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다정함]

혼자 썼지만 함께 쓴 글

만약 내가 조금 덜 산만했다면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까?

산만한 사람의 글쓰기

지금 이 글은 집 거실 한가운데 있는 책상에 앉아서 쓰고 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조금 돌리면 침실부터 부엌, 화장실, 현관 그리고 창 너머까지 집 안팎을 모두 볼 수 있다. 집에는 고양이와 나만 있고 고양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이불 속에서 한숨 푹 자고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거나 사료를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 소파에서 그루밍을 하겠지. 그러다 책상 위로 올라와 내 손이나 키보드 혹은 마우스를 베고 누울 것이다. “아이고 애기 왔어.” 언제나 환영이다. 물론 책상 위 고양이는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하지만 그건 상황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본 이야기다. 글은 손가락으로만 쓰는 게 아니니까. 정확한 통계 자료가 나와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 굉장히 높은 비율로 작가들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가 글쓰기에 방해가 된다면 그들이 고양이와 함께 살 리가 없잖아. 여기까지 썼는데 고양이가 책상에 비스듬히 걸쳐둔 슬라이드를 자박자박 걸어 올라와 내 손을 베고 누웠다. 최소 10분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조금만 움직이면 내 손을 물어버릴 것이다. 음, 고양이가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에디터 선생님, 혹시 이 원고가 마감일이 넘겨 도착한다면 그것은 모두 고양이 때문입니다. 조금 전 집 앞에 택배 트럭이 왔고, 기사님이 현관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가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과인 것 같다. 

옆집 어린이들이 하교를 했는지 왁자지껄 마을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스포티파이에서는 강아솔의 새로운 앨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가 반복 재생되고 있다. 이토록 산만한 환경 속에서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영화를 본다. 가끔은 영화를 보면서 글을 쓰고, 유튜브를 보며 일을 하기도 한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면서도 나는 집 안팎의 동정을 끝없이 확인한다. 심지어 온갖 뉴스와 SNS를 통해 세상의 동정도 함께 살핀다. 어떤 작가들은 이런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방금도 글을 쓰다 커튼 사이로 삼색이 고양이 뒷발을 보고 얼른 뛰어나가 간식을 주고 왔다. 그러니까, 이 글의 활자 사이에는 책상 반경 10미터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담겨 있다. 뜨개질은 공기와 함께 뜨는 것이라는 영화 <안경> 속 대사처럼 이 글은 집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함께 한 줄 한 줄 쓰였다. 실은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글이 늘 그런 편이었다.

직업적 글쓰기 습관은 아니고, 글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세상과 단절될 때 불안감을 느끼는 편이다. 비행기를 탈 때나 영화관에 들어서며 휴대폰을 꺼둘 때면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든다. 어릴 땐 만화책을 보지 못했을 정도다. 만화책에 푹 빠져 읽다 보면 주변을 잊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 상태가 되곤 하는데, 그 상황이 되는 게 두려웠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면 집에서 집중이 안 된다며 독서실에 가기도 했는데, 언제나 후회를 했다. 소음이 차단되고 사방이 막힌 곳에서는 오히려 집중이 안 되고 졸음이 쏟아지곤 했다. 딴생각도 함께 쏟아졌다. 독서실을 나서면 이미 지불한 이용 요금을 버리는 건데…. 심각하게 고민하다 돈과 시간 모두 버리느니 돈만 버리자며 비장하게 결단을 내리고는, 들어간 지 한두 시간 만에 결국 독서실을 뛰쳐나오곤 했다. 그 시절 가장 집중이 잘되던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여섯 명이 둘러앉는 넓은 책상에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 학습 진도가 가장 잘 나갔다. 

대학을 다닐 때도 열람실보다는 자료실에서 공부하는 게 좋았다. 자료실에는 책을 들고 들어가는 건 금지되어 있어서, 노트 한 권 들고 자료실에 가서 책이 빼곡히 꽂힌 서가 사이 넓은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곤 했다. 같은 맥락으로 학교 앞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해 놓고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주변에 학우들이 많았다. 언젠가 어머니가 카페에 오셔서는 깜짝 놀라며 “여기는 너네 대학교 도서관이니?”라고 물은 적이 있었을 정도다.

방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

매일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집에서 일을 하려면 제법 부지런해야 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일단 매일 아침 8시쯤 일어나고, 일어나자마자 아무리 귀찮아도 집 안 청소를 한다. 빨래를 하고, 어제 설거지해 둔 그릇을 모두 찬장에 옮겨 넣는다. 방금 전까지 누워서 자던 곳을 일터로 만들기 위해서 아무리 귀찮아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변기를 닦는다. 집 안 청소가 아니고 직장 청소인 셈이고 그러니 업무의 일환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전에는 꽤 오래 회사원으로 살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미처 몰랐는데, 회사는 이 모든 과외 업무를 대신해 준다. 출근하면 항상 깔끔한 사무실이 나를 맞이했고, 화장실은 언제나 반짝거렸으며, 쓰레기통은 비워져 있었다. 구내식당에는 5대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된 음식이 매일 다르게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출퇴근 버스도 있었다. 회사라는 울타리 속에서 당연하게 존재하던 것들을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나 말고는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마음이 지칠 때면 이 모든 과정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름 아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걸 인식할 때면 종종 짜릿하기도 하다.

