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켜고 깍지 끼는 사랑

고명재 — 시인

‘시를 어떻게 읽을까.’라는 질문을 사이에 두고, 시인 고명재와 이야길 나눴다. 그는 내내 시를 애인 대하듯 말했다. 시는 낱낱이 파악하거나 정복하기보다, 함께 잠들고, 깍지를 끼고, 편하게 들이켜야 하는 것이라고. 아, 박연준 시인은 그를 “시와 정통으로 눈맞은 사람”이라 말했지. 그가 들려주는 시 이야기를 들으며 입안에서 한 단어를 굴려본다. 알사탕처럼 맴돌다 이내 퍼지는 그 말. 사랑, 사랑, 사랑.

대구에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서울이 많이 덥지요? 

정말 덥네요. 땀 좀 식히고 시작해도 될까요?

 

그럼요. 우리가 온다고 이곳에서 무알콜 칵테일도 내어주셨어요. 

아, 색이 참 예쁘네요. 맛있어 보여요. 여기 공간도 빛이 잘 들어오고 참 넉넉하네요. 여기는 뭐하는 공간인가요? 

 

여긴 낮에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무인으로 운영되는 대여 공간인데, 오늘은 우리뿐이에요. 밤엔 리스닝바가 되어 손님들을 맞이한대요. 

올 때 보니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는데요. 공간을 대여해준다는 것이 참 아름답게 느껴져요. 낮에는 책을, 밤에는 자그마한 치즈 하나 들고 오고 싶어요.

마이리틀케이브
A. 서울 강남구 논현로94길 7 3층

요즘 박사 논문 준비로 바쁘다고 하셨죠? 

네. 학부생 때부터 지금까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해 왔어요. 이번 논문에서는 2010년에 작고하신 최하림 시인님을 다뤄보려고 해요.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기셨지만, 그동안 많이 연구되지 않았던 분이라 그에 관한 논문을 써보고 싶었죠. 요즘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어요. 최근엔 예정돼 있던 북토크 날짜를 착각해서 학교 연구실에 있다가 왜 행사장에 안 오냐는 전화를 받았거든요. 너무 놀라서 급하게 운전해 겨우 도착했어요(웃음). 오늘은 마침 근처에서 강연이 있는 날이라 서울에 오는 김에 에디터님도 만나게 되었네요.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개인 SNS를 보니 시인님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세요? 

박사 수료하고 대학 강사로 오래 일해왔어요.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저를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가르친다기보단 같이 시 쓰고, 희곡 읽고, 합평도 해보고… 그런 일을 해요. 학생들이랑 좋은 책 나눠 읽는 시간이 참 행복하죠. 요즘 문학을 배울 만한 곳이 드물어서 학생들도 행복할 것 같고요. 다들 문예창작학과는 과제가 많아서 힘들다고도 하는데, 저는 그 친구들이 ‘돈 안 되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에 매달려 있다는 자긍심을 가졌다는 걸 느껴요. 돈이라는 인생의 큰 부분을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고, 대신 다른 쪽에 매혹될 줄 아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죠. 멋있어요, 옆에서 보면. 

 

시인님도 그런 삶을 걸어오셨잖아요. 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을 기억하세요? 

국어국문학과 공부가 안 맞다 싶어서 군대에 일찍 다녀왔어요. 복학해서 처음 본 신임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칠판에 ‘시’ 딱 한 글자를 쓰시고는 “이 수업은 한 학기 동안 시만 생각하고 시만 보고 시만 쓸 거다. 하기 싫은 사람은 나가도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허수경 시인의 〈저녁 스며드네〉를 읽어 주셨는데, 그때 무언가에 관통당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동안 제가 알던 시인은 윤동주, 김춘수 정도였거든요. 교과서 속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언어로 가득한 그 시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되는 순간과 비슷했죠. 

