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그리는 사람

홍시야 — 화가

같은 섬에 살고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오며 가며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아, 저 사람이 홍시야라는 사람이구나. 그림을 그리고, 명상을 하고, 싱잉볼을 연주하는 사람. 가끔은 한 공간에서 그 모든 걸 함께 하고 있던 사람. 궁금했지만, 늘 인사만 하고 지나쳤던 그에게 연락했다. 주소를 묻고, 오름 사이로 난 도로를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걱정이 하나도 안 됐어요. 일단 만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갈 것 같았거든요. 

저도요. 질문지를 미리 주시긴 했지만 편한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제주도 오신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제 7년 딱 채웠어요. 

 

어떻게 오시게 된 건가요? 

늘 계획이 없어요. 계획이 있으면 이렇게 못 오는 것 같아요. 저처럼 즉흥적이고 별생각 없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사는 것 같아요. 아닐 수도 있고요. 

 

여기로 온 후 그림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그리는 사람은 잘 몰라요. 저는 그냥 행위를 하니까요. 주변에서 이야기하기론 제주에 온 후로 스케일이 커졌다고 해요. 도화지가 커졌다는 이야기죠. 최근에는 색깔도 화려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제주도가 그림에 영향을 준 것 같나요? 

당연히 영향받겠죠. 식물과 동물 다 환경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우리처럼 이렇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더 강하게, 알든 모르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인터뷰 찾아보니까 제도권 내에서 미술 공부를 한 게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미대를 나오긴 했습니다. 졸업장은 있으니까요. 

 

제도 안에서 배운 건 없다? 

전혀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었어요. 대학교에서도 적응을 못 했죠. 필요하다고 느끼는 공부는 학교 밖에서 직접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모두가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공부하는 일은 끌림이 없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몸이 움직이는 애가 아닌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온순해 보이죠? 그런데 고집이 엄청 세요. 제가 좋아하고 꽂혀 있는 부분 외에 나머지는 다 바보예요. 사회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예요. 

 

작업은 물론 다른 일도 다 잘하실 것 같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온순하고 또 야무진 느낌. 

제 주변 사람들은 저더러 손발이 없다고 그래요. 그림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고요. 그런데 꼼꼼하게 다 잘할 것 같은 느낌이 있나 봐요. 

 

있어요. 

전혀 아니에요. 사람들이 너는 그림 그리는 거 하나는 갖고 태어났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안 그러면 정말 살기 힘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그러니까 관심 있는 것만 깊게 파고요, 세상 돌아가는 건 잘 모르고 살았어요. 

 

한국에서는 특히 10대, 20대 때 살기 어렵잖아요. 강압적인 분위기고 시키는 거, 해야 하는 것도 많고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친구도 없었고 왕따도 당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내가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한테 왜 이러지?’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 보니까 그들도 내가 되게 불편했을 것 같아요. 섞여 있지 않으니까요.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게 아닐까요? 저는 늘 약간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도 그랬어요. 예를 들어 수채화로 그리면 좋을 것 같은데, 목탄이나 아크릴을 쓰라는 거예요. 왜? 난 싫은데? 이런 마음이 드니까, 조율이 안 되는 거예요.제도권 안에서 잘 못 어울렸고 결국에는 저의 길,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다니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여기까지 되게 잘 오셨어요. 

그 과정 안에 치열하게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마흔이 넘었잖아요. 지금 보니까, 되게 감사한 삶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제가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이야기를 아직도 할 수 있다는 거, 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많든 적든 그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흘러왔다는 거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 년 전에 하신 개인전에 갔었어요. 그리고 최근 제주 아트페어에서 이름을 발견해서 반가워하기도 했고요. 

제가 숨 쉬는 유일한 통로이고 도구니까 그림을 계속 그리기는 했지만 언제부턴가 작품 가격을 매기고 판매를 하는 게 조금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전시는 안 하고 개인 작업만 계속했는데 몇몇 분이 작업실에 쌓인 그림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이렇게 그림이 많은데 왜 전시를 안 하냐, 판매를 안 하냐 하시면서 전시 기획도 해주시고 평론도 써주시고 그러셨어요. 그런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개인전 <자연을 담은 마음 크로키>를 열게 되었고요. 아트페어는 벽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아트페어 주최하신 큐레이터분이 작업실로 찾아오셔서 “언제까지 돌이랑만 얘기할 거냐. 세상에 좀 나와서 좋은 에너지를 사람들이랑 나누는 게 예술가로서 좋은 역할 아니겠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셔서 용기 내서 나가게 됐죠. 

