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이 응시하던 도시에는

이슬아 — 페인터
예술로 채집한 기억들

누군가는 우리가 사는 곳을 삭막하고 외로운 회색 도시라 부른다. 엇비슷하게 네모난 건물과 콘크리트 빌딩들, 깊숙이 내려앉은 어둠과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이유라 말하며. 도시의 일상을 캔버스에 옮기는 페인터 이슬아의 두 눈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풍경을 그린다. 고유한 삶이 스미는 이야기를 응시하는 그의 그림에서는 이 큰 도시를 채우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력이 흐른다. 섬세한 표현으로 일상의 목격담을 작품으로 연결해 내는 이슬아에게 자신을 이룬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 답에서는 낯선 도시에서 비롯된 산뜻한 바람 내음이 난다.

반가워요. 얄궂게 봄비가 내리는 날에 만나게 됐네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그림 그리는 이슬아입니다. 여기는 저와 연인이 함께 꾸려나가는 그래픽 스튜디오 ‘그래픽캐뷰러리Graphicabulary’의 작업실인데, 한편에 제 그림 작업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비가 많이 와서 오는 길에 고생하셨죠? 어제는 정말 날이 좋았거든요. 작업실 채광이 좋은 편이라 오후 네다섯 시 정도 되면 저 안쪽까지 노랗게 물드는 게 참 아름다운데, 아쉽네요. 테라스에 꾸려둔 작은 텃밭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대신 비 오는 날의 차분한 작업실을 볼 수 있다는 걸 위안 삼을게요. 텃밭에는 무얼 키우고 있어요? 

로즈마리나 바질 같은 허브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먹으려고 키우는 거예요(웃음). 지난 주말에도 스콘을 만들어 먹었어요. 유독 달콤한 걸 먹고 싶은 날에는 바나나 케이크를 구워요. 집과 작업실이 자리한 이 동네를 오가는 것 외에 특별한 취미나 루틴은 없어요. 그림을 업으로 삼은 이후에 얻는 스트레스는 음식을 만들거나 베이킹을 하면서 푸는 것 같아요. 

 

원래는 나고 자란 부산에서 그림을 그렸죠. 서울 생활은 충분히 익숙해졌나요? 

동대문 근처로 전입 신고한 지 2년 반쯤 되었으려나요. 제가 살던 곳은 부산 남천동에 자리한 ‘삼익비치 아파트’였어요. 부산에도 높은 건물이 많지만 그 동네는 전혀 아니었거든요. 생활 반경이 넓은 편도 아니라 집 바로 앞에 있는 광안리를 보며 자연을 곁에 두고 지냈죠. 당시 그린 그림에도 바다가 전부예요. 생경한 이 동네에 잘 적응할 수 있던 이유는 주택가라 한적하고, 그때처럼 자연과 계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맘때 되면 아카시아 같은 꽃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봐요. 가을이면 감나무가 풍성해지고, 겨울이면 그 위에 눈이 쌓인 걸 보고요. 

 

미처 떨어지지 못한 감은 주황빛 알전구 같은데 그 위에 눈이 쌓이면 참 예쁘죠. 

맞아요. 부산은 눈이 잘 안 오니까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 새로운 동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새삼스레 다시 한번 계절을 깨닫고요. 내가 머무는 곳과 친하게 지내면서 애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곳에서 작업 중인 슬아 씨 모습을 상상하면 ‘파란색 작업복’이 떠올라요. 저기 의자에 걸린 거요. 

상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인데요. 저걸 입을 수밖에 없는 게 큰 그림을 그리면 조금만 움직여도 물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묻어요. 캔버스 곁을 지나가다가 묻고, 붓 빨다가 묻기도 하고요. 예전엔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서 적당한 작업복을 찾아 입었다면, 저 파란색 옷은 2년 전 도쿄에서 좋아하는 화방에 갔을 때 발견했어요. 얼룩덜룩 물감이 묻어서 많이 더러워졌죠? 하루 종일 저 옷을 입는 건 아니고 보통은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에 연필로 드로잉을 해요. 큰 그림을 채색해야 할 때 작업복을 입는 거죠. 

