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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로54길20에서 58-13까지
또 다른 이태원,
이태원로54길
20에서 58-13까지
지난 10년간 이태원만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곳은 없었다. 동시에 여기만큼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홍석천 거리로 대표되는 이태원역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서 불기 시작한 작은 미풍은 동쪽 한강진역 꼼데가르송길로 옮겨가 강풍이 되더니, 마침내 이태원 서쪽 끝 경리단길에 이르러 태풍으로 번졌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경리단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반대편 동쪽 끝 이태원로 54길에서는 심상치 않은 훈풍이 또다시 일고 있다.
이태원로
54길
메인 이태원로에서 한남 외국인 아파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그 가장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동서로 길게 늘어선 길.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정육점, 보신탕집, 혹은 철물점만 자리한 인적 드문 길이었지만, 최근 ‘옹느세자메’를 비롯해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등이 문을 열며 흥미진진한 거리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다
이태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늘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모든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무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곳. 쉴 틈 없이 바뀌는 유행의 격전지이지만, 동시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정취를 간직한 곳. 이야기하는 사람이 100이라면, 그 100명의 이야기와 기억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유일한 곳. ‘이태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가 지난 5년간 이곳에 살면서 얻게 된 유일한 깨달음이라는 사실은 이태원이 얼마나 규정하기 힘든 곳인지를 보여준다.
건물의 윤곽이 바뀌는 시간
그 중 이태원로 54길은 수년간 이태원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텨낸 마지노선 같은 길이다. 경리단의 오래된 공동주택 혹은 상가들이 젊은 감각의 상업시설에 자리를 내주며 전례 없이 트렌드를 이끌어갈 때에도, 한강진역 인근에 블루스퀘어라는 공연장이 들어서고 ‘디앤디파트먼트’같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주도하는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는 와중에도, 이태원로 54길의 오래된 터줏대감들은 이방인들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구멍가게와 복덕방, 그리고 노인회관과 미장원이 한 집 건너 자리 잡은 이곳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건, 그래서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투어 용도변경을 마친 공동주택들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건물의 윤곽을 바꿔가는 모습은 오랜 이태원 주민들에게도 생소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전국에서 땅값이 오르고 있는 유일한 두 곳이 ‘이태원로54길’과 ‘전주한옥마을’이라는 게 단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아직은 천천히
그래도 이 길의 변화에서 위안을 느끼는 건, 대규모 자본에 의해 촉발된 바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아직도 구멍가게는 구멍가게대로, 닭집은 닭집대로, 새롭게 간판을 올린 가게들은 그들의 취향대로 서로가 공생하는 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마 앞으로도 프랜차이즈가 이 길로 들어올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길을 애써 찾는 사람들은 그런 예민한 감각들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라, 돈이 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낌새를 알아채는 순간 새로운 이태원로 54길을 찾아 떠나버릴 테니까.이태원로 54길의 변화는 이제 시작인지도, 혹은 막바지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이 길의 변화를 좀 더 재밌는 방식으로 이끄는 건, 이제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의 몫이 됐다
이태원로54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INTERVIEW 조아리, 윤영교 음식점 ‘알밤’ 운영
제 기억으로는 ‘알밤’이 이태원로 54길에 지금 남아있는 가게 중 가장 오래된 곳인 것 같아요.
맞아요. 이제 3년쯤 됐네요. 저희가 올 때만 해도 이 길에는 지금과 같은 가게가 하나도 없었어요. 조금 뜬금없지만 횟집도 있었고, 보신탕집도 있었고, 지금 이 자리도 동네 슈퍼였어요. 분위기가 지금의 보광동 같았었죠. 길 위에 화분도 많았고, 정육점도 있었고,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이셔서 수다를 많이 떠는 풍경이 익숙한, 그런 평범한 길. 아, 지금은 꽤 알려진 ’먼데이 에디션’도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지금은 ‘옹느세자메’가 들어서 있는 바로 옆집에서 시작해서 서로 추억을 많이 공유했어요.
어떻게 이 길 위에서 가게를 시작하게 됐나요?
주택가에 있는, 혼자서 조용히 요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몇 블록 떨어진 곳만 해도 이태원의 빠른 변화가 느껴지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당시 돈이 얼마 없어서 저와 제 지인이 문고리부터 하나씩 인테리어를 했는데, 동네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와서 밥을 사 먹느냐’며(웃음). 그랬던 길이 이렇게 변하다니 저도 요즘은 좀 놀라요. 예전처럼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매력이 사라진 건 좀 아쉽죠.
