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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만 — 일광전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백열전구를 퇴출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에 하나둘 불이 꺼지던 전구 회사들. 그 사이에서도 묵묵히 불을 밝히고 활로를 찾아나간 우리나라 마지막 전구 회사가 있다. 이름하여 ‘일광전구’. 1962년부터 대구에 자리 잡고 긴긴 세월 전구에 손길을 보태온 일광전구는 어느덧 조명 브랜드로 발돋움하여 지구 곳곳을 밝히기 위해 천천히 걸어나간다. “조명 할 때가 아니다. 지금 그거 하면 큰일 난다.”던 수장을 설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권순만의 머릿속엔 어떤 빛이 번득이고 있었을까. ‘팟!’ 하고 켜진 그의 아이디어를 따라나서니 애정과 호기심이 깃든 이야기가 한가득하다.
일광전구와 《AROUND》는 인연이 참 깊어요. 전구 회사일 때 한 차례 연을 맺었고, 지난 《AROUND》 10주년 행사 때는 조명으로 사옥을 밝혀주기도 했죠.
제가 일광전구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걸로 기억하는데,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네요. 책이 조금 바뀐 것 같은데요?
맞아요, 《AROUND》도 차근차근 리뉴얼해 왔거든요. 이전에 비해 판형도 좀 작아졌죠?
그러네요. 그 당시 “일광전구는 1962년 설립된 대한민국 마지막 전구 회사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지금은 조명 브랜드라고도 인사드릴 수 있게 됐어요. 일광전구는 오랜 시간 쭉 대구에서 백열전구를 생산하면서 B2B 활동을 전개해 왔어요. 지금도 여전히 대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점차 서울을 비롯해 전국으로 활동을 넓혀 나가고 있죠. 여전히 본사와 공장, 많은 직원이 대구에 있는데요. 서울에 공식 쇼룸도 생기고 마케팅팀, 개발팀도 자리잡은 덕분에 저도 이렇게 서울에서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디렉터님이 일광전구에 합류하신 지 근 10년쯤 되셨죠?
올해 딱 10년 차가 됐어요.
디자인 스튜디오 064zerosixfour 대표이자 일광전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일광전구로 대화 나눌 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소개하곤 하는데, 엄연히 말하자면 저는 온전히 일광전구 소속이라기보단 외부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요. 일광전구는 2014년부터 제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064(zerosixfour.com)의 클라이언트로 만나서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첫 업무는 일광전구 ‘클래식 시리즈’의 패키지 디자인이었죠. 10여 년 전, 전구가 LED 로 교체되면서 정부가 기존에 있던 백열전구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징성이 크던 A60 전구를 단종시키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어요. 그 때문에 공산품 정도로 취급되던 전구에도 혁신이랄게 필요해졌고, 장식용 조명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 중 하나가 일광전구 클래식 시리즈예요. 일광전구가 장식용 조명으로 첫발을 뗀 시리즈이기도 한데, 그 패키지 디자인 업무를 064 에 맡겨주신 거죠. 제안받았을 땐 가벼운 업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작업하다 보니 일광전구를 통해 해보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리브랜딩 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이름을 직접 제안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해나가게 됐어요. 지금은 일광전구 브랜딩과 디자인에 많은 부분을 결정하면서 주도적으로 작업해 나가고 있어요.
시작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처음부터 일광전구에 큰 감흥을 느낀 건 아니었어요. 연을 맺고 클라이언트 스터디를 해나가면서 매력적인 회사라는 걸 알게 됐죠. 디자이너로서 꼭 해보고 싶은 디자인 중 하나가 조명이었는데, 신뢰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조명 디자인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디렉터님은 이미 계획이 있으셨군요(웃음).