 

그렇군요. 누군가의 일터 혹은 집일 건물과 거리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잖아요. 엇비슷한 모양으로 늘어선 빌딩 속 사람들도 담고요. 도시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특별히 의식해서 그린 건 아니예요.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구상회화를 하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그대로 그림에 반영되곤 하죠. 부산에 머물 때는 바다나 자연만을 그렸던 것처럼요. 한번은 미국에 있는 미술관이 좋다던 친구들 말을 듣고 난생처음 뉴욕에 갔는데, 빛을 따라 시선이 닿는 곳곳의 색깔이 알던 것과 다르게 보이는 게 매력적인 거예요. 그리고 그 대도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별달리 할 일이 없으니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참 많더라고요. 커피나 술, 담배 그리고 휴대폰을 꼭 가까이 두거나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일상적인 모습이요. 다들 아파트나 빌딩처럼 네모난 공간 안에 머무는데, 누구는 바닥에 붙어 있고 누구는 공중에 떠 있기도 하다는 걸 알아채기도 했죠. 주어진 공간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큰 영감으로 다가왔어요.

관찰로 알아낸 재미있는 장면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다른 모습으로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걸 아세요? 저는 생김새나 거주지, 직업 등이 달라도 결국 사는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환경이 같아진다면 행동의 선택지가 더욱 비슷할 테니, ‘도시’에 사는 이들의 일상은 닮아 있을 거예요. 그 생각이 굳어진 게 뉴욕에서 머무르던 팬데믹 시절인데요. 당시 접촉 제한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니까 답답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왔어요. 공원이나 집 안에서도 테라스, 옥상 같은 곳으로요. 하루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지상철을 타고 있는데, 발밑으로 다들 자신의 집 옥상에 올라와 바람 쐬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고 괜히 웃음이 터졌죠. 

 

그게 사람이라는 존재의 귀여운 구석 같기도 해요(웃음). 서로 한없이 다르게만 보이다가도 어떤 날, 어떤 순간에는 똑같은 마음이 되곤 하니까요. 

그러니까요.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 바라보며 커피 마실 때 맞은편 아파트에서 저랑 똑같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매번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요(웃음). 

 

이후에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올라 친구와 나눈 대화를 계기로 ‘네모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시리즈를 그렸죠. 건물이나 풍경보다 그 안에 머무는 사람한테 더 집중한 작품인데, 어떤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마지막 입장쯤 들어간 거라 관람객이 우리 둘뿐인 그곳에서 깜빡거리는 도시의 불빛을 봤어요. 당시 저는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때마다 두서없이 그림에 창문들을 박아 넣던 때라, 그 아름다운 불빛을 보면서도 미적 혹은 미술사적인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죠. 무슨 색을 쓰면 저 까맣고 노란 걸 똑같이 그릴 수 있을까, 퍼머넌트 오렌지인가 프라이머리 옐로인가 하면서요. 근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저 불빛만큼의 삶이 있는 거야. 우리도 건너에서 보면 깜빡이는 불빛 중에 하나일 거야.”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창문 사이마다 저마다의 삶이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면서 그 불빛 뒤에 있을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그렸어요. 건너편 창문에 비치는 지친 도시인의 하루,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 마감에 쫓겨서 불을 끄지 못하는 누군가의 밤을요. 

 

어디 멀리 있는 장면들이 아니네요. 

지금의 나를 담은 자화상이자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직도 밤에 작업하거나 글을 쓸 때가 많은데, 작업실에 앉으면 창문 너머로 써미트호텔이 보이거든요. 동네는 조용하고 깜깜한데 그 호텔에 불이 하나씩 들어와요. 여기 혼자 앉아 있지만 어쨌든 저기에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덜 외롭죠.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을 흘려보내기도 하고요. 보는 분들도 비슷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관찰하고 꾸준히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그 대상에 애정이 있다는 의미로도 들려요. 

저도 잘 몰랐는데, 저에게는 그 대상이 ‘사람’인가 봐요. 가끔 친구들이나 가족, 특히 엄마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어요. 너는 사람이 참 차가운데 그림을 보면 따뜻하다고. 사람이라는 존재에 애정과 관심을 쏟는 게 바라는 삶의 방향인가 봐요.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그림과 가까이 지냈는지 궁금해져요. 

