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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사방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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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사방탁자
어느 선비가 주문한 물건이었을까. 18세기 조선의 고가구를 원형으로 만들어진 삼층탁자를 거실 한편에 놓아두고, 폭과 높이와 비례를 머릿속에 그려보았을 양반님과, 주문에 따라 나무를 켜고 다듬었을 목수의 손길과, 그 유산을 꼼꼼한 기록으로 남긴 학자의 심미안과, 21세기에 재현된 이 가구가 지닐 앞으로의 생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백을
규정하는 사물
사방이 뚫려 있고 가느다란 골재와 층널로만 구성된 가구를 사방탁자라 부른다. 거실 한쪽에 호젓이 서 있는 나의 사방탁자는 가장 아래 1층을 막고 여닫이문을 단 구조다. 서랍이 없는 대신 면 분할에 비중을 두었으며 과장된 장석을 피하는 사랑방 가구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충분히 튼튼한 가구지만 많은 물건을 무겁게 올려두거나 빼곡히 보관하진 않는다. 지금 나에게 가장 귀한 것, 그중에서도 소담하고 단정한 것 두 가지를 각각 2층과 3층에 놓아둔다. 1층에는 편지들을 깊이 넣어두고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집 안 곳곳에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쌓여가는 와중에도 사방탁자 위만큼은 호젓한 여백을 간직하는 걸 보면, 사물의 형태에 내재된 사용법, 물건 스스로가 요구하는 태도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암시의 힘이 작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마 조선시대 선비들도 같은 맥락에서 사방탁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서책 중에서도 아끼는 몇 점, 검소하면서도 안목이 드러나는 기물을 숙고하여 두는 자리. 좌식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방 가구 대부분은 낮고 수평적이었기에 수직으로 서 있는 사방탁자의 존재감, 그 위에 놓인 물건의 의미는 훨씬 컸으리라. 가끔은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가구의 간결한 구조와 소박한 선, 정교한 비례, 재료의 조화는 그 자체로 몹시 아름답다. 그리고 여백으로 남겨야 하는 공간을 정확히 구획하여, 놓인 사물과 시선이 오롯이 만나게 하는 기능을 정확히 수행한다.
사방에서
살펴보기
사방탁자를 비롯한 조선시대 목가구에는 당시 주택 구조의 특성과 생활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가옥 구조를 보면 겨울에 웃풍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천장을 낮게 하고, 방의 폭과 길이를 제한하여 불을 지피는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 차를 줄였다. 조선시대 건축 규격인 ‘한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로, 궁이 3미터, 사대부가가 2.4미터, 민가는 1.8미터로 모듈화되어 있었다. 가구의 치수도 여기에 토대를 두었으며 천장 높이, 창 높이, 앉은키 등을 고려하여 대체로 낮고 아담하게 설계되었다. 낮은 다리를 달아 온돌 바닥의 열기가 통풍되게 만들고, 앉은키에서 뚫린 밑부분이 적게 보이도록 풍혈을 두었다. 여름과 겨울, 기온 차가 큰 환경에서 목재의 수축과 팽창에 대응하는 구조적 복안 또한 담겨 있다. 이 사방탁자의 경우 판재인 오동나무를 틀이 되는 참죽나무 골재에 홈을 파고 끼워 넣었는데 그 안에 여유를 두어 판재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정교한 제작을 위한 기술과 솜씨는 장인의 것이지만 가구를 발주하고 사용하는 주체의 관심과 역할 또한 적지 않았다. 선비들은 청빈검약의 덕목을 실천하면서도 각자의 안목과 취향을 드러내는 방법을 고심했다. 화려한 조각이나 칠, 금속 장석은 속된 것으로 여겨졌기에 목리(나뭇결)의 아름다움과 쾌적한 비례에 중점을 두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쓰임새를 높이기 위해 서랍을 추가하거나 칸의 수를 늘려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구를 사랑방에 두고,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기르며 호연지기를 논했다는 선비의 삶은 너무나 아득해서 가끔은 이 사방탁자의 존재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박명배 선생님이 지도하는 한국문화재단 공예건축학교의 소목반 수강생의 졸업작으로, 《한국 전통목가구》에 수록된 설계대로 제작하였다. 《한국 전통목가구》는 저자인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님이 1977년부터 3년간 《공간》지에 목가구의 실측도면과 상세 설명을 연재한 것을 모아 출간한 《한국의 목가구》를 개정 증보한 책이다. 전통 목가구의 정확한 실측도면, 상세 부분 사진, 사례 연구, 짜임과 이음에 대한 분석 등을 담고 있는 자료로는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귀한 저서인데다 목재와 목공구 등 실무적인 내용 외에도 당시의 주택 구조와 가구 배치 등을 보는 즐거움이 빼곡히 담겨 있다.
글·사진 김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