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다정함]

배경이 아닌 제주

드라마나 예능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 제주도를 접할 때면 종종 제주도가 거대한 세트장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세트장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섬 밖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관광지 제주도

제주도에 살고 있다. 제주 이주 붐이 일기 시작한 2013년부터 살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오래 살았다고 하기에는 짧은 것 같고, 짧게 살았다고 하기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오래 산 편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처음 1-2년간 내가 느낀 제주는 섬 밖에서 보는 ‘관광지 제주도’와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풋풋한 여행객처럼 설렜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즐거운 고민을 했다. 동서남북 어느 해안을 가도 바다는 아름다웠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검은 현무암 돌담길은 고즈넉했다. 제주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흩어져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맛집을 찾아다녔다. 매일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났다. 이 아름다운 섬에 살고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어느 날인가 함덕 서우봉에 올라 바닷가 옆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저기 사는 사람은 참 좋겠네.” 외치기도 했다. 그때 손가락 끝 ‘저어기’에 살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여행으로 경험한 제주도가 좋았고, 좋은 만큼 살아보고 싶었다. 태어난 곳은 고르지 못하지만 사는 곳은 고를 수 있는 거니까.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살아보자 결심하고 제주도에 있는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반려자가 제주 시내에 있는 회사에 합격하는 바람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주할 수 있었고, 나는 제주에서 지내며 본격적으로 글 쓰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환경, 자녀 교육, 직장, 건강, 도시 생활에 대한 염증 등 사람들이 제주도로 이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재산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주에서도 밥벌이를 해야 하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내가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회사원, 농부, 해녀, 교사, 사서, 의사, 요리사, 목수, 공인중개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매일 자기 몫의 일을 해내며 살고 있다. 반면, 제주도가 배경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여유롭게 카페를 운영하거나 가이드 일을 하며 주로 여행객들을 만나고, 그게 아니면 화가나 작가 등 고독한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 가끔은 도피처로 제주도를 선택한다. 그들은 제주에 잠시 머물다 결국 서울로 돌아간다. 미디어에서 제주도는 늘 환상의 섬으로 다뤄지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 역시 환상의 섬과 어울려야 한다. 그래서 회사원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삶의 터전 제주도

반려자는 제주에서 10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주 5일 아침마다 차로 25분 정도 달려 사무실로 출근해 저녁에 퇴근한다. 나는, 성실한 프리랜서 작가로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매일 아침 설레며 눈뜨지 않는다. 바다가 예쁘고, 오름이 아름답고, 마을 풍경이 다정하다는 이유로 제주로 이주한 나에게 누군가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도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전히 제주 자연은 아름답고, 자주 감동한다. 하지만 좀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올여름,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하지 않았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오름에 오르고 숲길을 걷지만, 진짜 솔직히 고백하면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한 유산소 운동이 첫째 목적이다. 물론 그러는 동안 만나는 풍경은 덤이다. 카페는 단골 카페만 가고, 식당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장 자주 찾는 식당은 태국 음식점이다. 이제 우리가 제주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관광지 제주도’는 걷혔다. 제주도는 오롯이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드라마에 제주도가 배경으로 등장하면 일단 가벼운 거부감부터 든다. 대부분 주인공들 사랑의 배경이거나, 데이트 장소로 소비될 뿐이니까.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 모 출연자가 눈 내린 한라산을 등반하는 장면이 나온 후로 한라산 등반 예약이 몹시 어려워졌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오름들은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영된 후 돌고래 투어가 호황이라는 뉴스도 있다. 방송에 제주도가 아름답게 등장할수록 여행객은 늘어나고,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제주도는 지쳐간다. 제주도는 일 인당 폐기물 발생량이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생활 폐기물의 40퍼센트 이상이 관광객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제주도는 어떤 의미일까? 나도 한국에 제주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제주도를 도구적으로 보는 시선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제주도라는 아름다운 섬이 한국에 있어서 여권 없이도 갈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종종 기적처럼 느껴지지만, 제주도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평화로운 안식을 주고, 일상을 벗어난 즐거움을 선사하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를 찾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섬 제주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쨌든 하와이를 좋아한다면 하와이에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제주도를 아끼면 제주도에 덜 가야 하는 것처럼.” 

정세랑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작가는 제주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제주도 여행을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제주도를 좋아한다면 제주도에 살면 안 된다. 보통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제주에 살아야겠다면, 어쨌든 지금 제주에 살고 있다면 제주도에 폐를 끼치지는 않아야 한다고 자신을 자주 단속한다. 별건 없다.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음식 남기지 않고 먹고, 일회용품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되도록 제주에서 나는 농산물을 소비한다. 

나는 여전히 제주도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제주도에 오지 않고, 제주도를 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도 오래전엔 나무가 빼곡한 숲이었을, 제주 중산간에 지어진 집에서 쓰고 있으며, 쓰는 동안 콜라 한 캔의 쓰레기를 만들어냈음에도. 그렇다. 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환상적인 배경으로 제주도를 선택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이제 와서 생각한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

노희경 작가가 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방영되기 전 제주도 서쪽에 사는 친구가 SNS에 마을을 배경으로 드라마가 촬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올렸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반면 조용한 마을에 관광객이 몰려와 떠들썩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결국 또 제주도를 아름다운 배경으로 이용하고 마는 드라마겠지, 속단했다. 제주도가 고민 없이 소비되는 게 싫었다.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했을 때도 호기심에 한두 회차를 보고는 그만두었다. 제주도를 과장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장터에서 일하고, 보따리장수를 하고, 해녀 일을 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들이 쓰는 사투리는 얼마나 어색한지.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제주 어디를 가도 <우리들의 블루스>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화제로 등장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삼춘들(제주에서 남녀 구분 없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르는 말)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어느새 <우리들의 블루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히 국내 드라마에서 제주도 사투리가 이만큼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늘 사투리가 화제가 된다. “사투리 너무 어색하지 않아요?” 툴툴거리며 말을 꺼내려는 찰나 어느 삼춘이 먼저 말씀하셨다. “사투리도 참 잘하더라.” 물론 제주도 사투리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제주도 출신의 배우 고두심 씨뿐이지만, 다른 배우들의 사투리도 충분히 듣기 좋다고 하셨다.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제주도 사투리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제주도 사투리로 말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요즘 제주도 사람들은 표준어와 사투리를 섞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삼춘은 드라마에 등장한 사투리를 평가하기 전에 반가워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겨우 제주도살이 10년 된 초짜 도민이고, 제주도 사투리를 적당히 알아들을 줄만 알지, 잘 구사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섣불리 평가하며 찧고 까불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들의 블루스>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생선 가게 주인, 선장, 만물상, 은행원, 해녀, 상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없는 직업이다. 늘 배경이거나 엑스트라였던 제주도와 제주도민이 드디어 주인공이 되었다. 왜 삼춘들이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백록담 여기보다 더 좋지?”, “데령가라.” 평생 제주도에 살았지만 한라산 입구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옥동(김혜자)이 하는 이야기에 펑펑 울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고개를 돌리면 항상 그곳에 존재하는 곳이고 동시에 멀리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늘처럼. 옥동의 아들 동석(이병헌)이 등산 코스 중 하나로 존재하는 추상적인 한라산이 아니라 도민들의 삶 속에 스며 있는 바로 그 구체적인 한라산을 오르는 걸 보며 도민들이 느끼는 먹먹함을 아마 나는 다 알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백록담에 가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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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