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하는 식물의 자세로

유민예 — 아티스트

식물 곁에 가면 자연스레 자세가 꼿꼿해지고 온몸이 맑아진다. 식물관PH의 창을 통해 하염없이 쏟아지던 햇볕은 따스했고 그 아래 선 식물들은 바깥의 추위를 잊고선 무성하게도 펼쳐져 있었다. 싱그러운 풍경을 배경 삼아,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유민예는 울창한 기운을 지녔다. 그런 그가 엮어 만든 초록 줄기들은 부지런히 꿈틀거리며 ‘밍예스’ 유니버스 너머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숨 쉴 틈 없이, 치열하게 지냈다고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한 해 동안 작업물을 선보일 기회가 많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숨 쉴 틈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요. 잡생각 할 겨를 없이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왔어요. 제가 한 해를 정리하면서 살펴봤는데, 확실히 2022년 작업량이 제일 많더라고요. 제가 작업한 기간이 2년 반에서 3년 정도 되는데, 많은 분과 작업하며 도약할 수 있었죠. 

 

그러게요. 신진 작가들에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맞아요. 작년에는 팬데믹 이슈가 극심하기도 했고, 제 작업의 키워드인 ‘정원’이 이와 맞아떨어져서 기회가 많았죠. 올해는 상황과 관계없이 제 작업물만 보고 많이 찾아주셔서 마음이 좋았어요. 

 

이제 민예 씨만의 흐름이 생긴 거네요. 아, 그렇다면 이렇게 된 김에 민예 씨 소개를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밍예스’ 프로젝트를 꾸려나가고 있는 유민예입니다. 식물과 예술의 경계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본명에 ‘yes!’라는 단어를 덧붙여 밍예스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들었어요. 이름에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하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면서요. 

저는 항상 ‘Good Vibe’를 추구하거든요. 인생을 최대한 즐기면서 지내고 싶어요. 애초에 우울한 감정을 오래 담아두려고 하지 않고요. 

 

민예 씨가 생각하는 좋은 기운이 뭘까요? 

사실은 질문지를 받고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되게 오래 고민했어요. ‘무엇이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일까?’ 하고요. 어쩌면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귀여운 걸 되게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뭔가를 볼 때 ‘귀엽다’는 감정이 들면 그 순간부터 기분이 좀 좋아져요. 

 

그런 감정은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좋은 걸 보면, 바로 ‘좋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운도 딱 그 정도예요. 그런 즐거운 감정에 저만의 스토리와 철학을 녹여내서 전달하고 싶어요. 관람객들도 제 작품을 보며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가시길 바라고요. 

 

최근에 좋은 기운을 느낀 적이 있나요? 

지난여름에 덕수궁 시립미술관에서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작가님 전시를 굉장히 즐겁게 보았어요. 평소에 소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해요. ‘장-미셸 오토니엘’ 하면 유리를 가공해 만든 블록이나 구슬 연작 시리즈가 먼저 떠오르잖아요. 기존 작업 방식에서 확장된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였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이를 덕수궁 정원 연못에 알맞게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녹여낸 게 흥미로웠어요. 한 작품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인상 깊었죠. 아, 그리고 지금도 좋은데요(웃음). 오늘 날씨도 정말 좋고, 대화도 재미있고요. 

 

매사에 긍정적인 편인가 봐요. 가만 보니, 민예 씨랑 작품 모두 산뜻한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이 정말 닮은 것 같아요. 

오, 정말요? 감사합니다. 자연을 주제로 한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줄곧 제가 좋아하는 것과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종국에는 나란 사람 그 자체를 작품으로 치환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요. 관심사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색이나 느낌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밍예스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카페 한구석에서 시작되었지요. 

학부 시절, 각자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예술적인 오브제나 공간 연출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텍스타일 작업을 해서 일주일 정도 전시를 하고 마무리 짓는 걸로 계획했죠. 다만 전 학생이다 보니, 갤러리 섭외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어떤 공간이 좋을지 고민하다 한 카페를 찾게 되었어요. 그즈음이 갤러리뿐만 아니라 문화 공간이나 상업 공간에도 작품이 전시되기 시작하던 때였거든요. 저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 곁에 툭 놓인 채로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요. 제 작품이 적당한 자리를 찾았을 때, 정말 설렜던 기억이 나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식물관PH 또한 민예 씨 작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공간이에요. 이곳에서 연말 동안 개인전을 진행했죠? 

