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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의견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개인이 모이면 가족이 되고, 마을이 되고, 국가가 되고, 인류가 되긴 하지만.
《AROUND》에 10년째 글을 쓰고 있지만 이번 글쓰기가 가장 쉽지 않았다. 벌써 두 번째, 반 이상 쓴 원고를 지웠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다.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만년필로 종이 위에 글을 쓰다가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장면. 이때 작가의 머리는 반드시 부스스하게 ‘떡져’ 있어야 한다. 귀에 펜도 하나 꽂고 있으면 좋겠고. 물론 나는 문서 파일 위 까만 텍스트를 쭈욱 드래그한 후 오려두기를 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글을 버렸지만. 아무튼 이 글을 쓰는 동안 비슷한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고 있다. 지금 내 옆에는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종이 뭉치가 쌓여 있다. 아니, 쌓여 있지 않다. 휴 다행이다. 비록 내가 글을 못 써도, 적어도 종이를 낭비하진 않아도 돼서. 가상의 종이에 가상의 잉크로 글을 쓰고 있어서. 왜 어려웠느냐면, 무슨 이야기를 써도 거짓말 같았다. 에세이를 쓸 때면 진짜로 일어난 일, 정말 생각한 것, 과장 없는 느낌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거짓말하는 것보다 참을 말하는 게 쉽고, 과장하는 것보다 과장하지 않는 게 쉬우니까, 평소에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글쓰기는 한참 쓰고 나면 하루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의 하루와 이 글이 맞닿아 있는 게 맞나. 나는 나를 과장하고 있지는 않나.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목성과 금성의 사이가 가장 가까운 날이라고 한다. 저녁 8시에 목성과 금성이 달의 지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단다. 마침 한반도 시각으로 해가 진 후라서 우리는 그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목성과 금성은 태양과 달 다음으로 밝은 천체다. 달과 목성과 금성이 모두 환하게 밝혀진 모습을 한눈에 볼 드문 기회! 하지만 놓쳤다. 목성과 금성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 하늘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 같은 별들을 잔뜩 보고 왔다. 올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늘에 별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두 행성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구에서만 가깝게 보이는 것이고 실제 두 별 사이 거리는 6억 킬로미터가 넘는단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별들은 거기에 있다. 거리를 유지한 채, 빛나고 있다. 별들은 그 곳에 있어야 한다. 지구도 별이다. 우주 나이는 150억 년, 지구는 46억 년이라고 한다. 지구에 사람이 산 건 250만 년 전이고,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70만 년 전의 일이다.
결혼한 지 11년이 넘었다. 아이는 없다. 10년 전부터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는 셋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가족이 다섯이었다가 셋이 된 셈이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대부분은 우리 둘이 인생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아이를 낳지 않나 보다 짐작한다. 하지만, 고양이 한 마리는 이미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긴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실은 분리 불안이 있어서 하루 이상 집을 비우지도 못한다. 아, 분리 불안은 고양이 말고 나한테 있다. 혹시 1박 이상 할 일이 있어도, 가능하면 24시간 이상 집을 비우지 않는다. 물론 사람 아기를 키우는 것보다는 일상이 훨씬 자유롭지만, 내가 원하는 자유는, 일상을 벗어난 자유이고,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그야말로 일상의 연속이다. 특히 고양이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꿈꾼다고 하니, 내 고양이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특별한 일 없던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단조로운 일상을 함께해야지. 지루한 일상이라고 쓰려다 ‘단조로운’이라고 고쳐 썼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많다. 사연도 많다. 그 사연들을 이 자리에서 꺼내면, 듣는 사람들이 아마 당황할지도 모른다. 자라온 과정, 부모와의 관계, 조카, 여행, 정치, 경제, 사회…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일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들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오고 있다.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지구엔 사람이 좀 줄어야 해. 개나 고양이, 새가 더 많아져야지.” 이렇게 농담처럼 말한다. 북극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만 그런 이야기는 듣는 이를 난처하게 만들지도 모르니 대체로 참는다. 어떤 이가 큰 관심도 없이 무심코 한 말을 꽉 잡아끌고 북극까지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서 언제나 웃음을 한 스푼 섞어서 저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대부분은 “그건 그래.” 하고 더 이상 말을 얹지 않는다.
