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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진 — 공예가
스튜디오 ‘자연紫煙’의 공예가 조희진은 매일 동그란 반죽을 빚는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흙반죽은 수십수백 개, 때로는 수천 개가 되어 서로 이어지거나 거리를 두며 하나를 이룬다. 그건 어떤 법칙이나 기준을 따른 게 아니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손이 움직였을 뿐이다. 우리네 삶이 눈에 보인다면 아마 그의 작품 같지 않을까. 많은 것을 주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시간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나의 한쪽 어깨를 내어주다가도 또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는 모습 말이다. 조희진이 만든 세계에서 삶을 이루는 것들을 헤아린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서촌 거리에 공예가의 작업실이 숨어 있었네요. 테이블 위에 동그란 조각들이 한 움큼 놓여 있는 걸 봤어요.
자리에 흙반죽이 가득하죠? 3월부터 한 달간 작업실 근처, ‘어피스어피스’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라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건 바둑판이랑 바둑알인데 모두 흙으로 만들었고 바둑알은 반죽 표면을 깎아서 일부러 각을 냈어요. 그러니까 더 예쁘더라고요. 만져보고 싶고, 이따가 작업 과정을 한번 보여드릴게요.
좋아요. 제 앞에 희진 씨가 만든 오브제를 컵받침과 트레이로 써서 차를 내어주셨어요. 반죽들을 이어 붙인 모습이 아름다운데, 차는 자주 드세요?
네. 작업하면서 즐겨 먹어요. 커피도 좋아하니까 가만 보면 마시는 걸 다 좋아하나 봐요. 술도 좋아하고(웃음).
어? 저도요(웃음). 차에서 선명한 노란빛이 도네요.
이게 무화과잎 차예요. 은근한 단맛이 돌아서 마시기 좋더라고요. 따듯할 때 드셔보세요.
앞서 살짝 들은 전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요. 그간 흙으로 크고 작은 입체물을 주로 만들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선 평면물을 선보인다고요. 전시 이름도 ‘있는 그대로 보기: 평면에 누워’죠.
저는 특별한 의도나 목적을 갖고 살아가진 않는데요. 그게 작업에도 자연스레 묻어나와요. 평면물을 만들기 시작한 건 단순히 마음이 그쪽으로 흘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과정과 경험 속에서 배우게 된 게 많았어요. 그게 나한테만 머물지 않고 전시를 통해 모두와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 거죠.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제가 공예에는 문외한이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생을 얻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비슷한 구석이 있을 테니까요. 평면물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꼭 전하고 싶었던 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순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입체와 다른 평면 작업의 특징과 그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외부의 통제는 뭘까요?
입체는 동그란 흙반죽을 이어 붙일 때 사방으로 엉켜 있는 듯한 모양이라 조각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 평면에서는 의지할 필요가 없죠. 반죽의 한 면이 바닥에만 붙어 있으면 홀로 서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다른 접착제 없이 흙이 가진 수분으로만 한 점 한 점 연결하는데 그것들이 가마 안에서 소성을 거치거나 어떤 충격을 받으면 분리되어 버려요. 가마에 넣을 땐 붙어 있던 게 깨지거나 갈라져서 나오는 것,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뭔가 불편한 거예요. 그걸 계속 곱씹어 보니까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헤어짐이나 단절을 겪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해 보였죠. 사실 처음부터 아무런 의도 없는 행동으로 이루어진 건데, 외부 영향을 통제하지 못해 바라던 걸 얻지 못했다는 착각에서 오는 거슬림인 거예요. 그 환상에서 깨어나니까 가마에서 반죽이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고유하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자유로움을 얻은 거죠.
그 이야기는 특별한 구상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또 멈추는 대로 작업한다는 건가요?