(웃음) 대표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협업을 시작할 때부터 전구에도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왔어요. 조명 브랜드에 관해서도 어필하곤 했죠. 그 당시 대표님은 “내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셨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일광전구는 줄곧 공산품을 다뤄오면서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빛을 켜는 필수품으로서의 전구, 즉 기능적 용도로만 개발해 왔거든요. 보통 양계장이나 시장에서 사용하던 저가의 전구였죠. 반면, 제가 하고 싶은 건 디자인이 가미된 조명이다 보니 일광전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도 공들여서 계속 설득해 보고 싶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디자이너한테는 동기부여가 중요해요. 일광전구와 협업을 시작할 땐 저도 064로 막 홀로서기에 나선 시즌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하게 주목받은 작업이 없었어요. 일광전구를 조금 더 제대로 된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결과가 좋으면 064도 이름을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맞물리면서 일광전구 작업을 더 열심히 해보고 싶어졌죠. 그러면서 조명 브랜드로서 일광전구를 세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고요. 계속 리브랜딩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브랜드 스토리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1962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긴 시간 한 우물만 파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제가 합류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전구 부품 만드는 데가 더는 없던 시기였어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부품을 수입하고 한국에서 조립해 내보내는 구조였는데, 일광전구는 우리나라에서 유리, 필라멘트 등 부속품을 직접 만들 때부터 존재해 온 회사인 거예요. 시대가 변해도 계속해서 이 업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드리블하면 더 좋은 회사가 될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내 일이 아니다.”라던 대표님을 어떻게 설득했나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협업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해졌죠. 이러저러한 활동으로 국제 어워드도 받고 브랜드 이미지도 좋아지면서 매출이 오르는 게 눈에 보였고,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카피 제품도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산업이 빠르게 LED로 넘어가던 시기다 보니 성능이나 금액면에서 백열전구와 LED의 차이가 눈에 띄게 보이더라고요. 백열전구가 아무리 이점을 가지고 있어도 수명에서 차이가 나니까 전구의 좋은 점만 내세우기가 애매해졌어요. 물론 감성적인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백열전구 쪽이 훨씬 우세하지만 소비자에게 이런 면만 강조할 순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출이 떨어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회사에도 위기가 찾아왔어요.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해야 했죠. 그때 조명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건데, 대표님이 “지금 그걸 할 때가 아니다. 지금 그거 하면 큰일 난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좀…우기기도 했어요(웃음). 무조건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 끝에 어렵게, 어렵게 승낙을 받았는데 조명에 투자할 만한 비용이 넉넉하지 않으니 일단 하나만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하나만 진행해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에게 보여주려면 제품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노력 끝에 다섯 제품을 개발해 출발하게 됐죠.
설득의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신뢰를 쌓는 게 중요했을 텐데요. 조명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전에 진행한 일광전구 리브랜딩을 통해 믿음을 쌓아간 게 아닐까 싶어요.
리브랜딩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해나갔는데, 처음에 집중한 건 SNS였어요. 지금은 인스타그램이 메인이지만 그땐 페이스북 이용자가 가장 많던 시기여서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일광전구 스토리를 알리기 시작했죠. ‘백열전구가 퇴출당한다.’는 소식과 맞물렸을 때라 사람들 반응이 남달랐어요. 전구라는 게 상징성이 세서인지 오브제 자체에 애정을 느낀 것 같아요. 일광전구는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전구 회사’라는 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였어요. 마지막 남은 회사까지 없어진다니까 관심을 가져주신 거죠. 그 덕에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돌았어요. 저희 제품으로 전시하고 싶다는 의뢰도 적지 않았죠. 최근에 그때 얼마나 컬래버레이션을 했나 살펴볼 일이 있었는데, 백여 개 이상이더라고요.
와, 어마어마하네요. 처음엔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도 일광전구 대표이사님이 디자인에 관심이 많으셔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었어요. 첫 작업인 클래식 시리즈 패키지 작업을 어워드에 출품한 적이 있는데요. 그 경험 덕도 컸어요. 대표이사님이 어워드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전구나 전기 제품 패키지로 수상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비용을 지원해 줄 테니 해보자고 하셔서 2019년에는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에서 주최하는 ‘굿 디자인 어워드Good Design Award’에 지원하고 수상까지 하게 됐거든요. 그때 제가 한다고 맘먹으면 해내는 사람인 걸 입증한 것 같아 기뻤어요. 그 덕에 조명 브랜드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백열전구가 퇴출당한다고 하던 때라 뭐라도 해야 하던 시기였는데 제가 계속 강조해 온 디자인 쪽에서 반응이 오니까 조명 브랜드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드신 거예요. 그렇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도 나가게 됐죠. 사실 페어에 나가는 게 엄청 대단한 일은 아닌데, 대구에서만 50여 년 끌어오던 일광전구에겐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었어요.