 

그야말로 시에 반해버린 거였네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소설 아세요? 농과대학에 입학한 주인공 ‘스토너’가 우연히 영문학 교양 수업을 들어요. 그 수업은 굉장히 냉소적인 교수가 지도하는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작품을 같이 읽고서 학생들에게 차례로 그 작품의 의미를 물어요. 아무도 대답을 못 하죠. 주인공에게도 차례가 왔는데 역시 대답을 못 하고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교수가 자세히 보니 스토너의 눈앞이 뿌예져 있어요. 소네트의 의미를 다는 알 수 없어도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차오른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교수는 “오늘 수업은 이상.” 하고 나가버리죠. 시에 관통당한 스토너가 고개를 들고 옆을 보는데, 햇빛이 친구 얼굴의 솜털을 비추는 순간이 보이기 시작해요. 자기 손등을 보고는 심장부터 손끝까지 피가 전달된다는 사실에 감명받고,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를 새롭게 듣죠. 그 대목을 보고 나도 그랬지, 싶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나를 관통했다는 걸 뒤늦게 감지하고,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경험을 한 거죠. 

 

관통당했다는 느낌… 그건 정확히 어떤 거예요? 

무언가가 아주 부드럽게 나를 지나간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남은 일은, 그 감정이 왜 들었고 이 느낌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죠. 시는 늘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요. 먼저 와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계속 해명해야 할 위기에 처해요.

조금 당연한 질문인데요. 여전히 시가 좋으세요? 

아침에 눈뜨면, ‘뭐 쓰지. 이걸로 쓰면 진짜 재밌겠다.’고 생각해요. 보통 일, 업무라는 건 나에게 익숙해진 무언가를 반복하는 행위일 확률이 높죠. 그런데 시가 참 곤혹스러운 것이, 한 편 끝내면 또 새로운 프로젝트예요. 그게 저를 도무지 늙지 않게 만드는 면이 있어요. 매일 아침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고민으로 저를 끌고 가서 시가 좋아요. 시는 매번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이에요. 그 모습을 보는 일은 참 행복하죠. 내가 쓰는 일도 ‘신상’. 남이 쓰는 것도 새로운 시인이 출연하는 것도 ‘신상’이라, ‘신상’을 끝없이 소비하기 벅차서 행복해요.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죠. 시인님에게는 등단은 어떤 의미였나요? 

개인적으로 대단하게 보진 않아요. 등단 제도는 한국에만 남아 있는 관행이고, 과거엔 등단하는 작가만을 인정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랑에 어떻게 제도가 있어요. 그럴 수는 없죠. 글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그 자체로 작가라고 믿어요. 하지만 저한텐 등단하는 과정이 중요했어요. 어릴 땐 빨리 유명한 시인이 되어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데뷔까지 10여 년이 걸렸죠. 그렇게 매번 떨어지면서 깨달은 건, 내가 시를 사랑했다기보다 시인으로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선망했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왜 내 작품이 당선되지 못하는지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지금 내가 쓰는 작품을 어떻게 뚫어낼까 고민하기보단,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욕망이 그득했으니까요. 문학은 투명해서 그런 동기로 쓴 작품이 좋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등단은, 저에게 진짜 좋은 시를 쓰려면 다른 욕망을 버리고 그저 작품을 사랑할 줄 알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르쳐줬어요. 딱 한 줄 알려준 거네요. 시 쓰기는 곧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수차례 등단에 실패한다고 해도,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쉽게 버려지지 않잖아요. 

제가 욕망을 줄이려 했다기보다는 욕망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까 대신, 좋은 시란 무엇일까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독서량이 늘었어요. 내 안의 욕망보다, 타인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그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사랑이 나의 바깥으로 향하면 당연히 ‘나’는 줄어들잖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정작 자신은 안 중요하듯이, 다만 노력한 것이 있다면, ‘시를 더 좋아하려고 애쓰기’였어요. 

 

이미 좋아하는 시를, 왜 더 좋아하려고 노력하셨어요? 

우리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해요. 저도 독서보다 누워서 넷플릭스 보는 게 더 재밌어서, 읽기를 선택하기 힘들어했거든요. 그런데 좋아한다는 마음을 스스로 계속 먹다 보니 그 마음이 더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문학도 노력하면 더 과감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실제로 글 쓰는 분들이 저한테 물어요. 자기는 생각보다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그때마다 저는 좋아하는 것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취미에 머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시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남은 생을 통째로 읽고 쓰는 데에 사용하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역시 아파도 보고, 밤도 새우고, 가슴도 쳐봐야 그 사랑이 깊어지잖아요. 문학도 그렇게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탄생한 첫 시집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이죠. 

