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김상민 ㅡ 마케터·작가
집을 지으려면 땅이 필요하지만 넓을 필요도, 최고급 땅일 필요도 없다. 김상민은 말한다. 행복이 집이라면 땅은 돈일 거라고. 넘쳐나는 돈보다 행복을 지탱할 정도의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낮에는 브랜드 마케팅을, 밤에는 글을 쓰며 안팎의 땅을 다져가는 사람. 김상민이 지은 행복이란 작은 집엔 아직 채 비닐을 뜯지 않은 LP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읽어온 책들이 즐비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로 7년째 일하고 있는 김상민이에요. 퇴근하고는 작가로 지내고 있고요.
마케터로 일한 지 7년이나 되었군요. 작가 생활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어릴 때부터 책이랑 활자를 좋아해서 제 이름으로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버킷리스트 같은 거였죠. 우연한 기회에 독립출판에 연이 닿게 되었고, 그게 좋은 시발점이 되었어요.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지 말고 꾸준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겨서 꾸준히 쓰고 있어요. 뭘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게 아니라 ‘여행 다녀온 얘기 써볼까?’에서 출발한 거라 자연스럽게 에세이에 정착하게 됐죠.
SNS에 “낮에는 브랜드 마케팅, 밤에는 글을 씁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어떤 자아를 먼저 소개하고 싶어요?
이 질문을 보고 ‘헉’ 했어요. 중고등학생 때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났거든요. 그 나이 때 친구들은 특징을 가지고 별명을 지으면서 각인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수학 잘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 싸움 잘하는 애… 같은거요. 근데 저는 특별한 캐릭터가 없어서 규정이 안 되더라고요.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었죠. 근데 한참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모호한 게 제 아이덴티티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도 직장인이면서 작가, 러너로 지내는 것처럼요(웃음). 이게 제 본질 같아요. 그래도 한 단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면 ‘꾸준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회사도 7년째 다니고 있고, 글쓰기도 쉬지 않고 해오고, 마라톤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뭔가를 했을 때 끝을 봐야 한다는 성격은 아닌데, 좋아하고 잘하는 건 꾸준히 하고 싶거든요.
생계 수단인 노동 이야기를 해볼게요. 노동과 돈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되게 큰 질문이네요. 일단 마케터와 작가 두 직업을 놓고 본다면 한쪽은 돈 버는 일, 한쪽은 무관한 일 같아요.
작가는 돈벌이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요?
작가 생활로 한 푼도 못 번 건 아니지만, 고정적인 수입원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으니까요. 수입은 불규칙적이고, 있더라도 액수가 적어요. 오히려 쓰기 위해 드는 돈이 더 많다는 생각도 들죠. 사실, 안정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에 창작 활동은 돈에 구애 받지 않을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거든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구태여 원하지 않는 글을 쓸 필요는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작가 생활을 통해 나다움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럼 노동과 돈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것 같은데요. 돈이야 당연히 좋지만, 돈을 많이 주는 노동이 무조건 최고는 아닐 거예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이 얼마나 필요해?’라는 물음엔 저마다 정의가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사람마다 적성, 연봉, 이직… 모든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정의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그럼 상민 님의 행복엔 돈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해요?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어요. 행복을 ‘집’에 비유한다면, 돈은 ‘땅’이에요. 땅이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잖아요. 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굳이 최고급 땅이 아니어도 집은 지을 수 있어요. 저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조건이죠. 행복의 하한선.
앞서 “작가 생활로 나다움을 만들어” 간다고 했는데, 그건 정확히 어떤 거예요?
저는 글쓰기가 나만의 국어사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소파’라고 한다면, 소파의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나한테 이 사물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정의하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 사유하고, 정의하고, 내 세계를 규정해나가는 존재예요. 저에겐 글쓰기가 제 세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과정이에요. 글 쓸 때마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죠.
글 쓰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요?
일단 가장 크게 느낀 건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걸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거요. 오히려 꾸준히 하지 않을 때 힘들어한다는 걸 알았고, 완벽주의도 있는 것 같아요. 완벽주의는 뭔가를 완벽하게 한다는 의미보다는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해지려는 집착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쓸데없는 집착이나 지나친 자기혐오를 느낄 때도 있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나는 왜 더 사유하지 못하지?’ 이럴 때요.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자아와 관련된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저는 글을 써보라고 해요. 뭐든 써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두 가지 일을 해나가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글 쓸 시간을 내는 게 벅차진 않아요?
한숨부터 쉴게요(웃음). 휴. 시간만 따지면 확실히 부족해요. 좀 구태의연하긴 하지만,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시간이 부족한 것보다도 에너지가 부족한 게 커요. 저는 회사에서 에너지를 많이 쏟으면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창작할 때도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기력이 없어서 도저히 못 쓰겠는 때가 많았어요. 글쓰기 습관과 루틴을 만들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죠. 루틴 만들기와 동시에 효율적으로 글 쓰는 연습을 해왔는데요. 일상에서 글감을빠르게 뽑아내기 위해 몇 년째 노하우를 쌓고 있는 중이에요.