만일 방 하나 정해두고, 그곳을 일터이자 작업실로 활용했다면 모든 게 좀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방문만 닫으면 될 텐데, 나는 안타깝게도 방문을 닫을 수 없는 사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나에겐 무용지물이다. 여기까지 쓰다 깨달았다. 이게 내가 훌륭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한 이유인가? 음, 예전에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혀 작업실을 만든 적이 있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되는 곳에 내 작업실을 만들고 썩 괜찮은 환경을 조성해 두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이 추위에, 이 더위에, 이 좋은 날씨에 집에 고양이를 혼자 두고 나만 멀리 가서 글을 쓰고 있는 게 말이 안 됐다. 집이 훨씬 따뜻하고, 시원하고, 화장실도 쾌적하며, 먹을거리도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는데, 고양이도 있는데, 나는 왜 여기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 당장 차에 시동을 걸고 다시 집으로 왔다. 아, 역시 고양이의 존재는 함께 있든 아니든 작업에 방해가 될 뿐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 몇 권의 책을 썼고, 산만한 환경 속에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나의 첫 책은 식탁에서 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고자 하던 때였고, 그때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했던 일은 글을 써서 책으로 내는 일이었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그렇게 한 권 분량의 책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했고, 운이 좋게도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같은데, 그때 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내가 굉장히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를 그만둔 작가 지망생일 뿐이고, 빼곡히 글을 쓰고는 있었지만, 이 글을 다 쓴다 하더라도 책으로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동시에 무얼 했냐면, 곰탕을 끓였다.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예나 지금이나 라면만 겨우 끓이는 내가, 마트에서 사골을 사다가 커다란 솥에 넣고 끓이고 또 끓이고 식히고 기름을 걷었다.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곰탕 국물을 확인했다. 곰탕을 끓이듯, 쓰고 지우고 쓰고 수정하고 또 썼다. 그때 내가 끓여낸 건 곰탕이 아니라 내 자존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한 하루

어제 잠자리에 들며 내일 써야 할 글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두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 좋은 아침이다.’ 웃으며 눈을 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금 전까지 집이었지만 이제 곧 일터가 될 곳을 정리했다. 아침부터 막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고,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그랬다. 사실, 일하는 주변 환경의 정돈보다 중요한 건 내 기분이다. 기분이 좋아야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그래야 세상을 향한 시선이 너그러워진다. 그때 비로소 글을 쓰기 좋은 상태가 된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좋은 태도로 글을 쓰려면 우선 좋은 기분을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다.

종종 글 쓰는 것보다 좋은 기분을 만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오늘도 일할 분위기를 부지런히 조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예상치 못한 험한 뉴스에 날카로운 공격을 당했고, 업무와 상관없는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해야 했다. 수시로 이어지는 가족들의 연락도 집중을 방해했다. 크고 작은 분노가 차올라 잠깐 키보드를 던지고 그만 쓸까 했지만, 그러는 대신 고양이를 안고 잠깐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쯤 되면 고양이는 작가의 필수품 아닌가요? 아, 물건이라는 얘긴 아니고요.) 따뜻한 물을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듣고, 달콤한 디저트를 꺼내 데워 먹었다. 그렇게 나를 살살 달랜 다음 이 글을 마저 쓰고 있다. 내 기분 관리하는 일에 이제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까지 하나, 할 수도 있다.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글 하나 쓰기 참말 어렵네, 할 수도 있다. 언젠가 친구가 너는 너무 가족의 기분을 맞추려 애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만일 그때 내가 그렇게 보였다면, 가족이 아닌 내 기분을 맞추는 중이었을 거다. 분명 마감 시즌이었을 거야. 함께 사는 가족의 가벼운 한숨 소리 하나에 한 시간 치 글 쓸 기분이 날아가기도 한다. 방금도 그럴 위기가 있었고, 서둘러 잠깐 고양이를 쓰다듬고 왔다. 그러니까 모두 나를 위한 것. 아니 내 글을 위한 것. 아니 아니 나를 위한 것.

본격적으로 글 쓰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착해졌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다정하고 편안한 글을 쓰려면 부단히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게 가꾼 삶이 내 글에 영향을 주었고, 그 글이 다시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앞으로 사는 내내 삶과 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살게 될 것 같다. 나는 방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한 채, 주변을 잠시 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명작을 쓰는 작가는 영영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쓰는 이 글이 나를 좀더 나은 모습으로 살게는 한다. 그렇다면 유명 작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이끈 작가가 더 성공한 작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기분을 좋게 만들며 이 글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덕분에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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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