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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 뮤지션
새로운 앨범에 대해 묻자 죠지는 “거창한 내용은 없어요.”라며 소년처럼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힘주지 않고 건네는 그의 음악이 좋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 담백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지나간 시간을 오래 그리워하는 마음, 눈앞의 다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태도. 그는 여전히 지나온 날들을 품은 채, 또 한 번의 걸음을 내딛는 중이었다.
무척 아늑한 작업실이에요.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더 감사하죠. 반갑습니다. 원래는 임시로 잠깐만 쓰려고 했던 작업실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느덧 여기서 2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최근 쏠, 따마 씨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 ‘모요MOYO’의 페스티벌 참여를 앞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창 무대 준비로 분주하실 텐데, 요즘 어떤 일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페스티벌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요. 그 외에도 자잘한 작업들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고요. 합주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진행하는데, 연습이 끝나면 수정할 부분이나 공연할 때 필요한 파일들을 정리하는 작업도 함께하고 있어요. 남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고요.
이전에 ‘몸을 쓰는 시간이 삶에 꼭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도 운동은 일상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나 봐요.
네, 사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는 다 좋아하거든요. 메인으로는 계속 크로스핏을 하고 있고, 중간중간 요가를 섞어서 하거나 친구들과 탁구도 치고 자전거도 타요. 이제는 운동을 안 하면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완전히 하나의 루틴으로 몸에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 잡지가 발간될 때쯤이면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EP [solsol~condo] 발매도 코앞으로 다가와 있겠어요.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대단한 걸 준비했다기보다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이지리스닝’ 느낌의 곡들이죠. 전체 5곡 중에서 3곡 정도가 특히 그런 편안하고 가벼운 분위기예요.
트랙 리스트 중에서 유독 마음이 가거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곡이 있어요?
가사로만 보면 ‘빵집’이라는 노래에 애정이 많이 가요.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하던 사람끼리 나중에 나이가 들어 만나 옛날을 회상하는 내용인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이런 소소하고 별거 아닌 소재나 감정들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지나갈 때 고소하게 풍기던 옛날 동네 빵집 냄새 같은 것 있잖아요. 요즘 빵집들과는 또 다른, 그 시절 특유의 향수를 담아 만든 곡이라 가사에 마음이 더 가더라고요. 아, 음악적인 완성도로만 치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함께라면요’가 제일 마음에 들고, 완성도도 가장 높게 나왔고요.
방금 타이틀곡의 완성도를 말씀하셨는데, 음악을 만들면서 ‘이쯤이면 됐다.’ 싶어 마침표를 찍는 완성 기준은 무엇이에요?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운데, 제 안의 기준은 확실히 있어요. 사운드나 곡 구성 면에서 들었을 때 거슬리는 부분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면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요. 굳이 표현하자면, 사운드가 잘 다듬어지고 전체적인 만듦새가 단정하게 떨어지는 순간이 저만의 기준인 것 같아요.
그렇게 완성된 앨범을 세상에 내놓으며, 청취자분들이 이번 앨범을 어떤 마음으로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나요?
사실 듣는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크게 안 해본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제가 만든 작업물을 세상에 올려두는 거거든요. 비유하자면 개인 블로그에 제 글을 써서 올리는 것과 비슷해요.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 글을 독자가 어떤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라고 쓰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저 각자의 일상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들어주시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평소 음반을 내고 난 뒤 반응이나 피드백에도 담담하신 편이에요?
피드백 자체를 가볍게 여긴다기보다는, 애초에 곡을 만들 때 거창한 의도나 세세한 설정을 정해두고 시작하지 않는 편에 가까워요. 치밀하게 기획하거나 계산해서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어떤 평가가 와도 좀 더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전 작업들을 보면 작사, 작곡부터 편곡까지 대부분 홀로 전담해서 완성해 온 곡들이 많았잖아요. 곧 발매될 이번 앨범 역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거쳐 나온 곡들인지, 아니면 다른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작업한 곡들이 많은지 궁금해요.
