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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
도시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 살까
건축가 유현준
회색 도시 안에는 정말 희망이 없는 걸까. 도시는 제 기능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호흡하고 있다. 그 숨결을 느끼기 위해 유현준 건축가를 만났다.
Interview
건축가 유현준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까지도요.”
근래 무척 바빠 보이셨어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이 네 가지예요. 강연하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하고, 책 쓰는 일이요. 이런 일들을 돌아가며 하고 있어요.
바쁜 일정에 학교 수업을 병행하는 게 어려워 보이기도 해요.
수업은 3개를 맡고 있어요. 그중 하나는 교양과목인데 동영상 촬영을 해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딱 그 시간에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동영상 촬영으로 바꾸고 나니 좀 편안해졌죠.
전공 강의를 들으려는 열기가 무척 치열해서 수강 신청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요(웃음)?
건축과가 그렇게 과제가 많다고 유명하던데요.
장난 아니죠. 건축학과 학생들은 매일 밤새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는 지금 4학년과 5학년에게 설계를 가르치고 있어요. 예전에 미국에서 통계를 낸 적이 있는데 건축과가 잠을 제일 적게 자는 학과로 꼽혔어요.
왜일까요?
할 일이 많아요. 손으로 모형을 만드는 작업은 3D프린터가 나오면서 줄어들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이 또 생기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손 쓰는 작업이 줄어들면 이젠 렌더링*으로 작업하는 수가 늘어나고, 동영상도 제작해야 하고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배워야 하는 것들도 많아져요. 보통 건축과 학생이 쓸 줄 아는 소프트웨어가 여섯 개 정도 되는데 그것도 계속 업데이트를 따라가려면 배워야 해요. 인문학도 공부해야 하고, 구조학도 배워야 하고, 실제 설계도 해야 하고, 환경도 알아야 하죠. 트렌드도 알아야 하고요. 학생들이 할 게 너무 많아요, 사실.
*렌더링 수치와 방정식으로 서술된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 컴퓨터로 만든 투시도라고 볼 수 있다.
유년 시절에 미술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어릴 때 좋아하던 것을 직업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데, 미술을 좋아하던 마음이 건축가로 바로 이어진 걸까요?
중·고등학교 때 계속해서 직업적인 꿈을 찾으려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사회에 발을 디딜 때 그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직업의 성향도 바뀔 수가 있고요. 건축가만 해도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어요. 대학 졸업하고 첫 번째 대학원 다닐 때만 해도 손으로 다 작업해서 컴퓨터를 잘 못해도 상관없었거든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컴퓨터를 해야만 하는 학과였으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특히나 이렇게 세상이 빠르게 변할 땐 어떤 직업을 목표로 두는 건 위험해요. 하루가 다르게 바뀌니까요. 10년 뒤에는 지금 말하는 건축가라는 직업도 바뀔 수 있겠죠. 이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럴 테고요. 제가 건축가가 된 계기는, 전 달달 외우는 걸 무척 싫어해요. 남들이 주입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문과는 외우는 게 싫었고, 이과는 수학이 싫었어요.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게 좀 안 맞더라고요. 제한된 시간 안에 하는 것도 싫었고요. 남들이 정한 걸 맞춰가야 하고 남의 템포를 따라야 하는 게 안 맞았어요. 그래서 미술이 조금 잘 맞았어요.
강연에서 학교 건축을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신 걸 본 적이 있어요. 학교 건축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실제로 학교가 창의력을 저해하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저는 건축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까지도요. 대부분의 건축이 사람들을 화목하지 못하게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게 학교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전체주의자로 만들고 획일화시키면서, 정서적으로 자연과 격리하고 있죠. 사실 저는 창의적인 아이들을 원하진 않고요,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학교는 비정상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아이들을 양성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급선무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학교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데 아이들이 힘들어하잖아요. 저 역시 힘들게 지냈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지금 아이들이 더 힘들 거예요. 방과 후에 똑같이 상가 학원에 가고, 똑같은 옷에 똑같은 음식을 배급받아 먹어요. 공부해야 할 양은 훨씬 더 늘었고, 학교는 점점 고층화되고 있죠.
학교 건축물에 관한 좋은 사례는 없나요?
