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다정함]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늘 그랬다. 좋은 일은 문밖에 있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그저 그럴지도 모르지만 열 번 중 한 번은 꽤 좋은 일들이 생긴다. 그 한 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르마스 광장

좋은 일을 찾아서 문을 열고 집을 나서 가장 멀리 간 적이 있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페루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 쿠스코는 많은 여행객들이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는 곳이다. 다른 여행자들과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지만, 쿠스코에 들어선 순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어느 골목이나 다 아름다웠다. 모퉁이 하나라도 놓칠 새라 부지런히 도시를 걸었다. 

아름다운 쿠스코 중심가에 작은 광장이 하나 있다. 광장의 이름은 아르마스. 아르마스 광장 북쪽으로는 대성당이, 동쪽으로는 자주 가던 카페가, 남쪽에는 여행사가, 서쪽에는 숙소가 있었다. 숙소와 식당, 카페, 유적지 등 도시 곳곳을 오가며 쿠스코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낮이고 밤이고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광장에는 여러 가지 꽃이 어우러져 피어 있었고,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는 늘 앉을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며칠이 지나자 광장을 중심으로 쿠스코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햇볕이 길게 반짝이던 어느 오후 무심하게 아르마스 광장을 가로질러 걷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것 같아.’

썩 오만한 생각이지만 조용히 확신했다. 저 생각을 하던 1초. 하루 86,400초 중 1초. 1년 31,536,000초 중 1초. 이 짧은 시간만큼은 나는 이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발등까지 찰방찰방 물이 고이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까만 새벽을 보내며 해가 뜨는 걸 기다리고, 다시 해가 지는 걸 지켜보고, 밤이 되어 머리 위와 발아래에 함께 반짝이는 은하수를 볼 때도, 마추픽추 잔디밭에 드러누워 챙겨 간 샌드위치를 먹을 때도, 타는 듯한 멕시코 태양 아래서 타코를 먹을 때도 나는 정말 좋았지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아르마스 광장을 걷던 그때 나는 긴 여행의 정중앙에 있었다. 지금 해온 여행만큼 앞으로의 여정이 남아 있었고, 여행자라는 신분에 충분히 적응한 상태였다. 남은 여행에 대한 아쉬움보다 지나온 여행에 대한 뿌듯함이 컸다. 처음엔 무겁고 부담스럽기만 했던 20리터 배낭을 메고, 남은 생 내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던 때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편이었지만, 아마 그날은 더더욱 그랬을 거다. 걱정거리도 거의 없던 드문 날이었을 것 같다. 여행 중이라고 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늘 한국의 가족을 걱정했고, 두고 온 고양이를 생각했으며, 한국 정세에 대한 불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가뿐한 몸으로 잠깐 한국을 잊고, 아르마스 광장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라는 부사를 덧붙이고

남벽분기점

여행에서 돌아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종종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부분 아주 대단한 순간들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한라산 남벽분기점에서 느꼈다. 인적 없는 남벽분기점 덱에 멍하니 앉아 한라산 자락을 바라보며 보냉병에 싸간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던 평일 오전 9시 반. 지금 이 순간 최소한 한국에선 내가 제일 행복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고, 등산을 잘 하지 못하는 나도 남벽분기점까지는 두세 시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으며, 한적한 한라산을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알고 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와인을 싸 들고 그 모습 그대로 남벽분기점에 앉더라도, 다른 날은 다른 마음일 수 있다는 걸. 아무튼 스쳐 지나가는 좋은 순간을 얼른 잡아서, ‘지금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습관은 나를 여러 번 살렸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런 순간들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때 우연히 만난다. 걷고 있거나 걷다 쉴 때. 많은 풍경을 지나왔고, 새로운 풍경을 만날 예정인 그 때 나는 대체로 찰나의 행복을 낚았다. 여기까지 쓰고 운동을 다녀왔다. 차로 가면 2분 정도면 닿는 거리에 체육관이 있다. 인도가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아 주로 차를 운전해 갔는데 오랜만에 걸어가기로 했다. 10분 남짓 걸으며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메밀밭을 만났고, 수확을 준비하며 밭 곳곳에 놓여 있는 대형 마시멜로(곤포)를 봤다. 해가 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저 멀리 바다 수평선 한치잡이 배의 불빛도 봤다. 한치 철이구나. 여름이 왔구나. 운전해서 다녀왔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을 만난 저녁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제일가는 행복을 느낀 것도 아니지만, 조금 개운한 기분은 든다.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물어본 적이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이 무엇이냐고. 누군가는 ‘짜증’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짜증 내는 걸 거의 본 적 없던 나는 조금 놀랐다. 저이는 ‘짜증’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지배할 때 그 감정을 어떻게 물리치고 하나도 짜증스럽지 않은 얼굴로 저기 앉아 있을까? 다른 누군가는 ‘우울’이라고 대답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종종 가벼운 우울은 샤워 한 번에 사라지기도 한다. 그는 매일 저녁 우울을 물속에 녹여 흘려보내며 잘 지내고 있을까. 나는 ‘불안’이라고 답했다. 나는 불안을 잘 다루며 적절하게 잠재우고 있을까? 내 불안을 사람들은 눈치챘을까?


몹시 슬픈 날에는 해 지는 풍경을 좋아하게 된다며, 어느 날인가 의자를 옮겨 가며 지는 해를 마흔세 번 봤다는 어린왕자에게 가장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이었을 것이다. 어린왕자는 슬픔을 해 지는 풍경으로 달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려고 할 때 나는 주로 문을 열고 나간다. 광역버스를 타고 종로로 가서 거리를 걷다가 영화를 한 편 보기도 했고, 시외버스를 타고 설악산이나 선운산에 가서 산 중턱까지 걷다 오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반짝이는 일상들을 만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나를 웃게 하는 사소한 장면을 발견했다. 땀을 흘리고, 근육통을 느꼈다. 불안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방금 발견한 작은 기쁨을 채웠다. 그 기쁨은 아주 가벼운 것이어서 금세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불안이 들어오기 전에 기쁨을 찾아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나의 기분을 달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나를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도 나이고, 걸으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정한 장면들을 건져내는 것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샤워를 하는 사람과 의자를 옮기는 어린왕자, 길을 걷는 나를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불안’을 말하는 나는 나에게 말한다. 오늘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걷는다면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