기본적인 멜로디나 가사나 대부분 제가 직접 작업했어요. 다만 작업을 프로듀서 친구와 함께 진행하는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몰입에 큰 도움이 돼요. 옆에서 “가사를 이런 식으로 풀어보면 어때?”, “이 구간은 저렇게 바꿔보는 게 어때?” 하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져주거든요. 그 제안들을 곡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제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고요.
결국 곡을 만드는 건 혼자여도 그 과정에는 대화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군요. 혼자만 몰두한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겠어요.
맞아요. 저는 원래 남들과 함께 “이 부분은 이렇게 다듬으면 좋겠다.”, “저건 조금 아쉽다.”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유독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혼자 작업할 땐 결국 나 자신한테 질문하고 답해야 하니까 막막할 때가 많은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상대가 던져둔 생각 위에 제 시선을 하나 더 보태면서 자연스럽게 시너지가 나요. 그 덕분에 작업하는 재미나 몰입도도 커지고요.
창작물에 대해 오가는 직설적이고 냉철한 의견이나 피드백도 유연하게 수용하시는 편이에요?
네, 저는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기본적으로 상처를 잘 안 받기도 하고요. 작업할 때의 의견은 순수하게 의견으로 수용하죠.
누군가의 시선이 더해지는 작업과 달리 혼자 작업할 때만 느끼는 장점도 있을 것 같아요.
혼자 작업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에요. 같이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의견이 갈릴 때가 있고, 서로를 설득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과정 안에서 소모되기도 하거든요. 혼자 일할 때는 타인을 설득하는 에너지와 과정이 아예 생략되니까 훨씬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게 장점이죠.
2016년에 데뷔하셨으니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어요. 10년 전의 나 자신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스스로 느끼기에 어떤 점이 가장 달라진 것 같아요?
10년 전에는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업텐션’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늘 신나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외향적인 면이 있었죠. 요즘은 예전보다 외부 자극이나 도파민에 반응하는 게 조금 무뎌지면서, 전체적으로 한결 차분해진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마음가짐은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음악은 저한테 늘 머릿속 한구석에 얹혀 있는, ‘아, 해야 하는데…’ 하고 늘 떠올리는 일에 가깝거든요(웃음). 막상 작업을 시작하기까지가 제일 힘든데, 일단 손을 대고 이것저것 만지다 보면 금세 또 재미있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리고 요즘은 음악 하나만 떼어놓고 보기보다 앨범 아트워크나 뮤직비디오 같은 요소들까지 다 같이 묶어서 고민해야 하다 보니, 단지 음악이라는 게 단일한 요소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계기를 보면, 시작할 때부터 ‘평생 이 길을 가야겠다.’ 같은 큰 청사진을 품고 뛰어든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것도 고등학생 때 혼자 다른 학교에 떨어져 우울해하던 저에게 아버지께서 권유해 주신 덕분이었거든요. 그 뒤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되어야겠다.’며 멀리 내다보는 목표를 그려두기보다, 늘 눈앞에 주어진 현재를 하나씩 마주하며 걸어가는 편이에요. 매번 짧게 짧게 다음 스텝을 보며 가는 거죠. 스스로 의지가 강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회사가 정해주는 마감 기한이 주어지면 거기에 몰입해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제 작업에 마침표를 찍고 앨범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고마운 동력도 그 마감일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아봤을 때, 전환점이 되어주었거나 유독 마음에 남아 있는 작업을 꼽아본다면요?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정규 앨범 [FRR]이 제일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웃음). 제가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작업에는 조금 약한 편이라, 10곡이 넘어가는 정규를 만드는 게 제법 큰 숙제였거든요. 단지 곡 수만 채우는 게 아니라 앨범 전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저 나름의 기준이 있어서 신경 쓸 게 정말 많았어요. 힘들게 골몰했던 시간이었던 만큼 저한테도 확실히 의미 있게 남아 있는 앨범이에요.