데뷔까지 오래 걸렸지만 막상 시집을 내려고 하니 발표할 만한 시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존 작품은 거의 다 버리고, 새로 쓴 것 위주로 시집을 엮었어요. 무슨 이야길 쓸까 고민하며 나를 돌아봤는데, 저는 천재형 시인이 아닌 둔재에 가깝더라고요. 둔재는 우직하게 사랑하는 일밖에 못 하고요.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나의 잘남보다 나를 존재케 해준, 아니면 나를 죽지 않게 해준 사람들을 담고 싶었어요. 내 주변에서 빛나고 숭고했던 이들의 잘남을요.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글로 복원하고 기억하고 싶었어요.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 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ᅳ고명재,《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인의 말’ 중에서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의 의미를 정의해 본다면요? 

어릴 때 외할머니집에서 자랐어요. 여름이 되면 무거운 수박을, 그 노인이 몇 통씩이나 들고 집으로 와요. 수박 담는 그물망 아세요? 그 망을 들면 손가락이 얼마나 아파요. 그럼 제가 물어요. “왜 이걸 다 들고 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만큼 사 와, 할매.” 그러면 할머니가 그러세요. “뭐 하기는, 화채 해 묵지.” 당신이 수박을 좋아하셨거든요. 수박을 반으로 가른 다음 둘이서 정신없이 파내고 화채 그릇을 만들어요. 거기에 오미자를 며칠간 냉침한 빨간 물을 부어서 온갖 과일을 넣고, 아카시아 꿀도 뿌려요. 그리고 할머니가 매번 물어보셨죠. “니 화채가 왜 화채인 줄 아나? 꽃 화 花 를 써서 화채다.” 그러고 아파트 화단에서 뜯어 온 꽃잎을 깨끗이 씻어서 마지막에 뿌려주셨어요. 

 

아…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계속 들려주세요. 

화채를 먹다 보면 얼음이 씹히고 차가운 단물이 느껴지는데, 갑자기 어금니에 벨벳 같은 것이 씹혀요. 할머니가 넣어주신 꽃잎이에요. 그 행동은 당신 삶에서 어린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우아함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은 별다른 이득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 내 존재를 위해서 삶에 소소한 행위를 첨가하죠. 그 기억을 돌아보면서 사랑은 수박에다가 꽃잎을 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사랑해 준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엄청난 일을 하진 않았으나 가장 흔하고 가장 귀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거예요. 

 

이어 출간된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는 기획이 독특해요.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님이 어느 날 저한테 무채색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셨어요. 가장 먼저 어릴 때 스님들 등에 업혀 보았던 회색빛 승복 색이 떠올랐어요. 저는 잠시 절에서 자랐거든요. 그후로 눈에 밟히는 무채색의 모든 것이 재밌었어요. 간장, 김말이, 아스팔트, 비둘기… 이것들을 소재로 글 100편을 쓰고 보니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였죠. 인쇄 전에 대표님이 대구에 사는 저를 파주까지 부러 불러서 이 책 표지를 보여주셨는데, 희끗희끗한 색감이 저를 키워주신 우리 스님 생각이 나게 하더라고요. 표지는 재생지예요. 사라진 존재라도 되살릴 수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대표님이 알려주셨어요. 

 

이제부터는 시를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흔히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첫째는 시를 앎의 차원으로 만들려고 해서예요. 우리가 춤추는 사람을 보고 놀라는 이유가, 그의 어깨 각도를 알아서일까요? 그냥 그 모습을 사랑해서죠.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앎, 데이터로 환원하는 데 익숙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시를 좋아하기 위해서 자꾸 데이터화하고 정복하려고 해요. 사랑은 앎이 아니라 사귐인데 말이에요. 한 사람을 사랑하려고 할 때 키, 몸무게를 알려 하기보다 손잡고 깍지 끼고 같이 맛있는 걸 먹는 것처럼 시를 사귀듯 감각하면 돼요. 

 

또 다른 이유는요? 

