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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오래 살안 이런 것도 해보고
내가 보고 온 그림 이야기를 하려고 앉았는데, 한 글자도 못 쓰겠다. 어떤 단어를 꺼내 이어 붙여도 보잘것없다.
제주도 산간 마을 선흘리에서 열린 전시 <할망해방일지>에 다녀왔다. 작가는 아홉 명의 할머니. 갤러리는 할머니들의 생활 공간. 1937년생 강희선 할머니가 사는 집 ‘소막미술관’을 비롯해 창고미술관, 마당미술관, 올레미술관 등 갤러리로 꾸며진 할머니들의 집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그림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어서 이 전시에 오라고. 사실은 멀리 사는 친구들한테까지 연락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제주에 오지 않겠느냐고.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마음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가득 찼는데, 막상 꺼낼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어떤 마음부터 꺼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60대 후반 엄마가 10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1954년생 이윤지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림 그린 지 얼마나 됐죠?
10년 됐더라. 안 그래도 최근에 사람들이 물어봐서 한번 세어봤어. 예술의전당에서 수채화 4년 정도 배우고, 지금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6년째 유화 배우고 있어.
처음에 어쩌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네가 예술의전당에서 그림 수업 듣는 거 보고 나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지. 그러다 금요일 반 생겼다면서 네가 등록해 줬어.
내가? 그랬나? 계속 재밌어요?
그냥 매주 꾸준히 나가는 거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했어. 벌써 집에 그림이 백 개쯤 쌓였어.
그동안 실력이 늘었어요?
그림이 늘었다기보다는 겁이 없어졌지. 처음에 그림 배우러 간 날 선생님이 고무나무 화분을 가운데 두고 그걸 그리라는 거야. 뭘 어떻게 그려야 할지도 몰랐거든.
다들 꾸준히 배우는 편이에요?
응. 그림을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다들 7-8년씩 계속 배우고 있어. 한 번도 그림 안 그려본 할아버지들이 꾸준히 수업 오는 거 보면 신기해.
유화 그린다고 하면 돈이 많을 거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그렇지. 맞아. 예술의전당 같은 곳은 접근성도 좋지 않으니까. 쉽게 배우러 가긴 힘들잖아. 나도 너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걸. 네가 쓰던 수채화 물감이랑 팔레트 있었으니까 그거 들고 가본 거지. 근데 돈 많이 안 들어. 처음 시작할 때 기본 재료 사느라 좀 드는데, 그러고 나면 거의 안 들어. 유화 물감도 쓰는 색만 자꾸 쓰게 되니까 그것만 낱개로 사면 되고. 지금 다니는 평생교육원은 수강료도 별로 안 비싸. 65세 이상은 할인도 되고. 나 보면서 주변 친구들이 자기들도 그림 그리고 싶다고 하는데, 선뜻 시작을 못 하더라. 처음이 좀 힘들긴 하지.