그렇게 완성된 앨범 속 가사들을 들여다보면 늘 멋 부리지 않고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아요. 평소 가사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도 있어요?
가사든 어떤 글이든 읽기 쉽고 바로 이해되는 게 여전히 좋아요. 표현을 꼬아 쓰는 것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일부러 ‘있어 보이려고’ 멋을 부리는 듯한 인상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직관적으로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담백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창밖으로 갑작스러운 장대비가 내린다.) 비가 오나 봐요. 오늘 날씨가 종일 들쑥날쑥할 거라더니 정말 그렇네요. 여름을 좋아하세요?
네, 저는 다른 계절보다 여름을 더 좋아해요. 옷을 껴입지 않고 가볍게 다닐 수 있어서 편하고, 야외에서 자유롭게 운동하기에도 정말 좋거든요. 무엇보다 여름의 생기 있는 분위기 덕분에 좀 덜 우울해지는 느낌이에요. 해도 훨씬 길고요. 어릴 때는 캄캄한 새벽 시간이 괜히 좋았는데, 요즘은 해가 길게 떠 있는 낮에 힘을 많이 얻어요. 밤에는 나가도 가게 문도 다 닫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낮에는 언제든 나가서 다양한 활동도 즐길 수 있고, 사람들 모습도 둘러볼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도 즐기나 봐요.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모습이 있어요?
거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구경하는 게 재밌어요. 멋지고 근사한 분들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가끔 엉뚱하거나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도 관찰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30대에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어요. 어느덧 서른의 시간을 꽤 지나왔는데, 그때 바라던 모습에 가까워졌나요?
막 바쁘게 쉼 없이 사는 편은 아니니까, 나름 느긋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일정으로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게 체질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제 성향을 보면 의지도 그리 강하지 않고 스트레스에도 취약한 편이에요. 그래서 방어 기제로 회피하는 경향이 좀 강한데, 그렇다고 그런 삶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요. 부모님과의 관계나 회사와의 일처럼 피할 수 없는 관계는 온전히 감당하더라도, 굳이 안 봐도 되는 관계나 소모적인 일은 억지로 이어가지 않고 잘 피하는 편이죠.
스스로에게 맞는 거리를 잘 만들어가는 편이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관계나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가끔 ‘내가 만약 직장인으로서 회사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해요. 회사는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제 성격도 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변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한편으로는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늘 머릿속에 있고요. 물론 주변 친구들 직장 얘기 들어보면 ‘아, 나는 진짜 안 맞겠다.’ 싶어서 금세 마음을 접지만요(웃음).
그럼 오랫동안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와요? 직업의식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이자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인 거죠. 그리고 그 직업의식과는 별개로, 한 사람의 일생에는 ‘전성기’라는 시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마흔이 되기 전에는 그런 좋은 작업물을 하나쯤 또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전성기라는 건 그 순간에는 잘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죠지 씨에게는 그런 시간이 이미 있었다고 느끼세요?
제 입으로 전성기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정규 앨범 [FRR]을 만들 때 제 에너지를 제일 많이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저만의 색깔이 가장 깊게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정규 앨범 발매 당시에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가 될 것 같다.’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처럼 EP 형태로 호흡을 풀어내는 것이 가장 잘 맞는 방식이에요?
그렇진 않아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싱글 단위로 작업하는 게 저한테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나한테 ‘잘 맞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또 조금 다르잖아요. 정규는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싱글은 또 너무 가벼운 감이 있는데, EP가 리스너에게 다가가기 딱 좋은 무게감 같아서 요즘은 EP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반면에 싱글이 저한테 잘 맞는다고 느낀 건, 제가 아무래도 짧은 호흡으로 속도감 있게 만드는 작업을 더 잘 해내기 때문인 것 같고요(웃음).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셨지만,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자신을 의심하거나 좌절했던 순간도 있었나요?
