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

Aesop

겹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고이 간직해 온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은 시기가 왔다. 때맞춰 도착한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마음속에 부유하는 감정 사이, 진심을 응시한다. 그 눈 맞춤은 정갈한 글씨로, 다정한 문장으로 남아 오래도록 빛난다.

돌아온 가을, 안부를 물으며

가을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도무지 옅어지지 않던 더위가 뒷걸음질을 치고 새로운 계절의 기색이 피부에 와닿는다. 반쪽짜리였던 달이 선선한 기운을 마시며 둥글게 차오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마음을 건네는 추석이 다가왔음을, 그리고 하나의 계절을 또렷이 응시하는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의 막이 열릴 것임을.

가을마다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하비스트 캠페인은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다. ‘오래된 매듭의 무늬’(2020)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2021), ‘두드림 끝에 맞이한 결실’(2022)까지. 팬데믹이 유난했던 그간 이솝은 섬세한 시선으로 캠페인을 전개하며 많은 이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 덕분일까. 우리는 각박하고 고된 순간에도 손끝으로나마 온기를 전하려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손을 잡았다. 마침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좁혀지고 다시금 눈을 마주치며 상대의 미소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 이솝은 진심을 꺼내 보이도록 우리를 북돋운다. 마음을 전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수록 무뎌진다. 진심을 입술 밖으로, 손끝으로 꺼내두지 않으면 감정은 이내 색이 바랜다.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드디어 우리가 마주 보는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안부를 나눌 수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을 전해야 한다.

하비스트 캠페인은 매년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의 연결 고리를 부드럽게 조인다. 이번 캠페인에서 이솝은 붓을 쥐었다. 그리고 인중 이정화 작가의 손을 빌려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이정화 작가는 붓과 먹으로 진심을 쓰는 일을 20여 년째 해오며, 글이 가진 힘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다시 가을입니다. 삶은 빠르고 또 더디게 변해 우리의 마음은 좀더 단단하고 너그러워지겠죠.”라는 문장을 비롯하여 이솝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지에 적어 내려갔다. 종이 위를 걷듯 한 획 한 획 부드럽게 나아가는 필체에는 따스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글자를 적는 일을 올곧은 마음과 참신함으로 풀어가는 이정화 작가와 이솝이 만나 붓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진심의 흔적이 짙게 남는다.

진심이 담긴 문장을 예찬하며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글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종대왕은 고유의 글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글은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자, 개인이 ‘함께’로 거듭날 수 있는 유대감의 바탕이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글자가 모여 문장을, 문장이 모여 의미를 갖는 순리는 다른 언어 체계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다. 이솝은 우리의 문학과 예술을 예찬한다. 하비스트 캠페인을 통해 시인 박경리와 작가 이상, 화백 김환기 등 아름다운 문장을 빚어내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해왔으며 올해는 한글을 만든 위대한 인물, 세종대왕의 말을 빌렸다.

또 한 번 한글이 가진 무구한 가치를 알리는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시작된 바로 다음 날, 한남 스토어에서 이정화 작가가 유리 외벽에 직접 글씨를 써 내려갔다. 친근한 말투와 호흡이 긴 문장은 정말로 편지 한 통을 받은 듯 설렘을 불러왔다. 이솝 스토어에서의 현장 드로잉은 처음 시도한 데다가 오가는 이들이 많은 오전에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그 가치를 아는 사람부터 우연히 마주하는 이들에게까지 감동을 전했다. 이외에도 삼청 스토어와 가로수길 스토어에서 아름다운 필체를 다양한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이솝 온라인 홈페이지와 스토어에서는 캠페인 기간 동안 세종대왕의 문장이 새겨진 보자기 포장 서비스도 제공했다. 단순히 폰트로 문장을 기입하지 않고, 이정화 작가의 작품을 미색 보자기에 새긴 이유는 캠페인과 관련된 모든 것에 진실됨을 담았기 때문이다. 진심이란, 아무렇게나 대충 담아 쉽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헤아리며 몇 번씩 가다듬은 후에도 조심스레 꺼내 보이는 것이다.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으로 말미암아 귀중한 마음을 윤기 나게 닦아내어 기분 좋은 미소와 건네보면 어떨까. 많은 이들의 애정이 모여 완성된 보자기에 마음을 넣어 매듭짓는 일은 우리를 보다 풍성한 계절로 이끈다.

“너의 자질이 아름다움을 아노니.”
세종대왕

이정화 서예가

서예를 운명으로 여겨 한길만 바라본 이가 있다. 그는 언제나 옛것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먹을 가는 일, 붓을 들고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올해 하비스트 캠페인 ‘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에 함께한 이정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이신 이주형 작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서예와 친근한 삶을 사셨을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서예 학원을 운영하셨어요. 일곱 살까지는 학원 언니들 먹 갈아주면서 지켜만 보다가 글자를 배우면서 서예를 시작하게 됐죠. 부모님께서 글자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력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좀더 자라서 서예과를 갈 거라고 말씀드린 후에는 붓 잡는 법처럼 기본 기술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르침 중에서 인상 깊게 남은 게 있다면요? 

