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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 vita est, spes est
라틴어 수업과 한국어 편지
Dum vita est, spes est
한동일 작가의 책 《라틴어 수업》을 선물 받았다. 대학교 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나눠 읽기 편했다. 하루에 20분 정도 수업을 받듯 책을 읽었고, 책을 덮은 후에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편지를 썼다.
내 삶의 모멘텀에게.
‘Si vales bene est, ego valeo(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건 그가 안녕하길 바란다는 뜻이겠죠. 그리운 아그네스, 얼마 전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몇 개의 밑줄을 그었고, 제가 그은 밑줄 위에 당신과의 추억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1927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위대한 이탈리아’라는 구호 아래, 도시의 대형 건설 공사를 주도했습니다. 바티칸 광장에서 콜로세움에 이르는 도로 건설 프로젝트 역시 그중 하나였는데, 도로를 흙으로 메우고 돌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의미심장한 유적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암살당한 ‘유투르나 신전’입니다. 이 책의 글쓴이는 일상 속에서 이 역사적인 장소를 자주 지나쳤음에도,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더 잘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모멘텀Momentum’이란 물리학에서 ‘운동량’ 또는 ‘가속도‘를 의미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의 전환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더 잘 알기 위한 노력과, 성찰을 위한 열린 마음이 곧 모멘텀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수업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당신, 아그네스입니다. 우리는 10년 전 인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외국 여행이 처음인 애송이였고, 당신은 이미 1년 동안 세계를 누빈 프로 여행자였죠. 저는 종종 당신의 배낭에 붙은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를 보며 그저 부러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당신과 함께 여행한 한 달여간 우리는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신은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고, 저의 거창한 생각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라틴어에 ‘Summa cum laude pro se quispue(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적을 매길 때 쓰는 표현인데, 최우등 외에도 ‘우수, 우등, 좋음/잘했음’이라고 구분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부정적인 평가는 없고,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배경 위에 성적을 주는 것이죠.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보다 얼마나 더 변화했는지를 지켜본다는 부분에서 당신의 경청이 생각났습니다. 이제껏 공부해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니 남들보다 늦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는 저의 말에 당신은 《월든》이라는 책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죠.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에서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20대 후반에 전혀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 당신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 것이 아닌 북소리에 여전히 갈팡질팡했을 겁니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되돌리지 못한 과거를 증오하면서 말이죠.
지금 당신이 사는 곳은 어떤가요? 이름도 생소한 태평양 어느 외딴섬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가 있는 삶, 여전히 저는 당신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종종 제 안에 고민이 생길 때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당신의 마을을 상상해봅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이야기하는 거죠. “요즘 저의 고민은 ‘삶’ 그 자체예요. 그런데 그 단어 앞에 ‘어떻게 살까?’보다는 ‘왜 살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날이 더 많아졌어요.” 기억할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 당신이 저에게 했던 말을 책 속에서 찾았습니다. ‘Hoc quoque transibit(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포기와 절망,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음 날로 미뤄두라는 의미입니다. 매일매일 유예되는 시간 동안 아마 고민은 저절로 지나가게 되겠죠.
당신은 저에게 꿈을 물어봐 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장난처럼 노벨평화상을 받는 게 꿈이라고 말했고, 당신은 진지하게 저의 계획을 들어주었죠. 그때 나눴던 대화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Dum vita est, spes est(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한 꿈은 이루어집니다. 꿈이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저를 살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정녕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거겠죠.
아그네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당신을 살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인도와 당신의 파도, 당신의 오늘. 늘 그리워하며 처음인 양 안부를 묻습니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기를 바라며.
봄이 더 가까운 어느 겨울, 한국에서 편지를 씁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