보통의 유년기처럼 부모님들이 미술이나 태권도, 수영 학원 보내듯 저도 일곱 살 때부터 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이어서 예고와 미대에 진학했으니까 일곱 살 때부터 그림을 놓아본 적이 없죠. 그림 그리는 걸 직업이라 부른 지는 이제 11년이 되었네요. 

 

작업 중 나무를 ‘그린다’고 말하지 않고 ‘심는다’고 표현하는 걸 보고, 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가요? ‘오늘은 몇 평짜리 건물에 창문 달았다.’거나 ‘소질 있으니 건축 회사에 취직해야겠다.’ 같은 장난도 하는데(웃음). 제 그림의 첫 단계는 즐겨 쓰는 검정색 노트에 드로잉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구성해 보는 거예요. 사람과 건물, 나무 등 요소들을 어디에 배치할지부터 어떤 시간대의 풍경인지, 그림자를 어떻게 넣을지 정하는 거죠. 그 구성이 완벽해 보여도 캔버스에 옮기다 보면 수십 번 좌절해요. 건물 하나를 그리더라도 여러 가지 색을 칠하고 또 덧칠하다 보니 마치 건물을 지어 올리는 듯한 심정이죠. 나무도 단숨에 쭉 그려서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붓으로 이파리를 하나씩 쳐요. 한 그루를 직접 심어 풍성하게 자라도록 가꾸는 기분으로 작업해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마음이에요. 

 

단순히 빗댄 게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담은 말이었네요. 슬아 씨를 성실한 관찰자이자 섬세한 표현의 페인터로 만든 건 스물다섯 살에 처음 떠난 배낭여행이 아닐까 싶은데,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2012년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아무 데서나 쓸 수 있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한 달 반 정도 머물 여행을 계획하는데,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진대요. 로밍은 너무 비싸길래 아예 휴대폰을 정지시키고 떠났어요. 아주 잘못된 결정이었죠(웃음). 여행 내내 종이 지도를 보고 다닌 데다가, 같이 간 동생과 각자 다른 곳에 갔다가 접선하려고 하면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건넬 방법도 없었어요. 미리 약속하더라도 초행길이라 휴대폰 없이 지키는 게 무척 어려웠고요. 결국 중간에 못 참고 114에 전화해서 휴대폰 좀 살려달라고 했죠(웃음). 사실 그 여행의 목적은 유명하다는 미술관에 최대한 많이 가보는 거였기 때문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거치면서 유명한 곳뿐 아니라 어디든 전시가 열려 있으면 들어가서 감상했어요. 그야말로 쏟아지듯이 그림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던 시간이었죠. 간접적으로 경험하던 걸,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니까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어요.

‘Too much caffeine’(2024)

잘 모르기에 오히려 거침없던 시절도 있죠. 그중에서도 여태까지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는 경험이 있다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시선을 경험했던 게 떠올라요. 작품은 물론이고 이 업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멋진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데요. 호크니는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려요. 저도 꽤 오랜 시간 해왔지만 번아웃처럼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지쳐 있던 시기가 두세 번 있었는데, 호크니는 끊임없는 에너지로 그림을 그렸죠. 저보다 앞서 영국을 여행한 친구가 길거리에서 호크니의 다큐멘터리 CD를 샀대요. 보니까, 캔버스 여러 개를 연결해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방식을 다룬 건데, 호크니 할아버지가 짐이 너무 많으니까 조수 한 명을 데리고 요크셔 지역으로 가요. 원하는 장소에서 먼저 드로잉을 하고 있으면 조수가 캔버스 여섯 개를 이어주거든요. 그럼 아침부터 해 지는 시간까지 내내 그리다가 오는 건데, 그 작업 방식이 너무나 특별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죠. 그가 선 자리에서 그가 본 풍경과 비슷한 장면들을 바라보니 어떤 마음으로 종일 그림을 그렸을지도 헤아려 보게 됐고요. 

