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

세상에 없는 마을

듣도 보도 못한 포대

집 앞엔 제법 큼직한 공원이 있고, 집 뒤엔 야트막한 산도 있다. 대단히 밝은 건 아니지만 으슥한 구석도 없어 여기저기 사람 구경, 집 구경하면서 걷기에 좋다. 겨울이면 붕어빵이니 호떡이니 하는 간식도 즐비해 산책할 때 지폐를 챙기는 건 필수! 다른 동네에 비해 간식이 유난히 저렴해서 천 원 한 장이면 큼직한 붕어빵을 네 마리나 낚아 올릴 수 있다. 방에서 주운 동전들 모아 붕어빵 한 봉지와 바꿀 때면 어린 시절 심부름하던 기억이 떠올라 어쩐지 귀여운 기분이 된다. 

그날도 그런 평범한 산책 날이었다. 초저녁 즈음, 엄마랑 동네 이곳저곳에 있는 시장 중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떡이 맛있는 시장’에 가기로 했다. 채소의 면면을 구경하고, 시장을 거니는 사람들 기운을 몸소 느끼고, 떡을 두 팩 고른 다음 서비스 떡까지 야무지게 받아 온 그런 날. 서비스로 주신 하얀 인절미를 입안 가득 넣고는 콩고물에 콜록거리며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 앞에 이상하리만큼 거대한 물건이 놓여 있다. 

“이게 뭐야?” 엄마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면서 수취인을 확인하는데 내 이름이다. 뭐 주문한 게 없는데…. 의아한 마음으로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무겁다. 너무 무겁다. 엄마랑 같이 끌고 밀면서 신발장까지 가까스로 옮겼다. 수상한 기분이 들어 곰곰 생각하는 나와 달리 성격이 급한 엄마는 일단 종이부터 찢고 본다. 빨리 열어보자며 손을 휘둘러 벌써 봉투 윗부분은 찢어지고 없다. 오 마이 갓. 거대한 다이너마이트 같은 거면 어쩌려고. 찢어진 봉투 사이로 빼꼼 보이는 건 다행히 폭탄 같은 건 아닌 듯했다. 

포장을 거칠게 뜯는 엄마 손을 따라 드러나는 빨갛고 파란 로고, 그리고 상표.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한 자씩 읽어보니 보, 리, 건, 빵. 응? 건빵? 왕왕 엄마가 마트에서 한 봉지씩 사 온 적이야 있지만 그건 고작 내 손 두 개 붙인 만큼의 크기였다. 두어 번 먹고 나면 사라질 정도의 양. 세상에 이렇게 큰 건빵이 있다고? 건빵이… 10킬로라고? 난생처음 보는 무지막지한 무게와 크기에 기가 찼다. 보낸 사람 이름은 ‘야채과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신자를 찾아가니 친구의 소행이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덜 좋게 말하면 건조한 친구. 희로애락의 고저가 크지 않아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목소리나 억양에도 감정이 크게 묻어나지 않는 친구. 그러고 보니 친구의 성격도 건빵을 닮았다. 약간 퍽퍽한데 담백해서 계속 손이 가는…. 

친구에게 물음표와 함께 건빵 사진을 보내니 금세 답장이 온다. “건빵이 맛있어서. 너도 좀 먹으라고.” 너도 ‘좀’ 먹으라고 보내준 것치고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 아닌가. 무거워서 옮기지도 못한 채 신발장에 둔 건빵 포대는 저녁이 되고 아빠가 돌아와서야 제자리를 찾아 건넌방 구석으로 이동했다. 저걸 다 먹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기우라는 걸 알았다. 눈 뜨면 한 주먹, 일하다가 한 주먹, 자기 전에 한 주먹, 커피랑 한 주먹, 보리차랑 한 주먹…. 친구는 잘게 부수어서 흰 우유에 시리얼처럼 타 먹으면 맛있다며 나름의 팁을 알려 주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겨를도 없었다. 부수고 우유를 붓기도 전에 이미 야금야금 먹어치워 하루 적정량을 먹게 됐으니까. 의외로 10킬로나 되는 건빵이 애물단지나 미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로 세 식구가 먹는다면 ‘금세 다 먹겠는데?’ 싶었다.