있었죠. 가끔 스스로 ‘아, 나 노래를 왜 이렇게 못하지?’ 싶을 때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서 피지컬이 떨어지는 건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나.’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예전에는 하루 만에 곡 작업을 끝내곤 했거든요. 낮에 시작해서 새벽 2시쯤 되면 딱 한 곡이 완성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1절 정도 만들고 나면 ‘오늘 할 만큼 했다’ 싶어요. 아무래도 집중력이 많이 짧아진 거죠.
신체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사실 요즘은 집중력을 흐리는 외부 요인들도 한둘이 아니잖아요.
맞아요. 요즘 세상이 우리의 몰입을 너무 쉽게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릴스나 쇼츠 같은 콘텐츠에 시선을 너무 많이 빼앗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계속 핸드폰을 쥐게 되잖아요. 곡 작업을 할 때 터져 나오는 도파민보다 다른 매체가 주는 즉각적인 자극이 더 크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가요. 그럴 때 참 힘들죠. 사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스마트폰 없이 2G 폰으로 전화나 문자만 쓰며 살았거든요. 딱히 필요성을 못 느꼈고, 학창 시절에도 옷 욕심 같은 것 없이 누나 옷을 물려 입을 정도로 무던했고요. 돌이켜보면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이 무언가 하나에 깊게 몰입하는 힘이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몰랐던 자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 부분도 있어요?
생각보다 스스로가 꽤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어릴 때는 ‘외롭다’라는 감정 자체를 전혀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남들이 외롭다고 말을 해도 그게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공감을 못 했는데, 근래 들어 혼자 가만히 있다 보면 ‘아, 이게 외롭다는 거구나.’ 하고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느낀 지 얼마 안 된 감정이에요.
그렇게 새롭게 느끼게 된 외로움이나 정서적인 변화들이, 만드는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을까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은연중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건 억지로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인스타그램 피드만 들여다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읽히는 것처럼, 그림이든 음악이든 자신이 직접 만드는 창작물에는 본인의 상태나 정서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가수 저스틴 비버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로 ‘적어도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 같아서.’라고 하시기도 했죠.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정말 스스로에게 거짓이 없는 사람 같아요. 저스틴 비버의 앨범을 초창기부터 순서대로 쭉 들어보면, 시기마다 본인이 깊게 빠져 있는 진심을 음악이나 가사로 굉장히 직설적으로 내비치거든요. 자신이 원하는 페르소나를 굳이 만들어서 보여주는 느낌이 아니에요.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그 당시 자신이 느끼는 날것 그대로를 전면에 내세워서 툭툭 던지듯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말 솔직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그런 솔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죠지 씨 역시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네, 비교적 솔직한 편이에요. 저는 겉치레로 돌려 말하기보다는 조금 더 직관적이고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선호하거든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아,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이거지?’ 하고 정리하며 끼어들 때도 있고요(웃음). 상대에게 제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편인 것 같아요. 물론 그 솔직함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면 조심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요.
(창 밖에서 작은 새끼 고양이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머,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몇 마리가 자주 와요. 새벽에 작업하다가 밖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안을 들여다보길래, 하루는 들어오라고 창문을 열어줬더니 하악질이 장난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현재 반려묘 ‘찡코’와 함께 지내시기도 하죠. 오늘은 공교롭게 강아지 티셔츠를 입고 오셨네요.
그러네요(웃음). 그런데 저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긴 해요.
어떤 점 때문에요?
서로 관심은 있는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그 느낌이 좋더라고요.
공감해요. 각자 자기 할 일 하다가, 마음 맞을 때 서로 만지고 안기는 매력이 있죠(웃음). 이번 호가 음반을 주제로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는데요. 혹시 살면서 처음으로 구매했던 음반이 기억나요?