 

저는 글 쓰는 일을 되게 좋아하지만 마감이 없으면 잘 쓰지 않아요. 그래서 마감 없이 계속 그린다는 게 조금 신기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일어나서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그냥 누워 있어도 되잖아요(웃음). 그림을 그리는 동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냥 삶이 된 것 같아요. 밥 먹듯이 잠자듯이. 어떻게 보면 계획이 없어서 그렇게 그려진 건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하는 작업의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자연스러움이거든요. 그래서 그려 놓은 그림이 없으면 전시를 못 해요. 

 

마감에 맞춰서 그려낼 수는 없는 거네요. 

실은 전시를 열심히 못 했던 이유도 그거예요. 개인전은 보통 1년 전에 일정을 잡아 놓거든요. 언제 어떻게 제 작업이 나올지 모르니까 전시를 할 수가 없었어요. 콘셉트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지도 못해요. 물론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목적과 계획, 힘이 들어가면 어떤 의도가 섞인 그림이 되고 그렇게 작업하면 제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그 작품을 세상 앞에 내놓기 싫어져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나를 열어 놓는 게 중요해요. 어떻게 끊임없이 그릴 수 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이 대답이 더 적절할 것 같은데요, 그림 그리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은 저한테는 제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나를 어떤 상태로 만드느냐에 집중하신다는 이야기네요.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먹고… 맞아요. 최상의 상태 혹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상태로 나를 만들어 놓는 게 팔 할이에요. 그래서 주변을 정리한다든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는 모든 행위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어떤 영감의 원천 혹은 베이스가 되는 거 아닌가 해요. 

 

상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같이 갈 수밖에 없네요. 

그런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지점이에요. 나를 어떤 상태로 만들어 놓느냐. 

 

그림 그리고 전시하는 거 말고도 싱잉볼 명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그 일들이 다 달라 보이지만 결국 하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9년 전에 싱잉볼을 처음 만난 후 명상 도구로 싱잉볼 소리를 계속 탐구하고 경험했어요. 작업하기 전에 연주를 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들려주기도 하고요. 그러다 ‘취다선’이라는 곳에서 싱잉볼 클래스 제안을 받았고, 이 공간에서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캔버스 위의 그림만이 아니라 공간에서 소리로 드로잉을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 그리고 사라지는 그림,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감각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림을 느끼고요. 그래서 제가 ‘사운드 드로잉’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3년째 매주 한 시간씩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소리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평소에 명상을 하지 않았던 분들도 많이 오세요? 

저는 싱잉볼을 만나기 전에도 명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싱잉볼 소리를 통하니까 굉장히 빠르게 깊은 명상 상태가 되는 걸 경험한 거죠. 명상을 해본 적 없던 사람들에게 싱잉볼이 도움이 돼요. 

 

명상이 뭘까요. 

정의 내려지는 게 다 다르겠죠. 전 내면의 고요인 것 같아요.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해요.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도 그렇고 책을 보면서도 그렇고, 그 생각들이 딱 끊어졌을 때, 이 생각과 저 생각 사이 약간 멈춰진 어떤 순간들이 있거든요.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들지만. 그 고요한 상태가 됐을 때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걸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요. 그때 영감도 많이 찾아오고요. 

 

사운드 드로잉 그리고 마음 크로키. 네이밍을 되게 잘하세요. 

저는 사실 무의식을 그리거든요. 내면의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요. 그게 꿈에서 본 어떤 장면일 수도 있고, 이렇게 우리가 대화를 하다가 느껴지는 어떤 경험의 감각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요. 감각된 것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마음 안에서 느껴지고 보이고 들리면 그걸 꺼내 놓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저한테 “뭐 그리는 화가예요? 무슨 장르예요?” 질문하면 설명하기 좀 난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냥 “마음을 그려요.”라고 얘기를 하곤 했어요. 잽싸게 포착해서 그리는 걸 크로키라고 하잖아요. 무의식 안에 감각된 어떤 심상을 잽싸게 포착해서 그림으로 끄집어내는 이 작업에 ‘마음 크로키’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림을 보면 그때 어떤 마음이었지 생각이 나요? 

그렇죠.

 

작업하시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은 거의 없으실 거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못 알아차리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오늘은 나가서 좀 산책하고 싶네, 바다 보고 싶네, 하면 그림이 그리기 싫은 거겠죠. 그리고 싶지 않을 땐 안 그려요. 그게 며칠이 되기도 하겠죠. 

