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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 — 달팽이 사진 골방
12년 전 ‘달팽이 사진 골방’이라는 이름의 수업에서 임종진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필름 카메라 작동법을 알고 싶어 찾아간 수업이었다.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 혜화동에서 진행되었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했지만, 살다 보면 그런 게 아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때 내가 그랬다. 수업은 처음 등록할 때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선생님은 사진 찍는 법 같은 건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수업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만큼 사진을 잘 찍게 되었다. 나는 늘 나의 첫 번째 선생님으로 임종진 선생님을 꼽는다. 다감한 선생님의 다정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선생님,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예요. 자기소개 해주세요.
굉장히 원초적인 질문이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그걸 찾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 그런데, 그 중심이 사진인 거지. 언론사 기자를 13년 정도 했어. 그때는 이 세상의 변화를 굉장히 원하던 시기였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 소위 사회적 빈곤층이라는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랐고, 사진을 통해서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사람이었어. 그런데 이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려다 보니까 그 어려움만 집착하게 된 거야. 가령, 외국인 노동자의 잘려 나간 손을 클로즈업으로 찍는다거나, 장애가 있는 뒤틀려진 몸만 집중해서 찍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미지를 부각하는 작업이 이어지면서 어느 날인가 문득 이게 과연 이들에게 옳은가 의문을 품게 되었지. 그런 고민을 풀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조금 극단적인 방법이었어. 전쟁 중인 이라크에 자원해서 가버린다거나, 그리고 돌아와서는 여름휴가 때 캄보디아에 에이즈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는 식으로 무모해 보일 만한 선택을 했고, 그곳에 가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생각이 변하게 되었지. 나 자신의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아. 내가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캄보디아로 떠날 때 많은 사람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살 것이냐.’고 물어봤어. 아니었거든. 보편적인 의미의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생각이 그때부터 아예 없었어. 그러니까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좋아하고 그런 사진을 찍어온 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이 나의 사진적인 수단이나 목적적인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사연 전달자’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지. 사연 없는 사람은 없잖아. 굉장히 척박하고 어려운 사연이나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다운이 너도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니. 사연이 있는 게 우리의 삶이잖아. 장애나 인종, 빈곤 등의 현상을 넘어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이만큼 가치가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 한국에 돌아와서 곧바로 사진 심리 치료 분야 공부를 시작했어. 공부하다 보니 이게 나한테 너무 잘 맞는 거야. 그래서 사진 심리 상담사 자격증 따고, 대학원도 상담 심리로 가고, 석사 논문을 따고 하면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지금은 ‘사진 치유자’라고 소개하고 있어. ‘사람이 우선인 사진’이라는 삶의 모토에 맞춰서 사진의 쓰임새를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질문 하나 가지고 다운아, 이렇게 대답이 기니 어떡하면 좋니.
전 선생님 이야기를 듣게 돼서 너무 좋아요. 다만 제가 잘 담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이 돼요. ‘달팽이 사진 골방’이야기를 해볼까요? 제가 골방 1기였죠. 지금도 하고 있어요?
하고 있어. 18기가 거의 끝났어. 올해 이제 19기를 모집할 예정이지. 너희 때랑 틀은 비슷한데 많이 바뀌었어. 내가 상담 공부를 하면서 훈련을 정말 많이 해서 지금은 일종의 집단 상담처럼 수업이 진행돼. 그래서 예전에도 대화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깊어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훨씬 더 많이 느끼게 되었어.
저는 그때 정말로 필름 카메라 쓰는 법을 배우려고 신청했어요.
그런 분들이 많았지. 근데 지금은 입소문이 좀 나서 사진 찍는 기교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거의 안 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이 많이 와. 디지털카메라로도 수업을 하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사연을 듣게 될 텐데, 감당이 되세요? 스트레스 안 받아요? 저는 못 할 것 같거든요.
걸 걱정해 주는 분들이 많더라. 더군다나 국가 폭력 피해자분들 치유 프로그램 할 땐 다들 괜찮냐고 물어봤어.
게다가 타인에게 몰입을 엄청 잘하시잖아요.