실패한 글쓰기 루틴에는 어떤 게 있어요?
‘블로그에 매일 포스팅하기’ 같은 거요. 평범한 목표지만 매일 쓰는 건 실패하게 되더라고요. 유일하게 성공한 게 메일링 서비스인 ‘주간 ㅅㅁㅅ’이에요. 메일링 덕분에 그래도 매주 에세이를 한 편씩은 쓰고 있는 거죠.
메일링 서비스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요?
엄청 되죠. 메일링은 제가 잘 쓴다고 더 많은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글쓰기 실험을 해볼 수가 있어요. 단편소설에도 도전해 보고, 문체도 달리 써봤죠. 때로는 건조하게, 어떤 날엔 말랑하게요. 주간 ㅅㅁㅅ을 통해 글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실험을 해오고 있어요.
수익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실험이 가능하다면, 돈이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하나요?
그럼요. 돈을 받게 되면 돈 내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자유로울 순 없어요. 회사 생활과 비슷한 거죠. 고용주에게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주간 ㅅㅁㅅ도 소액의 구독료는 있지만 전부 기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이것저것 실험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하지만 지금은 돈 버는 게 1순위는 아니에요. 작가로는 여러 가지를 제안받아요. 책 제안부터 북토크, 그 외 행사들…. 무언가 제안받았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내가 잘할 수 있는가’예요. 언젠가 뮤지션 더콰이엇의 의사 결정 기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분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멋’이 있든지, ‘돈’을 정말 많이 주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걸 제 작가 생활로 가져오려고 해요. 기준은 이래요. 첫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둘째는 ‘멋있는 이야기인가’, 셋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을 때 배알 꼴리는 내용인가’(웃음).
셋째 기준이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노동과 돈이 연결됐듯, 돈과 소비도 연관되는 이야기 같아요. 소비는 물건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깊이 생각해 보니 보이지 않는 것도 소비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거에 대한 소비가 많죠. 물성이 있는 걸 산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어떤 걸 상상하며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보이는 거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가 있잖아요. 사회적 정의나 평등 같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투자하는 거죠. 지금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비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 같아요.
《아무튼, 달리기》에서 “자본주의형 러너”라는 표현을 썼죠. 러닝 아이템을 소비하는 건 투자의 개념이라고 했는데, 소비와 투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소비와 투자를 굳이 나누자면, 소비는 휘발적이고 투자는 좀 더 지속적인 거 같아요. 또한, 소비는 욕망에 기인하지만 투자는 성장에 기인해요. 그렇다고 소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소비가 모여서 취향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소비도 우리에게 분명히 남기는 게 있거든요. 저는 소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소비와 투자의 공통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를 규정하는 활동이라는 점이에요.
소비든 투자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 실패한 경험도 들어보고 싶어요.
모든 소비와 투자에 실패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거든요. 설령 어떤 물건을 충동구매하고 한두 번 쓰다 버린다 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소비라고 생각해요. 진짜 실패한 소비는 ‘하지 않는 소비’죠. 애초에 시도를 하지 않은 거요. 제 본업이 마케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요. ‘살까 말까 할 땐 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지 않은 것에 후회하는게 훨씬 많아요. 특히 돈이 풍족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말자’로 귀결됐거든요. 그거에 대해 남은 한이 좀 많아요(웃음). 저는 보통 미래를 위해 아끼자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의미 없는 행동인 것 같아요. 지금 하는 투자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발판이 되어주거든요.
메일링 서비스도 글쓰기와 수익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주간 ㅅㅁㅅ의 구독료는 단돈 2천 원이죠. 모인 구독료는 전액 기부하고 있고요.
주간 ㅅㅁㅅ은 수익보다도 제 개인 목적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돈을 벌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메일링 서비스의 시초인 ‘일간 이슬아’의 고료를 계산해서 제 글에도 한 편 당 500원의 금액을 매겼어요. 매달 2천 원씩 받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그걸 어디에 쓰냐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아무리 소액이어도 돈을 내고 보는 건데 만일 제 글이 별로라면 구독자는 구독을 취소할거예요. 근데 기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걸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런 효과도 있던 것 같아요. 주간 ㅅㅁㅅ 구독료는 매달 어디에 기부했는지 공지하고 있는데요. 저 혼자가 아니라 같이 좋은 일을 했다는 데서, 구독자와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사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런 면에서 잘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주간 ㅅㅁㅅ에 소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죠. LP 이야기도 들려 주실래요?
저기 LP 꽂혀 있는 데 한번 보실래요? 비닐도 안 뜯었어요(웃음).일부러 뜯지 않은 건데요. 저는 영화나 음악, 책에 굉장히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까지 위로를 많이 받고, 저 자신을 정의하게 해준 요소들이거든요. 마음의 빚을 많이 지고 있는데, 그걸 갚는 방법 중 하나가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비하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기억하는 거죠. 보이는 걸 구매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걸 위해 구입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스스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상기하는 거죠.
