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따뷔랭과 따뷔랭

운동에 떠올린 건 자전거, 자전거에 떠올린 건 라울 따뷔랭, 라울 따뷔랭에 떠올린 건 장자크 상페.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빌릴게요.

5 years old 

나의 첫

두발따뷔랭

“만약에 자전거의 변속이나 토 클립(페달에 달린 발 끼우개), 베어링, 체인 스프로킷(톱니바퀴), 튜브, 공기 타이어, 세미 타이어 또는 관 모양의 경주용 타이어 등등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생 세롱의 자전거포 주인 라울 따뷔랭일 것이다. (중략)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이 지역에서는 이제 자전거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따뷔랭’이라는 말로 대신하게 되었다.”

 

– 장자크 상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중에서

나의 첫 두발따뷔랭은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 꿈돌이가 그려진 삼천리 따뷔랭이었다. 이 따뷔랭은 동네에 있던 따뷔랭포에서 부모님이 사 주신 거였다. 우리 동네 따뷔랭포는 약간 경사진 곳에 있었고, 첫 두발따뷔랭을 사러 간 그날은 화창한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 식구는 얕은 언덕에 올라 따뷔랭포로 들어섰다. 우리는 어린 내 따뷔랭이 될 것들의 면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안장 몇 개에 앉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따뷔랭을 세 개 골랐다. 내 손가락을 따라 마지막까지 남은 따뷔랭은 안장이 길어 뒤에 사람을 한 명 더 태울 수 있는 따뷔랭이었다. 따뷔랭포 주인이 내가 고른 두발따뷔랭에 보조 바퀴를 달아주었다. 언제든 두발따뷔랭을 탈 준비가 되면 떼어준다고 했다. 나는 두 발인 듯 아직은 네 발인 따뷔랭에 올랐다. 이제 이 따뷔랭은 내 거였다. 따뷔랭포 주인과 부모님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건 따뷔랭 수리나 금액 흥정 같은 어른들의 대화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좀 들떠 있었고, 그 순간 어쩐지 온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건 상상이 아니었다. 따뷔랭이 중력을 따라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얕은 경사를 타고 돌돌돌 내려간 따뷔랭은 내가 탄 반대 방향으로, 그러니까 뒤통수 방향으로 돌돌돌 구르고 또 굴렀다. 경사의 끝은 4차선 차도였다. 이대로 언덕 아래까지 내려간다면 나와 내 따뷔랭은 차도로 내동댕이쳐질 게 뻔했고, 나는 끔찍한 결과를 알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자동차 바퀴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던 아슬아슬한 순간, 기적처럼 엄마가 나와 따뷔랭을 발견했다. 언덕을 지나던 차가 클랙슨을 울린 것도 같다. 엄마는 내 이름을 날카롭게 불렀다. 아빠는 긴 다리로 언덕을 재빠르게 달려와 따뷔랭을 붙잡았다. 나와 따뷔랭은 가까스로 정지했다. 나는 살아났고 따뷔랭도 무사했다. 차들과 부딪치지 않았고, 우리는 말짱히 살아 있었다.

천만다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에게 온 따뷔랭은 검은색과 금색이 화려하게 얽힌 따뷔랭이었다. 핸들 옆엔 작은 고무 단추가 달려 있었다. 바람이 채워진 그것을 누르면 ‘삐뽀’ 하는 소리가 났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언덕에서 곤두박질치던, 곤두박질칠 수도 있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그래서 경적을 울리는 게 싫었다. 어느 날 사촌 오빠가 내 따뷔랭에 올라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을 땐 신경이 잔뜩 뾰족해졌고, 못 참겠다는 마음으로 빡빡 문질러 닦았다.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내 따뷔랭 바큇살에는 작은 동그라미 장식이 몇 개 매달려 있었다. 페달을 밟으면 따뷔랭 바퀴 안에서 색색깔의 그것들이 아름답게 돌아갔다. 내가 페달을 힘차게 구르면 구를수록 색은 더 넓게 퍼졌는데, 아쉽게도 따뷔랭 위에 앉은 나는 내 따뷔랭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볼 수 없었다.

6 years old

두발따뷔랭

정복기

“따뷔랭의 창조자 라울 따뷔랭 자신은 그 명성에 걸맞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거였다. (중략) 너무 엄청나서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할 비밀, 그것은 그가 자전거 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따뷔랭’을 탈 줄 몰랐다.” 

– 장자크 상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중에서

어느 날 나와는 관계가 복잡한 먼 친척 집에 가게 되었다. 아빠의 외삼촌이었나, 아빠의 외삼촌의 아들이었나, 여하간 내가 ‘아저씨’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난생처음 방문한 그 집은 좀 낯설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와는 다르게 매끈한 장판도 없었고 야광 벽지도 없었다. 흙과 돌과 나무가 무성한 그곳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담벼락을 기웃대며 노래나 부르고 있을 때, 엄마가 그 집 앞에 서 있는 따뷔랭을 가리켰다. “따뷔랭 탈까?” 그러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건 내 꿈돌이 따뷔랭이 아니었다. 보조 바퀴도 없었고, 바퀴도 훨씬 커다랬다. 안장도 더 높은 것 같아 무서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못 하는 게 별로 없던 나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장은 아빠가 조절했다. 처음보단 약간 낮아진 따뷔랭에 올라 페달을 밟았을 때, 놀랍도록 불안정하게 휘청거리는 따뷔랭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균형을 잘 잡으면 바퀴를 굴릴 수 있을 거란 말에 용기를 냈다. 엄마가 뒤에서 잡고 있으니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말을 굳게 믿었다. 나는 흔들거리는 따뷔랭 위에서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핸들에서 손을 떼지 말라고 했다. 따뷔랭을 타면서 핸들에서 손을 어떻게 뗄 수 있는지, 그게 가능은 한지 생각하면서 허벅지에 힘을 실어 페달을 밟았다. 한 번 크게 휘청하곤 넘어지려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탄 따뷔랭은 우뚝 섰다. 엄마가 뒤에서 잘 잡아준 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낯선 집의 대문을 넘어 작은 동네의 길가로 나갔다. 우리 동네와는 너무도 다른 황금색 풍경. 그곳에선 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나는 따뷔랭 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하고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따뷔랭 위에서 좀더 크게 소리쳤다. “똥 냄새가 나는데? 안 나?”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몹시도 답답해져 브레이크를 세게 잡았다. 반동으로 기울어버린 따뷔랭을 작은 손으로 힘껏 잡고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따뷔랭 뒤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똥 냄새를 가르며 달려온 황금 들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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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자료 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