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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은 꽃밭
3년 전 2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제주도 중산간에 있는 지어진 지 25년이 넘은 목조 주택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마당이 꽤 넓고 나무가 많은 집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고 계약한 건 아니었다. 당시 급하게 집을 구하고 있어서 고민을 길게 할 시간이 없었다. 몇 년 사이 말도 안 되게 오른 주변 시세에 비해 임대료가 합리적이었고, 집 안팎의 소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 이미 몇 달 전에 매물로 나왔는데도 아직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과연 벌레가 많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전에 살던 집에서 다 겪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집을 잘 만났다고 생각하며 주저 없이 계약을 했다. 어쩌면 이 집도 우리를 기다렸던 것 같다.
겨울이라 동백나무와 야자수, 하귤 나무를 제외하고 다른 나무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하느라 예초도 막 끝낸 참이어서 마당에도 풀이 거의 없었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마당에 어떤 나무와 꽃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에 살던 집에도 뒷마당이 있긴 했지만, 대나무숲에 둘러싸여 빛이 들지 않아 습하고 어두워서 사는 동안 끝내 마당에 정을 붙이진 못했다. 그 전에는 항상 아파트에 살았다. 진짜 마당살이는 처음인 셈이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는 처지라 마당에 기대도 걱정도 없었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유일하게 눈에 들어온 건 부엌의 커다란 창이었다. 부엌이 좁아서 냉장고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아 전에 살던 사람은 창을 가리고 그 앞에 냉장고를 두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창틀에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었다. 창 바로 앞에는 가지가 많고 키가 큰 나무가 있었다. 저 나무가 목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 가득 하얀 목련이 보이면 정말 아름답겠지. 냉장고를 부엌 옆에 있는 작은 방 안에 넣기로 결정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목련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 창 앞에 식탁을 두었다. 그리고 남은 겨우내 나무를 볼 때마다 계속 주문을 외었다. ʻ목련이어라, 목련이어라.’ 바람이 불 때면 나무 실루엣을 따라 집 안으로 빛이 드리웠다. 봄이 되었고, 잎이 하나둘 나기 시작하며 나무는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무 이름은 딱총나무. 제주에서 아주 흔한 나무다. 빨간 열매가 맺고 귀여운 하얀 꽃도 피지만 목련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주문을 외웠는데, 대체 왜 딱총나무인 거지? 겨우내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다. 겨울에도 딱총나무는 딱총나무였는데, 한 번도 목련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엇에 실망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대신 봄이 되자 옆집 마당의 나무에서 하얀 목련이 피기 시작했다. 목련이 피는 짧은 기간, 나는 자주 옆집 방향으로 난 창문 앞에 붙어 앉아 그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저 나무가 내 나무였어야 했는데!
이 집에서 맞는 첫 봄. 마당에 듬성듬성 잡초가 나기 시작했다. 마당 관리의 기본은 잡초를 정리하는 것이니까, 예초기로 풀도 깎고 쪼그리고 앉아 잡초도 뽑았다. 그런 나를 보며 이웃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여기 전에 살던 부부는 마당 관리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잡초가 무릎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고 한다. 그보다 더 한참 전에 살던 할머니가 마당에 꽃을 정말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집 인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느 날 마당 구석 하귤 나무 아래에서 작은 새싹을 하나 발견했다. 생김새가 그간 보던 잡초와 다르다.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사이트에 물어봤지만, 자칭 꽃 박사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예전에 사셨다던 할머니가 심은 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온 마당을 꽃밭으로 조성하고 가꾸셨던 것 같지만, 나에겐 그럴 열정은 없다. 뿌리째 살살 잘 파서 집 앞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옮겨 심었다. 작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시장에서 꽃모종도 몇 개 사 와서 함께 심었다. 마당에서 주운 작고 까만 돌들을 꽃 주변에 쌓아 얕은 담을 만들었다. 넓은 마당 안에 작은 꽃밭이 생겼다.
