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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십니까
저는 고향이 두 개입니다. 객관적 고향은 서울이지만, 주관적 고향은 부산이지요. 당신은 고향이 어디신가요?
이룰 수 없는 로망이 하나 있다. 정말 갖고 싶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고향 집.
부모님을 뵈러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집에 가는 상상을 한다. 고향 집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거리가 익숙해지겠지? 낯익은 골목 어귀에 접어들면 이미 집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야. 그렇게 찾은 고향 집엔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하겠지. 키를 재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겠지. 고향 친구라니, 상상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단어다.
하지만 나에겐 고향 집이 없다. 실은 고향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종종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하게 되고 고향의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궁금해져서 표준국어대사전에 ‘고향’의 뜻을 찾아보니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고 나온다. 주민등록상 출생지는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기 전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살 때의 기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부산으로 이사를 한 건 아버지 직장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연고 없는 부산으로 아직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산, 중에서도 해운대에서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나왔다. 고향을 묻는 말에 내가 서울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공식적인 사실이지만 대답에 정취가 담겨 있지는 않다. 만일 정취를 담아 내 고향은 부산이라고 대답한다면, 엄밀히 따지면 그건 거짓에 가깝다. 게다가 나는 부산 사투리를 쓸 줄도 모르는걸. 정말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일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 아래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며 부산에서 15년을 살았다. 내가 부산을 떠날 때 가족들도 모두 함께 서울로 왔기 때문에 지금 부산에는 아무 연고도 없다. 친구들도 대부분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부산에 가도 고향 집은커녕 만날 사람도 거의 없단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의 고향은 서울보다는 부산에 가깝다고 느낀다.
얼마 전에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고 쓰지 않는 걸 보니 내 고향은 부산이 맞나 보다. 내가 사는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40분 정도면 김해공항에 닿는다. 부산에 간 이유는 순전히 해운대역 근처에 있는 떡볶이집에 가기 위해서. 커다란 판에 끓고 있는 새빨간 떡볶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자마자 먹어보고 싶었다. 김해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역으로 향했다. 해운대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땐 이 떡볶이집은 없었다. 하지만 부산식 떡볶이의 맛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저 이거 먹으려고 제주도에서 왔어요.” “다들 제주도 가는데, 거꾸로 왔네.” 싱거운 대화를 나누며 떡볶이를 주문했고 가게에서는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포장해서 나왔다. “저기 언덕 위가 우리 학교거든. 저쪽으로 올라가 보자. 빌라가 많은 동네라 앉을 곳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가보자. 따라와.”
낯익은 동네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는 길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만 이 동네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지 동네는 내가 낯설겠지만, 이 익숙한 골목 어디에서든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길바닥에 앉아서 먹더라도, ‘아 너구나.’ 하고 너그러이 봐줄 것 같은 기분. 떡볶이가 담긴 까만 봉지를 들고 10여 분 걷다가 정자를 찾았다.
“거봐, 여기선 나만 믿어. 내 구역이야.” 부산에 오니 부쩍 말이 많아진다. “고3 때 부반장이었거든. 반장 영아랑 다른 부반장 미진이랑 셋이 해운대역 근처에서 떡볶이 먹는데 내가 그때 순대를 못 먹었거든. 영아랑 미진이가 내가 서울 사람이라 그런 거 같다며 놀렸어.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못 먹는 게 좀 많긴 했던 거 같아. 애들이 서울깍쟁이라고 여길 만했지.” 떡볶이를 먹고 내가 다니던 학교까지 조금 더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엄청나게 가파른 오르막이지? 등교하면서 뛰다가 정말 많이 넘어져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어.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잖아.” 입구에서 가로막혀 학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교문 앞에서 사진은 한 장 찍었다. “학교 운동장에 벚나무가 있거든. 벚꽃 잎 손으로 받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봄에 꽃피면 엄청 뛰어다녔어.” “저 복삿집 아직 있네. 내 노트 필기를 친구들이 복사해서 돌려 봤는데, 한 장 빼돌려서 저기 사장님이 돈 받고 팔았어. 어이없지? 지금의 나 같았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그땐 그냥 팔지 말라고 항의하고 말았네. 참나.” 학교 앞 오래된 골목은 시간이 흘러도 거의 그대로였다. 언덕을 따라 내려가 해운대 바닷가까지 걸었다.
“세상에 천지가 개벽했네! 내가 아는 건물이 하나도 안 보여. 그때 제일 높은 건물이 리베라백화점이었거든? 근데 지금 빌딩에 가려서 그 건물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아.”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낯선 빌딩 사이에서 겨우 아는 건물을 찾았다. “저 오락실! 수능 본 날 혜령이랑 ‘비시바시’ 했던 곳이다. 그리고 저 건물에서 임정이 남편 될 사람 처음 인사 했었다 저기 2층 카페였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찾은 해운대 바다 주변 풍경이 정말 많이 변해서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아쉬워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 섭섭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교 끝나고 종종 해운대 바닷가 따라 걸어서 집에 갔거든. 신발에 모래 가득해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어. 그런데도 나는 좀 돌아가더라도 이 길로 집에 가는 게 좋았어.”
처음 서울로 이사하고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늘 해운대를 그리워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서울이 어쩐지 쌀쌀맞게 느껴졌다. 외로움을 많이 탔고, 자주 해운대에 갔다. 영등포역에서 밤 기차를 타면 아침 일찍 부산역에 도착한다. 부산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해운대 바다 앞에서 내렸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바닷가 카페에 앉아 있으면 친구들이 일어나는 대로 하나둘 카페로 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하나구나. 그리운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네. 그렇다면 외로움도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나에겐 혼자서도 갈 곳이 있고, 그게 해운대라니 정말 좋은 일이야. 아빠는 부산으로 회사를 옮기며 해운대에 집을 구했다. 아빠 회사가 있던 남포동에서 해운대는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데도 그랬다. 그 당시 아빠에겐 낭만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쓰다가 깨달았다. 지금 나는 제주도에 살고, 반려인의 회사는 제주 시내에 있다. 출퇴근할 때 차로 30분이 걸리지만 우리는 중산간 시골에 산다. 제주도에 살면서 굳이 시내에 살고 싶진 않은 마음. 생각해 보니 그때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기왕 부산에 산다면 해운대에 살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겠지. 그때의 아빠보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네. 오늘도 글 덕분에 하나 알았다. 이래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 아무튼 나는 아빠의 낭만을 닮은 것 같다.
제주에서는 주로 직접 차를 운전해서 다닌다. 성큼성큼 점에서 점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그런가, 추억이 잘 쌓이지 않는다. 생겼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서울에서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서울 곳곳을 여기저기 다니느라 덧칠할 새가 없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고향’을 다시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셋째 의미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에 밑줄을 긋는다. 유년의 추억은 다른 추억과 결이 많이 다르다. 고향의 땅바닥을 기고 걷고 뒹굴며 생긴 추억은 몸으로 기억되고 나를 먹이고 키운다. 부산에는 집과 학교, 그 사이의 좁은 골목과 길게 이어진 해변을 수도 없이 걸으면서 덧칠한 선들이 있다. 그 선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 선은 높은 건물이 생기고 새 도로가 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선이 있는, 그립고 정든 곳이 고향이다.
그러니까 제 말은, 서울에서 태어난 나의 고향은 부산 해운대라는 겁니다. 사실은 이 글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조금 알쏭달쏭했는데요, 앞으로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고향은 부산 해운대입니다.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