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그림 작업실

그림작가 류주영, 강준석

두 사람의
그림 작업실

제주 애월의 카페에서 소녀의 얼굴이 그려진 손바닥만 한 그림을 보게 됐다. 작은 그림 속의 소녀는 포근한 색과는 대조적으로 슬퍼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스치듯 한 번 보았을 뿐인데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됐고 그가 다른 작가와 함께 조천의 바닷가 마을에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이 좋아 걷고 싶어지는 가을, 두 사람을 만나러 조천으로 갔다.

거제도와 부산에
다리가 놓이기 전

류주영 작가와 강준석 작가는 그룹 전시에서 서로의 그림을 통해 먼저 만났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성별도 모른 채 그저 그림이 좋아서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만난 거제도 여자와 부산 남자의 만남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때 거제도와 부산은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 얼굴을 보려면 두 시간 반을 오가야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작업실과 살 집을 찾던 중 서울과 제주도 두 곳이 떠올랐고 처음은 서울에서 반년을 지냈다.

서울에서 지내보니 제주도로 가고 싶은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여행으로 다녔던 제주가 좋아 두 사람은 2013년 이른 봄 제주도로 내려왔다. 처음엔 애월의 유수암리에 작업실을 구해 일 년을 살았다. 하루는 느리게 흘렀지만 일 년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났다. 정착할 수 있는 집과 작업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 지금의 농가 주택을 찾은 뒤에는 더디지만 하나하나 자신의 속도로 직접 고쳤고 늦여름 조천으로 이사했다.

부드러운 곡선처럼

그들의 집은 그림의 첫인상과 닮았다. 부드러운 곡선처럼 따뜻하고 소박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돌담에 둘러싸인 아담한 마당에서는 정리가 덜 된 의자와 나뭇가지조차도 자연스러운 소품처럼 보였다. 집 지키는 개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붙은 가운데 공간은 그림을 모아두고 때때로 손님을 맞이하며 두 사람이 쉬면서 차도 마시는 곳이다. 세모 천장의 서까래를 그대로 살려내 아늑한 인상을 준다. 곱게 기른 식물과 곳곳에 걸려 있는 작고 큰 그림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인 듯 집과 어울렸다.

두 사람은 가운데 공간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업실을 따로 두어 공간을 분리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류주영 작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언제나 가까이 있어 익숙한 그림보다는 사진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잠시 다른 길로 갔지만 다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는 놀이처럼 가깝고 익숙했던 그림이 직업이 되니 어떤 날은 붓을 잡는 것조차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다는 강준석 작가는 그림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림을 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그림을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서양화를 전공하게 됐다. 류주영 작가와는 반대로 하루에 정해 놓은 시간과 양의 그림을 그린다. 낮에 일이 있는 날에는 밤에라도 정해놓은 시간을 지키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얘기할 만큼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을 유지하며 힘과 위로를 주고받는 듯 보였다.

여행을 통해 찾은
익숙함

제주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달라진 점은 그림에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전달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그림에는 나무, 숲, 곤충, 동물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걷기 좋은 계절이 찾아오면 제주의 곶자왈, 오름, 숲으로 걷는 여행을 나선다. 마음으로만 해 보고 싶었던 스노클링도 제주로 여행 온 지인 덕분에 시작하게 됐다. 우도에서 바닷속을 처음 들여다봤고 바다도 숲과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여름을 기다린다. 그런 시간이 쌓여 그려낸 그들의 그림은 집 안에서 보아도 좋지만 나무 옆이나 숲의 어딘가에 두어도 어울릴 것만 같다.

그들은 가끔 그림 작업을 위해 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드로잉을 큰 그림으로 옮기고 색을 입힌다. 올해 두 달을 보냈던 하와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의 옛 모습과 닮아 있는 어떤 섬이었다고 한다. 겨울이 없는 제주로 생각될 정도로 식물의 모습도 닮아 그만큼 애정이 갔다고. 일상을 벗어나려고 여행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결국 익숙함을 찾고 반가워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됐다. 

제주에서 지내는 시간이 쌓이는 만큼 일상과 그림 사이의 균형도 찾아가고 있다. 천천히 걸으며 보아야 느낄 수 있는 것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폐가나 버려진 공간의 벽처럼 장소나 공간에 제약이 없는 곳에서 언젠가 전시를 열고 싶다는 두 사람의 그림이 기다려진다. 그들을 만나 얘기 나누고 그림을 보고 나오니 새삼 제주의 숲이 걷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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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 방지연 사진 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