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다정함]

잘 자, 사랑해

‘사랑은, 그가 잘 자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에게도 잘 잤는지 궁금한 존재가 몇 있다.

우리 집 고양이

우리 집 고양이는 어디서든 잘 잔다. 집 안 모든 곳이 고양이의 침대다. 소파나 침대, 의자 등 가구는 물론이고, 종종 옷장을 열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옷장 문도 열어준다. 그러면 고양이는 폴짝 옷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옷 사이에 숨어 한숨 자다가 나온다. 옷에 하얀 털이 좀 붙겠지만 털이야 떼면 되지.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가 달게 자는 일보다 중요한 건 많지 않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실에는 고양이만을 위한 침대가 여러 개 널려 있다. 요즘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침대는 농구화 박스. 몸에 꼭 맞는 박스 안에서 쌔근쌔근 잘도 잔다. 거실에는 피자를 담아 온 크고 튼튼한 비닐봉지도 하나 굴러다닌다. 고양이는 봉지를 깔고 자거나 아니면 봉지 안에 들어가 잔다. 그러다 혀로 비닐을 핥기도 한다. 바스락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펼쳐둔 여행 가방 역시 고양이의 훌륭한 침대가 된다. 일 년에 한 번도 잘 쓰지 않는 가방이 이렇게 일 년 내내 쓰이니 좋은 일이다. 한동안 잘 이용하지 않는 박스를 치우려고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냉큼 그리로 가서 잔다. 그래서 오늘도 거실에는 각종 박스와 비닐이 흩어져 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삿짐을 싸는 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무언가를 베고 자는 것도 좋아한다. 보통 책이나 쿠션, 컴퓨터 마우스 등을 베개로 쓴다. 종종 문지방을 베고 눕기도 한다. 그중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베개는 나의 손바닥이다. 거실 바닥에서도, 침대 위에서도, 책상 컴퓨터 앞에서도 손바닥만 펼치면 얼굴을 대고 풀썩 눕는다. 손가락으로 눈과 코 사이를 만져주는 시간은 고양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러다 종종 물릴 때도 있지만, 괜찮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무겁게 질문하다가도 내 고양이의 베개가 되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집 고양이는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책상 위에서 마우스를 베고 자다가 바닥의 농구화 박스로 옮겨 갔다. 방에선 우리 집 사람이 햇볕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가을의 햇살은 뜨겁고 하늘은 파랗다. 오전에 집 안 청소를 끝냈고 점심을 든든히 먹었으며 빨래해서 건조대에 널어두었다. 마당에서는 삼색이 고양이가 방심한 자세로 졸고 있다. 이 글을 마저 쓰는 것 외에 오늘 다른 일정은 없다.

아무도 깨우지 않으려 찬장에서 컵을 하나 꺼낼 때도 조심스럽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고양이의 발걸음 같다. 내가 쫓는 것은 사랑하는 존재들의 단잠. 달콤한 낮잠을 이어 잤으면 하는 바람. 공기도 나의 바람처럼 천천히 고요히 흐른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내 손가락만 키보드 위를 오가는 시간. 이 오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거리의 친구들

몇 년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매일 일터를 찾아오던 떠돌이 개가 있었다. 길에서 흔히 보이는 진돗개는 아니었고, 몸집이 작고 단단한 근육을 가진 얼룩무늬 갈색 개였다. 사람을 따르는 편은 아니어서 손을 잘 타진 않았지만 매일 와서 마당의 고양이 밥을 먹고 갔다. 북어채를 한 봉지 사서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개가 오면 간식으로 줬다. 북어채를 들고 있으면 가까이 와주었다. “앉아. 기다려.” 훈련도 시켰다. 개는 능청스럽게 내가 시키는 걸 따라 한 뒤 무사히 북어채를 얻어먹고는 나무 그늘이나 야외 테이블 아래서 쉬었다.