감정이입이 지나친 편이지. 그런데 다운아. 행복해. 무엇보다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이분들이 변하는 걸 보게 되잖아. 당장 바로 변한다는 기대를 하진 않아. 그런데 조금조금씩 변하는 게 눈에 들어와. 그럼 그게 너무 좋아.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야. 처음엔 수업에 와서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쭈뼛쭈뼛 있다가 천천히 자기 얘기를 꺼내고, 불과 보름도 안 돼서 마음을 열고 하는 과정을 기수마다 거쳐. 처음에는 다들 너무 생소한 수업이라고 느껴서 어색해하지. 수업이 너희 때하고 정말 많이 바뀌었거든.,
저한테는 그때도 너무 생소했어요.
그때도 생소했지. 지금은 훨씬 더 정교해지고 섬세해졌어. 내 수업이 이제 12년 됐잖니. 불과 3개월 만에 사진들이 싹 바뀌어. 그걸 보면서 느껴지는 어떤 행복감이 있어. 누구도 잘 갖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너희들 때까지는 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가르친다는 생각은 다 버렸어. 나한테 뭘 배우러 온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끄집어내는 연습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그걸 잘 끄집어내도록 옆에서 돕는 조력자라고 생각해. 선생이라는 말도 잘 안 써. 하나하나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야. 이전엔 하나의 프로그램 틀 안에 수강생을 넣었다면 지금은 큰 틀만 있는 상태에서 개개인이 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업을 하고 있어.
아, 다시 수업 듣고 싶다. 나도 모르게 너무 솔직해지던 순간들이 기억나요. 저는 아직도 1기 수업 때 OO 오빠가 했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거든요. OO 오빠 안 본 지 한참 됐지만 친척 오빠 같은 친밀감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런 감정은 다른 관계에선 잘 없거든요.
그렇게 내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라는 게 내 수업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여러 사회적 관습이나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 학습법으로 배워온 사람들이잖아. 나는 모르니까, 나는 틀렸으니까 이걸 채워 넣겠다 하고 배우지. 그런데 여기는 전혀 그게 아니거든. 그런 생각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래.
이런 수업이 많이 없어진 요즘이라 더 특별해요.
없지. 이걸 계속 유지할 거야. 사진을 찍는다는 건 여러 가지 행동을 요구해. 하다못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때도, 폰 꺼내고 열어서 카메라 모드로 바꿔놓고 구도를 잡는 행동을 하잖아. 내가 움직여야 하는 거지. 그리고 정성을 들이는 것은 프레임을 더 하게 돼 있어. 요즘 두산이(반려자) 사진 찍니?
하하하, 요즘은 제제(반려묘) 사진을 주로 찍어요.
물론 제제를 두산이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제제를 사랑하는 네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알잖아. 오죽하면 평생을 여기저기, 스페인까지 데리고 다니겠니. 그러니까 가는 거야, 마음이.
그리고 진짜 정성스럽게 찍어요.
그렇지. 네가 고개를 숙이면서 몸의 근육이 옮겨지고 세포가 꺾이는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고 하잖아. 전혀 수고롭지 않은 거지. 동기가 네 안에서 나오는 거지. 네 감정 안에서 나오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사진 치유’의 의미는 이런 행위, 그러니까 사진을 잘 찍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는 행위를 일으키게 만드는 요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거야. 다운이 너도 제주에 가서 살면서 무심결에 네가 찍은 사진들 안에 답이 있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찍고 그냥 넘기거든. 근데 그걸 깨워야지. 내 시선이 갔던 곳에 대해서 한 번 더 느껴보고 내 마음 안에 들어가 보는 거야. 나는 이걸 ‘자신의 존재성’을 찾는다고 이야기해.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은 감정이 없을 수가 없잖니. 누구나 나를 세상이 존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필요한지도 모르고 살게 되니까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한국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잖아. 사회 시스템 등등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소중하다고 느낄 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서점에 가보면 ‘자기 자신을 찾자’ 같은 내용의 책이 엄청 많아. 그런데 다운아, 너도 글 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에 의지하지만 문학 근처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 음악도 있잖니, 보통 악기 연주를 열심히 해야 세상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사진은 누구나 말 그대로 운이 좋아서 우연히 근사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 사진이 다른 치료적 수단 중에 우선한다고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사진 찍기는 누구나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다는 의미야.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고,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지만 생각보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일종의 특권이에요. 지금 당장 우리 엄마한테 책 읽으라고 한다고 엄마가 읽겠냐고.
그렇다고 문화적 정서가 없고 교양이 없느냐. 아니야. 그런데 카메라를 통해서는 느끼게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요! 아, 엄마한테 선생님 수업 추천하고 싶다.