세상이 빨라서요. 문학이 무슨 말을 하는지 헤아려주기엔 우리 삶이 너무 바쁘죠. 우리가 평소에 자기 심장 박동 잘 못 느끼죠. 힘껏 달리거나 손바닥을 쫙 펼쳐서 가슴에 대고 집중해야만 느낄 수 있어요. 시 읽기도 똑같아요. 자신을 최대로 활용하거나 멈추는 불편함을 겪어야 접근 가능한 세계예요. 이런 시가 왜 쉽길 바라나요? 시는 어려워야 하고, 어렵기 때문에 얻는 무궁무진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럼 시인님도 시가 어렵다고 느껴본 적이 있으세요? 

그럼요. 제가 대학생일 때부터 어려운 시를 쓰는 시인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어요. 처음엔 곤혹스러웠죠. 시 공부가 어렵고, 어떤 시가 매력적인지 잘 모르겠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해석은 하되 답을 찾으려고는 하진 않았어요. 사귀는 사람을 속 시원히 이해해야만 사랑할 수 있나요? 그 사람을 잘 아니까 안고 있나요? 아니잖아요. 그냥 안고 있으면 그 사람 마음을 알게 되죠. 시도 계속 옆에 끼고 있어야 해요. 그러면 문득 시가 잘 읽히는 날이 와요. 사람 사귈 때도 ‘나 이 사람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불현듯 받을 때가 있잖아요. 

 

시 해석에 정답은 없는 거군요. 

시는 언어로 된 꿈이에요. 꿈은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해몽하는 재미가 있어요. 정확한 의미를 알아내려고 한다면 되려 꿈이 우릴 우습게 볼걸요. 같은 꿈을 꿔도 사람마다 길몽 또는 흉몽으로, 길몽도 흉몽도 아닌 태몽으로 다양하게 해석하듯이 자유도가 높다는 게 시 읽기의 즐거움이에요. 그래서 친구들 여럿이랑 같은 책을 정해 읽고 떠들어 보는 게 최고예요. 나는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귀한 것이라, 그 사람 해석을 듣고 다시 읽어보면 그것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읽혀요. 그런 경험은 소중해요. 나라는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도 들고. 배운다는 게 그런 것 아니겠어요? 내가 몰랐던 걸 얻는 일.

시인의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아도 괜찮나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허무맹랑해서는 안 돼요. 예를 들면 제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에서 ‘키스’가 진보와 보수의 결합을 뜻한다고 해석하면 지나치죠(웃음). 남들에게 설득 가능한, 충분히 가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만 있다면 해석은 어떠하든 상관없어요. 

 

문학은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게 하는 단서가 되어주네요. 

그렇죠. 문학을 통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더 사랑하고, 더 슬퍼하고, 더 쓸쓸해질 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문학은 충분히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 시 읽을 때요. 정말 어려운 수학 문제 풀듯이 합리적인 해석을 치열하게 고민해 봐도 좋아요. 그렇게 시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얻는 즐거움이 크거든요. 

 

저는 시를 어렵게 느꼈던 이유가, 단어들이 본래 의미가 아닌 방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시가 가진 ‘일탈성’에 대해 들려주실래요? 

에디터님과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언어를 원래 의미대로 사용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겠죠. 그런데 시는 내가 원하는 의미대로 단어를 사용하면 어떠냐고.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물어요. 시에서 ‘안녕’은 어떤 의미일까요? 보통 우리가 반갑거나 누군가를 보낼 때 쓰는 ‘안녕’과는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비가 온다’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뜻하지 않을 수 있고요. 이렇게 시는 서정적이지만 강력한 저항성을 지닌 장르예요. 록 음악처럼요. 록의 강렬한 효과음은 소리 그 자체로 사용되지 않고 흥분을 발산하는 목적으로 달리 사용돼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정해진 자리를 이탈한 소리를 만들어요. 바이올린도 자연에 이미 존재하던 음을 활과 금속을 뜨겁게 마찰시켜서 모방하는데, 우리는 그 인공적인 소리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역시 ‘다른 사용’이죠. 문학에서 남성인 저는 여성도, 퀴어도, 코끼리도 될 수 있어요. 이러한 ‘달리 사용하기’가 시의 언어로는 가능해요. 시는 삐딱해서 얼얼하고 시원한 장르죠. 

 

이런 시의 ‘쓸모’가 무엇일까요? 