리빙 관련 편집숍 등에 입점하는 방향도 있었을 텐데, 특정 시기에 진행해야 하는 페어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일광전구에는 1년 주기의 사이클이 없었어요.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연초에 계획을 세우고 연말엔 점검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 연도 계획 수립에 들어가야 하는데요. 그 과정이 없으니 정체된 분위기였어요. 언제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전구를 생산해서 재고를 마련해 두고 의뢰가 들어오면 필요한 수량만큼 전구를 보내주는 수동적인 흐름이었어요. 저는 그걸 능동적으로 바꾸고 싶었고요. ‘올해 몇 월에는 이 제품을 발매하고, 몇 월에는 다음 제품 발매를 준비한다.’ 식으로 정리가 되길 바란 거죠. 그래서 페어를 마감 기한으로 두고 언제까지는 기획이 되어야 하고, 언제까지는 준비가 완료되어 언제부터는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는 스케줄을 세웠어요. 사실 본사 분들을 고생시키는 일이었죠(웃음). 페어에 나가기로 결정하고서는 전구만 가지고 갈 순 없으니 조명을 같이 하자고 설득해서 조명 다섯 개를 제작해서 들고 나가게 된 거예요.
여러 노력 끝에 처음 만들게 된 조명 제품 소재가 독특해요. 건축 재료였다고요.
전구가 인테리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이고 가장 친숙한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생산 조건 때문이었죠. 생산은 물론이고 디자인을 설계 파일로 변환하고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대구 쪽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조명도 대구 공장에서 만든 건 아니었죠. 조명으로서의 도전은 처음이었으니 대구에 공장이 있다고 해도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조립만 하는 정도로 함께하게 됐는데 페어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조급해지더라고요. 넉넉한 인력이 아니니까 저 혼자 하루에 지방을 서너 군데 오가면서 미팅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가장 단순한 타입으로 디자인하자고 생각하게 됐죠. 지금이야 조명 하나를 만들 때 엄청 많은 구성품이 들어가지만, 그때는 부품이 많아질수록 저 혼자 관리해야 할 업체가 많아지니까 최대한 단순한 조합을 고려했어요. 그렇게 건축에서 많이 쓰는 콘크리트, 철근, 스틸 파이프, 대리석을 사용해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만들게 됐죠. 또한, 전구 회사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고려해 전구가 외부에 노출되는 타입으로 개발하게 됐고요. 지금 보면 아쉬운 점이 많은데 당시에는 사람들한테 반응이 왔어요.
순조로운 출발이었군요.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만 실상 준비부터 고생이 많았죠.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메인 무대인 A홀에 부스를 얻고 싶었는데 페어 특성상 큰 업체만 들어가는 곳이어서 첫 도전하는 작은 조명 브랜드로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가구 사업하는 친구한테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죠. 그 덕에 좋은 반응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전략을 짜서 접근하신 거네요.
어떤 작업을 하든 전략은 중요해요. 그땐 예산이 제대로 할당돼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최소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발휘해야 하니까 항상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죠. 치밀한 조사와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기였어요.
어떤 면에선 위험 부담이 있는 도전이었겠어요.
사실 일광전구와 이렇게 오래 함께하게 될지 몰랐어요. 초반엔 매출이 거의 없었거든요. 패키지 디자인으로 50만원 받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사실 학창 시절에 디자인 아르바이트할 때도 이거보단 더 벌었어요(웃음). 근데 디자인 스튜디오 064도 초창기 때다 보니 돈보다도 064가 오래갈 수 있는 일을 택했고, 일광전구와의 협업은 나름의 투자였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느 순간 상황이 좋아지리란 기대도 컸는데요. 생각처럼 수익이 오르지는 않더라고요. 수익이 생기고, 디자인도 안정적으로 하는 건 이제야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흐름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스노우맨’이 출시되면서 판도가 많이 바뀌었죠. 7-8년 동안은 고생이 정말 많았어요. 지금은 제품 촬영할 때 서포트해 주는 스태프가 많을 땐 7명까지도 있는데요. 이전에는 제품 촬영 기획부터 촬영 업무까지 혼자서 해내야 했어요. 옥상에 설치해야 하는 파티용 조명기구도 직접 사다리에 올라 설치하곤 했죠. 직원들이 대구에 있어서 함께하는 게 쉽지 않았고, 그래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와 더불어 점점 더 동기부여도 안되고, 수익적인 면에서도 불리하다 보니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세 번 정도 고비가 있었는데 대표님이 계속할 수 있도록 저를 설득해 주셨어요. 제가 단념하려 할 때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뭔지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제가 원한 건 예산보다도 인력이었어요. 그때 마케팅팀장이 들어왔고 비로소 저는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그렇게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전만큼 대구에 자주 가지 않고도 원활하게 소통하고 작업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이전에는 대구에 자주 오가셨나요?
