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다독이는 법

커피와 술. 술과 커피. 무엇을 고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참을 고민한 적 있다. 둘의 매력 싸움이 너무도 팽팽해서 결국엔 무엇을 선택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갈팡질팡하던 시간만 잔뜩 흘렀다. 누구는 커피가 사람의 이성을 극대화하고 술은 감정의 스위치를 누른다고 했다. 커피와 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이성과 감성의 선택일까? 궁금한 마음에 6인의 술과 커피에 관한 철학을 모아봤다. 술이냐 커피냐, 그것이 문제로다!

혼자, 술

경찰 아저씨 ‘황상동’

“홀로 기분 좋게 취한 밤엔 누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아무리 상상일 뿐이라고 해도요.”

안녕하세요. 혼자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경찰 아저씨입니다. 주변 친구들은 별명처럼 저를 경찰 아저씨라고 불러서 왠지 이런 소개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네요(흠).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혼자 술 마시기를 좋아해요. 주로 혼술 하는 장소는 안락한 제 방이죠.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에 묻혀서, 겨울엔 보일러 바닥에 붙어서! 시원하고 따뜻하게 술을 마셔요. 상상해보세요.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여유롭게 마시는 맥주! 물론 소주도 좋죠. 와인도 칵테일도 위스키도 다 좋아요. 하지만 집에서의 술 감성이란, 왠지 맥주가 어울리는 것 같네요. 개인적인 저의 취향입니다만. 

혼자 술을 마실 땐 어떤 술을 무슨 잔에 따르든 의식하지 않아도 돼요. 가장 편한 자세로 무지막지한 자유를 누리는 거죠. 왜 혼술을 좋아하냐고요? 혼자 마시면 외로워서 어떡하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전혀 외롭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이와 함께 마셨을 때 과음하게 되는 저의 악습관이 혼자 있을 땐 엄청난 자제력으로 바뀌거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가끔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땐 철학자가 된 것 같아 우쭐해질 때도 있죠. 이런 마음은 ‘술’과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아요. 홀로 기분 좋게 취한 밤엔 누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아무리 상상일 뿐이라고 해도요. 혹시나 그런 일은 없겠지만 집에서의 혼술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누군가와 붙을 수 있는 시비도 피하게 할 수도 있죠. 모두들 술 마신 뒤에 경찰서로 가시는 일은 없길 바라요! 저를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하하, 아무튼 혼술! 강력 추천 드려요. 

혼자, 커피

2019 미스강원 ‘김기쁨’

 

“홀로 카페를 다녀온 이래로 ‘혼자의 시간’에 입문하게 됐어요. 

지금은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됐죠.”

안녕하세요, 강원도 대표 미인 미스강원 김기쁨입니다. 올해 아주 재미있는 도전을 했는데 바로 미스코리아 대회였어요. 한 지역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는 것은 저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해요. 저만의 가치관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죠. 그런 시간에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가는 일은 무척 중요했어요. 평소에도 일정이 없는 날이면 늘 카페를 갔죠. 하루 중 잠깐 시간이 날 때도 꼭 카페를 가고요. 카페라는 공간엔 저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이 많아요. 가만히 앉아 고소한 커피 향을 느끼면 마음이 차분해지죠. 집중이 필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것을 좋아하고요. 서로를 의식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요구해요. 그렇게 오히려 각자 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고요. 적당한 긴장감과 따뜻한 커피를 두고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 이렇게 하루를 채우고 나면 시간을 더 알차게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처음엔 혼자 카페 가는 일이 두려웠어요. 무언가를 혼자 한다는 것, 모두들 함께하는 자리에 나만 홀로인 것. 무서웠죠. 사실 지금의 저는 혼자서 뭐든지 잘하지만 예전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데 더 익숙하고 외로움도 많았어요. 그런데 홀로 카페를 다녀온 이래로 ‘혼자의 시간’에 입문하게 됐어요. 지금은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됐죠.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도 커피가 있으면 안도감이 들기도 해요. 뭐랄까, 외로움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성취감도 함께 따라왔고요. 그런 시간이 쌓여갈수록 더 ‘나’를 아껴서 보게 되고요. 참, 추천하는 커피는 ‘루이보스 밤 라테’예요. 잠실의 숲속 같은 어느 카페에 있어요. 꼭 한번 마셔보세요!

같이, 술

가수, 그림 작가 ‘해므’

 

“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해방촌에 살고 있는 해므입니다. 재즈 밴드 ‘하이싱어즈’에서 보컬을 맡고 있어요. 이러저러한 그림도 그리면서 알차게 살 궁리하는 이십 대 여성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제게 인복이 많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대로 제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무척 많죠. 저는 그들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나누는 일을 가장 좋아해요. 오늘 여기에 그날 밤들을 기록해볼까 해요. 우린 다 함께 음악에 맞춰서 춤추기를 좋아해서 옛날 학교 교실처럼 마룻바닥이 있는 동네 작은 클럽에서 다같이 취해 춤을 춘 적도 있어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을 기어 다녔죠. 아주 즐거웠지만 다음 날 단체로 온몸에 가시가 박혀버린 슬픈 사연이 되기도 했어요(웃음). 가끔은 술에 취한 친구들과 스캣Scat을 하기도 해요. 스캣은 재즈에서 의미 없는 말들로 즉흥적인 노래를 부르는 건데, 반주를 틀어놓고 꼬인 혀로 다 같이 스캣을 할 때는 정말 가관이죠(웃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한 말이 있어요. “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오늘 우린 다 같이 모였고, 매우 즐겁고, 내일의 걱정은 없는 밤이죠! 우리는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요! (흠) 아, 죄송해요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참, 동네에 ‘Living Room’이라는 바가 있어요. 전시도 하고 디제잉도 하고 춤도 추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곳이죠. 미드 <프렌즈>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인데 꼭 한번 가서 즐겨보시길 추천 드려요. 저를 발견하신다면 제 친구들과 함께 춤춰봐도 좋고요.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같이, 커피