듣도 보도 못한 조합

매일 건빵을 먹다 보니 먹는 요령이 생겼다. 건빵은 심심하고 담백하고 제법 든든해서 식사와 식사 사이가 길어질 때 집어 먹으면 꽤 좋은 양식이 됐다. 밤늦게 먹어도 소화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잠들 정도로 가벼웠고, 아침에 일어나 먹어도 적당히 퍽퍽해서 입안에서 굴려가며 먹기 좋았다. 심심하면 꺼내다가 먹었다. 심심하지 않아도 꺼내다가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 무심코 눈앞에 보이는 크림치즈에 건빵을 찍어 먹어 보았는데, ‘에? 이거 별미잖아?’ 일상처럼 먹던 건빵에서 뭔가 새로운 맛이 났다. 담백한 빵이나 크래커에 크림치즈가 잘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건빵이랑 먹으면 잘 어울린다고 가르쳐 준 적은 없었다. 크림치즈와의 조합을 알게 된 이래로 건빵을 평소보다 스무 개쯤 더 먹게 됐다. 

코로나19로 사람 만날 일 없이 이럭저럭 적응한 채 살아가던 중에 건빵 10킬로를 보낸 야채과일을 만나게 됐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던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실로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알게 된 건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단둘이 보는 건 처음이던가? 인터넷 친구도 아닌데 대면한 지 워낙 오래된 터라 막상 만나려니 낯설고 이상했다. 둘 다 북적거리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동네 산책을 하고 공원을 걷기로 했다. 무슨 얘길 할까, 어색하진 않을까, 생각하면서 혹시 공백이 생기면 메울 방편으로 작은 반찬통에 건빵을 담았다. 크림치즈도 챙겼다. 소풍 간식으론 좀 이상해 보이지만 오작교 같은 건빵 10킬로인데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생각만큼 어색하진 않았다. 건빵 10킬로도 받은 사이인데 어색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공원을 걸으며 나무의 면면도 보고, 모처럼 하늘도 올려다보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별말 없이 걷다가 “너는 김치찌개가 좋아, 된장찌개가 좋아, 부대찌개가 좋아?” 같은 걸 묻기도 했다. 그러다 사위가 적당히 푸르스름해졌을 때, 공원 매점에서 맥주를 한 캔씩 골랐다. 안줏거리를 고르자는 야채과일에게 “내 가방에 있어.” 회심의 미소로 대꾸한 뒤 벤치에 가 앉았다. 길에 앉아 맥주를 따다니. 엄청나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 

그것도 이제 막 무르익은 젊은 어른이 된 것 같아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준비해 온 반찬통을 야채과일에게 내미니 시시한 대꾸가 돌아온다. “건빵이랑 크림치즈? 뭔가 이상한데.” 보란 듯이 크림치즈에 건빵을 푹 찍어 내밀었다. “건빵이랑 크림치즈? 뭔가 맛있네.” 내 기준에서 ‘뭔가 이상한데.’와 ‘뭔가 맛있네.’ 사이의 간극은 아주 크기 때문에 목소리의 고저가 반드시 달라질 터인데, 퍽퍽한 이 친구는 목소리의 파장에 변화도 없이 건빵과 크림치즈의 조화에 감탄한다. 너는 진짜 건빵답구나. 공백을 메울 방편으로 가지고 온 건빵인데, 우리는 건빵과 크림치즈 조합에 빠져 오히려 먹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 “이거 계속 먹다 보면 5킬로는 순식간에 찌겠다.” 하는 야채과일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무게나 거리에 별로 감각이 없는 터라 이전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텐데 5킬로라는 말이 문득 실감이 났다. 바로 며칠 전 내가 낑낑거리며 끌고 들어오다 포기한 건빵 포대가 10킬로니까… 5킬로면 그 절반? 인간은 무거운 동물이구나 생각하면서 크림치즈에 건빵을 푹푹 찍어 먹다 보니 건빵도, 크림치즈도, 맥주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이상한 조합들이 있다. 대중적으로 퍽 잘 어울린단 이야길 듣는 것들은 아니지만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아 생각 없이 자꾸 먹게 되는 조합. 이를테면 부침개와 케첩이 그렇고, 건빵과 크림치즈가 그렇고, 튀김과 소금이 그렇고, 떡볶이와 김치가 그렇고, 겨자와 연근이 그렇고, 와사비와 구운 식빵이 그렇고…. 그렇고 그런 것들을 쓰다 보니 괴식을 즐기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입맛도 유전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

