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대어 이어온 골목에서

소제동 철도관사촌

소리 없는 한 마을을 걸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

철길이 만든 마을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전 구간이 개통되며 대전역은 본격적인 철도 도시의 관문이 되었다. 이전까지 대전은 넓은 벌판을 뜻하는 ‘한밭’이라 불리던 한적한 마을에 불과했지만, 철길이 이곳을 관통하면서 도시의 운명은 급격히 바뀌었다. 역이 세워진 뒤로, 철도 노동자들과 기회를 찾아온 상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1914년 대전을 기점으로 목포를 잇는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거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영남과 호남으로 향하는 모든 물자와 인파가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늘어나는 철도 종사자를 수용할 대규모 주거지가 필요해졌다. 이에 1920년대 후반 일제는 대전역 뒤편을 채우고 있던 거대한 호수 ‘소제호’를 매립해 인공 지반을 조성했고, 그 위에 100여 채의 관사를 세웠다. 그렇게 지금의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형성되었다. 그 기록의 흔적을 따라,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으로 직접 걸음을 옮겨보았다.

허물지 않고 삶을 덧댄 자리

대전역 동광장으로 빠져나와 10분 남짓 걸었을까, 왁자지껄한 역의 소음이 잦아들 무렵 나지막한 관사촌의 골목에 닿았다. 솔랑산 기슭 길이라는 뜻을 지닌 ‘솔랑시울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요즘은 보기 힘든 나무 전봇대와 지붕 끝까지 빈틈없이 맞물린 일본식 직선형 기와들, 그리고 몇몇 집들에 여전히 붙어 있는 낡은 관사 번호판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100여 년 전 철도 종사자들이 머물던 이 집들은 한국전쟁의 거센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해방 이후 주민들에게 매각되었다. 한때 100여 채가 넘었던 관사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약 마흔 채 남짓.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은 집을 허무는 대신 저마다의 형편에 맞춰 공간을 덧대고 고쳐 왔다. 일본식 목조 주택의 골조를 그대로 둔 채 시멘트 블록이나 붉은 벽돌로 담장을 세우고, 좁은 마당을 메워 방을 낸 흔적들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내내 길을 안내하듯 짙은 라일락 향이 따라붙었다. 향기의 주인인 나무가 뿌리내린 집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고,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민 보라색 꽃송이들이 적막한 동네에서 유일한 생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유년이 머물렀을 공간 위로는 짙푸른 넝쿨이 제멋대로 뻗어 나가 건물 전체를 덮고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식물이 가장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영역을 넓힌 모양이다.

끝을 대하는 방식

무성한 넝쿨이 늘어진 골목 끝에서 자전거 한 대를 사이에 둔 두 사내를 마주쳤다. 자전거 뒷좌석에 짐칸을 만들기 위해 나무판자를 이리저리 맞추는 일로 의견이 분분했다. 이방인이 곁에 선 줄도 모른 채 한참을 나무판자와 씨름하던 그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판자를 고정하는 일에 몰두했다. 동네에 불어오는 변화와는 무관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의 덤덤한 일과였다. 그 장면을 뒤로하고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안전진단 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으면 담벼락에 “사전 현황 조사 실시 협조 요청”이라 적힌 종이를 붙이고 돌아섰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집마다 붙은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재개발을 앞두고 건물의 균열이나 누수 상태를 기록하겠다는 안내문이었다. 현재 소제동 일대는 이주 단계에 접어들었다. 2024년부터 보상과 행정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이 떠난 거리에는 진입 금지 테이프가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이곳에는 3,8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관사와 대전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대전전통나래관’ 일대는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남게 된다. 하지만 골목 전체가 품었던 삶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하필 이토록 선명한 계절의 풍경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소멸이 예고된 장면 앞에서 기록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여전히 답을 정하지 못한 채, 라일락 향이 옅어질 때까지 낡은 관사촌의 뒤안길을 서성였다. 언젠가 이곳의 집들이 모두 허물어진 뒤에도,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빈 공간마다 봄의 향이 머물던 곳으로, 그리고 지난 세월의 주민들이 그러했듯 각자의 내일을 위해 부지런히 나무판을 덧대던 어느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정찬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