유치원 선생님 ‘김현주’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최대한 오래도록 

그 사람과 했던 대화를 간직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현주입니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셨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카페에 처음 가본 게 중학교 때였는데 당시엔 커피, 그리고 카페라는 공간은 어른들의 산물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무척 어렵게 생각했죠. 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친구와 카페 문을 열었어요. 교복 차림으로 나름의 일탈을 한 거죠. 전 뭘 마셔야 할지 몰라서 허둥댄 반면 친구는 당당히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했어요. 평범하던 그녀가 어른처럼 보이던 순간이었죠. 무엇이든지 첫 경험은 중요하잖아요. 그렇게 제 첫 커피는 카라멜마끼아또가 됐어요. 오래전 기억을 되돌아보니 지금 유치원을 다니는 이 아이들도 언젠가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지, 상상하게 되네요(웃음). 그 이후로 여러 종류의 커피에 도전했어요. 지금은 동네에 단골 카페들이 생겼을 정도로 마니아가 되었답니다. 언젠가 커피를 배워볼 계획도 그리고 있죠. 홈카페를 만들어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고요.

그저 대화를 하더라도 커피를 사이에 두는 것은 완전히 다른 화제를 몰고 오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인간관계 때문에 고충이 쌓여가죠. 각자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도 다르고요.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취해도 기억이 삭제되는 저에겐 커피를 두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편안해요.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최대한 오래도록 그 사람과 했던 대화를 간직하고 싶어요. 언젠가, 오늘 커피를 마시면서 했던 이 이야기가 지친 하루 속의 쉼터로 돌아오길 바라면서요.

카페 주인장

카페 얼스어스 바리스타 ‘길현희’

 

“커피와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커피는 우리에게 알림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얼스어스는 저의 개인적인 가치관이 담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시작했어요. ‘환경과 커피’라는 주제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올리는 곳이었죠. 꾸준히 운영하다 보니,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전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렇게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열게 됐어요.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매일 커피를 혼자 내려 마시는 건 제 오랜 습관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커피 메뉴를 구성할 때,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죠. 베이킹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디저트를 직접 만드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소박하지만 우리 가게만의 디저트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했죠. 지금은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디저트가 됐어요. 저는 신선한 원두와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내린, 가치 있는 커피를 추구해요. 8년 넘게 커피를 만들고 있는 지금도 제가 내린 커피가 늘 맛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언제나 커피는 어렵고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늘 고민하면서 연습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환경 보호라는 가치관을 넘어서 맛 자체에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요. 

커피와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본다면, 커피는 우리에게 알림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매년 생두와 원둣값은 오르고 커피나무를 농작할 수 있는 농경지가 이상기후로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커피가 소수만이 맛볼 수 있는 사치품이 되지 않도록 모두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스어스에서는 일회용품도 찾을 수 없고 그 흔한 테이크아웃도 하실 수 없어요.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공간이죠. 하지만 다행히 얼스어스는 가치를 믿고 함께 걸어 주시는 손님들 덕에 더 활발히 나아가고 있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을 하는 것, 지금처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어요.

술집 주인장

이자카야 용이네 술집 사장님 ‘이용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부족한 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사동의 후미진 골목길에서 용이네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너 겸 쉐프 이용범입니다. 용이네는 ‘내가 가고 싶은 술집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맥줏집과 이자카야에서 무턱대고 주방 일을 배웠죠. 그렇게 용이네를 지켜온 지 어느덧 11년이 되었네요. 그만큼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용이네를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곳곳에 묻어 있어요. 지금 메뉴판도 그동안 손님들과 우연한 대화에서 채워진 것이 많아요. 메뉴에 없는 안주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매운 치즈 라뽂이’, 스팸과 계란, 두부 김치가 어우러진 ‘부엉이 철판’이 생기기도 했죠. 부엉이 철판은 알바생이 “부엉이처럼 생겼네.”라고 혼잣말하는 걸 듣고는 그대로 이름 붙인 거예요(웃음).

술집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광경과 마주하게 돼요. 기분 좋게 술 마시다가 싸우는 친구들 또는 연인들, 용이네에서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부부의 청첩장을 받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아이를 데려와서 인사를 하고 가시기도 했죠. 오래된 손님이 다녀가실 때면 이곳을 방문하셨던 손님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요. 그럴 땐 ‘술장사 그만둬야지.’ 했던 생각이 조금은 덜어지게 되죠.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용이네의 문을 열었어요. 지치고 고단했던 하루 끝에 이곳이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라면서요. 술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실수를 하게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술과 함께하면서 위안, 용기, 사랑을 얻을 수도 있죠. 과거에 놓쳤던 인간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진 술을 마시는 용이네 손님들께, 사장으로서 한마디 올리고 싶어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부족한 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손님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사람 구실 하며 살았습니다(웃음). 감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김지수

일러스트 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