부침개와 케첩, 건빵과 크림치즈, 튀김과 소금, 떡볶이와 김치, 겨자와 연근, 와사비와 구운 식빵은 그래도 보편적이지 않나? 열 명에게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 했을 때 여덟이 “웩!” 하더라도 둘쯤은 “먹어볼까?” 할 정도의 평범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아닌가?) 그런데 억지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조합을 만들어 먹는 사람도 있다. 짜파게티를 먹다 말고 식빵 사이에 짜파게티와 김치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 대만까지 와서는 우육면을 먹다 말고 전날 숙소에서 먹다 남은 김맛 크래커 사이에 면을 올려 오픈 샌드위치처럼 먹곤 우육면 국물을 커피 마시듯 우아하게 들이켜는 사람. 달큰한 만주를 백김치에 싸서 먹거나 단팥빵 반을 갈라 단무지와 오징어, 옥수수를 넣어 먹는 사람. 우리 아빠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닌데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조합해 먹는 데는 선수다. 그게 무슨 괴상한 요리냐며 만류해도 “왜? 이렇게 먹으면 샌드위치지.” 하고는 짜파게티가 덜렁거리는 빵을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딱히 못 먹겠는 조합은 아닌데 절대로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 조합. 난 그냥 따로 먹을래. 

어느 날엔 외출하고 돌아오니 건빵이 산더미만큼 튀겨져 있다. 군대에서 자주 이렇게 먹었다며 튀긴 건빵에 설탕을 와르르 붓는 아빠. 기름진 것도, 단것도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아휴, 기름 아까워!” 하고 웃으며 등을 때렸고, 튀김을 좋아하는 나는 별미라며 설탕을 약간 털어내고 끝도 없이 먹었다. (아, 5킬로….) 그다음 날이었던가, 늦은 밤에 귀가하니 아빠가 잔뜩 만들어둔 튀긴 건빵 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빵이 한 소쿠리 더 생겨 있다. 도대체 이게 뭘까, 아무리 유추해 봐도 모르겠다. 아빠도 엄마도 잠이 든 야심한 시각인지라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내 미뢰를 믿어보기로 했다. 단순히 퀴즈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입에 넣어 보았는데… 퍽퍽하고 담백한 건빵의 식감은 온데간데없고 흐물흐물하게 입에서 흩어진다. 약간 눅눅하고 질퍽거리는 것이 꼭 젖은 상자를 씹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고소하게 퍼지는 이 맛은, 달걀이구나! 정말이지… 맛이 없었다. 내 인생 그렇게까지 안 어울리는 조합의 음식은 처음이었다. 식감은 식감대로 파괴되었고, 맛은 맛대로 따로 놀았다. 보리차로 얼른 입을 헹궈내고 양치를 하고 가글까지 하고서는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그것의 정체를 물으니 ‘건빵 부침개’란다. 엄마가 전을 부칠 때 조금 남은 반죽에 건빵을 부어 부침개를 만들고 달걀물을 입혀 한 번 더 부쳤다나? 맙소사. 요리에 실패하더라도 아는 범주 내에서만 실패해 왔는데(설탕을 너무 많이 넣거나, 지나치게 짜게 되거나….)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실패의 맛이다. 세상에 뭐든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부족이 있대도 건빵 부침개를 보면 역정을 낼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리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편의점 바닥에 두꺼운 과자 박스들을 펼쳐서 레드 카펫처럼 놓아두지 않나. 그 위를 많은 이가 밟고 가면서 눈이 묻고, 녹아 물이 되면서 박스를 적셔 흐물흐물해지지 않나. 건빵 부침개는 딱 그런 형상이다. 그 널브러진 상자를 씹는다면, 그 식감 또한 건빵 부침개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일평생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은 처음 봤다. 

야채과일에게 받은 건빵 10킬로는 몇 달 내 금세 사라졌다. 그냥 먹고, 크림치즈에 찍어 먹고, 튀겨도 먹으면서 좋은 간식거리가 됐다. 야채과일은 그 뒤로 6킬로 건빵 포대를 한 번 더 보내왔다. 10킬로일 때보다 먹는 속도가 더뎠다. 맛은 있었지만 <올드보이 >도 아니고, 타의가 아닌 자의로 계속 건빵만 먹기에는 세상에 먹을 게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건빵은 여전히 좋은 간식거리다. 보이면 한두 개씩 집어 먹고, 심심하면 하나씩 또 집어 먹고, 커피랑 먹고, 우유랑 먹고, 맥주랑 먹고, 가끔 케첩이랑도 먹는다. 세상에 건빵을 총합 16킬로나 선물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가끔은 이런 것도 자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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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