원래 이곳을 알고 있었어요. 제 노트에는 전시해 보고 싶은 공간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혀 있어요. 식물관PH도 그중 하나였는데 딱 올해 초에 제안이 와서 너무 기뻤어요. 전시장 내부에는 통창이 크게 나 있어서 빛이 환하게 들어와요. 그 풍경을 보며 어떤 주제로 전시를 꾸릴지 고민했어요. 제 작업은 다른 조형물들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실을 엮어 작은 소재를 만들어서 입체 작품으로 합치거나 평면 작업으로 해체하며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돼요. 그래서 전시가 잡히면 공간의 특성과 잘 맞는 주제를 선정해요. 작업하고 싶은 주제들도 미리 적어놨거든요. 그중에서 ‘식물의 성장’과 연관된 단어를 발견해서, ‘아 이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싶었죠.  

 

평소에 기록을 엄청 많이 하시나 봐요. 

작업 노트라고 부르는 공책이 있어요. 식물을 소재로 작업하다 보니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요. 마음에 든 문장이나 단어를 발견하거나 나중에 활용하고 싶은 동사들이 생각나면 적어둬요. 그렇게 적립해 두었다가 전시 제안이나 협업 문의가 오면 노트를 펼쳐보곤 해요. 이 공간이나 브랜드랑 어울릴 만한 단어가 있나, 이번 전시에 쓸 만한 이야기가 있나 찾아내죠. 

 

실을 엮듯이 아이디어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군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최대한 유연하게 작업하려고 해요. 어떤 공간이나 브랜드가 가진 특성과 내 이야기를 알맞게 엮었을 때 희열감이 느껴지거든요. 이전에 ‘원형들’과 협업하면서 팝업 스토어를 연 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원형들 특유의 독특한 디저트들과 텍스타일 작업이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공책을 펼쳐보았어요. 목록 중 ‘시드볼Seed ball’이란 단어를 발견했죠. 

 

시드볼이요? 

한국어로 직역하면 ‘씨앗공’이라는 뜻인데, 40개 이상의 씨앗을 종 구분 없이 뭉쳐서 만든 것이라고 해요. 그걸 땅에 툭 던져 놓으면, 거기서 각종 풀이 자라나는 거죠. 일종의 농작법 중 하나인데, 작은 공 하나에서 시작해 정원이 탄생하는 게 신기해서 적어둔 기억이 나요. 그걸 보고 원형들 측에 시드볼 형태의 케이크를 제작해 달라고 의뢰했어요. 제 작업은 그 케이크에서 탄생한 미지의 이끼인 셈이죠. 

 

이후 프로젝트에선 점점 식물들이 자리를 확장해 나가죠. 그 식물들은 이내 우리 몸보다 크게 자라 공간을 장악해 버리기도 하고요. 

이끼는 성장하면서 증식하잖아요. 그런 식물의 속성이 제 작업에 스며 있기도 해요. 항상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편이에요. 매번 조각 하나를 제작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작업이랑 합쳐서 또 사용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보관해 두거든요. 와중에 제게 우연한 기회가 많이 찾아오면서 작업량이 늘어났고, 끝나고 나니 재사용할 수 있는 패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였더라고요. 그걸 다 이어 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진 거죠. 

 

그렇다면 큰 조형물은 민예 씨가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겠네요? 

‘Stem series’의 줄기 윗부분엔 초기 작품들도 뭉쳐져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실 색이 바래가고, 올이 풀리면서 촉감도 좀더 몽실몽실해지거든요. 그걸 보면 감회가 새롭죠. 그렇다고 해서 회상에 젖는 건 아니고요(웃음). ‘나 작업 진짜 많이 했구나.’ 실감해요. 조각 하나 만드는 데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거든요. 줄기 하나당 들인 시간을 가늠하다 보면 ‘고생했다!’ 싶죠. 

 

나보다 몇 배는 큰 작업물을 만드실 때 작업물이 나를 압도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이 질문을 보고 기분이 좋았던 게, 이런 물음을 던진 사람이 처음이에요(웃음).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설치 미술을 보며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데엔 작품 크기도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개인전을 꾸릴 때도,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즉각적으로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되길 바랐어요. 실은 저는 제 작품을 마주할 때보다 전시를 준비할 때 실감하곤 해요. 큰 줄기 하나가 40킬로에 육박하거든요. 절대 혼자서 못 옮겨요. 그래서 예전에는 보통 설치를 하면 아버지랑 함께 하거나 친구들이 도와주었거든요. 이제는 업체를 꼭 동원해야 해요. 어쨌든, 이런 질문을 해주시니 제가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되었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이번 전시는 ‘식물의 성장’에 주목했어요. “중력이라는 균형 에너지 속에 빛이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며 꿈틀거리는 줄기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고 설명하며 이를 인간의 성장과 연결시켰지요. 