아까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는 어려워요. 그래서 해석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요. 타인을 헤아려보게 돼요. 왜 이런 말투와 표정, 영혼을 가지게 되었나,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죠. 문학을 하다 보면 내 인생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고 대신 나와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타인을 이해하고 그의 슬픔을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는 마음을 가지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문학을 읽다 보면 자꾸 그렇게 하고 싶어져요. 저는 이것이 시의 쓸모라고 생각해요.

공감해요. 시는 나를 넘어서는 일이었네요. 

진은영 시인의 《시시하다》라는 책에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 〈밤의 파리〉가 나와요. 시에서 화자는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서 애인의 얼굴을 확인해요. 두 번째 성냥으로는 눈을, 세 번째 성냥으로는 입술을요. 그리고 성냥이 다 떨어졌어요. 진은영 시인은 이제 철학자 리오타르가 말한, 성냥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요. 하나는 ‘소비하기’인데, 찬물을 끓이거나 모닥불을 피우는 것처럼 쓸모와 목적을 위한 것이에요. 다른 하나는 ‘낭비하기’로, 아이가 성냥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무 이유 없이 하나를 켜보는 거죠. 진은영 시인은 이제 처음에 인용했던 시의 배경을 알려줘요. 폭격이 떨어지는 1940년대 파리로, 공포에 떨던 한 사람이 잠시 성냥불을 켜서 애인을 바라본 것이었다고요. 그리고 물어요. 여기서 성냥의 사용은 소비하기인지, 낭비하기인지. 

 

둘 중 무엇도 아니지 않을까요? 

진은영 시인이 끝으로 이렇게 썼어요. 그 시에서 성냥불은 비록 물도 끓이지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의 영혼은 데울 수 있었다고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시는 소비도 낭비도 아닌 영혼에 분명히 작용하는 무언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효용가치가 있고 목적이 또렷한 방식의 소비를 칭찬하고 독려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세상엔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 많죠. 예를 들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엄청난 비효율일 거예요. 하지만 효용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고요. 역시 시도 쓸모나 효용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해요. 

 

시인님은 시가 언제 쓰고 싶어지나요? 

예감하거나 미리 준비할 수 없어요. 노래 흥얼거리거나 춤추고 싶을 때처럼요. 초여름 저희 동네 장미 넝쿨에 장미가 때맞춰 일제히 피는 순간처럼, 글도 어떤 때가 되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요. 그래도 굳이 쓰고 싶은 때를 이야기해 보자면 현실이 비좁게 느껴질 때요. 내 집과 방, 삶과 몸이 좁다고 느껴질 때, 하지만 내가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을 때 이 좁음을 어떻게 넘칠 수 있을지 고민하죠. 그런 순간에 시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겨요. 물론 멋지거나 아름다운 걸 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귀한 장면 보면 사진 찍듯이요. 문학은 시간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시를 읽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도피하고 싶을 때요. 내 글이 안 써져서 마냥 놀고 싶을 때 남의 책을 읽어요. 가장 죄책감이 덜한 놀이라 좋아요. 주어진 일이 많은데 시간이 빠듯할 때도 읽고 싶어지고요. 그 이야기에 힘입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이 생겨요. 사실 꼭 독서하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지 않아도 책은 평소에 그냥 읽고 싶어요. 원래 50권씩 병렬 독서하는데, 요즘 논문 쓰느라 바빠서 병렬 중지예요. 전부 못 읽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죠(웃음). 

 

(웃음) 앞으로 시로 어떤 이야길 전하려 하세요? 

대단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고 늘 하던 대로 사랑받았고, 사랑할 수 있고, 사랑했던 것들을 이야기할 거예요. 너무 어둡고 슬픈 얘기 말고, 좀더 쨍하고 밝은 이야기들로요. 소박하게, 내가 애정하는 걸 곰곰이 생각하고 써봐야지. 그게 다예요.

시인이라는 말은 시를 향한 애정을 내 몸을 다 채워도 넘칠 만큼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는 걸 배운 몇 시간이었다. 고명재의 사랑은 나를 지키려고 마음을 아끼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모양이 아니다. 수박화채에 꽃잎을 뿌리듯, 그는 가장 아름답고 귀한 언어를 채집해 시로 재편한 일상에 솔솔 수놓는다. 그렇게 탄생한 시와 우린 사귄다. 다 알려 하지 않고 마냥 끌어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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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정해인 장소 제공 마이리틀케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