놀랍게도 새싹은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봄이 지나는 동안 마당 여기저기에서 처음 보는 새싹이 끝도 없이 올라왔다. 그즈음엔 마당에 나갈 때마다 설렜다. 하나하나 잘 파내서 꽃밭에 옮겨 심었다. 어떤 꽃이 필지 알 수 없는 작은 새싹을 나의 꽃밭에 옮겨 심는 일이 좋았다. 장미, 원추리, 나리, 비비추, 튤립, 수선화, 애기범부채까지 꽃들은 연달아 피었다. 작약이 피었을 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내 작약 세 송이를 자랑했다. 여름에는 상사화도 피었다. 마당 여기저기서 꽃이 피어난다는 걸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모종을 사지 않았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일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사랑초, 괭이밥, 큰봄까치꽃 등 얼핏 잡초처럼 보이는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이 집에 살면서부터다. 어떤 꽃이 어디서 필지 모르기 때문에 종종 위치 선정에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친구네 마당에서 수국을 얻어다가 집 벽면 가까이 심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죽은 가지처럼 보이던 것이 나중에 보니 체리세이지였다. 그래서 지금 집 한쪽 벽 아래에서는 수국과 체리세이지가 어깨싸움을 하고 있다. 내년 초봄엔 둘 중 하나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줄 작정이다.
꽃뿐만이 아니다. 3월이 되자 앙상하던 나무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운 건 매화나무였다. 심지어 몇 달 뒤엔 매실도 열렸다. 첫해엔 14알, 이듬해엔 35알, 올해는 자그마치 75알이 열렸다. 바로 따지 않고 황매실이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두었다가 매실청을 담갔다. 앵두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매화와 앵두꽃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앵두꽃에선 향이 나지 않는다. 10여 년 전 제주도로 이사를 와서야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난다는 걸 알게 된 내가, 어느덧 매화와 앵두꽃을 구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와 꽤 달콤한 감이 열리는 감나무도 한 그루씩 있다. 앵두도 오디도 감도 잘 따서 계절마다 알차게 먹고 있다. 석류나무도 있는데, 아쉽게도 아직 석류가 열리는 걸 보지 못했다. 그래도 석류를 닮은 석류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꽃을 보자마자 이건 석류나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찬란한 주황빛 꽃송이. 황량한 겨울에 처음 이사 올 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열매들은 일상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을 실감했다.
25년 동안 이 집을 오간 사람들이 나에게 준 선물 같다. 그들 덕분에 기쁘게 발견하고 눈으로 즐기고 신나게 맛본다. 이 마당에 내가 더 추가한 건 로즈마리와 수국이다. 로즈마리도 수국도 알아서 쑥쑥 자라는 식물이다. 우리 다음에 이 집으로 이사 올 사람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내 마당이 초라할 수도 있다. 커다란 매실나무에서는 열매가 고작 수십 개 열리고, 수확한 감도 서너 개에 불과하다. 꽃밭에 피는 꽃의 수도 적고, 서로 어울리게 심겨 있지도 않다. 당연하다. 정체 모를 새싹인 채 이 꽃밭에 왔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은 이 집에서 나보다 오래 살았다. 꽃 한 송이에 담긴 시간을 헤아리면 이 작은 꽃밭이 나에겐 그 어떤 꽃밭보다 넓다.
지난 2월 계약이 끝나기 전에 임대인에게 더 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는 하루 정도 고민하더니, 잘 부탁한다며 임대료 인상 없이 흔쾌히 계약을 연장해 주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그는 서울살이에 지칠 때마다 제주도에 있는 집에서 어떤 이가 자기가 원하던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건 어떤 마음일까. 아무튼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집이 더 좋아졌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폭우에 톡톡 비가 새기도 하고, 벌레가 자주 출현한다. 벌레 종류도 지네부터 거미, 개미, 바퀴벌레, 풍뎅이, 벌, 쥐며느리까지 다양하다. 마당엔 뱀도 등장하고, 현관 위에 하루아침에 벌집이 생기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방향 따라 지붕이 파도치듯 삐걱거린다. 그럴 때면 마음이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 집에서 맞을 여름의 장마와 가을의 태풍, 겨울의 눈을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계절을 모르는 안락함보다는 계절을 온몸으로 맞으며 겪는 모험이 좋다. 매일 작은 모험을 경험하게 해주는 25년 된 집에서 열한 살짜리 고양이와 함께 다 같이 조금 더 낡은 채 무사히 세 번째 봄을 맞이했다. 네 번째 봄엔 또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