구입한 걸 소비하지 않는 게 결정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걸 소비하는 거라는 말이죠?
바로 그거예요.
보이지 않는 걸 소비하는 시대에 소비의 정의를 다시 내려 주신다면요?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과정?
그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을까요?
정체성이요. 정체성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행착오 해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결과물 같아요. 제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부사와 형용사는 돈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동사와 명사는 결코 살 수 없을 거예요. 그건 고민과 결정을 통해서만 도출되는 거니까요.
그래도 돈이 없으면 인생이 팍팍해지잖아요.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대학생 때 스위스에서 1년 동안 공부한 적이 있어요. 스위스는 물가가 정말 비싸거든요. 제 생활비를 100퍼센트 부모님께 받아 쓸 순 없어서 제한된 예산 내에서 살아야 했어요. 냉수로 배 채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오죽하면 장을 보러 독일로 다 넘어갔겠어요. 스위스는 사람 손이 들어가면 다 비싸서 맥도날드도 세트 메뉴가 2만 원씩 했어요. 무려 10년 전인데도요. 머리 자르는 데도 10만 원 정도했으니 정말 빡빡하게 살아야 했죠.
힘든 생활에서 제일 먼저 포기한 게 뭐예요?
예민하지 않은 부분이요. 먹는 거? 저는 미식가가 못 되거든요. 고메 요릴 먹든 편의점 음식을 먹든 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먹는 건 웬만하면 포기할 수 있었어요. 반면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건 책 사는 거였죠. 그리고 책 읽는 환경은 꼭 구성되어야 했어요. 소파가 되었든, 의자가 되었든, 침대가 되었든. 그런 환경적인 요소가 중요했어요.
밥은 안 먹어도 책은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뭐였어요?
LP 비닐을 벗기지 못한 이야기랑 연관되는데, 저에게 책과 영화와 음악은 한 덩어리거든요. 문화와 예술을 소비할 때 제 자신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게 늘 고마웠어요. 나다움을 조각해 나가는 과정이랄까, 취향을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랄까…. 이게 충족이 안 되면 맛있는 걸 먹어도 충족이 안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생각해 왔어요. 글 쓰는 것도, 문화적인 걸 향유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죠.
꾸준한 소비로 나를 쌓아온 거군요. 스위스에서의 삶이 힘들었다고 했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 시절도 돈으로 소비한 경험이죠.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지낼 땐 떠밀려 산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어요.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해서 토익 보고, 스터디하고, 회계사 준비하고…. 그때까진 사회가 요구하고 어른들이 규정하는 삶에 충실하게 따랐어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고민을 안 한 거죠. 그렇게 어찌어찌 떠밀리듯 취업하고 싶진 않아서 사람들이 공부를 목적으론 잘 가지 않는 스위스로 떠난 거였어요. 거기 고립된 1년은 제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힘들어하는지를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이건 시간적인 소비일 수도 있고, 저를 위한 투자일 수도 있겠죠. 스위스에서의 생활 이후로 제 인생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제 와서하는 말이지만, 스위스로 떠난 건 제가 가장 잘한 소비였어요.
힘든 시간이 자양분이 되는 걸 보면 좋은 걸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소비는 아닌 거 같아요.
좋다는 감각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절대적으로 좋은 소비는 없을 것 같아요. 결국 소비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한데, 그 영향이라는 게 즉각적이지 않잖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좋은 소비였구나.’ 느낄 때가 있어요. 스위스에서 돌아온 직후엔 괜히 다녀왔다고 많이 후회했어요. 친구들이 경력을 쌓으며 일하고 있는 걸 보면서 더 그랬죠.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제게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알게 됐어요. 즉각 효과를 알 수 없는 소비도 있기 때문에 당장 소비의 가치는 판별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소비든 결국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그렇죠. ‘돈이 있어야 행복합니다.’는 아닌데 돈이 전혀 없으면 행복해질 순 없어요. ‘돈이 없다’는 건 단 한 푼도 없다는 걸 의미하고요. 아르바이트만 해도 최저 시급이라는 게 있잖아요.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하한선의 돈은 있어야 행복에 대해 논할 수 있겠죠.
긴급 질문. 이번 주 토요일, 로또에 당첨된다면?
지금보다는 행복해질 거예요. 하지만 그 행복이 완벽하진 않을 것 같아요.
돈으로 완벽한 행복은 살 수 없다는 건가요?
네. 수중에 1천억이 생겼다고 해도요. 아마 그 정도 돈이 생기면 굉장히 기쁠 거예요. 치킨도 고민 없이 시켜 먹겠죠. 아, 치킨이라니… 소박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네요(웃음). 근데, 1천억이 생겨도 저는 내일 아침 출근할 거예요. 출근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내일도 마케터로 일하고, 작가로 글쓰며 지낼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겐 행복이니까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