아버지와 함께 다닐 때, 무얼 보고 듣든 서예와 관련짓는 연습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예를 들어 산을 보면 짙은 색이 얼마나 예쁜지 나중에 글자에 표현해 보라고요. 운전할 때는 핸들을 갑자기 꺾으면 사고가 나는 것처럼, 붓도 섬세하고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고 하셨어요. 

 

서예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25년 정도 했는데도 아직도 재미있어요. 먹을 붓에 묻혀서 종이에 딱 닿는 순간이 여전히 짜릿해요. 같은 문자를 쓰더라도 글씨는 컴퓨터 키보드로 적는 것과 달라요. 종이에 닿은 이상 지울 수도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을 내용을 적어요. 서예가 오래된 것이라는 인상이 있잖아요.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이니까 옛것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서 작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올해 하비스트 캠페인을 함께 했어요. 평소 이솝에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나요? 

이솝의 자연스러움을 정말 좋아해요. 그 분위기가 한지랑도 닮았거든요. 보통 한지가 순백색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여러 공정을 거쳐서 일부러 색을 뺀 거예요. 인위적인 공정이 가해지지 않은 한지는 미색을 띄는데 한지와 이솝의 자연스러움이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이라는 주제 아래 모인 캠페인 문구들은 어땠나요?

저에게 마음을 적어서 건네는 건 설레는 일이에요. 설렌다는 건 고마움이나 행복함, 따뜻함을 느낀다는 신호 같고요. 언제나 이런 마음을 전하는 걸 작업의 중점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 작품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스러지는 게 아니라, 후대에도 ‘이 시절 사람들은 무척 따뜻했구나. 감동이 있었구나.’라며 이어지길 바라거든요. 공감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는 문장이었어요.

글자에서 무얼 표현하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자음과 모음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게 한글의 매력 아닐까 싶고요.

맞아요. 한글은 한 글자 안에 굉장히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있는데요. 우선 이번 캠페인이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진심을 건네는 거니까 옛날 ‘서신’을 쓰듯 세로쓰기를 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을 이동했어요. 요소가 전부 똑같으면 지루할 수 있으니 같은 리을을 적더라도 조금씩 변화를 주었죠. 중간마다 이응을 크게 쓴 건 추석을 떠올리면서 보름달을 표현한 거예요.

 

설명을 듣고 나니 글자가 새로워 보여요. 진심을 담아 적으신 것 같아요.

모든 작업에 진심을 담아요. 먼 미래에는 작품들이 저를 설명할 테니, 거짓 마음으로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이번 캠페인에는 기성 먹물을 쓰지 않고, 벼루에 직접 먹을 갈았어요. 어떤 먹물로 적었느냐는 저에게만 보이는 차이겠지만 고맙다거나 반갑다는 말을 전하는 캠페인이라면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싶었어요.

 

이솝과 함께한 협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나요? 

이솝은 세심한 파트너였어요. 한지 크기도 밀리미터 단위까지 가늠하시더라고요. 틀이 꾸려지면 그 안에서는 제가 자유롭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저에게 협업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서로 색을 잃지 않는 것인데 그 의미가 이루어진 작업이었어요.

 

유리 외벽 드로잉도 처음 해보셨다고 들었어요.

현장 드로잉은 경험이 많지만 유리에다가 직접 적는 건 처음이었어요. 이솝에서 먼저 제안해 주신 건데 색다른 시도를 좋아하는 터라 흔쾌히 함께했죠. 작품을 감상하실 분들을 떠올리니 긴장되기보다 설레더라고요. 메시지가 잘 닿도록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 이솝과 함께하는 테스트 때 여러 번 글씨를 썼어요. 오가는 분들이 문장을 보고 반가워해 주시길 바라요.

 

하비스트 캠페인은 추석을 맞이해서 진행되어요. 작가님께는 추석이 어떤 의미인가요? 

대가족에서 자란 터라, 친척들이 다 모인 왁자지껄한 풍경이 떠올라요. 맛있는 걸 먹고 근황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풍성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죠. 팬데믹 이후에 걱정을 내려놓고 만나는 추석이니 올해는 좀더 특별한 것 같네요.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면 잘 지냈는지 꼭 물어보고 싶어요. 건강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평온한지 살펴볼 거예요.

 

풍성하고 안온한 한가위 되시길 바랄게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앞으로를 그려볼까요? 

얼마 전,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네가 쓰는 모든 획은 서예의 획이어야 한다.”라고요. 제가 하는 말과 행동, 쓰는 글자가 전부 서예를 위한 것이어야 한단 의미였어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벗어나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워주신 거죠. 앞으로도 지금처럼 글자를 쓸 테니, 서예를 향한 저의 진심이 많은 분들께 닿았으면 좋겠어요.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
O. 2023년 9월 4일-10월 1일 
H. aes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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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