전화를 끊었다. 10년 전에 내가 그림 수업을 등록해 드렸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술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학생이었던 나는 대학 땐 홍대 앞 화실에서 누드 크로키를 배웠으며, 회사에 취업한 후에는 주말마다 예술의전당에 가서 수채화를 배웠다. 기억난다. 엄마가 미술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딸을 닮았네.”라고 말하며 같이 웃었다. 나는 몇 번 깔짝대며 배우고는 124색 색연필과 72색 마카펜 세트를 사고 책장 한편에 고이 모셔두는 걸로 그림 좋아하기를 끝냈지만, 엄마는 10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딸이 엄마의 끈기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일주일에 한 번 물감이 묻은 청바지를 입고 큰 캔버스를 들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유화를 그리러 간다. 그간 그린 그림이 정말 많아서 어느새 집이 갤러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림 친구들과 단체전도 두 번이나 열었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전시를 할 때마다 꽃바구니를 보냈다. 작년엔 그동안 그린 그림 중 열두 개를 골라 탁상 달력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노년의 엄마에게 취미가 있다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어떤 취미는 자식보다, 친구보다, 배우자보다 낫지. 엄마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다시 산간 마을 선흘리로 돌아와서. 태어나서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 없던 아홉 분의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게 된 건 마을에 사는 최소연 ‘미술 선생’ 덕분이다. 미술 선생과 함께 할머니들은 1년 남짓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들 연세는 모두 여든 살이 넘었고 최고령 조수용 할머니는 아흔세 살이다. 스케치북에 물감이나 목탄,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며 그림 소재는 할머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낮에 깎아 먹은 참외, 직접 키운 오이나 열무, 딸이 사준 옷, 저녁 밥상, 마당의 100살 넘은 하귤 나무, 키우던 소, 아랫목에 깔려 있는 꽃무늬 이불. 강희선, 홍태옥, 김인자 할머니의 그림이 전시된 소막미술관의 소막은 마구간이라는 뜻이다. 상상해 본 적 있을까. 제주 산간 마을 오래된 돌집 마구간이 갤러리가 된 모습을. 조명이 없고 창이 작은 곳이라 공간이 어둡다. 하지만 그래서 그림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어 좋다. 오가자 할머니 집 창고를 갤러리로 꾸민 창고미술관에는 옷을 그린 그림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할머니의 옷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색이 고운 화려한 무늬의 옷이 많았다. 옷을 꺼내 레이스 땀 하나하나, 무늬 한 개 한 개 세어가며 그림을 그리셨다고 한다. 상을 펴고 앉아 옷을 앞에 두고, 한 땀 한 땀 세어 그림으로 옮기는 모습을 떠올렸다가 그만 눈물이 날 뻔했지만 잘 참았다. 그런데 마당에 무심히 놓여 있는 보리콩 그림에 그만 속절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림 제목은 ‘엄마한테 보내는 그림’. 그림 옆에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쓴 편지가 붙어 있다. 할머니는 편지를 쓰시며 많이 우셨다고 한다. 직접 심은 보리콩을 따서 삶아 먹으며 할머니는 왜 엄마를 생각했을까. 1940년생 오가자 할머니의 83년 인생을 가늠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1939년생 여든네 살 고순자 할머니의 올레미술관에는 쌍을 이룬 그림이 많다. 참외도, 무도 두 개씩 그렸다. “참외 둘이 좋아해. 혼자는 외롭고 둘이는 안 외롭고.”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림을 보고 있는 내 옆으로 어느 할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설명을 덧붙인다. 글쎄, 고순자 할머니가 요즘 집에서 그림 그린다고 집 밖엘 잘 안 나오신단다. 낮이고 밤이고 그림만 그리신다고. 그렇게 그린 그림 안에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의 그리움을 짐작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엄마는 주로 유럽의 거리 풍경을 그리신다. 나와 동생은 유럽에서 몇 년 살다 왔다. 사는 동안 좋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을 보냈다. 그 사진 안에 종종 우리가 있기도 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린 시기와 우리가 유럽에 있던 시기가 겹친다. 엄마에게 왜 가보지 못한 유럽의 골목을 그리셨는지 물어보려다 역시 그만두었다.
전시를 다 둘러본 후 그림엽서를 몇 장 사 왔다. 블라우스를 그린 그림 아래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이날은 그림만 그렸다. 아침에 좀 그리고 저녁에 좀 그렸다. 완성했다.” 책상 앞에 엽서를 붙였다. 나도 아홉 명의 할머니처럼, 나의 엄마처럼, 하루하루 주어진 나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 그리움도 슬픔도 희망도 의연하게 맞이하겠다는 결심. 쓰기 어려웠던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었던 건, 아마 지금도 불면의 밤 이부자리 옆에 상을 펴고 그림을 그리고 계실 선흘 마을 할머니 덕분이었다. 저기 멀리 선두에 선 사람을 따라 한 글자씩 적었다. 무사히. 끝.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