아직 제가 원하는 정도의 바람직한 학교는 없어요. 핀란드에 가도 제 마음에 완벽하게는 안 들더라고요. 학교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들이 반드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시대에 맞지 않다면, 교육을 위한 빌딩 프로그램도 잘못된 게 아닌가 돌이켜 볼 수 있는 거죠. 무척 급진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9시까지 학교에 가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걸 배우는 게 이상하잖아요. 사회성이 필요하다면 다른 부분으로 채울 수도 있거든요. 학교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고 봐요.
중·고등학교의 공간적 한계가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보이기도 하나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중·고등학생은 자율적으로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요. 공간만 해도 자신들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고요. 어떤 공간이 다양하게 쓰이는 사례도 본 적이 없겠죠. 제가 어릴 땐 공터가 많아서 잠자리도 잡고 웅덩이에서 뛰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았다면, 지금은 곳곳마다 장소의 목적이 분명해요. 체육관 있고, 미술실 있고, 식당 있고.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목적만을 갖고 있는 거죠. 쉽게 말해서 자동차보다는 기차 같은 느낌이에요. 이런 게 쌓여서 자기의 미래를 선택할 때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다 똑같은 행동만 봤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다 주체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요즘엔 그게 30대 초반에 오는 것 같아요. 30대 초반이 되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이직도 하고 쉬기도 하죠. 자연스러운 거라고 봐요. 그리고 계속 실내에서만 생활하면서 바깥 생활을 능동적으로 대한 적도 없을 거예요. 그럴 시간은 누구나 필요한데 말이죠. 저희 세대가 그런 걸 대학 때 거쳤다면, 지금은 대학 때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 시기가 점점 뒤로 밀린 것 같아요. 뒤로 미뤄진다는 건 그 사람에게 안 좋은 거거든요. 한 사람의 자율적인 선택권을 다 박탈하더니 그 사람이 30대가 되었을 때 돌려주는 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거죠.
비어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려요.
그렇죠. 이 말은 이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었단 이야기고, 경직된 사회라는 얘기는 갈등이 많아질 소지가 많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항상 사회가 시끄럽잖아요. 유연하지를 못해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프레임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내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죠. 언제나 옳고 그름을 나눠요. ‘다르다’기보다는 ‘틀리다’는 말을 하면서요.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요.
외국을 가면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나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길 위에서 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그들이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는 거겠죠. 무척 기형적인 것 같아요.
저도 똑같이 느꼈어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앞에서 말한 대로 다른 걸 틀리다고 생각하면서, 장애인을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틀리다고 여기는 거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심지어 우리는 키가 작아도 틀린 사람이고, 뚱뚱해도 틀린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장애인은 오죽하겠어요. 그런 사회 분위기가 첫째 요인 같아요.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학생들이 전체주의적으로 자랐기 때문인 것도 있죠.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획일화된 사회를 반증하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 공간적으로만 본다면 느린 공간이 없어요.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이요. 벤치도 없고, 앉아서 쉴 곳이 없어요. 앉으려면 카페에 가야 하거든요. 공원도 없고요. 그 말은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만이 바깥에 나올 수 있다는 의미예요. 쉴 공간이 필요해요. 돈 안 내고 갈 수 있는 곳으로요.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조금 절은 적이 있었는데, 이 사회가 얼마나 스피디한 구조로 구성돼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설계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경험이 중요할 것 같아요.
