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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마츠 향목점 하나교카 시즌 세트
Yamadamatsu
Hanakyoka Season Set
야마다마츠 향목점 하나교카 시즌 세트
검은 봉투를 열면 12개의 향기가 참하게 담겨 있다. 한 해의 흐름과 절기의 변화,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미를 담은 색색의 향이 궁금해서 매달의 첫날을 조금 설레며 맞는다. 마음이 먼저 마중 나가는 반가운 날이 일 년에 12번이나 더 생겼다.
향의
달력
교토에 다녀온 동료가 선물로 건넨 봉투를 열어보니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의 정취를 담은 인향 12개와 받침대가 담겨 있었다. 인향마다 모양도 색도 다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설명 글을 읽지 않아도 각각의 향기를 짐작할 수 있게끔 섬세한 모양새다. 여러 가지 방식의 향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해보았지만 이 ‘하나교카 시즌 세트’만큼 담백하고, 아름답고, 또 일상에서 밀접하게 향을 즐기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매달 향기의 선정이나 설명도 근사해서 시구절을 대하듯 여러 번 읽어보았다. 1월은 백단을 기본으로 한 상쾌한 향기, 3월은 벚꽃을 바탕으로 만든 화려한 향기, 4월은 신록이 연상되는 시원한 향기다. 똑같이 꽃을 주제로 했지만 5월은 물가의 꽃이 연상되는 상쾌한 향, 6월은 우울한 장마를 잊게 해주는 향, 7월은 여름 꽃을 모은 듯 달콤한 향을 담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하반기의 향들인데 8월은 가을 소식을 알리는 덧없는 향기, 10월은 초가을에 산에 넘치는 고향을 그리는 향수, 11월은 선명하게 산을 물들이는 비단처럼 아름다운 단풍의 향기 그리고 12월은 의젓하게 피는 수선화의 맑고 청초한 향기를 그린다. 매달의 첫 주말에 창문을 조금 열고 테이블 위를 깨끗이 치운 다음 이달의 인향에 조심조심 불을 붙이고 스탠드에 반듯하게 세워 두면 하얀 연기가 비단결처럼 피어오른다. 크기가 작아 1분 남짓, 가만히 바라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 동안 타오른다. 어지간히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도 한 번에 모두 태워 없앨 마음이 들지 않고, 아무리 궁금해도 10월의 향은 10월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향의 달력. 12개의 향을 피우며 일 년을 지내보니 매달의 시작을 은근한 기대로 맞게 된다. 저 멀리 누군가가 써 보낸 짧고 정겨운 서간을 매달 받아보는 마음으로.
시간과의
호흡
성큼 앞서 나간 날들의 뒤에서 벌써 일 주가, 한 달이, 일 년이 다 지났음에 초조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이런저런 할 일로 가득한 일정들을 끌고 가다 보면 늘 지는 경주에 나선 2군 선수가 되는데, 어쨌든 앞선 시간을 좇아 뛰어야 하는 몸은 지치고 마음은 허망해진다. 이렇게 등 떠밀리거나 끌려가는 트랙 위에서도 우리에게 이만큼 왔다고, 4분의 3을 지난 이 지점의 풍경은 이렇게나 좋지 않냐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들이 있다. 학생 때는 방학이 있었고, 회사원에겐 월급날과 휴가가 있다. 지리한 여름 끝에 맞이하는 가을의 첫 바람, 봄의 개화, 여름의 복숭아 맛도 그렇다. 연말과 새해 명절,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도 마침표와 쉼표의 역할을 해준다. 일 년을 여러 마디로 나누고 그 마디마다 이름표를 달고, 쉬어갈 때와 나아갈 때를 일러주며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는 책.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달력을 이렇게 달리 보면 여기엔 지구의 자전이라는 우주적 현상과 한 방향으로 줄곧 흐르는 시간의 초월적 존재를 사람의 스케일로 이해하고 향유하려는 노력이 빼곡히 담겨 있다. 날짜 밑에 작게 적힌 입춘, 단오, 동지 같은 날들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태양과 나의 위치를 토대로 한 계절의 분수령이라는 것, 그 계절이 좌우하는 빛의 각도나 비의 양, 습도와 공기의 질감이 기분과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은 한 해 한 해 더 명징하게 다가온다.
농경사회에서 는 기분과 건강뿐 아니라 생사까지 좌우했으므로 이날들을 기리는 방법도 더 정중하고 정교했다. 단오에는 무더위에 앞서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에는 일 년 중 가장 긴 밤을 함께 보내며 묵은 빚을 청산하는 풍습은 합리적이면서도 낭만적이어서,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것 외에도 절기의 호흡을 즐길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일깨운다. 지난 몇 년간은 싸고 맛있는 제철 식재료를 놓치지 말고 꼭 챙겨 즐기는 데 집중하며 달력을 맛집 지도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매달의 향을 피워두고 새롭게 주어진 날들을 향으로 그려보는 호젓한 기쁨은 나의 달력에 추가된 최신의 이벤트다. 피어오르는 인향의 연기에 응축된 상징과 실제 창 밖에서 불어오는 현실의 공기가 하나로 타오르는 것을 보고 또 냄새 맡노라면, 몹시 고대하던 시간이 이곳에 도달한 듯 그립고도 반가운 마음으로 한 달을 시작하게 된다.
Yamadamatsu
‘야마다마츠’는 에도 시대 교토 기반의 약재상으로 시작하여, 1700년도 후반에 향의 원료 전문점으로 전향한 전통 향목점이다. 약재와 향의 원료 전문점이 시작이었기 때문에 향의 원료에 대한 이해가 깊고, 보유하고 있는 향의 수량과 다양성이 독보적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무수한 향목점들과 차별화된다. 향에 대한 교육과 연구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Yamadamatsu Hanakyoka Season Set | 1만 9천원, TWL 온오프라인샵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