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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VA 린넨 블랭킷
우리는 익숙한 물건을 챙겨 낯선 곳으로 떠난다. 여행의 기억을 담은 새 물건 서너 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내부와 외부, 익숙함과 새로움, 아는 것과 미지의 것. 그 경계를 부드럽게 감싸는 도구로 나의 린넨 블랭킷을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녀보았다.
여행과
일상을 잇는
많은 경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여행의 목표이자 묘미다. 한편으론 멀고 낯선 타지에서도 생활의 능숙한 호흡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 짐가방 속에 챙겨 넣는 이런저런 물건들과 사전 조사의 노력들은 우리를 새로운 환경에 당황한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의 무대를 잠시 옮긴, 여전한 나 자신이게 해준다. 가방 하나에 일상 전체를 담아 갈 순 없으니 짐 싸기의 현장은 늘 경쟁이 치열한데, ‘온몸을 넉넉히 두르고도 남을 만큼 큼직한 린넨 블랭킷’은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홑겹 원단이라 단정히 접으면 부피는 얼마 되지 않지만 린넨 특유의 밀도 덕에 은근한 묵직하고, 그 무게가 억울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역할을 한다.
우선 익숙지 않거나 미심쩍은 침구를 대신해 쾌적한 숙면을 보장하는 이불이 된다. 호주 레이디엘리엇 섬의 코티지나 오키나와 동쪽 해변의 서퍼 하우스처럼 소박하기 그지없는 숙소에서는 믿고 몸을 맡길 린넨 침구가 있다는 것이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다. 강릉의 바닷가를 포함해 여러 해변에서는 모래 위에 펼쳐 몸을 눕혔다가 이내 탁탁 털어 몸을 말리는 비치 타월로 쓴다. 모래가 들러붙지 않고 건조가 빠른 재질의 특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공원의 테이블 위에 덮으면 슈퍼에서 산 병 음료와 샌드위치만으로도 피크닉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있다. 부엌이 딸린 숙소에서 직접 장을 보고 식사를 차릴 때도 마찬가지. 식기나 요리 도구가 제한적이어도 충분히 공들인 식탁이 되게 해준다. 때로는 차양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집에 두고 온 샤워 가운을 대신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온 후에는 세탁하여 바싹하게 말린 뒤 착착 접으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혹은 접을 새도 없이 집안의 침대나 식탁 위로 직행, 함께 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이국의 바다 내음과 들풀의 얼룩, 낯선 식재료의 흔적 위에 담담한 오늘을 차곡차곡 겹쳐간다. 우리가 다시 함께 여행에 나설 때까지.
린넨의
미덕
USVA 린넨 블랭킷은 내가 라이너스의 담요 격으로 아끼는 일용품이다. 이 애착 관계엔 2014년 우울한 여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여름부터 팔에 생기기 시작한 발진이 온몸으로 번져나가더니 이내 외출이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고 간지럽고 따가워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에게도 다시 짧은 옷을 입는 날이 올까… 하는 절망적이고 의기소침한 마음이 들 만큼 심해진 와중에도 그나마 다행히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온몸을 린넨 담요로 똘똘 말면 조금 편안해졌고 잠도 잘 수 있었다. 고대 미라가 된 기분으로 힘겹게 보낸 여름이 가고, 가을 무렵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 이후 병세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린넨 특유의 시원하고 바삭한 촉감을 몹시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어디든 함께 가고 싶을 만큼!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실제로 이집트에서 발굴된 파라오의 미라는 린넨으로 감싸져 있었으며 발견 당시 다른 섬유가 삭아서 먼지가 된 상황에서도 놀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통기성과 흡습성, 속건성이 좋고, 마모에 대한 내구성이 높으며, 박테리아나 세균에 대한 저항이 높은 린넨의 여러 장점이 미라에게도 나에게도 효과를 발휘한 것이리라. 린넨은 고대 이집트에서 화폐로 거래되고 “짜여진 달빛Woven Moonlight”이란 시적 표현으로 칭송받았으며 성소의 휘장이나 제사장의 옷감으로 사용되는 귀한 소재였다. 영어권에선 침구를 베드 린넨Bed Linen으로 통칭할 만큼 침구로 사용하기에 최적이고 잘 관리하면 점점 좋아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 린넨의 원재료인 아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비료로 토양을 훼손하지 않으며 목화에 비해 원재료의 많은 부위를 사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인 소재로도 인정받고 있다.
라푸안 칸쿠리트 Lapuan Kankurit
1917년 시작된 핀란드 브랜드. 헬싱키에서 기차로 4시간 거리의 라푸아Lapua는 끝없는 자작나무 숲과 호수가 펼쳐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라푸안 칸쿠리트’는 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가족의 삶을 성장의 축으로 삼아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최신 직조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만드는 우수한 제품들은 주방, 테이블, 목욕, 사우나, 인테리어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라푸안 칸쿠리트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USVA 린넨 블랭킷이 그러하듯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좋은 소재를 완벽한 방직 기술로 가공하되 여러 가지 사용 방법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디자인으로 합리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생활을 추구한다. 핀란드 회사로는 유일하게 마스터 오브 린넨Master of Linen 인증을 받았다.
USVA Linen Blanket | 18만 9천원, TWL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