설계자들이 그런 걸 고려할 줄 알아야 해요. 저는 사실 설계하는 사람들이 미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감성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설계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을 만들었을 때 사용자가 어떤 기분이 들까, 바깥에 있는 사람이 이곳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하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해 예민하게, 다른 사람보다 깊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잘하는 거죠. 비례감이 좋고 색감이 좋고는 그 다음의 문제거든요.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책으로 배운 것과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엄청 다르죠. 학교에서는 결과물을 가르치잖아요. 이게 제일 좋은 거라고 보여주면서요. 그런데 학교는 만드는 과정은 안 가르쳐주죠. 이렇게 만든 게 좋은지는 알 수 있지만, 이걸 위해서 시의원이랑 교육부 공무원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웃음). 예산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다른 사람하고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인 거죠. 사회가 움직이는 것은 사람끼리 함께 일하는 문제와 밀접한데, 이런 관계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잖아요. 저도 좌충우돌하면서 배웠어요. 건축 공부한 지 30년 됐는데 전반부 7~8년은 학교에서 관련 지식을 배웠고, 나머지 22년은 어떻게 현실화할지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앞에 7~8년 동안 엄청나게 잘하던 친구들이 그 뒤로 점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죠. 거북이가 해변에서 알을 낳을 때, 200마리가 나오면 바닷가까지 가는 건 몇 마리 안 되잖아요. 그런 수준이에요. 치열한 거죠. 상처받고, 해결 방법도 찾기 어렵고요. 무엇보다 일단 기회도 안 주니까요. 저는 그나마 운 좋게 한 계단 한 계단 길이 열려서 왔는데 그 과정이 정말 어려웠어요. 다른 분야도 다 그렇겠죠. 기득권 세력도 크고요. 미리 자리를 잡고 자기 밥그릇 안 뺏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문제는 세대 교체가 되어야 해결될까요?
세대가 교체된다고 바뀔까요? 그렇다기보다 건축을 보는 국민의 안목이 높아지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일반인이 건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건축을 보는 눈이 낮을 수밖에 없거든요. 어려서부터 문제점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학교 건물부터 안 좋잖아요. 그나마 눈뜨기 시작한 건 여행자유화와 함께 사람들이 해외 건축물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같아요. ‘어? 우리나라 건축은 왜 이래?’ 같은 질문을 하게 된 거죠. 문제의식이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아직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태죠. 나아질 거라고 봐요.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에 건축가가 출연한 것 자체가 건축을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니까요. 관심이 생기면 그쪽으로 돈을 쓰기 시작하고, 돈을 쓰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죠.
건축이란 분야가 대중과 거리가 있는 주제이긴 해요. 사람들이 건축에 대한 안목을 높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뭘까요?
일단 우리가 행복하고 화목해지겠죠. 건축 공간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요. 보이지 않는 손인 거죠. 우리를 조종하는 건데, 예를 들어 말단 사원의 옆이나 뒷자리에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럼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어요. 공간의 구조적인 영향을 받는 거죠. 어떻게 돈을 써야 행복한지 고민하는 게 건축가의 의무이고 역할이에요. 벽, 지붕, 계단을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뚫느냐 저기에 뚫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지잖아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중요성을 풍수지리를 통해서 알고 있어요. 그걸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행복과 연결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체계적으로 경험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보통 비전공자가 많이 보는 책을 쓰는 이유도, ‘여러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건축이 이래야만 한다.’를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어요.
우리 주변에서 이런 걸 경험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경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 알아요. 경제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마르크스를 비롯해서 많은 학자들이 학문으로 정립했잖아요. 그런데 건축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거죠. 우리나라 건축가를 떠올렸을 때 한두 명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그건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해서 관심이 깊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건축’이라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건축가가 적어도 20명은 되어야 해요. 한두 명밖에 없다는 얘기는 질적으로 죽은 비즈니스라고 보는 거죠. 바람직하지 않아요.
수요가 없는 거겠죠?
수요라면 사실 우리나라만큼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 있어요(웃음). 온 국민이 부동산만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겠다는 생각만 하지 내가 좀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숫자만 늘릴 생각을 하는 거죠. 그게 좀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확실히 좀 나아지고는 있어요. 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잖아요.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려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머무는 호텔 같은 사진을 많이 찍는데, 자신의 행복도가 건축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점점 느끼기 시작한 거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회가 바뀌어 나가고 있구나, 느껴요.
사람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이는 부분이 다 다르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숙박에 가장 많은 돈을 들여요. 제가 지금 사는 집이 비좁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웃음).
자신이 기거하는 곳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현실에서 안 되니까 이동해서라도, 단기간이라도 좋은 곳에서 머무는 거죠. 점점 사람들의 공간은 열악해지고 그래서 카페를 많이 가요. 저렴하게 5천원만 내고 공간을 쓸 수 있으니까요. 공간에 대한 욕구는 있으니, 빌리는 쪽으로 가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각종 방 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런 이유죠. 집에서 해결이 안 되니까요. 미국 저 멀리 뉴저지에서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다 할 수 있어요. 바비큐를 굽고 싶으면 하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바비큐 하려면 펜션으로 가야 되거든요. 뭘 하려면 돈을 내고 빌리는 거예요.
