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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o Bag
Tobo Bag
토보백
가끔 그녀의 작업실을 생각한다. 작은 방을 빼곡히 채운 것은 형형색색의 천과 리본과 실밥과 반쯤 완성된 가방들. 사각사각 가위 소리와 드르륵 재봉틀 소리. 커다란 눈을 빛내며 언제나처럼 겸손하고도 대담한 손길로 가방을 짓는 반듯한 뒷모습. 이곳에서 탄생하는 가방들은 그녀의 이름을 따 토보백Tobo bag이라고 불린다.
토보와의
만남
우리는 2012년 6월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정신없는 시부야 거리 풍경과는 달리 ‘시애틀의 응접실’이란 카페는 제법 여유롭고 아늑했다. “당신의 가방을 우연히 알게 되어 즐겁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물어봐요. 이 귀여운 백은 뭐냐고, 어디에서 구했느냐고.” 이런 팬레터를 보낸 우리를 그녀는 선뜻 만나주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조금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사이 핸드 카트에 커다란 짐가방을 매단 그녀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한국에서 찾아온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 왔을 그녀의 작업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나하나 다르고 또 아름다운 컬러의 백들을 꺼내보며 사탕 가게의 어린이처럼 환호성을 지르는 우리 테이블에는 어느새 카페의 종업원도 합세해 있었다. 어떤 계산도 해석도 필요 없이 눈에서 마음으로 바로 오는 즐거움. 그건 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송이들을 보았을 때나 공들여 구운 디저트로 가득한 진열장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었다.
정작 그 색들을 엮은 주인공은 무채색 계열의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단정한 것은 옷차림뿐이 아니었다. 이후 5년간 지켜본 그녀는 햇빛에 잘 말려 곱게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다정한 사람.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각자의 접시에 솜씨 있게 덜어주고,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배려한다. 가방 안에는 우산이나 여분의 가방이 준비되어 필요할 때 척척 꺼내준다. 그러면서도 늘 센스 있는 농담을 건네는 명랑함, 산낙지부터 육회까지 용감하게 시도하는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이런 품성과 태도가 고스란히 투영된 그녀의 작업에는, 발랄하고 개성 있는 컬러 조합과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고 늘 단정하게 유지되는 형태, 이런저런 쓰임새를 세심하게 배려한 디테일, 그리고 한결같이 완벽한 마감이 공존한다. 돌이켜보면 토보백이라는 사물과의 만남은 토보라는 사람과의 만남과 정확히 일치해왔다.
혼자 짓는
시
2245, 2410, 2970, 3848, 4095, 4347. 그동안 모아온 토보백의 일련번호다. 이 번호는 가방이 완성되는 시점에 순차적으로 부여되어 손으로 쓴 태그와 함께 부착된다. 현재 그녀의 작업실에서는 4496번째 가방이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해온 그 작업실에는 아마 라디오의 음악이 작은 볼륨으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멋들어진 인테리어나 최신 시설은 하나도 없다. 어시스턴트 한 명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싶지만 철저히 혼자 작업한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정돈된 방과 오랜 시간 길들여진 재봉틀 대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사실 제법 친해진 몇 년 전 여름에는 양산에 대해 조심스럽게 건의하기도 했다. 더 많은 수량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생산 시스템과 마케팅을 도입하여 성장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녀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라면 서브 작가들과 팀을 이루거나 리서치를 위한 연구생을 두어 더 길고 풍성한 흥행작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섯 개의 토보백과 인연을 맺은 지금, 그녀의 작업은 단어 하나하나를 공들여 고르고 배치한 시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시가 빛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백이
대화가 될 때
나는 스스로의 시간을, 마음을, 생각을 고스란히 작업으로 치환하는 사람들을 제법 알고 있다. 혼자 작업하는 플로리스트, 식재료 준비부터 서빙까지 모두 담당하는 셰프, 작은 공방을 꾸리는 목수, 자신의 이름으로 레이블을 만든 패션 디자이너.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하며, 때로는 영수증 더미와 서툰 세무 업무에 시달리고, 망설이고 고민하면서도 하나의 작고 명료한 점으로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 2 다음에 4, 그리고 16이나 400을 달성하는 것은 환호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4496번 다음엔 틀림없이 4497번째 토보백이 만들어질 것이고, 지금 마주한 이 꽃다발이, 음식이, 가구가, 옷이 추상적인 브랜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저 사람의 틀림없는 일부임을 확인할 때의 안도감은 성장의 논리로 대체할 수 없는 기쁨과 신뢰를 준다. 혼자가 되어 정직하게 일군 작업을 서로에게 건넬 때, 독백이 대화가 되고, 점들이 별자리를 이루는 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토보 유코当房 優子
2000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패브릭 아티스트다. 다양한 컬러 조합과 독특한 형태의 백 시리즈를 선보이는 한편, 잡지와 서적을 위한 촬영 소품 오브제를 제작하고 있다. 아트 서점인 NADiff, 미토예술관, 우에노 로열 뮤지엄 갤러리,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일본 각 지역의 주요 편집숍에서 전시와 페어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2월과 3월에 걸쳐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판매전과 워크숍이 진행되며 새로운 책의 출판을 앞두고 있다.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