오아시스로의 발걸음은 녹록지 않다. 아부다비에서 꼬박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절로 연상되는 마법 같은 신기루가 펼쳐지는 세상과의 만남은 장시간의 운전으로 지친 심신을 상쇄시킬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사막의 지열을 오롯이 품은 더 깊은 사막으로의 로드 트립 중 도로를 점령한 낙타 수십 마리가 홀연히 나타났고 모래바람이 무심히 펼쳐지는 사구의 행렬 속에 마법처럼 등장한 호텔을 만났을 때 사막의 모래가 내려앉은 아부다비의 정수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엄윤선 회사원

행잉가든

발리의 우붓에서도 차로 30분을 더 달려야 도착하는 행잉가든. 거대한 숲에 둘러싸여 고요하다. 이곳을 오게 된 대부분의 사람은 2단 메인 풀에 반해서다. 일명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수영장으로 소개되고 있다. ‘퍼니쿨러’라는 곤돌라를 타고 숙소 내부 이동을 하는 점도 재미있다.

고우당 게스트하우스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다다미방으로 이뤄진 게스트하우스다. 화창한 날씨에도 좋지만,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이 정말 멋지다. 내부에 카페나 음식점이 있어 다른 곳으로 이동 없이 머무르기에 좋다.

김이경 어라운드 편집장

칸라호텔

엄마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다른 건 몰라도 숙박만큼은 고민스럽다. 시설이 좋으면서도 그 지역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엄마와의 첫 일본 여행 때 묵었던 료칸은 전통은 있었지만 시설이 낙후되어(화장실이 방 밖에 있었다.) 불편을 겪었었기에, 두 번째 여행 때는 ‘무조건 호텔이다!’라고 생각했다. 전통미와 현대적인 감성이 어우러지는 디자인 호텔 ‘칸라’는 방 한쪽에 다다미 화실과 노송 욕조를 갖추고 있었다. 다다미에 앉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솔향이 나는 욕실에서 피로까지 풀 수 있어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성지희 디자이너

캠브리안 호텔

알프스의 보석 같은 시골 마을 아델보덴을 느긋하게, 자유롭게 발길 닿는 데로 산책하고 이 아름다운 마을에 자리한 캠브리안 호텔에서의 휴식을 취했다.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온 천연 온천수로 채워진 야외 인피니티 풀에서 바라보는 알프스의 풍경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알프스 전경을 감상하며 즐기던 야외 테라스에서의 아침식사에 귀여운 새 한 마리도 다가와 지저귀어주었다. 천상에서 즐긴 최고의 휴식으로 기억되던 스위스에서의 휴가다.

조윤경 샬레트래블앤라이프 유럽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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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혜미

글·사진 김건태, 권은진, 박선아, 김두희, 박진, 구혜민, 송주용, 정윤화, 엄윤선, 이자연, 김이경, 성지희, 조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