물론 이 컵받침처럼 생활에서 사용하는 건 적당한 크기나 기능을 고민해야 하고, 그게 공예품의 특징이자 작업으로 먹고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에요. 하지만 옆에 둔 트레이는 자연히 완성된 거예요. 분명한 쓰임을 고려하며 만들지 않았고 그저 이 순간에 쓰기 적당할 것 같아서 티폿을 올려두니 트레이가 된 거죠.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할 때, 그래도 입체물은 중심이 서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손보다 눈이 먼저 간다면 평면은 다른 감각보다 압도적으로 손이 앞서요. 손으로 이어 붙이다가 맨 마지막에 눈으로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살펴보죠.
무아지경과도 같은 거네요.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기능을 고민하며 작품을 만드는 건 사람이 서 있거나 걷는, 그러니까 살아가는 행위를 하는 순간이라면 손을 따라가며 작품을 만드는 건 누워 있을 때 모든 생각이 동시에 펼쳐지는. 의식의 영역 같은 순간이에요.
바라보는 관객이 되어 생각해 보고 싶어요. 입체물은 어디서 어떻게든 볼 수 있지만, 평면은 무엇을 응시해야 하는지가 명확해 보이잖아요. 그게 제한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요.
만드는 사람이 제한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듯 보는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입체는 면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 보듯 꼼꼼히 뜯어보게 된다면, 평면은 보이는 한 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요.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저마다 자유로이 해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준비한 작품들을 곧 선보일 일만 남았는데, 지금 기분은 어때요?
음, 저는… 네, 행복합니다(웃음).
(웃음) 잠깐 많은 생각이 스쳐 간 듯 보였는데요.
솔직한 나를 보여주는 일에 유난히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고 그저 마음이 편안하길 바라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하루를 보낸 뒤에 잘 자는 게 제일 행복해요. 잘 자기 위해서 하루를 사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어릴 때는 그게 힘들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되나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두려워지고 그러니까 게을러지게 되잖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완벽해서 편하기보다 그냥 편안해져야겠다는 마음으로, 큰 고민 없이 행동하고 그 뒤에 찾아오는 생각에서 배움을 얻어요. 이 대화를 전시가 끝난 후에 책으로 다시 읽게 될 텐데 그때의 저에게 편안해졌는지 묻고 싶네요.
그때의 답도 들려주세요. 그런데 저기 있는 게 가마죠? 작업 과정이 궁금해졌어요.
점성이 있는 흙을 작게 떼어서 동그랗게 만드는데, 정해둔 기준이나 무게 같은 건 없고 적당하다고 느끼는 정도로 해요. 반죽 조각은 작을수록 쉽게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마르면 붙일 수가 없어서, 한번 붙이기 시작하면 가마에 넣기 전까지 멈추지 못해요. 어느 날은 품 안에 들어올 만한 입체물을 만들기 위해 열두 시간 동안 붙인 적도 있는데, 제가 하는 작업에서 성실함이 중요한 요소라고 느끼는 이유예요. 그렇게 성형을 마치면 건조한 뒤 가마에 넣고 800-850도에서 초벌로 한 번, 유약을 발라 1250도에서 재벌로 두 번 구워요. 물렁하던 반죽이 단단하게 변해 가마에서 나오면 반죽들의 경계나 모서리를 매끄럽게 연마하고 마무리 짓죠.
혹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동그라미가 얼마나 필요한지 세어본 적 있나요?
저도 너무 궁금해서 딱 한 번 세어봤어요. 손 두 개를 붙인 정도 크기의 작업물에 천 개가 넘게 붙었더라고요.
그만 한 거에 천 개나 필요하다니….
손과 흙이 맞닿아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을 ‘핸드빌딩’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과정이 많아서 오히려 좋아요. 성취감이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안 보일지라도 저는 하나의 반죽이 전체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지켜봤잖아요. 그리고 흙은 상태나 수분감, 색깔이나 크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데 그 과정마다 내가 해야 할 몫이 있어서 좋고요.
매일같이 작업을 반복하는 희진 씨의 모습은 수련에 임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해요.
(잠시 고민한다.) 저는 모든 사람이 수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수련 중인 게 아닐까요? 저에게는 단지 그 모습이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날 뿐인 거죠.
