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의 산책

Bath Tray

Bath Tray

배스 트레이

일요일 밤. 주말은 속절없이 끝나간다. 월요일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마음속에 먹구름이 차오른다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배스 트레이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볼 때다. 가이드의 제목은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최대치로 잘해주는 방법’이다.

욕조에서의
시간 안내서

레데커의 배스 트레이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보내는 시간’에 대한 여러 로망을 차곡차곡 집대성한 도구이다. 오른쪽엔 은은한 빛을 드리워줄 캔들 홀더, 왼쪽엔 커다란 와인잔도 안심하고 걸쳐둘 수 있는 와인 홀더. 그 사이엔 세심한 각도 조절이 가능한 북스탠드가 자리하고 있다. 비치우드와 스테인리스 소재로 단정하게 만들어진 이 배스 트레이가 조용히, 또한 분명한 어조로 권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욕실의 전등은 끌 것. 조용히 타들어 갈 초를 켜 꼭 필요한 만큼의 따뜻한 빛을 채운다. 와인이든 물이든 좋아하는 음료를 준비하되 제대로 된 유리잔, 그것도 스템이 있는 잔이어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준비한다. 이 모든 소소한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준비한 호사는 오롯이 한 사람, 나의 것이다.

어른의 처방전

목욕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은 결국 혼자의 일. 어릴 때 책 좀 읽는 아이로 주변 어른들의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거나, 차마 눈을 뗄 수 없다는 듯 책장에 고개를 파묻거나, 욕조에 물을 받고 욕실 문을 닫아거는 행위는 어쨌든 방어이고 도피이다. 다만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의 불안감, 초조함, 피로와 같은 것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사용되곤 한다. 매주 일요일 밤이 오듯 이런저런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 “뭐 괜찮아. 나에겐 욕조가 있고, 배스 트레이가 있으니까” 하고 호기롭게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손발이 쪼글쪼글해지고 책장이 수증기로 조금 부풀어 오를 때까지 아끼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강력한 처방제이다. 게다가 와인과 촛불이라니, 이만하면 더 바랄게 무어냐며 스스로 징징거림을 차단하는 데도 특효가 있다.

레데커는 1036년 창업 이후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독일 브랜드다. 유럽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전통 방식의 브러시와 가정용품 제조사이다. 브랜드를 소개하는 말로 “You need brushes for everything” 이란 문구를 쓰고 있는데, 사실상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브러시, 거기에 상상할 수 없는 브러시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선보이고 있다. 당연하게도 유럽의 일상을 반영한 제품들이 많다. 정원일 후 까맣게 된 손톱 밑을 위한 네일 브러시나 장화에 잔뜩 낀 흙을 털어줄 신발용 브러시, 굴뚝이나 높은 천장의 거미줄 제거용 빗자루, 유럽에서 취미활동으로 인기라는 버섯 채취용 칼과 브러시 등은 그다지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는데 <미운우리새끼>의 허지웅 작가가 극찬한 타조털 먼지떨이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최근에는 브러시에 머물지 않고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사람과 환경친화적인 제품’이란 원칙 아래에 다양한 가정용품을 선보이고 있다.

Redecker Bath Tray | 35만원, T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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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