생각해 보면 좀 웃기긴 하는데…(웃음). 제가 직접 들으려고 산 건 아니고, 누나 생일 선물로 사줬던 CD가 떠올라요. 그룹 ‘가비엔제이Gavy NJ’ 음반이었어요. 누나가 평소에 그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홈플러스에 갔었는데, 마침 음반 매장에 CD가 보이길래 누나 주려고 제 돈으로 사서 선물해 줬죠.
하하. 아주 뜻밖의 첫 음반이네요. 주로 음반을 살 때 먼저 살펴보는 요소가 있다면요?
저는 앨범 아트를 가장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앨범 아트워크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게 돼요. (옆에 있던 LP를 집어 들며) 이 앨범도 표지의 아트워크가 예뻐서 산 앨범이에요. 한번 보실래요?
무척 예뻐요. 요즘도 음악을 실물 음반으로 듣는 즐거움을 종종 누리세요?
사실 제 차가 좀 옛날 모델이라 처음엔 블루투스가 아예 안 됐거든요. CD만 재생되는 차라,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려고 어쩔 수 없이 CD를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체인저에 한 번에 들어가는 CD가 6장뿐이라 매번 갈아 끼우는 게 번거로워서, 지금은 블루투스가 되도록 마개조를 해두긴 했지만요(웃음). 그런데 CD로 음악을 듣는 특유의 맛이 확실히 있었어요.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쉽게 스킵을 못 하니까, 처음엔 취향에 살짝 안 맞아도 앨범 전곡을 끝까지 들으면서 정이 들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 그 음악에 애착도 깊어지고요. 또 앨범 커버만 보고 예뻐서 무작정 샀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약간 ‘포켓몬 띠부띠부씰’ 뽑는 것 같은 랜덤한 재미도 있었죠(웃음).
그런데 CD가 여섯 장이나 들어가요? 제 차는 하나씩만 넣을 수 있던데… 제가 훨씬 옛날 차인가 봐요. 블루투스도 아직 안 되거든요.
아직까지요? 완전히 아날로그네요. 혹시 차 번호판이 아직 초록색인가요?
맞아요(웃음). 부모님께 물려받은 20년 넘은 차라 아직 초록색 번호판이에요.
아, 그러면 충분히 그럴 만하네요(웃음).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CD를 갈아 끼우기가 위험하니까, 꼼짝없이 앨범 한 장만 듣거나 라디오를 틀곤 해요.
라디오 좋죠. 저도 라디오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던 프로그램도 있었겠어요. 유독 기억에 남는 방송이나 DJ는요?
이금희 DJ가 진행하셨던 라디오도 들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았고요. 그런데 저는 음악만 주로 나오고 정형화된 멘트가 깔끔하게 이어지는 방송보다는, 조금 더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수다 떨듯 이야기 나누는 방송을 더 선호해요. 김창완 DJ의 방송도 좋아하는데, 정해진 대본대로 읽기보다 본인의 진짜 언어로 부드럽게 이야기 건네는 듯한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리움과 지나간 것에 대한 애착이 내 음악에 가장 많이 묻어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요즘 특별히 그리워하는 시절도 있어요?
저는 사실 늘 옛날이 좋아요. 미래는 아무래도 늘 불안하지만, 지나간 일은 당시엔 아무리 힘들고 우울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답게 기억되잖아요. 아련하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니까 저는 과거의 시간들이 늘 좋더라고요. 요즘은 고등학생 때 교회 친구들과 천진하게 어울려 놀던 때나, 20대 초중반에 주머니는 가벼웠어도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과 뭉쳐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요.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연애의 순간들도 그렇고요. 그런 기억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요.
과거를 자주 돌아보는 편이라면, 언젠가 지금의 시간을 떠올릴 날도 오겠죠. 그때 가장 생각날 장면은 무엇일 것 같아요?
최근에는 모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복작복작 놀았던 기억이나, 얼마 전에 다 같이 바다로 놀러 갔던 일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에 바다에 다녀왔던 것도 참 좋았거든요. 아마 훗날에도 그런 소소한 장면들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