중심이 단단한 마음처럼 느껴지는데요. 공예와의 첫 만남에 대해 듣고 싶어요.
미술 입시를 했는데 점수에 맞춰서 공예 디자인, 그중에서도 도예과에 진학한 거예요. 솔직히 저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뭘 원하는지 몰랐어요. 원하는 게 없는데 하나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오니까,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살아가려면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술을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대학 수업이 전혀 재미있지 않았죠. 흙을 만지는 건 낯설고 몸이나 옷에 지저분하게 묻는 것도 싫고, 교수님들은 물레로 계속 똑같은 걸 만들라고 하니까 지겨웠어요. 돌아보니 그게 기본기를 닦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는데도요. 그때는 청개구리처럼 “내가 이걸 왜 해야 해?” 하다가 학교도 다섯 번 가고 휴학해 버렸어요.
다섯 번이요? 지금의 성실한 모습과는 꽤 다른 느낌의 희진 씨인데요(웃음).
그 뒤엔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찾아서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트를 1년 정도 했는데 정말 힘든 거예요. 어떤 일이든 똑같겠지만,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인형 만지듯 입히거나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밤낮 없는 생활 방식도 맞지 않고 체력도 부족했어요. 그때 ‘나는 단지 살고 싶구나.’라는 걸 확 느꼈어요. 단순히 살고 싶은 것밖에 없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거죠. 교수님이나 친구들 중엔 절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흙이 놓인 책상 하나 주더라고요. 흙이랑 마주 앉아 이러고저러고 노는 게, 그게 재미있어서 작업이라 불릴 만한 것까지 이어졌어요.
일을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할 건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대할 건지가 우선인가 봐요. 희진 씨 작품에서는 금방이라도 꿈틀댈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져요. 사람 손이 닿아 만든 게 분명한 유연함도 보이고요.
흙이라는 재료가 저한테는 유연한 존재로 느껴지거든요. 그걸 손으로 매만지면 나이기에 나올 수 있는 고유한 형태들이 보여요. 작업할 때 어디서 영향을 많이 받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꼈던 감정 같은 것들요.
사실 아까부터 시선이 가던 게 팔에 새긴 타투였어요. 짙은 청색 빛깔이 작품과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건 연꽃이고 여긴 문어인데 예뻐서(웃음)….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타투를 새길 때는 남들과 좀 다르고 싶었나 봐요. 우리는 이미 다 다른 존재이고 고유한 의미를 가진다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죠. 저는 그걸 흙에서 배웠어요. 흙을 떼어 동그랗게 만든다고 해도 전부 똑같지 않아요.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만들 때마다 전부 다른 원이 탄생하는 거예요. 그 고유한 것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게 우리 삶과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그저 그때의 순간이었구나, 그때의 형태였구나 싶죠.
“흙은 현재의 마음과 태도를 거울처럼 비춰주며 삶에 대한 무언가를 알려주는 스승이자 친구”라고도 말했죠.
흙은 말이 없어요. 내가 맞춰주기 위해 과정에 적절히 개입해야 하는데 흙은 그런 제 방식을 받아들이고 기다려 줘요. 8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되려 흙을 만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흙에 게 배운 걸 삶의 순간에서 떠올려보고, 앞으로도 존재하는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네요.
그건 매일 노력해야 되는 거죠, 잘하게 됐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되니까. 나 자체로 충분하고 나답게 존재한다는 걸 저 스스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아마 죽기 전까지 노력해야 할지도 몰라요.
공예를 업으로 삼으면서 쓰는 이름 ‘자연’과 ‘이스트스모크East Smoke’의 의미가 궁금해요.
한자로 ‘자주색 자 紫’에 ‘연기 연 煙’을 먼저 썼고 자주색이 동양을 뜻한다고 해서 영어로 바꿔본 거예요. 뿌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인지 예전부터 동양 문화나 예술에 존경심이 있어요. 불교 미술처럼 동양에서 발달한 종교 미술을 볼 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믿음만으로 살아가고 그 바탕으로 만든 게 상이 되고 또 그걸 보면서 다시 믿음을 느끼곤 하잖아요. 거기다가 연기는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점에서 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느껴졌어요. 그 모든 걸 아울러 지은 이름이에요.