그럼요. 굉장히 많이 갔죠. 일하다가 통화로 안 되고 답답하면 바로 출발했어요. 일 처리하면서 본사에 계신 분들을 대면해서 설득하는 업무도 해나갔죠. 사실 본사 분들과는 나이 차이도 나고, 하는 일이 달라서 효과적으로 설득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럴 때마다 소통할 상대가 없다는 게 막막해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데요. 마케팅팀장이 들어오고 나선 저보다 젊은 시선으로 서포트와 리서치를 해주니까 데이터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조명을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준비하게 되었고요. 동시에 디자인 예산도 마련되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죠.
전구와 조명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설득이 쉽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빛을 내는 장치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전구는 조금 더 원천적인 부분에 해당되는 반면 조명은 전구를 활용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오브제에 가까워요. 전구가 아닌 LED칩 형태로 만들어진 조명 기구도 최근에는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 기업들은 전구를 활용해서 조명을 제작해요. 그런 면에서 전구는 조명 기구 부품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죠.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변화일 거예요. 전구는 에디슨이 발명한 이후 100년이 넘게 유통되어 온 공산품이에요. 유리구와 소켓 부분 실루엣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거의 변한 게 없는 제품이죠. 반면, 조명 기구는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전구가 기본이라면, 조명은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제품이라고 봐요.
조명 브랜드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고민거리도 생겼을 것 같아요.
지금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은 판매 가격과 성능이에요. 일광전구는 현재 10만 원에서 20만 원대 정도의 제품을 다루고 있는데 요즘은 해외 브랜드 구매도 쉽고, 국내 유통사에서 취급하는 해외 브랜드 수도 많아져서 고객들 눈이 높아졌어요. 그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조명 대부분이 100-200만 원 선이죠.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성능을 확 높인 50-100만 원짜리 조명을 내면 낯설고 이상할 거예요. 해외 브랜드는 역사도 깊고 디자인도 상당히 발달한 데 비해 우리는 이제 막 시야를 넓혀가고 있는 브랜드니까요. 그렇지만 판매가를 높이면 그만큼 원하는 소재로 다양한 공법을 활용할 수 있어요. 소재 마감도 원하는 대로 해볼 수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판매가를 높여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특히 고급화된 부분에 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일단은 표면 처리요. 예를 들어 크롬 플레이트면은 깨끗하게 마감해야 하는데, 초창기엔 큰돈을 쓸 수가 없어서 마감 부분에 흠집이 남곤 했어요. 부품 가공비에 큰돈을 쓰지 않으면서 가장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죠.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지는지 알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니 금액대에 맞게 세팅하면서 놓아야 했던 부분인데요. 지금은 가격 경쟁력도 생기고, 조명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면서 표면 퀄리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단계예요. 전보다 많은 부품을 직접 제작하면서 전용화된 생산 라인이 생긴 덕에 더 좋은 디자인과 제품이 나오고 있고요.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나’를 넘어 ‘내 공간’에 자아를 투영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안에서 조명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먹고살기 바쁜 시대일 때 조명은 공간을 밝히는 용도에 불과했어요. 반면,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요. 상류층만의 문화라 생각한 공간 꾸미기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좀더 대중화되었고, 그 덕에 공간을 향한 관심이 점점 가속화되기도 했어요.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이 아니더라도 내 공간을 꾸밀 수 있는 작고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거죠. 1시간, 아니 10분을 머물더라도 내 마음에 드는 만족스러운 공간에 있고 싶다는 욕구일 거예요. 그 분위기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바꿔주는 게 조명인 거고요.
