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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ㅡ 아트 디렉터
언젠가부터 즐겨 듣는 앨범의 크레딧을 꼼꼼히 읽는다. 그러다 종종 소요의 이름을 만났다. 수민, 존박, 주혜린 등 뮤지션들의 앨범 비주얼 작업을 도맡아온 그는 봤던 것을 또 보고, 지나친 것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들에 점을 찍고 그 사이를 거닐며 별자리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별자리가 그려지는 소요의 방을 찾아갔다. 그는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왔어요. 소요 씨에게 이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거든요.
더운 날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집은 제가 모든 걸 다 하는 곳이에요. 미팅 있을 때 빼면 거의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는 것 같아요.
이 인터뷰도 고민 끝에 하기로 했다고요. 그 말 듣고 정말 기뻤어요.
종종 유튜브 채널 같은 곳에서 출연 제의가 오기도 하는데, 제가 말주변도 없는 편이고 조금 부담스러워서 거절했거든요. 이번에는 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음반이라는 주제에 담기게 돼서 더더욱이요. 저 음악 진짜 좋아하거든요. 디자인도 좋지만 음반 이야기로 접근하니 막 심장이 뛰는 기분이에요.
작년에 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 ‘룸마니아 roommania’도 방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했죠?
맞아요. 방에 머물며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상상하며 지은 이름이에요. 저에게 방은 단지 쉬는 공간이라기보다 생각이 모이고 정리되는 공간에 가깝거든요.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방에 들어오면 조금씩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요.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 여행지에서 사 왔던 책이나 소품 같은 것들이요.
쉬는 곳이 곧 일하는 곳이겠어요. 구분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다들 일과 삶의 온·오프 스위치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꼭 휴식이 필요해!’ 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그냥 여기 앉아서 일하다가 쉬고 싶으면 닌텐도 하고, 내려놓고 다시 일하고…. (옆에 놓인 닌텐도를 보여준다.) 그 구분이 조금 흐려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편인데, 그래도 가끔은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저는 작년에 슬럼프를 크게 겪었어요. 늘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생각했는데, 콘셉트가 서로 다른 작업을 동시에 하다 보니까 번아웃이 왔는지 처음으로 일이 재미없게 느껴지더라고요. 다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거기서 물성을 지닌 것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다시 동기를 찾았죠. 요즘은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레퍼런스가 쏟아지잖아요. 그게 너무 간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직접 경험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가져와서 정리해 놓은 다음 나중에 꺼내 보면서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 여행에서 가장 가슴 설렌 기억이 있어요?
원래 여행 가면 관광객이 잘 없는 동네를 골라요. 숙소도 에어비앤비로 예약하고요. 그때도 도쿄에서 처음 가본 동네에 머물고 있었죠. 오래된 쇼핑센터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은 거예요. 흔히 ‘엘리베이터 뮤직’이라고 부르는,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공간의 적막을 채우는 음악이에요. 저는 뭔가를 기다리는 걸 지루해하는 사람인데,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다시 들으니 더 좋은 거에요. 그래서 룸마니아 뮤직 라이브러리rML 를 만들었고, 첫 시리즈로 [Music for waiting for the elevator]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아!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앨범 표지가 엘리베이터죠?
네, 진짜 그 엘리베이터 사진이에요. 다시 가서 촬영해 왔거든요. 건물 각 층마다 색도 달랐어요. 1층은 분홍색, 2층은 연두색, 3층은 하늘색. 굿즈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손 대신 사용하는 ‘안신스틱Anshin Stick’도 만들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죠.
지금 쓰고 있는 모자도 굿즈인가요?
앨범 굿즈는 아니고, 제가 만든 건데 아직 샘플이에요. 오늘 쓰고 싶어서 빨리 받았어요(웃음).
‘Everything Designer’라고 적혀 있네요. 이 문구,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있던 걸로 기억해요.
맞아요. 힙합 프로듀서 매들립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어요. ‘Everything’과 ‘Designer’는 한 번도 붙여 보지 않은 단어 조합이잖아요. 모든 걸 다 디자인한다는 직접적인 의미도 있지만, 제 주변에 있는 많은 것들을 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했어요. 저를 가장 설명하기 좋은 말 같아서 모자에도 확 박아버렸죠.
직접 찍은 간판 사진들을 모은 게시물도 재밌게 봤어요. 소요 씨는 글자도 이미지처럼 보는 것 같아요.
외국인 눈에는 한글 간판이나 타이포그래피가 일종의 도형처럼 보일 거예요. 저도 여행을 다니면 그렇게 돼요. 제가 모르는 언어를 하나의 도형, 형태로 보게 되죠. 뜻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림으로 받아들여요. 한글도 그래요. 지금은 잘 안 쓰는 폰트나 오래된 간판 같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또 일상에서 어떤 것에 눈길이 가요?
