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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만나자
아는 개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걷는 일에 대하여.
오늘 아침에도 봄이랑 고딕 지구를 걸었다. 봄이는 친구와 함께 사는 개. 바르셀로나에 온 뒤로 아침마다 친구, 친구 아이, 봄이 그리고 나까지 넷이 나란히 걸어서 10분 거리 유치원에 간다. 봄이는 우리보다 몇 걸음 더 앞서 걷다가도 골목이 달라지는 곳에선 어김없이 멈춰서 우리를 기다린다. 봄이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다. 오래된 골목으로 이루어진 이른 아침의 고딕 지구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지만, 가끔 차가 지나가면 친구는 “봄! 코체coche(스페인어로 자동차를 뜻함)!”라고 외친다. 봄이는 바로 걸음을 멈추고 사람 옆에 딱 붙어 선다.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면 다시 줄을 푼다. 줄을 하지 않아도 멀리 가지 않는 봄이를 보며 우리 사이에 투명 리드줄이 있는 것 같다는 상상을 종종 하게 된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골목을 봄이의 안내에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유치원에 도착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킨 후 우리는 바다 방향으로 마저 산책을 간다. 해변 근처 잔디밭 근처에 도착하면 친구는 다시 봄이의 줄을 풀어준다. 고딕 지구 골목에서는 줄이 없어도 아이의 느린 걸음에 맞춰 살랑살랑 천천히 걷던 봄이는 그곳에선 다른 강아지 친구들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간다. 비슷한 시간에 그곳에 모이는 개들은 대부분 아는 사이, 봄이의 친구들이라고 한다. 친구는 개와 함께 온 사람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벤치에 앉아서 개들이 함께 노는 모습을 보다가 친구가 말했다. “저 할아버지는 여기 늘 강아지랑 왔었어. 그런데 얼마 전에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거든. 그 뒤로도 매일 혼자 여길 오셔.” 친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혼자 오신 몸집이 작은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내 그들 옆에 나란히 앉아서 뛰어노는 개들을 바라본다.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잘 모르겠다. 나와 친구도 봄이가 보이는 방향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개를 떠나보낸 후 함께 오던 잔디밭으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걸음을 하는 마음은 어떤 걸까.
오랜만에 여행 온 나에게 기꺼이 방 하나를 내어준 이 친구는 6년 전 내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 알고 지내던 친구다. 친구는 그때 끼요라는 이름의 개와 살았다. 끼요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고딕 지구를 걷다 보면 끼요를 자주 만났다. 멀리서 친구는 못 알아봐도 끼요는 엉덩이만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어서, 친구를 부르기 전에 끼요를 먼저 부르곤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끼요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내 친구는 잔디밭을 매일 찾는 사람일까, 잔디밭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일까.
나는 후자였다. 함께 살던 고양이 모모가 떠난 후 모모 이야기를 어디에도 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모모에 대해 물어볼까 봐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 말하는 순간 모모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모에 대해 쉬쉬하는 게 버릇이 되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모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모모가 많이 섭섭했을 것 같다. 모모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울고 또 웃으면서 우리는 모모와 함께했어야 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모모 사진을 냉장고 문에 붙였다. 지금 친구 집 벽엔 끼요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다.
친구가 말했다. “끼요도 여기 좋아했는데.” 끄덕끄덕 그렇지. 고딕 지구 곳곳에 끼요와의 추억이 없는 골목이 없겠지. 끼요는 예전에 내가 살던 집에도 종종 놀러 왔고, 우리 집 고양이 제제와 눈을 마주치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작은 고양이 제제를 무서워하던 커다란 끼요에 대해 이야기하니 웃음이 난다. 친구는 지금 끼요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말 어디에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지금 우리 옆에 있다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존재는 우리 곁에 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걸 믿어야 수없는 이별과 함께하며 살아낼 수가 있다. 저 할아버지의 강아지도 지금 저기 잔디밭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할아버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모모는 내 옆에 있을까? 나는 너를 잊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너는 이미 나를 떠났을까. 그래도 내 옆에 있다면 좋겠다. 미안해.