조명 활용 팁을 얻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살짝 알려주신다면요?
공간 분위기를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건 일단 펜던트 조명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튀는 펜던트는 지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대중적으로 펜던트 조명은 한 번 시공하면 교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무난한 타입을 오래 사용하는 게 좋아요. 펜던트 조명을 집중형 조명으로 사용하려면 조명을 조금 낮게 다는 걸 추천하는데요. 연출에 신경 쓴 영화를 보면 대체로 펜던트 조명을 시선보다 약간 높게 달아서 눈부심만 방지하는 정도예요. 그 ‘높이’가 핵심이라고 봐요. 우리나라는 유난히 조명을 높게 다는 경향이 있는데 펜던트 조명이 머리에 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아요. 근데, 테이블이 있다면 조명이 아무리 낮게 달려 있다 한들 머리에 조명이 닿을 수 없어요. 테이블 같은 국소적인 공간을 위해 집중형 조명으로 펜던트 조명을 사용하는 경우엔 시선과 격차가 크지 않도록 설치하고, 테이블 같은 가구 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동선에 두는 펜던트 조명은 머리가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조금 높게 다는 걸 추천해요. 또한 테이블 조명, 플로우 스탠드, 나아가 포터블 조명의 경우, 펜던트에 비해서는 이동하기가 쉬우니까 좀더 튀는 색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공간의 포인트를 위해 어떤 조명을 선택하느냐는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한국 사람들은 화이트 톤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포인트 조명을 둔다면 단조로움을 피하는 데도 효과적일 거예요.
지금 일광전구를 우뚝 세운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스노우맨’일 텐데요. 어떻게 만들게 된 제품인가요?
스노우맨은 2022년 1월에 론칭한 제품인데, 바로 전에 나온 제품이 ‘에이콘ACORN’ 시리즈였어요. 스노우맨이랑 기둥과 바닥 판을 공유하는 제품인데요. 급하게 전시에 출품하게 되면서 프리오더 방식으로 판매하게 됐는데, 현장 반응은 꽤 좋았어요. 근데 생각만큼 주문이 많지 않더라고요. 제 기억으로 그 당시 50건도 안 들어왔던 것 같아요. 걱정이 컸는데 3-4개월 지나니까 반응이 오더라고요. 입점처 계약이 진행되고, 바이럴이 돌면서 굉장히 잘됐어요. 그때 이 흐름을 이어서 크리스마스에 맞춰 새 제품을 출시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당시 유리 조명이 인기 있을 때라 유리를 생각해 보게 됐는데요. 에이콘 시리즈의 바디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위쪽만 유리로 바꾸는 방식이 어떨까 싶더라고요. 겨울 출시를 앞두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동그란 모양에서 ‘스노우볼’이 떠올랐어요. 또한 납작한 구가 연결된 형태를 하나 더 개발하고 나니 ‘스노우맨’이라는 이름이 좋겠다 싶었죠. 사실 처음엔 직원들 대부분이 스노우볼이 더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기본적인 형상이었으니까요. 저희한테 스노우맨은 기본을 약간 변형한 타입으로 재미 요소를 생각한 건데, 출시 즉시 스노우맨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29CM 를 통해 론칭했는데 첫날부터 엄청나게 많이 판매되었죠.
왜 스노우맨이 인기가 더 많았을까요?
사실 이런 기본 형태는 일광전구뿐 아니라 많은 브랜드가 시도하는 디자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차별화가 어려운 반면, 스노우맨은 약간의 차별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100퍼센트의 혁신보다 5퍼센트, 10퍼센트의 변화가 유효했다고 봐요. 기본형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변형이었던 거죠.
현재 스노우맨뿐 아니라 일광전구는 국내외로 반응이 좋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터뷰를 보았는데, 어떨 때 해외에서 반응이 있다는 걸 실감하세요?