 

떠나기 전, 당도하게 될 그곳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는 게 슬아 씨만의 특별한 여행법으로 느껴져요. 

아직도 생각나는 게, 어릴 때 엄마가 세계 각국을 정리해 놓은 백과사전 같은 걸 사 주신 적 있어요. 거기에 한 나라의 인구수부터 수도, 역사적인 사건이나 곳곳을 설명하는 사진과 글이 있었는데 그 책 보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종이 한 장 꺼내서 가고 싶은 나라나 도시 같은 거 적을 정도로요. 그런 시절이 있어서인지 아직도 어딘가로 떠날 때마다 도착지의 단편적인 정보를 미리 습득하곤 하죠. 생각해 보면 직접 돈을 벌어서 어릴 때 꿈꾸던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건 되게 큰 기쁨이에요.

‘Too much caffeine’(2024)

인스타그램에서 “물감도 만들어서 그리고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떠났던 때. 해가 지고 달이 차는 것만 쫓아다녔던 하루들.”의 시절을 회상한 걸 봤는데, 그땐 어딜 간 거예요? 

미국 서부로 떠난 로드 트립이었는데, 앞서 설명한 여행과는 좀 다르게 도피하듯 떠난 거였어요. 본격적으로 도시들을 그리면서 감사하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았지만 일이 많아지다 보니 조금은 지쳐 있었거든요. 아마 그때도 캠핑카 타고 미국 서부 사막을 여행한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본 후에 대뜸 결정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면허가 없어서 주변에 ‘운전만 해주면 내가 모든 걸 다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 하며 같이 갈 친구들을 구했어요(웃음).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을 달리다 보면 높은 건물이나 도시다운 곳을 전혀 찾아볼 수 없거든요.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책 읽거나 해와 달이 연이어 뜨고 지는 걸 바라보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죠. 어떤 길은 아무리 가도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고, 간간이 트럭이나 물류 열차가 지나가는 것만 목격하는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어요. 나를 복잡하게 만들던 것들이 시야에서 멀어지니까 생각이 정리되고 사람 마음이 단순해지더라고요. 생경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되려 앞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가 또렷해졌어요. 도시를 그리듯 그때 본 장면들도 그림으로 옮겼죠. 

 

눈으로 본 것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궁금해요. 

로드 트립 중에는 스케치와 요소들의 색깔을 체크해 두는 것만 할 수 있었어요. 모래가 햇살을 받아서 빛이 나면 정말 아름답거든요. 미숫가루 같기도 하면서… 곱고 또 화려하게까지 느껴지는 노란빛이에요. 그 빛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쿄를 경유했죠. 물감 안료를 파는 피그먼트 숍에 들르고 싶어서요. 몇만 가지 안료 중에서 한 가지 정확한 색을 만들기 위해, 제가 본 그 빛과 닮은 것들을 고르고 물감을 직접 개어내 만들며 작품을 완성했어요.

‘네모 안에 사는 사람’(2023)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다시는 볼 수 없는 찰나로 남지 않고, 슬아 씨 그림에서 영원이 되었네요. 지금도 여전히 일과 일상을 이유 삼아 다양한 나라로 떠나곤 하죠? 

맞아요. 사실 제 성향은 집순이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불쑥불쑥 찾아와요. 특히 바쁜 일을 마치고 한숨 돌릴 만하면 한눈팔고 싶어지죠(웃음). 요즘에는 그래픽 스튜디오 일로 해외 출장을 가는 일도 잦고요. 과거에는 외국에서 시간을 보낼 때 루틴이나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그날 하루를 허비하지 않도록 어딜 가야 하고 무얼 사야 하는지 정해두고, 그걸 꼭 지키려고 했던 거예요. 

 

만약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요? 

‘오늘 이거 해야 하는데…. 내일 끼워 넣어야 하나? 시간이 안 되는데….’ 하면서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태도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는데, 하루는 똑같은 고민을 하던 저에게 친구가 말했어요. “너 마음대로 해도 돼.” 시간이 빠듯하다든가, 밤이라 나가기 무섭다든가, 지금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 걸 말하면 전부 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라고 말한거죠. 사실이잖아요. 저는 직장인도 아니고 온전히 휴식으로 온 거라면 어떤 제약도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 말이 마음에 와닿으면서 뭔가 툭 해방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후부터는 잠시 떠나온 시간이라며 할 일을 해치우듯 전전긍긍하기보다 저 자신을 좀 풀어두려고 노력해요. 