손님이 없을 땐 나도 개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선을 나누기도 했다. 개는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개 옆에 다가가는 법을 알았다. 살금살금 낮은 자세로 다가가 눈 사이 이마를 천천히 쓰다듬으면 개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나는 일어나서 가게로 돌아갔고, 손님이 가고 나서 개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사라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 갔지. 나는 개의 연락처도 모르는데. 종종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개가 온 걸 눈치채지 못하면 개는 가게 입구 발 매트 위에 정자세로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꼬리도 조금 흔들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둘 다 반가워서 서로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나를 졸졸 따라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개가 나의 꼬리를 알아봤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태풍 때문에 비바람이 심한 날이었다. 이 궂은 밤, 개는 잘 곳이 있을까? 개의 손을 잡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둘이나 있었고, 둘째 고양이가 워낙 심약한 편이어서, 불쑥 개를 데리고 집에 들어갈 순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에서 단 하룻밤이라도 개를 재우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비바람을 뚫고 가게로 갔다. 개는 가게 옆 건물 외부 계단 아래에 숨어 있었다. 박스를 가지고 와 돌로 고정하고 입고 갔던 옷을 벗어 깔아주었다. 나는 빗속에서 약간 울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개는, 그 밤 거기서 무사히 비를 피했을까. 어느 날 개의 가족이 나타나서 개를 데려갔다. 종종 개를 생각한다. 개는 잘 살고 있을까.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 개의 가족 연락처를 찾아보았는데, 남아 있지 않다.

그때 개의 가족에게 어쩌다 개를 잃어버린 거냐 물었더니 집을 새로 지어 이사하는 과정에서 지낼 곳이 없어 지인의 농장에 맡겼다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개를 보내며, 혹시나 키우기 힘든 상황이 오면 꼭 나에게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은 그 후로 한 번 연락을 받기도 했다. 며칠 뒤 마음을 바꾸고 다시 잘 키워 보겠다고 했지만…. 설마 아직 농장에 있진 않겠지. 수소문을 해봐야겠다. 만일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면 늦었지만 다시 데리고 와도 좋겠다. 농장을 지키는 개로 살기보다는 우리 집 마당에 집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미 6년 전쯤 일이라, 개도 많이 늙었겠다. 6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개는 왜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가게에는 고양이도 왔다. 한쪽 눈이 다친 온 털이 꼬질꼬질하게 뭉쳐 있는 고양이였다. 이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사람을 좋아해서,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가게 안까지 무턱대고 들어왔다. 눈곱을 떼주고, 털을 빗겨주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와 야옹거렸다. 길을 건널 때면 고양이 꽁무니에 대고 차 조심하라고 외쳤다. 고양이는 거리에서 아슬아슬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알고 보니 근처에 집이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원래는 집 안에서 살던 고양이였다고 했다. 외출을 좋아해서 내보냈다고 하는데, 집에 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마당 어디에도 고양이가 잘 곳이 없었다. 이건 방치다. 버려졌다. 어느 날부턴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고, 숨도 너무 헐떡이는 것 같아서 걱정됐다. 눈도 고쳐주고 싶다. 아무래도 얘랑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가야겠다.

고양이의 가족에게 동물 병원에 데려가도 되냐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외부 충격을 받아 횡격막이 파열되어 장기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시골에선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동물 병원이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을 예약했다. 고양이는 서울 가기 전전날 우리 집에서 죽었다. 친구들은 그래도 고양이가 따뜻한 집 안에서 며칠 편히 쉬다 내 품 안에서 떠나서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내가 조금 일찍 고양이의 손을 잡고 집에 왔으면 고양이는 살았을까.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을까.

잘 자

친구가 운영하는 공간에 임시 보호 중인 개가 있었다. 있었다,고 말하고 보니 과거형이라 마음이 따끔하다. 개는 낮에는 사람들과 지냈지만 밤에는 혼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려가 “잘 잤어?” 등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 개는 기지개를 켜며 반겨주었다. 그러곤 같이 산책을 했다. 가끔은 한밤중에도 개를 보러 갔다. 개는 한없이 다정해서 개를 아는 모두가 그 개와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진짜다.

개는 차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죽은 개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진작 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개가 떠난 뒤 한참 동안, 개와  산책하던 길을 걸을 때면 개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 리드줄을 잡은 듯 주먹을 꽉 쥐고 다정하게 개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슬픔이 과하다고 말했다. 네가 직접 돌보던 개도 아니지 않냐고. 그저 예뻐하기만 한 너는 그만큼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눈치가 보였다. 슬퍼하기를 멈추었다. 이제는 안다. 우리는 친구였고, 개는 나를, 나는 개를 사랑했고, 나는 슬퍼할 수 있다. 그때 그 사람에게 네가 틀렸다고 따졌어야 했는데. 나는 늘 그랬듯 따지는 대신 숨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따질까 하다가 그만둔다. 나는 꼭 개가 캐나다 어딘가로 입양 가서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푹신한 쿠션 위에서 특유의 아기 같은 얼굴로 자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괜찮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어느 날 캐나다로 여행을 간다면, 개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싶다. 그땐 내 옆에 와주었으면. 잘 자고 있는지 궁금한 존재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 보니 온통 우리 집 지붕 밑에서 재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동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놓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사랑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친구들. 잘 자. 사랑해. 영원히.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