고층 아파트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예요. 땅이 좁아서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똑같이 땅이 좁은 싱가포르를 볼게요. 싱가포르의 아파트와 비교하면 저는 싱가포르에서 더 살고 싶어요. 땅의 면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시스템 문제인 거죠.
바뀔 수 있을까요? 건축이란 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잖아요.
힘들어 보이긴 해요.
우리나라에는 아파트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거주로 인한 단절에 대해 고민하고 염려해요.
예전처럼 다시 골목골목에 집이 생긴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웃과 친하게 지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60년대에 그런 풍경이 연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농경 사회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농경 사회에선 옆집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야만 해요. 냉장고도 없으니 나눠 먹고, 노동을 하려면 힘을 합쳐야 하니까 어울려 사는 데 익숙했죠. 석유를 기반으로 한 산업화 사회는 분야가 세세하게 나뉘어 있어요. 그런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아파트가 좀더 적합하죠. 다만 아파트에는 두 가지가 결핍되어 있어요. 하나는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자연이 없어요. 정원이나 마당처럼 사적인 외부 공간이 없는 거예요. 예전에는 속옷바람으로 마당에 나가 자연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등산복을 입고 나가야만 해요. 길거리나 공원으로 나가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공공의 공간이기 때문에 본연의 내 모습이 아니라 한 꺼풀 쓰고 나갈 수밖에 없어요. 1차적으로 우리의 본능과 맞지도 않고, 아파트에도 개인이 혼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이 필요해요.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요. 싱가포르 아파트가 그래요. 집집마다 발코니와 테라스가 있어요. 외부 공간에 테라스가 있을 때 비율이 중요하거든요. 10제곱미터짜리 외부 공간이 있다고 가정하면 3.3미터 곱하기 3.3미터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1미터 곱하기 10미터예요. 빨래 너는 일 외에는 쓸 데가 없죠. 베란다가 무의미해요. 마주 보고 차를 마실 수도 없고요. 만약 비율을 3.3 곱하기 3.3으로 정했다면 아무도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쌓아 올리면 하늘이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지그재그 형식으로 테라스에 위치해야 하는데 법률상 어려운 부분이 있죠. 건축 법규만 조금 풀어져도 우리나라도 모두 외부 공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 결핍은 뭔가요?
가족하고의 단절이 심해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공간을 갖는 건 의미가 있죠. 그건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 집 식구들하고도 멀어지는 건 문제가 있잖아요. 아파트에는 방에서 방으로 바라보는 구조가 없어요. 한옥은 마당을 통해서 내 방에서 사랑방을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특허를 하나 냈어요. 아파트에서 거실 쪽으로 창문을 내는 아파트요.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상상이 잘 안 가요.
방에 있을 때 창문을 열면 거실이 보여요. 우리 아들 방에서 창문을 열면 또 그곳까지 쫙 보이는 거죠. 그러면 집도 훨씬 넓어 보이고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부분이 부족한 편이에요.
좋은 건축의 의미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특허와 연결돼 보이기도 해요.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만들고 화목하게 만드는 거죠. 공간 구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만큼 행복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들을 감시하려는 거 아니냐, 이런 의견도 있는데(웃음), 그걸 원치 않으면 그냥 아들이 문을 닫으면 되는 거예요. 상호 동의 하에서 볼 수 있는 거니까요. 불투명한 창으로 디자인하면 잘 안 보여서 사적인 공간을 유지할 수 있고요. 선택권이 늘어나는 거예요. 벽으로만 되어 있는 것과 창문이 있는 벽은 다르잖아요. 채널이 한 개인 TV와 두 개인 TV가 다른 것처럼요. 하나가 더 있으면 조금 낫잖아요. 우리의 공간은 그래야만 하거든요. 창문이 있으면 네 가지의 경우가 생겨요. 안방과 거실의 소통, 공부방과 거실의 소통, 안방과 거실과 공부방의 소통, 그리고 모두 단절된 경우. 그런데 벽만 있으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죠. 경우의 숫자가 네 배가 느는 거니까요. 우리는 워낙 창문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는데, 방 안에서 거실을 보면 외부 공간을 바라보는 느낌도 들 거예요.