너무 완벽하게 정돈된 것보다 누군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좋아요. 예를 들면 오래된 카페의 메뉴판 글씨, 길에서 본 작은 스티커, 빈티지 가구, 조금 어긋난 인쇄물…. 이런 것들이요. 낡은 데서 오는 신선함이 있어요. 왜 저 글씨는 저렇게 생겼을까, 왜 이 색은 촌스러운데 귀엽게 느껴질까. 이런 사소한 관찰이 작업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쓰이죠.
수민&슬롬의 [MINISERIES]로 시작해서 주혜린, 존박, pH-1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반 디자인을 맡았어요. 이런 작업은 소요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장면이나 색, 분위기가 떠오르곤 했고, 음악이 사람의 기분이나 태도를 바꾼다는 점에 끌렸어요. 지금 하는 일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음악이 어떤 얼굴을 가지면 좋을지, 어떤 이미지와 물성으로 남으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그게 점점 작업이 되었으니까요. 저에게 음반 디자인은 제가 좋아해 온 음악이라는 세계에 시각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일이에요.
음악의 얼굴이라니 맞는 말이에요. 저도 이번 호를 만들면서 물성에 대해 곱씹어보게 됐어요.
사람들이 갈수록 손에 잡히는 걸 소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음반 판매율이 낮으니 다들 수량을 보수적으로 찍어요. 하지만 계속 만들죠. 음반의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저는 일부러 더 소비하려고 해요. [Music for waiting for the elevator]도 실물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어요. 물성을 지키고 싶은 제 마음도 있었어요.
소요 씨가 생각하는 음반의 가치는 뭐예요?
음악을 더 천천히 대한다는 거예요. 스트리밍은 빨리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고, 이거 듣다가 저거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기억에 잘 안 남더라고요. 음반으로 들으면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는 기분이에요.
플레이리스트도 자주 만들죠. 그건 물성을 갖기엔 한계가 있을 텐데, 어떤 의미인가요?
플레이리스트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친구들을 응원하고 싶을 때도 활용해요. 기분이 안 좋다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몇 개 담았는데 들어봐.” 하면서 링크를 보내는 식이에요. 쉽고 효과적이죠. CD를 여러 장 주면서 들어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좋은 선물이네요. 저도 해봐야겠어요.
만약 친구가 여행을 가면 여행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골라줄 수도 있고요. 낭만적이죠.
지금 테이블에 꺼내 둔 CD들도 설명해 주실래요? 디자인이 전부 예뻐요.
(음반을 하나 집어든다.) 이건 슈가 플랜트의 [Dryfruit]인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이 앨범만 듣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비행기에서도 계속 들었죠. 중고 음반 가게를 다 돌아서라도 이 앨범은 꼭 사 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쉽게 구할 수 없었거든요. 도쿄에서 오사카로 넘어간 날, 엄청 허름한 CD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어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 들어갔는데, 딱 거기 있는 거 있죠?
진짜 잊을 수 없는 순간이겠어요.
그러니까요! 막 소리를 질렀어요.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슈가 플랜트는 어떤 아티스트예요?
일본의 혼성 인디 록 밴드인데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부드럽고 몽환적인 음악이에요. 들어보실래요? (자리에서 일어나 음반을 재생한다.)
소요 씨의 취향을 만들어준 다른 가수나 음반도 궁금해요.
저는 음악을 다양하게 들어요. 10대, 20대 그리고 지금 30대까지 즐겨 듣는 장르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10대 때는 록이었어요. 에이브릴 라빈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20대 때는 힙합이나 로파이 같은 비트 뮤직을 많이 들었고요. 요즘엔 팝, 제이 팝, 클래식, 앰비언트 음악까지 넓어졌어요. 사실 저 꽤 독특한 음악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오키나와 민요 같은 거요.
오키나와 민요요? 이거 다 듣고 틀어주세요.
집 청소할 때도 종종 듣는데 기분이 좋아져요. 비주얼부터 독특하죠? 오키나와 여행에서 구매했어요. (또 다른 음반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앨범에 담긴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The Glory (????) of the Human Voice]라는 음반인데요. 노래는 정말 못했는데, 자신이 훌륭한 소프라노라고 진심으로 믿고 공연까지 했다고 해요. 들어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진지해서 이상하게 감동이 있어요.
아까 일하다가 지치면 닌텐도 게임을 한다고 했죠. 어떤 게임을 자주 해요?