‘알밤’이라는 가게 이름이 특이해요.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별 뜻 없이 그냥 지었어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양식을 제철메뉴로 알차게 제공하자’가 목표인 가게예요. 알밤처럼 작지만 맛있고, 또 속이 꽉 차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게라면 좋겠다 싶었죠. 그리고 제 이름 ‘아리’에서 ‘알’을, 제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에서 ‘밤’을 따와 합친 것이기도 하고요.
요즘 이 길 위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요?
여기가 옛날로 치면 한남동 684번지라 ‘68 ground’라는 상인회가 있어요. 아직 체계적이진 않지만 저희끼리 주체적으로 모여서 플리마켓을 열자고 했는데, 지난 5월에 첫 시작을 했어요. 그날 비도 오고 날씨가 궂었지만 ‘그냥 즐기자’는 기분으로 아주 재밌게 했어요. 아마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어요.
INTERVIEW 박영홍 ‘고향마트’ 운영
언제 이곳에 가게를 여셨나요?
내가 1937년생인데 예순을 훌쩍 넘기고 시작했으니 10년도 더 됐을 겁니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네요.
이 길의 다른 곳이 변할 때도 여기 고향마트만은 항상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갑자기 TV를 끄고 클래식 음악을 튼다).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가 봐요?
내가 원래는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어요. 군사독재 정권 시절 선생 노릇 하는 데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이 슈퍼마켓을 열게 됐죠. 아, 이 음악은 칼 오르프Carl Orff의 대표작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인데 마음이 울적하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 가끔 이렇게 크게 틀어놓고 듣는답니다.
지나다니며 ‘고향마트’라는 간판을 볼 때마다, 고향을 많이 그리워하는 분이겠구나 생각했어요. 고향이 어딘가요?
저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제주 4.3사건이 제 인생에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그래서 한겨레의 후원으로 제주 4.3사건에 관한 보고서도 썼지요. 비록 출간은 안 되었지만요. 그런데 고향마트라는 이름은 그냥 간판업자가 지어온 겁니다. 좋은 이름 하나 지어달라고 했더니 이 이름을 가져왔지 뭐요(웃음).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죠? 언제까지 가게를 하실 생각이세요?
1~2년 사이에 이 길이 확 바뀌었어요. 여기 가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딱히 잘하는 일도 없고, 조금 힘들어도 이렇게 하루하루 마트를 지키며 여생을 보내야겠죠.
INTERVIEW 김영민, 강윤주 가죽공방 ‘YURT’ 운영
‘YURT’의 첫 시작은 가로수길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가로수길에서 시작해서 홍은동으로 갔다가, 이태원로54길까지 오게 됐네요. 홍은동에서 오래 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외진 곳이라 고객분들이 찾아오길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갈까 하고 알아봤더니 예전에 시세로 얻을 수 있는 가게는 이제 메인 가로수길에서 한참 들어가야만 하더라고요. 그런데 부동산 사이트에서 우연히 이태원로 54길 근처의 괜찮은 작업실을 발견했어요. 거기는 조건이 맞지 않아서 못했지만 이 길을 산책하다 보니 여기도 매물로 나와 있길래 알아보고 다음 날 계약했죠.
여기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우선은 이태원이라는 접근성이죠. 그리고 여기가 원래 반지층 가정집이었는데, 쇼룸과 작업실을 분리할 수 있는 구조가 좋았어요. 이태원로 54길이 많이 떴다고는 하지만 가로수길이나 메인 이태원로에 비하면 임대료가 싸요. 지금이 마지막 적기예요(웃음).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총동원되어서 각자 역할을 나눠 번갈아가면서 인테리어를 진행했어요. 마침 동생이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저희도 인터넷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 인테리어를 마쳤어요. 특히 반지층이다 보니 곰팡이가 많아서 페인트칠을 5~6번 했는데, 비용절감도 비용절감이지만 저희가 원하는 콘셉트를 표현해갈 수 있었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도 해요.
다시 또 하라면 하시겠어요?
아뇨, 당분간은(웃음). 이곳에서 4~5년간은 머무르고 싶어요. 앞으로 이 길의 변화가 정말 기대돼요.
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심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