 

되게 오래 안 그린 적도 있어요? 

일주일, 한 달 이렇게까지 안 그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 며칠? 작은 종이에 드로잉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요. 그림일기 그리듯이, 밥 먹는 것처럼

예전에 책도 내셨어요. 

사실 제가 글을 못 쓰거든요. 글보다 드로잉 위주의 책이어서 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예술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음식 먹을 때 포크, 나이프, 숟가락 다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처럼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경계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평화를 얘기하고 싶어, 그런데 소리로 내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소리를 이용하는 거고, 이건 그림 형태가 적절할 것 같아, 그럼 그림이라는 도구를 쓰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글도 다 쓸 수 있어요. 그렇죠? 소리도 다 낼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잘 못 하죠.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려.’라고 생각하고. 

맞아요. 많은 사람이 제 그림을 보고 “뭐로 그린 거예요?”라고 물어봐요. 크레파스로 그린 거라고 대답하면 “정말요? 근데 전 이런 색깔이 안 나던데.” 얘기해요. 해보지 않고 못한다고 생각해 버려요. 다들 자기만의 선이 너무 높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틀을 깨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명상도 마찬가지네요. 어렵게 느껴지는 명상에 싱잉볼로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요. 

내가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 때 늘 찾을 수 있는 어떤 도구가 있고 상대가 있고 대상이 있다는 거는 살면서 되게 큰 위로가 돼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조금 편하게 명상이나 그림에 다가가게끔 돕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그리지는 않더라고요. 

음, 그냥 그림일기를 그려보는 거예요. 몇 시간씩 안 그려도 돼요. 저도 그렇게 안 하거든요. 내가 이 조그만 도화지 한 장에 뭔가라도 스쳐서 그린다, 흔적을 남긴다라는 마음으로 조금 연습을 해보세요. 차 한 잔 내려놓고 앉아서 하루 마무리하면서 단지 5분, 10분. 어떤 날은 그림 대신 글을 써도 되고요. 

 

그림을 그리려면 서랍에서 도구를 먼저 꺼내야 하고…. 

그러면 절대 할 수 없어요. 손이 닿는 곳에 꺼내 놔야 해요. 저처럼 이렇게 앞에 보이게. 

 

그림을 그리려다가도 내가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어디 보여줄 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홍시야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은 모든 행위가 다 나한테 영향을 주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되게 동떨어진 행위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결국엔 다 연결되어 있어요. 조금 더 동떨어진 것들을 했을 때 반짝반짝하는 영감이 떠오르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 많은 사람의 문제가 동떨어진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너무나 그렇죠. 늘 틀 안에 있으니까.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나 경험은 제한될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조금 색다른 방식의 표현을 많이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어요. 그래서 전시를 본 뒤에 저에게 “나도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문방구에 들러서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를 샀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되게 기쁘죠. 나도 그림 되게 좋아했지. 그럼 나도 좀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다리 역할이 되면 좋겠어요. 

 

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도구들로 그린다고 하셨어요. 어떤 도구를 제일 좋아하세요? 

레파스, 오일파스텔 이런 재료를 지금도 제일 많이 써요. 연필은 드로잉 할 때 너무 좋아하는 도구고요. 종이랑 연필을 좋아해요. 

 

그럼 이 한 캔버스 안에도 되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거죠? 

네. 연필, 마커, 오일파스텔, 크레용 다 들어가 있어요. 

그림 안 그릴 땐 보통 뭐 하세요? 

요가 하고, 산책하고, 책 보고, 음악 듣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요. 어떻게 보면 그게 다 그림 행위를 위한 일들 같아요. 일상과 창작 행위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저는 날이 서 있을 땐 글을 못 써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그 상태로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어떤 분들은 제 그림이 굉장히 천진하고 밝고 사랑만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세요. 하지만 나도 인간인데 하루에도 희로애락이 분명히 있어요. 밝은 면만 그려야지, 이렇게 의도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렇다면 왜 내 그림이 이렇게 나오는 걸까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런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서 그런 것 같아요. 뾰족뾰족하거나 날카로운 상태이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때는 다른 일을 하지 그림을 그리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밝은 에너지가 그림에 표현이 되나 봐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또다시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요. 

