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의 산책

토우로우 조명

Tourou Light
토우로우 조명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누일 때 방 안을 은신처로 만드는 것, 소란하던 낮의 기억을 저물게 하는 것, 깊은 잠의 휴식으로 상냥히 인도하는 것은 침대 옆에 켜둔 조명이다.

침실의

양옆으로 둔 낮은 테이블과 작은 화장대 외에는 별다른 가구도 장식도 두지 않은 침실. 매일 밤 침대 위로 두 사람이 눕고 발치엔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는다. 한데 뒤엉켜 단잠을 자고 저마다 꿈을 꾼다. 네 개의 생명체로 북적이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다 보면 작은 뗏목에 의지해 밤의 바다를 건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때 우리의 항로를 인도해주는 것은 침대 곁에 둔 조명, 토우로우Tourou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살대는 잔잔한 수평선 같고 그 위로 팽팽한 장력을 받으며 입혀진 유백색의 종이는 부푼 돛대를 연상케 한다. 흐트러짐 없이 담담한 자태로 이 항해가 순탄하리란 믿음을 준다. 그리고 스위치를 켜면 조용히 걸러진 빛이 스며 나온다. 각자의 일과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마침내 한데 모여 곤하고 기쁜 잠을 청하는 데 어울리는 온화한 어둠을 드리운다.

빛을 보는
마음

토우로우는 등롱을 뜻하는 일본어다. 절이나 신사에서 수호상 조각과 함께 놓이며 주로 본당으로 향하는 길 양편에 자리한다. 불을 지피는 윗부분은 불룩하고 이를 받치는 기둥 부분은 좁고 긴 것이 우리나라의 석등과도 유사한 형태. 석등은 빛을 밝혀 진리를 찾는다는 불교적 의미와 죽은 자의 명복을 구한다는 유교 문화에 따라 건축의 일부로 조성되어 왔다. 한편 제작 기법과 소재 측면에서는 일본 기후 지역의 전통 공예에 뿌리를 둔다. 기후는 산림자원이 풍부한 덕에 와시(일본 전통 종이)와 대나무를 활용한 공예가 발달하였고, 18세기 중반부터는 부채, 우산 등과 함께 가볍고 접어 보관할 수 있는 휴대용 등기구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기후쵸친岐阜提灯으로 통칭되는 이 조명기구들은 제사, 명절, 축제 등 특별한 날의 필수품이기도 했지만 밤낚시 등 실생활에서도 소중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빛은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제한적인 자원이었다. 캄캄한 길 양편에 놓인 석등의 늠름한 불빛, 종이 등롱 안에서 초연하게 빛나는 기름등잔이나 촛불은 그 자체가 의식이자 신앙이었다. 나아가 수호자, 영혼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시절 등기구의 형상과 이름, 제작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토우로우의 불빛이 밤을 건너는 길의 등대처럼 미덥고 의지가 되는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리라.

전하는
불빛

토우로우를 이야기하며 ‘AKARI’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사무 노구치는 1951년 기후 지역 방문을 계기로 와시를 이용한 전통 등롱의 조형을 모색하여 200여 개의 디자인으로 완성시켰다. AKARI로 이름 붙여진 이 시리즈는 종이를 사용한 빛의 조각이자 살아 있는 예술품, 영원한 일본의 조명으로 사랑받고 있다. 토우로우를 선보인 타임앤스타일 역시 AKARI를 의식하며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등롱을 테마로 조명을 디자인할 때 AKARI의 존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주거 공간을 토대로 보다 현대적이면서 간결한 디자인에 섬세한 디테일의 조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바람은 현재 일본의 디자인과 제조 분야 전문가들의 의기투합으로 이어졌다. 디자인을 맡은 하세가와 시게는 기후 출신의 디자이너로 미국과 아시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재료인 미노와시의 제작은 Corsoyard의 사와키 씨에게 의뢰하여 원료의 정제부터 뜨기 공정과 자연 건조까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제작은 기후 전통 등기구 제작사인 아사노 상점이 담당하는데 공예에 조예가 깊은 아사노 사장을 비롯해, 담당자와 장인의 정성과 기술을 집대성하여 섬세하고 정교하게 완성한다. 토우로우가 태어난 배경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는 에도 시대부터 이어온 일본 공예의 전통, 미국인이면서 일본인, 그 중간의 이방인이기도 했던 당대의 예술가, 그리고 현재의 일본을 구성하는 현업의 전문가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서로의 제조 방식과 디자인을 존경하며 과거의 유산을 성실히 살피고 현재의 시점으로 갱신해가는 것. 이들이 시간의 축을 따라 서로에게 전하는 불빛이 강건하고 생동감 있게 빛나는 것을 본다.

Time & Style

1990년에 설립된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가구를 중심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생활용품을 선보이고 있다. 서구화된 생활 양식과 일본의 미감, 최신 기술과 공예의 전통을 신중히 아우른다. 요시다 대표는 일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독일에서 보내고 일본에 돌아와 타임앤스타일을 시작하였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서구의 삶을 바라보고, 다시 유럽의 시각으로 일본의 전통을 응시해온 개인적 이력이 이들의 제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7년 3월 암스테르담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다.

Tourou Light, Time & Style | 41,904 JPY(약 43만원)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