스웨덴에 갔을 때 테라스 문화에 놀란 기억이 있어요. 집마다 테라스가 있는데, 저마다 예쁜 꽃과 테이블로 꾸며놓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상상을 했어요. 저기서 누가 차를 마시겠다, 누구는 책을 읽겠다, 하면서요.
도시의 풍경이 달라지죠. 그게 우리나라 도시와 다른 점이에요. 그 안에 담긴 삶이 드러나야 하거든요. 빈 테이블만 봐도 그 테이블이 주는 상상이 있잖아요. 차 마시고 여유롭고 행복한 기억들을 우리가 전해 받는 거죠. 공간의 풍경도 행복한 장면이 연상되는 풍경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전부 유리창이잖아요. 그러니 아무것도 없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삭막해 보여요. 사무실과 다를 게 없잖아요. 홍콩의 안 좋은 동네에 가더라도 빨래만 보면 풍경이 정겨워 보여요.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보이니까요.
교수님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건축적인 현상에 ‘왜’를 넣는 것 같았어요. 육하원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가까워지는 게 ‘왜’예요.
호기심이 늘 있었어요. 자연스러웠죠.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숨겨진 걸 상상하는 게 좋았어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보이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건축 설계를 할 때도 보이는 건축 모양보다도 그 안의 사람들 관계에 관심을 가진 거죠.
오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교수님은 사회 속 결핍이나 부족함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사실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겉으로 봤을 때는 제가 풍요로워 보일 수 있죠. 실제로 부모님이 저에게 아낌없이 베푸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항상 소외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많은 친구들하고 떼로 모여서 지내는 게 불편한 사람이었거든요. 혼자가 편안했죠. 당시 사립학교를 다녀서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안에서 ‘한쪽 구석에다 방을 만들어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었던 거죠. 그 개인주의적인 성향 때문인지 반장을 도맡아 했으면서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진 않았어요. 대세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죠. 동떨어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관찰하는 일도 자연스러웠나 봐요.
사실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집안 분위기였어요. 화목하지 않았거든요. 정확히는 화목하지만 화목하지도 않았어요. 무슨 말이냐면 저희 집에 시어머니가 살았거든요. 저의 친할머니요. 할머니도 절 사랑하고 아빠도 저를 사랑하고 엄마도 저를 사랑하는데 셋이 있으면 묘하게 갈등이 있는 거예요. 아주 묘하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그들이 화목해지는지 항상 생각했죠. 좋은 성적을 올리거나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반장이 되거나 하면, 모두 행복해져요. 하지만 제가 역할을 못하면 어느 부분엔가 갈등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갈등이 해소되는 걸 봤기 때문에 건축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하다 생각난 건데, 제가 저희 집에서만 지냈다면 그런 분위기에 함몰되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저희 옆 옆집에 저랑 아주 친한 친구가 살았어요. 엄마, 아빠, 딸 셋이 사는 집이었는데 그 집이 그렇게 화목했어요.
시어머니가 안 계신 거잖아요(웃음).
그렇죠. 여행도 잘 다니고 부부끼리 외식도 나가고. 똑같은 집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계속 보는 거죠. 저는 그 집에서 반, 우리 집에서 반 살았거든요. 거의 그 집 아들처럼요.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런 식으로 깨달은 것 같아요. 말하고 보니 우리 집만이 저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집에 비교 대상을 두고 차이를 느끼면서 성장한 것도 있네요. 두 개의 작은 다른 사회를 경험하면서 관계가 행복을 좌지우지하는구나 느낀 거죠.
제가 요즘 인터뷰할 때마다 마지막 질문은 늘 똑같이 남기고 있어요. “이 세상엔 000이 너무 많다.”라는 말의 빈칸을 채워주세요.
잣대가 너무 많다. 잣대가 너무 많아서 항상 무언가를 평가하려는 기준이 너무 많아요.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말이죠. 어른들이 자꾸 그렇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