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름을 걷는 법에 관하여

관계 감량

마음의 구름을 걷는 법에 관하여

관계 감량

한 줌의 고민도 없는 날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같은 상태. 마음을 덮는 구름은 어디에서 오는지도 생각해보았다. 대체로 구름은 사람이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 내 경우는 그랬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날, 종종 그 구름은 짙어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마음이 맑은 날은 과연 있을까. 가능한 걸까.

회사를 그만두었다

출퇴근이 없어지니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가장 먼저 좋았던 건, 내 시간이 모두 내 것이라는 점이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달콤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았고, 정해진 점심시간이 아니라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 종종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생각보다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한 지인이 회사를 그만두고도 잘 지내는 나를 보며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짐작조차 못 했던 것. 대답하기 전에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과 회의를 했고, 메일을 주고받았으며,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삐걱거렸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 앞에서도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도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받은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는 걸, 그 관계들이 실은 버거웠다는 걸,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 그의 질문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긴 시간을 지나 도착한 지금이 마음에 들었다. 이 평온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온 거였다. 앞으로 가능한 보고 싶은 사람만 보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가기 싫은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다.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에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라, 마음의 구름이 조금 걷히는 것 같았다.

장기 여행

긴 여행을 떠났다. 당연하게도 여행은 대부분 좋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페루의 쿠스코 골목을 걷다가 한국인을 만났다. 남미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조금 드물어, 우리는 멀리서부터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이 도시에 언제까지 있어요? 내일 또 만나면 좋겠다.” 우리는 그 정도의 이야기만 나눈 채 헤어졌다. 쿠스코는 작은 도시이고, 우리가 다니는 길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다시 만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뭐 그러다 못 만나져도 하는 수 없고.’ 하는 게 우리의 생각이기도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어제처럼 우연히 다시 만났고,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이어져 남은 여행의 일부 여정을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이 각인 되었다. 그리고 이후 여행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다. “반가웠어. 또 만나자.”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거나 “내일 오후에 이 광장에서 볼까?”하고 인사를 나눈 뒤 혹시나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섭섭해 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며칠 후에 내가 어디에 있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약속하지 않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일. 부담스럽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애틋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 기약 없는 길 위에서도 우리는 친구를 사귀었고, 진심을 나누었다. 그리고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졌다.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에서 만나질 것을 믿었다.

약속

문제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다. 나는 약속 잡는 것에 어색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음 주 주말에 만날래?”는 말을 들으면,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내 컨디션이 어떨지 모르는데 어떻게 약속을 이렇게나 미리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일쑤였다. 몇 주 전부터 일찌감치 일정을 잡는 동창 모임에는 도무지 “나, 갈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다시 결심이 필요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할 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났다. 그러는 사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섭섭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멀어진 친구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먹고 떠들던 예전보다 지금이 좋았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게으르게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가 멀어진다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친구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대부분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약속을 줄이고, 보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잘 지내려 애쓰는 일을 멈추었더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어라? 구름이 조금 더 걷혔다.

감량 후

요즘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은 이렇다. “저녁 먹으러 올래?”, “오늘은 약속 있는데.”, “그래, 그럼 다음에 먹자.” 혹은 “오후에 커피 한잔할까?”, “응, 잠깐 보자.” 제안도 거절도 부담 없고 가볍다. 어느 한때, 한 달 후 약속까지 미리 잡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주말이면 두세 개의 약속을 소화하느라 분주했던 일들이 먼 옛날 같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여행을 가야 마음의 구름이 걷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경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갔고, 사는 곳을 옮겼더니 그나마 조금 관계를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랬더니 마음의 구름이 조금씩 걷혔다는 것이다.

조금 더 하늘 아래 앉아있으려고 한다. 내 마음속 구름의 움직임을 천천히 관찰하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내 옆에 가만 와서 앉았다가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잠시 앉았다가 길을 떠났다가 다시 와서 쉬었다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쌓이는 관계를 기다리려고 한다. 이게 내가 내 구름을 걷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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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