이번 전시를 꾸리면서 그간 해오던 평면 작업들을 입체 조형물로 제작해 봐야겠단 결심을 했어요. 이를 줄기의 속성과 연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죠. 마침 제 동생이 농대를 다니거든요. 식물생산과학부에 속해 있어서, 생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땐 자문을 구하는 편이에요. 

 

와, 동생과 대화 거리가 넘쳐나겠네요. 

이번에도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눴는데, 흥미로운 키워드를 알려주더라고요. 식물은 자라면서 빛을 향해 뻗어나가고, 중력에 의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잖아요. 전자를 ‘굴광성’, 후자를 ‘굴중성’이라고 한대요. 이 두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위치를 잡아간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인간이 자기 삶 속에서 성장하며 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죠. 거기에 힌트를 얻어서 스토리텔링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삶 역시 창조적 긴장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꿈틀거리는 성장을 당겨온다.”고 했죠. 대부분 긴장이나 불안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여기는데, 민예 씨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했더라고요. 

사람들이 삶의 균형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 긍정적인 긴장감이 느껴져요. 우리는 늘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 갈등하고, 생각을 거듭하고, 노력하죠. 저도 작년에 작업을 하면서 좀더 나은 방향을 찾고자 열심히 고민했던 시기를 보냈어요. ‘치열함’이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었죠. 긴장감은 성장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감정 같아요. 마냥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진 않아요. 

 

민예 씨는 그 ‘긴장의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어요? 

힘들긴 했지만, 이 시기를 지나면 분명히 성장할 걸 아니까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탐구하려 했어요. 저는 그런 과정이 좀 재미있기도 해요. 삶에 목표가 없을 때 더 지루해하는 편이라 최대한 열정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해요. 

 

고통을 즐길 수가 있다니(웃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웃음)! 

 

그렇다면 민예 씨를 성장하게 만든 자극제가 궁금해요. 민예 씨만의 햇빛은 무엇이었을까요? 

돌이켜봤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았던 게 큰 몫을 했어요. 저는 어쨌든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작가들에게 그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진 않잖아요. 이번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고, 작품을 보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나눠 주셨어요. 그런 만남에서 얻는 자극이 커요. 앞으로도 제 작품을 마주하는 분들께 새로운 미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다음 작업의 방향성을 생각해 봐야겠죠. 

 

혹시 떠올린 것이 있나요? 

오, 한번 말해볼까요? 과학적인 이론 중 하나인데, 정확한 단어가 생각이 잘 안 나요. 일단 이야기해 보자면요, 식물이 자랄 때 무조건 원형 운동을 하면서 성장한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희의 삶도 다를 바가 없잖아요. 지구가 돌고 있으니,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도 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겠죠. 그렇다면 우리 또한 원형 운동을 하며 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지구도 돌고, 식물도 돌고, 우리도 돌고…. 

 

재미있는 발상이에요. 어떤 작업으로 탄생할지 궁금해요. 

제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생각을 멋지게 풀어내고 싶어요. 저는 관람객들에게 자유롭게 만지면서 촉감을 느껴보시라고 권해요. 실제로 만져보고 앉아보는 행위를 통해 눈앞의 작품을 탐구하고 소통할 수 있잖아요. 이왕이면 재미있게 관람하시길 바라며, 제 작품에도 유희적인 요소를 첨가하려 해요. 긍정적인 에너지는 인간이 느끼는 솔직한 즐거움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업을 위해서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자연에서 배우게 되는 점들이 있겠죠. 

배운다기보단 신기하다 싶은 것들이 몇 개 있었어요. 최근에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책을 읽었거든요. 겉보기에 숲은 매우 조용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기계를 통해 숲의 소리를 들어봤더니 엄청 시끄럽다는 거예요. 자세히 살펴보면 숲에 있는 나무들끼리 서로 신호를 보내면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대요. 심지어는 나무들도 자기 자식을 인지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대목을 읽으며 자연은 역시 방대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공부할수록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이상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겠다.’ 싶어요. 지금은 이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나중엔 버섯이나 잎맥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보려고요. 

 

안 그래도 요즘 버섯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요. 

