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이어 붙인 세계

조희진 — 공예가

스튜디오 ‘자연紫煙’의 공예가 조희진은 매일 동그란 반죽을 빚는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흙반죽은 수십수백 개, 때로는 수천 개가 되어 서로 이어지거나 거리를 두며 하나를 이룬다. 그건 어떤 법칙이나 기준을 따른 게 아니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손이 움직였을 뿐이다. 우리네 삶이 눈에 보인다면 아마 그의 작품 같지 않을까. 많은 것을 주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시간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나의 한쪽 어깨를 내어주다가도 또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는 모습 말이다. 조희진이 만든 세계에서 삶을 이루는 것들을 헤아린다.

“흙은 현재의 마음과 태도를 거울처럼 비춰주며 삶에 대한 무언가를 알려주는 스승이자 친구”라고도 말했죠. 

흙은 말이 없어요. 내가 맞춰주기 위해 과정에 적절히 개입해야 하는데 흙은 그런 제 방식을 받아들이고 기다려 줘요. 8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되려 흙을 만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흙에 게 배운 걸 삶의 순간에서 떠올려보고, 앞으로도 존재하는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네요. 

그건 매일 노력해야 되는 거죠, 잘하게 됐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되니까. 나 자체로 충분하고 나답게 존재한다는 걸 저 스스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아마 죽기 전까지 노력해야 할지도 몰라요.

 

공예를 업으로 삼으면서 쓰는 이름 ‘자연’과 ‘이스트스모크East Smoke’의 의미가 궁금해요.

 한자로 ‘자주색 자 紫’에 ‘연기 연 煙’을 먼저 썼고 자주색이 동양을 뜻한다고 해서 영어로 바꿔본 거예요. 뿌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인지 예전부터 동양 문화나 예술에 존경심이 있어요. 불교 미술처럼 동양에서 발달한 종교 미술을 볼 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믿음만으로 살아가고 그 바탕으로 만든 게 상이 되고 또 그걸 보면서 다시 믿음을 느끼곤 하잖아요. 거기다가 연기는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점에서 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느껴졌어요. 그 모든 걸 아울러 지은 이름이에요. 

 

8년 가까이 그 이름을 쓰고 있는데 어때요? 아쉬움이 느껴지거나 혹은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갈 수도 있고요. 

음… 이제 제가 어떻게 불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보다 일상 속 더 작은 것들이 중요하죠. 예를 들면 편안하게 잘 자는 거. 

 

그럼 사람은 왜 일을 하며 산다고 생각해요? 설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잘 자기 위함인가요(웃음).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안 움직이면 밤에 잠도 잘 안 오는 거 아세요(웃음)? 잘 자기 위해 남은 시간을 움직이는 것처럼 잘 죽기 위해 사는 것 같아요.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 어떠한 끈적이는 감정도 없이 오늘 하루의 끝, 인생의 끝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요. 그리고 사람은 행동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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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