맞아요. 그렇죠.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사는 게 너무 각박하고 힘들죠. 너무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이 사회에서 계속 일어나는데 그림을 보고 좋은 에너지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림 볼 때만큼이라도 조금 위로가 되고 좀 편안하다, 그냥 좋다, 이런 마음이 들었으면 해요. 그게 결국엔 내 기분으로 이어지잖아요. 내 기분이나 상태도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개개인의 기분이나 감정이 평온해지고 평화로워지면 결국에는 이 사회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내 기분이 평화로워지면 타인에게 너그러워지죠. 

나에서 시작돼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 가족, 마을 이런 것들이 연결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내 상태가 너무 중요하니까, 내가 고요한 상태가 되도록 계속 나를 끌어올려 놓는 거죠. 맞아요. 그래서 저는 수련을 할 수밖에 없는,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여기가 작업실이자 집이기도 한 거죠. 

맞아요. 

 

많은 사람이 집과 일터를 분리하려고 하잖아요. 저도 집에서 글을 쓰긴 하는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옆에 조그만 오두막이 작업실인데 잘 안 가게 돼요. 모든 행위가 집 안에서 이루어져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 

새벽의 정기를 느끼고 싶지만 저는 꿈에서 영감을 많이 얻기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도시에 살 때는 미팅 한 번 하고 와도 집에 와서 대여섯 시간 자고, 친구랑 반나절 놀고 나면 한 3-4일은 누워 있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제가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라고 그래요. 맨날 누워 있는 사람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쉬지 않고 그리시잖아요! 

누워 있다 일어나서 딱 이거만 하니까 그런 거죠. 

 

이것도 궁금했어요. 요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 

나눔인 것 같아요. 계속 마음이 그렇게 흐르고 있어요. 나만 행복하고 나만 위안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통로가 되어서 사람들한테 조금 더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참, 저 앨범 나와요. 

 

세상에, 앨범이요? 

제 무의식이 그림으로 나온 것처럼, 노래들이 제게 왔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기대하실지도 모르는데, 되게 이상한 것들이에요. 그림처럼 노래가 왔어요. 정말 그림처럼. 오랫동안 쌓인 곡들을 모아서 발매해요. 

 

혼자 그리는 것과 전시를 하는 게 다른 것처럼, 음악도 앨범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잖아요. 

이게 무식해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제주도에 무작정 온 것처럼요. 계획이 있거나 내가 잃을 것들을 생각하면 못 와요. 만약에 ‘나 노래 못하는데 어떻게 이걸 앨범으로 내?’ 이렇게 접근했으면, 앨범, 이건 안 될 일인 거예요. 근데 어때요, 나는 노래가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맞죠. 맞아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제일 좋은 노래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그림으로 말하듯이, 어떤 소리나 연주로 말하듯, 얘기하듯, 소리가 말이고 노래가 말이니까요. 나는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노래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노래를 못하는데도 노래를 불렀네요.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노래도 되고 그림도 되고. 

네. 맞아요. 콘셉트가 잠이 오는 노래예요. 잠이 많이 올 거예요. 타이틀을 지금 처음 얘기하네요. ‘우주 담요’예요. 

 

세 번째 네이밍도 너무 좋은데요. 시간 나면 제 네이밍도 도와주세요. 

노래가 된 그림. 우주 담요처럼 따뜻하게 덮고 잘 쉴 수 있는 어떤 소리. 

네이밍 이야기하다 보니까 생각났어요. ‘홍시야’ 이름도 직접 지으신 거죠? 

다들 제가 홍 씨인 줄 알아요. 근데 이름이 ‘홍시야’ 예요. 저는 스무 살이 되면 제 이름을 제가 다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신선한 생각이에요. 

20대 초반부터 이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뜻은 ‘무지개를 보고 부르는 사람’, 무지개 홍 자예요. 실은 제가 한자까지는 생각 못 했고요. 소리가 좋고 재밌어서 ‘홍시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는데, 법원에 개명 신청을 갔더니 한자를 넣어야 개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때 지금처럼 쉽게 개명이 잘 안 됐어요. 창구에 서서 갑자기 떠오르는 대로 “무지개 홍.”이요. 그랬더니, 법원 직원이 “무지개 홍이요?”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잖아요. 

되게 당황하면서도 찾아보더니 “무지개 홍이 있네요.” 했어요. 되게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시는요?” 그러길래 “보일 시로 해주세요.” 이렇게 즉석에서 한자 이름을 만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한자 뜻은 잊고 살았어요. 홍시야 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활동을 한 뒤 생각해보니까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보고 부르고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책이 나옵니다. 

