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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인동초 바구니
Muju honeysuckle basket
무주 인동초 바구니
가장 좋아하는, 아끼는 살림살이가 무어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좋은 제품의 객관적 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 기회도 종종 있다. 그럴 땐 자주 사용하는 것, 쓰임새가 좋고 아름다우며 시간이 갈수록 더 멋있어지는 세간들을 우선 떠올린다. 조금 더 좁혀보면 출처를 잘 아는 것들을 고르게 된다. 재료의 태생, 담긴 사연, 만든 이의 마음을 안다는 건 촘촘한 이해와 믿음을 낳는다. 여기에 ‘이제는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조건이 더해지면 좋아함은 애틋한 마음으로 깊어진다. 이 모두를 포개둔 자리에 나의 인동초 바구니와 채반이 있다.
인동초 마을을
찾아서
몇 해 전 새해 벽두. 몇 시간의 운전 끝에 덕유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배방마을에 도착했다. 마을회관 문을 열자 지글지글 맛있는 냄새와 “막걸리 사 오나 싶어서 전 부치고 있었지!” 하며 반겨주시는 인사. (회관 입구에서 겨우 생각이 나 부랴부랴 사 온 막걸리 몇 병이 너무 다행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면서도 무전, 배추전을 부쳐 올린 큼직한 인동초 채반에 눈이 갔다. 우연히 본 배방마을에 대한 기사, 그리고 사진 속의 뽀얀 바구니가 자꾸 궁금해져 무턱대고 연락을 드리고, “바구니 빚는 건 농사 끝난 뒤 한겨울의 일”이란 얘기에 입김이 하얘지는 계절을 기다려 방문한 이곳. 방금 부친 전을 넙죽 받아먹으며 동그란 바구니, 평평한 채반을 묵묵히 만들고 계신 할아버지들의 손동작을 넋 놓고 보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복조리, 짚신, 미니어처 지게 등을 내어 보여주시는 쾌활한 어르신의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봄과 여름에 걸쳐 주변 산야에 흐드러지게 자란 인동초 덩굴을 채취하고,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 말리는 일의 수고로움은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들 고령이고, 아픈 데도 많고, 놀며 쉬기만 해도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말씀에, 양껏 고른 채반과 바구니 값을 부르시는 대로 셈하면서도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이날의 반가운 만남과 발견이 사실 너무 늦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한 번 더 주문한 것을 끝으로 번번이 다리가, 허리가 아파서 넝쿨 채취 자체를 못 하고 계신단 말씀에 여러 종류의 속상함이 겹쳐졌다. 그리고 지금 간직하고 있는 바구니며 채반을 보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엮는 것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우선 채반을 꺼낸다. 그날그날의 재료를 깨끗이 씻어 올려두면 자연에서 온 먹거리의 아름다움에 절로 흐뭇해진다. 금방 먹을 채소나 과일은 바구니에 담아 부엌 한쪽에 보이게 두면 냉장고에 넣었을 때보다 잊지 않고 챙겨 먹을 수 있게 된다. 삶아 빤 행주를 착착 개어 바구니에 담아두는 것도 좋아하는 사용법 중 하나. 인동초는 적당한 탄력과 모난 곳 없이 둥근 단면을 지닌 자생 식물이다. 껍질을 벗기는 고단한 작업을 거쳐 드러나는 뽀얀 속살은 수없이 물에 적시고 말리길 거듭해도 변함없이 맑은 빛을 띤다.
라탄, 왕골, 대나무, 버드나무, 야자수 잎 등 바구니를 만드는 천연 소재는 많고 많지만, 식재료를 담기엔 인동초만 한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아마도 그 색과 형태와 질감이 지닌 깨끗하고 온화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초여름 인동초 덩굴에는 어여쁜 흰색 꽃이 유유히 뻗어가는 줄기 마디마다 피어난다. 남쪽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항균, 항염, 해열 작용을 지닌 약재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필시 땅의 좋은 기운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산야에서 씩씩하게 자란 야생 인동초를 늦은 가을과 초겨울에 넝쿨 정리 겸 채취하고, 땅이 쉬는 겨울날 한곳에 모여 유용한 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아름다운 사이클. 다양한 쓸모와 소탈한 정취에 거듭 감탄할수록 이 기막힌 순환이 이대로 영영 멈추는 것인지 아쉽고 또 아쉬워진다.
무주 인동초 바구니
바구니는 대부분의 문화권에 존재하는 생활 공예품이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날실과 씨실의 원리로 엮어 가벼우면서 튼튼하고, 유연한 형태를 지닌 보관과 운반 도구로 사용해왔다. 농업과 상업 전반, 일상생활 곳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플라스틱 바구니의 등장으로 전통적 위빙 작업이 사라져가는 것 또한 세계적인 불가항력 중 하나다. 무주 배방마을의 인동초 바구니는 조금 더 한국적인 사연을 지니고 있다. 싸리나 댕댕이를 엮어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은 지역의 보편적인 생활 기술로 존재해왔다.
90년대 말 군청에서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인동초 바구니 만들기를 장려했고, 본격적으로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 작업을 진행하면서 살뜰한 부업이자 자부심 담은 지역의 특산품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생명력 강한 인동초 덩굴처럼 마을에 활기가 넘치던 좋았던 시절도 농촌 고령화라는 큰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공예품,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되는 장인의 작품은 아니지만 평생 쓸 분량을 쟁여놓고 싶을 만큼 좋은 생활용품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명맥을 이어갈 수 있길 소망해본다.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