8년 가까이 그 이름을 쓰고 있는데 어때요? 아쉬움이 느껴지거나 혹은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갈 수도 있고요.
음… 이제 제가 어떻게 불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보다 일상 속 더 작은 것들이 중요하죠. 예를 들면 편안하게 잘 자는 거.
그럼 사람은 왜 일을 하며 산다고 생각해요? 설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잘 자기 위함인가요(웃음).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안 움직이면 밤에 잠도 잘 안 오는 거 아세요(웃음)? 잘 자기 위해 남은 시간을 움직이는 것처럼 잘 죽기 위해 사는 것 같아요.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 어떠한 끈적이는 감정도 없이 오늘 하루의 끝, 인생의 끝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요. 그리고 사람은 행동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했네요. 희진 씨 일상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요즘은 일과를 어떻게 보내요?
이제야 저한테 잘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았어요. 아침 7시쯤 작업실에 도착해 오후 12시나 1시쯤 퇴근해요. 작업이 생활에 가깝기 때문에 심심할 때마다 매일 작업실에 나와서 오래 머물렀는데, 몸에서 적신호가 오더라고요.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 작업하는 걸로 바꾸니 제 삶의 다른 부분도 지킬 수 있었어요. 퇴근 시간이 되면 이화동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서 밥도 해 먹고 산책도 해요. 경복궁 돌담길과 창덕궁을 지나서 안국도 걷고요. 봄에는 사직단 걷는 걸 좋아해요. 작업실 근처에 구경할 만한 카페나 공간도 많지만 산책 외에 잘 돌아다니는 편은 아니에요.
봄이 다가오니 산책하는 걸음이 가볍겠어요. 희진 씨 마음이 흙 다음으로 많이 들여다보는 걸 꼽아볼까요?
공원에 누워서 보는 구름이요. 집 근처에 있는 낙산공원에 하루에 한 번씩은 가요. 어떤 때는 두 번도 가고요. 아, 그리고 운동으로 태극권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도 푹 빠져 있어요.
태극권이라… 낯설지만 재미있게 들리는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몸을 분주하게 움직여서 땀을 빼는 게 아니라 중력에 순응하면서 몸을 이완하는 운동이에요. 만약 일상에서 몸 어딘가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건 그 부분에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래요. 살아야 하니까 나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며 경직되어 있는 거라고요. 저도 서 있거나 걸을 때, 심지어 누워 있을 때도 몸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던 터라 태극권을 시작하면서 중력에 순응하고 힘 빼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정적인 운동인데 저랑 잘 맞아서 재미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혼자 고요하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에요. 왜 그런지 생각해 봤는데, 누군가와 있을 땐 스스로 ‘조희진’이라는 사람인 게 인식되잖아요. 나를 그렇게 보는 이가 곁에 있고요.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각자의 이름보다 앞서서 그저 사람이기에 모두가 똑같은 정체성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인식하지 않아도 되겠죠. 혼자 있을 땐 그게 가능해요. 구름을 보고 있을 땐 구름만 보일 뿐이지, ‘조희진이라는 사람이 구름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순간들을 만끽하고 싶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잘 선택한 것 같은데요. 만약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해봤나요?
(웃음) 한번 해봤어요.
뭔데요?
최근에 연기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앞선 이야기와 조금 연결되는데요. 사람은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사회적으로 역할을 정해서 조화롭게 살려고 하잖아요. 스스로 정하기보다 요구받는 기준에 맞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할 수 있는 연기로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체험해 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은 거죠. 지금은 잘 몰라도 체험해 봤기에 나와 타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
흙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일과 삶으로, 죽음과 다음 생까지 이어졌네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볼게요. 나에게 주어진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이번 생은 흙과 함께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겠구나 싶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요. 꼭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꼭 이것만 하겠다는 마음은 내려두고 어떤 모습으로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오랫동안 흙을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