연세 많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셔.
계속 진행하고 계시는 국가 폭력 피해자분들이나 5.18 유공자 선생님들,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 치유 프로그램 이야기는 선생님한테 정식으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는 이분들을 피해자라는 관념으로 보지 않아. 한 사람으로 만나. 과거보다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걸 질문해. 많은 사람이 찍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그러니까 과거를 염두에 두고 찍는다는 거야. 지금 찍어도 당장 과거가 되잖아.
그렇죠. ‘사진이 남는다’고들 하잖아요.
‘사진이 남는다’라는 말도 다는 모르는 말이라고 생각해. ‘사진이 남는다’라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순간 내 감정이 동했다는 거야. 달리 얘기하면, 오늘을 집중하게 하는 힘인 거야. 네가 아까 엄마 얘기했잖아. 엄마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음… 아! 엄마 옆에 가야죠.
네가 제주도에 있으면 엄마 사진을 못 찍는 거지.
그러네요. 진짜.
사진은 대면이야. 이게 핵심이야. 다른 것들은 보고 와서 상상할 수 있고,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어. 근데 사진은 무조건 내가 그곳에 가야 해. 사진이 가진 치유의 힘의 가장 큰 핵심은 대면이야. 5.18이나 국가 폭력 피해자분들과 하는 치유 프로그램의 가장 큰 핵심은 ‘상처’에서 시작돼. 이분들이 80년 5월 당시에 집에 숨어 있지 않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밖으로 나왔단 말이야. 이게 옳다는 생각으로 행동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 일로 붙잡혀서 고문도 받고 두들겨 맞고 친구들과 동료들이 죽는 아픔을 겪었단 말이야. 내가 붙잡힌 장소, 수감된 장소, 고문받은 장소에 대한 상처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어. 그 장소는 자신의 존재성이 극심하게 훼손된 곳이거든.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총대에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이런 사건들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게 된 분들이야. PTSD라고 하지. 이분들의 공통된 특성이 뭐냐면, 거기를 안 가시는 거야, 못 가는 거지. 속에 쌓아놓고 30-40년 지내왔는데, 나랑 프로그램 하면서 가게 된 거야. 그런데 “선생님 가셔야죠.” 이거 아니야. 선생님들이 “내가 가볼 만한 것 같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 그러니까 프로그램을 다 2년씩 했어. 선생님들이 거기까지 가는 데 빠르면 3개월, 길면 6개월 걸린단 말이야. 그 기간에는 사진의 장점이나 특성들을 선생님들이 경험하게 해. ‘사진 재밌네.’ 느끼게 만드는 시간이야.
사실 내가 생각할 때 잘 찍어야 재미도 느끼잖아요.
맞아. 은근히 서로 경쟁심도 생겨. 너무 재미있게 사진을 찍다가, 천천히 공통된 장소, 예를 들어 전남도청 이런 데는 선생님들 공통된 장소야. 혹은 금남로나 망월동 묘지 이런 데를 살살 가는 거야. 사진을 찍어보시게 하고 그 사진을 가지고 리뷰를 굉장히 깊게 해드리지. 이게 핵심이야. “선생님 잘 찍었네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아. 그럼 사진을 잘 찍는 데 목적을 두게 되니까. 가령 선생님이 어떤 비석 하나를 찍었으면 “이분하고 어떤 관계세요?”라고 묻는 거야. 그리고 다음엔 본인이 고문받던 장소에 가. 어렵고 힘들지. 기본적으로 분노, 그다음에 두려움, 이런 두 가지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거야. 본인이 가기로 결정했어도 그래. 거기를 두 번, 세 번, 네 번 가는 거야. 지속성이 제일 중요하거든. 가다 보면 생각이 바뀌어. 분노와 두려움의 공간에서 ‘정의를 위해 옳다고 생각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공간에 대한 관념이 바뀌는 거지. 그런데 중요한 건, 찍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야 한다니까.
저는 못 갈 것 같아요.
