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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磬 풍경
風磬
풍경
풍경은 집안에 자리 잡은 세간 중 가장 시적인 사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이름부터가 그렇다. 바람이 치는 종이라니.
풍경의 철
처마도 정원도 없는 우리 집에서 풍경의 자리는 거실 창문 앞. 겨우내 꽁꽁 닫아둔 창문을 여는 봄부터가 풍경의 제철이다. 끈질긴 추위와 기세등등했던 황사가 마침내 물러나고 창을 열어 미풍에 울리는 봄의 첫 풍경 소리를 듣노라면 이제 당당히 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한여름이 되면 풍경을 흔드는 건 선풍기, 뒤이어 에어컨의 몫이 된다. 덕분에 이 멋없는 기계 바람도 제법 운치를 입는다. 집안 온도는 조금 더 서늘해진다. 가을엔 집 앞에 무성히 자라난 대나무가 출렁이도록 바람이 불기도 한다. 이런 날에는 풍경도 제법 신이 나서 발랄해진다. 하지만 거슬리도록 요란한 법은 없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면 바람에 잘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잘 비껴가는 것도 좋은 풍경의 미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풍경의 기원
풍경은 풍탁이라고도 불리고 방울 령자를 써서 풍령이라고도 한다. 스님들이 치는 목탁을 바람이 대신 두드리거나 고양이 목의 방울을 바람이 흔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느 쪽이든 귀엽고 정다운 이름이다. 삼국시대 때 불교 문화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졌으며, 백제 미륵사지 동탑지에서 발굴된 금동제 풍경은 우리나라 종의 시원으로 추정된다. 시대적으로 풍경이 종을 앞선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바람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람을 대신하는 흐름이라니. 기억 속의 풍경을 더듬어보면 고즈넉한 산사의 처마 끝에 매달린 모습이 낯익다. 그 끝에는 어김없이 물고기 형상의 바람 판이 달려 있는데 물속 대신 공기 중을 노닌다고 생각하면 풍류가 넘치지만, 물고기는 잠을 잘 때나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으니 항상 깨어 수행하라는 의미임을 알고 나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물의 기운으로 화재를 예방한다는 다소 현실적인 기원도 담고 있다.
Tsubomi Wind-bell
7만 9천원, TWL
우리 집의 풍경
결혼선물로 받은 첫 풍경으로 그 매력을 알게 된 후, 십 년이 넘게 고심하여 고른 것이 지금의 풍경이다. 우선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거친 맛을 살려 마감한 표면이 좋았다. 모래로 틀을 만들고 쇳물을 붓는 고전적인 사형주조 방식을 살려 제작했다고 한다. 솜 구슬 세 개가 조르륵 달린 바람 판은 또 어떠한가. 떠 있는 것이고 노니는 것이니 구름 같고 솜털 같고 민들레 씨앗 같은 것이 자연스럽다. 삼국시대 옛 풍경들이 종종 구름 형상의 바람판을 지닌 것도 같은 연유일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풍경을 구해서 달아보니 그 모습이 집의 공기와 썩 잘 어우러졌다. 이제 바람만 불어주면 되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재촉하면 좀처럼 들을 수가 없는 것이 풍경 소리라는 것을 그 날 깨달았다. 대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잊고 있을 때, 가라앉은 공기에 잠겨 있을 때, 창밖의 새끼 고양이처럼 들릴 듯 말 듯 울리는 것이 풍경 소리이다. 환청인가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보면 그제야 확실히 들려온다. 이 수줍고 분명한 인사, 바람의 인기척을 들으며 일본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하타치 요시코의 시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도 없는데 / 그네가 흔들리고 있네 / 아이들이 / 모두 돌아간 후 / 드디어 / 바람 차례가 와서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