봄이와 오전 산책을 다녀오고 나면 잠시 쉬었다가 보른 지구를 가로질러 다른 친구에게로 간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인데, 골목마다 추억이 많아 친구네 집 앞까지 가는데 30분이 넘게 걸린다. “나 좀 늦을 거 같아. 연락하면 내려와.”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그러라고 한다. 그는 강아지 마르고와 살고 있다. 마르고는 6년 만에 만나는 나를 알아볼까? 그럴 리가. 우리가 같이 살았던 것도 아닌데.
저어기 마르고가 보인다. “마르고!” 목청 높여 부르자, 마르고는 온 힘을 다해 달려와 내 어깨높이까지 점프를 하며 반겼다. 꼬리를 사정없이 흔든다. 마르고 리드줄을 잡고 있는 친구가 휘청거린다. 마르고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리드줄을 친구에게 건네받았다. 마르고와 함께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걷는다. 여전히 힘세고 씩씩한 마르고는 거침없이 나를 안내한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마르고. 길을 건너고 계단을 내려가 한참을 걸어 여행객들이 걸음 하지 않는 해변 끝 운동 기구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해서야 마르고는 비로소 걸음이 느려진다. 아마도 친구가 종종 이곳에 와서 운동을 하나 보다. 기구에서 저마다 운동을 하고 있는 남녀노소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좀 웃음이 난다. 이 중에 마르고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마르고도 친구를 찾아 여기까지 나를 끌고 직진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르고 덕분에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한 번도 안 와본 곳을 와보네. 고마워 마르고. 내일 오후에는 다른 친구의 강아지 쇼코를 만나기로 했다. 같이 차를 타고, 여기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작은 도시에 간다. 6년 만에 만나는 쇼코는 나를 알아볼까? 쇼코와 함께 걷는 길은 나에게 또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까.
봄이, 마르고와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는 동안 수많은 개를 만난다. 바르셀로나에 개가 함께 가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슈퍼마켓이나 빨래방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나러 카페나 식당에 갈 때도 개와 함께 간다. 자녀 등원도 함께 하고, 은행 등 각종 볼일도 함께 보러 간다. 봄이랑은 지하철도 같이 탔다. 지하철 중간에 커다란 봄이가 길을 막고 누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개를 피해 발을 딛는다. 개를 왜 지하철에 데리고 탔냐는 부정적 반응도, “개다!” 반색하며 달려오는 과한 긍정 반응도 없었다. 그러니까 개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 함께 사는 존재. 그건 개도 마찬가지. 아주 의젓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차분하게 지하철을 기다리고, 열차 안에서도 주변을 경계하지 않고 편히 쉰다. 바르셀로나의 개에게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이런 것이겠지. 함께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곱씹게 된다.
한국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바르셀로나에서 뭐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면, “이 개 저 개 산책시키고 있다.”고 답한다. 바르셀로나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성가족 성당에 가지 않았고, 카사밀라와 카사바트요가 있는 그라시아 거리에도 안 갔다. 오전에는 봄이, 오후에는 마르고와 걷는다. 개와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사람인 척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게 썩 마음에 든다. 이 감각이 그리웠던 것 같다.
개를 산책시키는 시간 외엔 밀린 글을 쓴다. 지금까지 나는 대부분 고양이와 함께 글을 썼다. 문장 사이사이 고양이의 길고 하얀 털이 들어가 있다. 이 글에는 처음으로 고양이가 없다. 대신 개가 있다. 노랗고 짧은 털이 글자 사이사이에 박혀 있다. 지금도 글을 쓰다가 잠깐 봄이를 끌어안고 누웠다. 방금 외출하고 돌아온 봄이한테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아직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이것도 썩 마음에 든다.
일주일 후,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다시 제제 옆에 누워서, 바르셀로나와 내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동시에 그들의 가족 봄이와 마르고, 쇼코를 그리워하겠지. 비행기를 타고 열네 시간을 꼬박 날아가면 마치 고향처럼 익숙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에 아는 개들이 있다. 아주 특별한 걸 가진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개 친구들아, 우리 꼭 다시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존재해 줘. 봄아, 마르고야, 쇼코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