본인이 고문받던 경찰서에 처음 가서 사진을 찍으면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셔터만 누르시기도 해. 구도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나중에는 구도 생각하면서 찍게 돼. 비로소 장소가 눈에 들어오니까. 그게 되는 거야. 이런 ‘상처의 대면’도 중요하지만 치유 프로그램에서 똑같은 비중으로 하고 있는 게 ‘원존재와의 대면’이야. 상처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유희적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거야. 가령 이성철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몸의 반을 못 쓰셔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 울분 때문에 ‘내 몸은 이렇게 다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시고, 자살 충동도 많으셨어. 그분께 ‘마음이 가는 사물, 자기랑 같다고 생각하는 사물을 찍어보시라.’고 했더니 죽은 나무 찍어 오시고 그랬어. 그런데 어느 날 죽은 나무에 핀 버섯을 보신 거야. 근데 이 버섯은 옛날에도 있었거든. 그때는 눈에 안 들어온 거지. 이 시기가 언제냐면 고문실을 계속 다니면서 선생님 감정을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할 때쯤이야. 그때 죽은 나무에 핀 버섯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거야. 처음 고문실에 가셔서는 나한테 얼마나 화를 많이 내셨다고. 그러다가 선생님이 어떻게 된 줄 아니. 요즘은 꽃을 무지하게 찍으셔. 칠순이 넘으셨거든.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되기 때문에, 살아갈 이유를 찾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런 감정들을 자꾸 느끼도록 하는 거고.
진짜 너무 좋네요.
내가 늘 가져온 고민은 ‘누군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였어. 그러니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경, 상황, 하다못해 피부색, 어떤 이데올로기, 장애 등등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을 판단 내리는 기준처럼 되잖아. 그게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어쩔 수 없는 인지적인 작용일 수는 있는데,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걸 좀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한 인간으로 한 사람을 바라볼 것인가. 이런 고민이 치유 프로그램이나 수업 안에서 고스란히 반영되더라고.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사진은 나한테 성찰의 의미이기도 한 거야. 그러다 보니까 사진을 잘 찍는 기교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졌어. 지금은 그런 생각이 거의 없고, 사진 안 찍으면 어때, 이런 마음도 좀 있는데, 그것이 전업 작가로서 나에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아직은 치유적 사진의 부분 안에 좀더 들어가 있을 생각이야. 존재적 가치를 지닌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잘 보이길 원해. 함부로 바라볼 사람은 없잖아. 예전에 너희들 수업할 때 ‘함부로 찍지 않는 사진’이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함부로 찍지 않는다는 건 함부로 바라볼 존재가 없다는 얘기와 다름없는 거니까.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느끼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바라보고. 이런 것들을 꿈꾸는 거지 뭐.
모금 광고 같은 거 보면 항상 슬픈 음악 배경으로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현장에서 찍으신 사진 속에선 아이들이 웃고 있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였고요. 그 사진을 보고 받았던 좋은 감정이 계속 기억나요.
내가 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인 개발도상국 주민들에 대한 존엄성 사진 프로젝트라는 게 그런 개념이지.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가서도 머물지 않고 관광지만 빠르게 훑고 사진을 툭툭 찍고 와. 그러면서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자기감정은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자기만을 위한 감정의 소비는 옳지 않다고 봐. 한 사람의 사진을 찍을 땐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해. 가령 거리 지나가다가 노인 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봐. 그분이 거쳐온 성장의 시간이 있고, 만약 결혼하셨다면 어떻게 했을 것이고, 자식을 위해서 애썼을 것이고, 또 오늘도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삶이 이어지고 있다고 그 사람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만약 그 사람이 좀 처량하게 앉아 있었으면 순간의 단면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그걸 사진 찍어가지고 ‘세상에 어디를 갔더니 처량한 사람이 있더라’ 하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이제 그러지 말고 모든 사람을 온전한 하나의 삶으로 투사하자는 거야. ‘타인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처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게 내 지론이야. 북한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편협하게 알고 있어. 포악하고 호전적이고 어쩌고 그러는데, 가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 근데 그게 상상이 안 돼.
상상이 안 되죠. 그들을 생각하는 데 에너지도 안 쓰고요.
안 쓰지.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다양하게 상상해. 여러 영화로도 많이 접하잖아. 그런데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 하다못해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밥을 먹고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는지 상상이 안 돼. 못 봤잖아. 사실은 보지 못했더라도 그걸 상상할 수 있어야 해. 인간이 그렇잖아. 어떻게 모든 인간이 악한 상황,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만 살고 있겠어.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어떤 꽃과 같은 게 다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하하, 또 뭐 더 궁금해?
아니요. 선생님 우리 이제 밥 먹어요.
에디터 정다운
사진 임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