 

분주해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요. 완전한 삶의 터전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닿은 곳이기에 그런 거 아닐까요. 곧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랬을 거예요. 여행과 돌아가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게 그림의 영감으로도 이어질 테니까 굳이 분리해서 바라보기도 했는데요. 내가 이방인이라 생각할수록 돌아왔을 때 좀더 힘든 것 같아요. 뭔가 빼앗긴 것처럼 헛헛하거나 그립기도 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리기도 했어요. 휴식뿐 아니라 일로도 해외에 나가는 게 잦아진 후에는 별다르게 구분하지 않죠. 눈떴을 때 다른 장소일 뿐, 어디서든 똑같은 하루가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시에 가서 꼭 하는 게 슈퍼마켓에 가보는 거예요. 슈퍼마켓이야말로 그 동네의 삶을 보여줘요. 무얼 먹고 마시는지, 어떤 재료들이 나는지 둘러보는 게 좋아요. 특이한 거 있으면 한번 사 먹어보기도 하고. 이외에는 동네를 걷거나 공원에 앉아 있는 거니까 서울에서 보내는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네요. 

‘Things in city’(2021)

슬아 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거라는 생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사람이 한자리에만 고여 있지 않고 바깥으로 나서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을 거예요. 어릴 때는 그게 크게 중요한 거라고 여기지 못했는데, 해를 거듭하며 나이가 들고 이 직업을 좀더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달라졌어요. 보는 것만 보고, 좋아하는 것만 향유하는 게 어쩌면 편안하게 사는 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시야를 새롭게 넓혀보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분명히 넓어져요. 그동안 제가 그리는 이 작업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저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해왔어요. 그럼에도 계속 의식하고 있는 건 이 작업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봤을 때 ‘아, 이거 내 이야기이기도 하지.’라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원하기 때문에, 세상을 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되는데요. 도시의 일상을 다뤄왔던 요즘, 이외에도 그리고 싶은 소재가 있다면요? 

요즘은 다시 자연과 풍경을 담고 싶어요. 살짝 지치는 시기가 돌아온 것 같거든요. 문득 지난 여행길에 만났던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사람은 많고 테이블은 좁으니까 모르는 사이여도 마주 보고 앉아야 했어요. 제 곁에 앉은 할머니랑 스몰톡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여행을 많이 오게 되었는지 여쭤보시더라고요. 저는 한 번 와보니까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고, 다양한 곳을 다니면서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게 늘어서 좋다고 대답했죠. 그 말을 듣던 할머니가 “역시 한 번 열린 문은 다시 닫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내가 한 번 체득하고 깨닫게 된 것들은 그걸 모르던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요. 그 여행 내내 그 말이 계속 맴돌았었는데 요즘 다시 떠올라요. 그 감각은 정말 지울 수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새로이 다니면서 시야를 넓히고, 그 과정에 재미를 붙여 작업으로까지 연결하고 싶어요. 

 

곧… 다시 부지런히 바깥으로 걸음을 옮길 것 같은 대답이네요(웃음). 

맞아요(웃음). 그때의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요. 탈출하는 기분으로 떠나지만 머지않아 돌아올 게 분명한 길로 나서보고 싶어요. 다시 단순해져야 할 시기가 왔나 봐요.

광안리 푸른 바다 앞, 이제는 하나둘씩 허물어져 버린 삼익비치 아파트의 모습을 기록한 그림을 모아 슬아 씨는 올여름 부산에서 개인 전시를 연다고 했다. 언젠가 변할지도 모르는 삶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가 답했다. “제가 좋아하고 좀더 알고 싶은 것들에게 마음을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몸보다 훌쩍 큰 캔버스 앞에 붓을 꼭 쥔 채 선 한 페인터를 바라본다. 그의 또렷한 시선은 사람이 머문 자리에 애정으로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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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