 

오! 오랜만에 나오네요. 

제가 자랑을 해야 해요. 조금 특별한 책이기도 해서요. 제주 자연이 좋아서 제주에 왔는데, 제주가 너무 많이 훼손되는 걸 보고 있어요. 많이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 가서 시위도 하고 싱잉볼 연주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싸우는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니까 제 몸이 너무 힘든 거예요. 나는 이 방식으로는 좀 힘들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하루에 한 그루씩 100일 동안 나무를 그렸어요. 누군가는 나무를 베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무를 심고 있다는 것, 나무를 위해서 이렇게 마음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로잉을 했어요. 그 드로잉을 엮은 책이 아마 봄이나 여름에 나오게 될 것 같아요. 

 

2014년에 나온 책 《그곳에 집을 짓다》와도 연결이 되는 이야기네요. 

그땐 하루에 한 채씩 100일 동안 집을 지었어요. 언제나처럼 드로잉을 하다가, 문득 나를 위한 집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를 위해 집을 그렸어요. 그다음 날 우리 엄마도 집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엄마 집을 그리고, 동생 집도 지어줬죠. 내가 이 집에 불을 좀 켜주면 좋겠다. 100일 기도 같은 거였어요. 내 가족이 내 친구가 평화롭고 편안해지고 더 편하게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집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내면의 나를 잘 찾아갈 수 있게 집을 그리고 불을 밝혀주다가, 제가 인맥이 그렇게 넓지 않아요. 똑 떨어졌어요.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모르는 사람들, 불특정 다수로 가더라고요. 이 작업이 사실은 저한테 큰 전환점이 되기도 했어요. 그전까지는 정말 나를 위해서 그렸거든요. 내 말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것 같고, 표현하고 말하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살려고 그림을 그린 거죠. 나를 치유하고 살아내려고 우연히 시작한 작업인데 100일 동안 나부터 시작해서 아주 가까운 곳을 지나 세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거죠.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마음까지 생각하면서, 그때 ‘아, 나눠야겠구나.’ 이런 마음이 굉장히 크게 올라오더라고요. 

 

이 집에서는 오래 사셨어요? 

오래되지 않았어요. 제주도는 어디든 좋잖아요.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는 것도 좋겠지만, 작업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움직여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사는 곳이 바뀌면 많은 곳이 바뀌죠. 

내가 다니는 길과 보는 풍경이 바뀐다는 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이 집에 있는 이 순간까지는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해요. 변화의 시기가 오면 다른 새로운 걸 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죠. 오가는 것들에 대해서 걱정이나 생각을 덜 하려고 노력해요. 조금 좋은 것도 조금 힘든 것도 그냥 내 집에 오는 손님처럼 잘 대접하고 마음 나누고 떠나게 됐을 때 잘 떠나보내 주는 연습을 계속하고 싶어요. 공간도 인연도 작품도요. 작품을 어떻게 내보내야 할지 몰라서 꽁꽁 싸고 있던 때도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책으로 노래로 그림으로 세상에 나가고 있는 걸 보니까, 이건 내가 움켜쥐고 있을 일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얘는 쉽게 쉽게 하고 싶은 거 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바깥에서 보면 그렇죠. 그런데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도 또 거절당하는 것도 되게 많잖아요. 모든 것들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게 올 때도 또 이만큼 고난이 오겠구나 하고, 고난이 있을 때 또 좋은 게 있겠구나 이렇게 마음먹으니까요. 사실은 되게 슬플 일도 없고 또 되게 기쁠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파도처럼 좋았다가 또 안 좋았다가 이렇게 흘러가겠다는…. 

 

마지막 질문!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요? 

제일 좋아하는 곳은 집! 

 

정답이에요. 

누워야 되고 자야 되고, 그래서 집 제일 좋아요. 그리고 나가면 제주는 어디든 좋아요. 어디가 더 좋다 말할 수 없어요. 시시때때로 좋아하는 곳이 변하기도 하고요. 지금 집이 제주 동쪽 끝에 있으니까 주로 비자림이나 백약이오름을 많이 가요. 그런데요, 바깥에서 본 저와 오늘 이야기를 나눈 제가 많이 다른가요? 

 

음,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홍시야 작가는 큰길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곱씹으며 집으로 오는 길, 나도 모르게 나만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깜짝 놀랐지만 계속 흘러나오게 두었다. 이 노래가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노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바로 흩어져 사라질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는 것. 그게 모두 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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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