이끼나 버섯이 이상적으로 예쁜 식물은 아니잖아요. 징그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전 둘 다 기묘하면서 귀엽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야생 버섯은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이나 구석에서 툭 튀어 오르듯 자라서 끈질기게 번식을 해나가죠. 그런 생명력에 관심이 생겨서 연구해 보고 있어요.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숨겨진 이면을 발견할 때 흥미를 느끼거든요.

여행을 다니며 자주 영감을 얻으시죠? 지역이나 국가마다 나고 자라는 식물의 종류가 모두 다르니까, 마주치게 되는 자연의 모습 또한 천차만별일 텐데요. 이에 많이 감응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원래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팬데믹 이후에는 국내를 자주 여행했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더라고요. 최근에 광고 촬영 차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과 함께 울릉도에 갈 일이 있었는데 4박 5일 정도 머무르며 지형 탐사도 다녔거든요. 숨겨진 분지나 폭포 안쪽까지 탐험해 보았는데,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였어요. 울릉도는 지형 특성상 어둡고 습한 원시림이 분포되어 있어서 이끼가 굉장히 많이 자라요. 직접 가서 만져보고 탐사할 수 있어서 무척 영광이었죠. 작업을 시작한 후부터 여행 가면 땅에 있는 풀들을 자주 보면서 다녀요. 예상치 못하게 이름 모를 식물을 발견할 때 기쁨이 두 배로 느껴지곤 하죠. 여행의 기억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작업으로 탁 발아하는 것 같아요. 

 

산책도 자주 해요? 

겨울에는 밖에 자주 안 나가요. 저는 햇빛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울릉도도 여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2주 정도 지내면서 바다 수영도 하고 태닝도 하면서 한적하게 지내고 싶어요. 

 

활동적인 성향인 것 같아요. 집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겠네요. 

요즘에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집에 자주 머무르는데요. 여유 시간이 날 땐 최대한 바깥으로 나가려고 노력해요. 많이 걸어야지 작업 소스를 얻을 수가 있거든요. 

 

어느 인터뷰에서 “오브제의 주요 타깃을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삼았다”고 이야기했어요. 민예 씨는 집 안을 잘 가꾸며 지내나요? 

저는 잘 꾸며진 공간에서 머무르며 시간 보내는 걸 더 좋아하지, 공간을 꾸미는 덴 엄청 관심이 많진 않아요. 제가 타깃을 명확하게 잡았던 건 이전 전공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제 성향을 구분해 보자면 반은 디자이너, 반은 예술가나 다름없거든요.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면서 타깃 분석하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맞게 제안할지 고민하잖아요. 그걸 제 오브제에도 적용한 게 한몫했죠. 

 

그렇다면 의외의 용도로 사용하고 계신 분을 만나본 적도 있어요? 

작품을 커스터마이징해서 구매하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분께선 강아지 방석으로 쓰고 있기도 하고, 촉감이 재미있다면서 머리맡에 두고 애착 인형으로 삼은 분도 있어요. 콘센트를 가리기에 딱 좋다거나 화분 밑에 깔아두었다는 후기도 봤고요. 용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필요한 곳에 자유자재로 사용하고들 계시더라고요.

 

 ‘의외’라는 이야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전자음악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저 테크노 음악 정말 좋아해요. 사실 저는 식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하면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이미지에 파묻힐까 봐 좀 무섭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나는 좀더 다른 스타일로 보여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제 취향을 섞고 있어요. 전시장 내부 음악도 DJ 믹스세트로 깔아두고, 포스터도 징그럽게 만들고요. 제 작품 형태도 자연을 한 번 더 재해석한 거나 마찬가지여서 다각도로 접근하는 편이 더 재미있어요. 

 

편견을 깨고 싶었군요. 네. 저는 경계를 넘나들고 싶어요. 남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싶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의도한 대로만 전달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관람객분들이 어떻게 생각해 주시던 그 나름대로 존중하고 싶어요.

 

 ‘위빙’이란 장르가 이전보다 많이 대중화되었잖아요. 그럼에도 민예 씨의 작업을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제가 꾸려나가는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이 위빙 오브제 하나만 있었다면, 매력이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부여하는 스토리텔링이 큰 힘을 발휘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작업을 하게 될 텐데, 지금은 텍스타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3D 아트나 여러 매체를 통해 미감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죠. 경계를 두지 않고 유연하게 작업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민예 씨의 정원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요? 

아마, 제 정원에는 제 작업이 자라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언젠가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어코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유민예와의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제야 그 방법에 대해 조금 알 것도 같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왕성히 자라는 이끼들처럼. 어디에 던져놔도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야 마는 시드볼처럼. 돌진하는 식물의 자세로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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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