웃음기를 걷어내고 쓴다. 나는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아니 다시 써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 앞에서 짧게 말하고 웃고 넘어가는 이야기를 좀더 길게 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모두 내 개인의 생각이고,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 탓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틀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지구에 살고 있다는 걸 처음 체감한 건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였다. 열기구를 타고 두둥실 하늘에 올라 발아래 기암괴석을 내려다보다가, ‘아, 여기가 지구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우주의 존재를 온몸으로 경험한 건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였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소금 사막 위로 별이 쏟아졌다. 무수한 별을 마주하며 드넓은 우주와 처음 만났다. ‘내가 이 장면을 어린 시절에 봤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 같아.’ 카파도키아와 우유니에서 똑같이 든 생각이다. 내가 광활한 우주의 작은 별 지구에 사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 늦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지구에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서울은 지구 안에 있고, 서울 하늘에도 별은 떴을 텐데. 별보다 밝은 거리의 불빛이 당연해서 우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여행 중 특별한 순간이 아닌 일상 속에서 하기 시작한 건 제주에서 살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제주에 살며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고, 동물과 식물을 더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런 제주에서는 자연이 일상이고 환경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제주의 부속 섬 마라도에서 고양이 반출 문제가 있었다. 마라도 길고양이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위협한다며 고양이들을 제주 본섬으로 이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마라도에서 평화롭게 살던 고양이들이 하루아침에 배에 실려 서식지를 옮기게 되었다. 인간은 뿔쇠오리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이유가 길고양이의 사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뿔쇠오리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뿔쇠오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자연 보존 자선 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 동안 포유류,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등 야생 동물 개체 수가 68퍼센트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었다. 최근 20년 사이 북극의 빙하 면적은 50퍼센트 감소했고, 북극곰은 2008년에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야생 동물 수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와 ‘서식지 소실’. 기후는 왜 변하고 있으며, 동물들의 서식지는 왜 소실되고 있을까. 북극곰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할까. 인간이 지구의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고 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데도.
‘2014 지구생명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생태발자국 한계치는 1인당 1.8ha. 하지만 실제 평균 생태발자국은 2.7ha이며, 한국은 4.41ha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한국인이 사는 방식 그대로 살기 위해서는 지구가 2.5개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살려면 지구가 3.9개 필요하다. 2050년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지구 3개 정도 규모의 자원을 소비할 것으로 예측된다. 알다시피 지구는 한 개뿐이다. (생태발자국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며 필요한 의식주, 에너지, 시설 등의 생산, 폐기물의 발생과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인, 국가, 지구 단위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헥타르 또는 지구 개수로 수치화하는데 수치가 클수록 지구에 해를 많이 끼친다는 의미다.) 선진국에서 아이를 한 명 덜 낳는 것만로도 연간 57.6톤에 달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과 비교했을 때 24배 더 많은 감축량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관련 연구들을 찾아 읽었다. WWF 등 지구 환경과 관련된 단체 사이트를 찾아가 자료를 검색했다. 감정적으로만 알고 있던 걸 과학적인 수치로 확인했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안도하기보다는 슬펐다.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다. 언제나 사람이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제주도의 자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가장 단호한 방법은 지구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어느 야생 동물의 서식지였을 숲을 밀어버린 자리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고, 어제도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왔으며, 오래된 경유차를 타며 탄소를 수없이 발생시키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났고 죽기 전까지는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존재하는 한 지구에 소속감을 느끼고 최대한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최종 선택했다. 지구에서 태어난 내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게으른 방식의 실천. 이 글로 받는 원고료는 전액 WWF에 후원금으로 보내려고 한다.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