이 앨범이 제가 자주 하는 게임 ‘괴혼’의 사운드트랙 CD인데요. (피규어가 담긴 통을 가져온다.) 이건 가챠로 뽑은 피규어들이에요. 얘네가 공을 데굴데굴 굴려서 지구상의 모든 물건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요. 사람도 굴리고, 자동차도 굴리고, 자유의 여신상까지요.
정말 귀여워요. (하나씩 살펴본다.) 얘는 된장국이에요?
네. 그래서 이름이 ‘미소양’이에요. 얘는 딸기라서 ‘이치고양’이고요.
조금 있다가 사진에 잘 담아봐요. 음악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한 작업을 할 때 그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듣는지도 궁금해요.
작업을 하는 동안은 다른 노래 안 듣고 그것만 들어요. 다른 음악의 색깔이 작업에 묻을까 봐요. 제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온전히 그 안에서 비주얼을 생각하려 해요. 꼭 그래야 하는 느낌이에요. 다른 음악을 들으면 죄짓는 기분이 들어요.
연애하는 것처럼요(웃음)?
정말요! 딱 그래요. 음악이 서운하지 않게끔. 그렇게 해야 몰입할 수 있더라고요. 브랜드 작업을 할 때도 콘셉트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만들어요.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요. 작년에 일본 배우 사토 쇼리의 굿즈와 프로모션 에셋을 디자인했어요. 작업을 넘기면서 플레이리스트도 함께 보냈죠. “작업하면서 들었던 음악들이에요.” 하고요. 나중에 열린 토크 세션에 초대받아 갔는데, 대기실에 그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계신 거예요. 실제로 좋아하는 곡들이 들어있어서 신기했다면서요. 진심은 닿는구나 싶었어요.
국경을 초월한 연결이 있었네요. 몰입한 작업을 떠나보낸 후에는 어때요? 왠지 그 음악은 잘 안 듣게 될 것 같아요.
발매 직후에는 완성된 아트워크와 함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감상하고, 잠시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작업할 때 계속 반복해서 들으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도 비주얼과 음악이 잘 어우러진다고 느껴지면, 저에게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남는 것 같아요.
음악은 기억을 담죠.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경험은 어떤가요? 그만큼 부담도 클 것 같아요.
그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늘 하고 싶어요. 오히려 그런 작업이 저를 성장시키거든요. 저는 혼자 일하다 보니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야 하죠. 그래서 어떤 아티스트와 작업하든 끝났을 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하려 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와의 작업이라면 그 마음이 더 커지고요.
그러면 후회는 안 남아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후회투성이죠.
아…(웃음).
하지만 그 또한 저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해도 항상 아쉬운 건 제 성격 탓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과거의 나를 인정해 줄 필요도 있더라고요.
맞아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무모했지만, 동시에 조금 절실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시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큰 기회로 다가왔거든요. 단순히 예쁜 이미지를 만드는 것보다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온도나 아티스트의 태도가 시각적으로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음반 디자인은 음악을 듣기 전 가장 먼저 만나는 장면이잖아요. 앨범 커버를 보고 “이 음악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수민&슬롬의 [MINISERIES] 작업을 하면서도 그랬어요. 그 음악이 존재하는 방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돌이켜보면 그 작업이 제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일하고 싶은지 알게 해준 시작점이었어요.
오늘 대화하면서 느꼈는데, 소요 씨는 부담감을 동력으로 삼는 사람 같아요.
그런가 봐요. 부담감이 있어야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걸 즐기려 하지만, 간혹 너무 커지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어요. 특히 요즘에는 프로젝트 단위로 투입이 되다 보니 모든 비주얼을 제가 컨트롤해야 하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제일 작은 단위로 돌아가요. 아예 단순하게 책상 정리를 하거나 주변에 있는 걸 다 꺼내서 순서를 맞추거나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요. 예전에 사 뒀던 수집물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집 밖에 잘 안 나가는 것도 그래서인가 봐요. 전에 모아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비주얼이 아닌 것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문장이나 제목, 단어 같은 것들이요. 너무 큰 결과물을 한 번에 생각하면 무거워지니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한 장면, 한 문장, 한 이미지부터 다시 잡아요.
재배열이네요. 커다란 틀 안에서 손에 쥔 것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네. 늘 일의 균형이 맞지는 않잖아요. 재배열하다 보면 맞는 순간이 있어요. 결국 균형은 멀리 도망가는 것보다, 제가 왜 이 작업을 좋아했는지 다시 기억하는 데서 잡히는 것 같아요.
문득 생각났는데, 오늘 촬영하며 듣기 좋은 음악이 있을까요?
안 그래도 어라운드에 어울리는 음반 몇 개를 골라봤어요. 하시모토 카즈마사의 [Gllia]와 이자벨 안테나의 [Hoping for Love],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의 [Preludes, Airs And Yodels]···. 차례대로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정지윤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