일단은 카피가 많아졌어요. 알리, 테무 같은 사이트에서 초저가 상품으로 판매되는 걸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반응을 실감하게 되죠. 종종 해외여행을 가신 분들이 일광전구 제품이 있다면서 연락해 오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수출한 적이 없는데도 저희 제품이 해외로 나가 있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또한, 일광전구 쇼룸을 연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해외 방문객 비율이 꽤 높아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대만, 중국에서 유입이 많고요. 아, 그리고 일광전구가 1년 반 전부터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하이엔드 편집숍과 거래 중인데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숍인데, 입점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커서 그때 해외에서의 반응을 크게 실감했어요. 그리고… 이번 호가 출간될 즈음이면 발표되었을 것 같은데, 일광전구가 미국 뉴욕 모마MoMA 디자인 스토어에 입점하게 됐어요.
와, 정말요?
네(웃음). 이미 모마 홈페이지에는 업로드되어 있는데, 아직 이것저것 절차가 남아 홍보에는 돌입하지 못했어요. 이전까지 하던 인터뷰에선 모마라곤 언급 못 하고 ‘미국에서 나온다’고만 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게 돼서 기쁘네요(웃음). 이를 토대로 일본, 홍콩 모마 디자인 스토어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어서 올해 안에는 모두 입점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조명 브랜드만 해도 상당한데, 모마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일광전구 조명을 선택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시간의 힘 아닐까요? 제가 일광전구 브랜딩을 시작한 건 이제 막 10년이 됐지만, 일광전구는 1962년부터 시작된 회사예요. 고비를 수없이 겪었죠. 보릿고개도 있었을 거고, IMF도 직접적으로 겪었어요. 전문적인 조명 브랜드로서의 걸음은 이제 3년 차지만 그간 전구만 고집해서 해왔다는 브랜드 히스토리가 빛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지속적으로 그 연결 고리를 이어오려고 노력해 왔고요. 조명 브랜드로서의 일광전구는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전 세대가 정성껏 시간을 들인 덕분에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거죠.
어쩌면 그것은 ‘일광전구가 지켜온 것을 해치지 않으면서 행보를 이어 나가고 싶다.’는 디렉터님 말의 연장선 같아요. 새로운 행보 속에서도 지키고자 한 일광전구의 뿌리에 관해서도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전구 회사로 60년 이상 이름을 이어온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굳건한 히스토리가 되었다고 봐요. 요즘 일광전구는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요. 제가 일광전구 브랜딩을 시작할 당시는 오래된 브랜드가 하나둘 브랜딩을 시도하던 때이기도 했어요. 젊은 피, 젊은 시각이 들어가면서 새로워지는 브랜딩을 직접 확인했는데 대체로 약간 키치한 스타일을 향해 있더라고요. 전통을 지켜온 기업의 파격적인 변신이었지만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대체로 오래가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런 흐름을 보면서 일광전구만의 전통성을 지키면서 펼쳐나갈 수 있는 디자인 방식을 쌓아가고자 했어요.
이번 호 주제어가 ‘대구’예요. 글로벌로 더 넓게 뻗어나갈 채비를 하는 이 시점, 일광전구의 뿌리인 대구에 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디렉터님께 대구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서울에 살면서 지방에 내려가긴 쉽지 않아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 환상 비슷한 걸 가지곤 했는데 처음 대구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근데 제 설렘과 달리 말투나 대화 뉘앙스가 유난히 세게 느껴지더라고요. 소비자들에게 비슷한 피드백도 많이 들었어요. 일광전구 CS센터는 대구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이 담당자가 화를 냈다는 피드백을 많이 해오더라고요. 대구 사투리가 주는 약간 센 뉘앙스가 있어서 화난 것 같다는 피드백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CS 관련 전화도 이젠 굉장히 밝게 받아주고 계시니까 오해하지 마세요(웃음). 지금은 저도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난감할 때가 있었어요. 일광전구는 근속 연수가 30년 정도 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피드백을 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고, 늘 사용해 온 말투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조심스러운 마음도 컸는데 소통하면 소통할수록 재미있고 이야기도 잘 통하더라고요. 직접 겪어보고 나니 사람들이 대구를 편견 없이 즐기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하게 돼요.
그러고 보니 올해 브랜드 로고를 바꾸셨죠. IK가 ILKW로 바뀐 형태인데,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올해 2월에 바꿨는데요. 몇 가지 이슈 때문에 과정상 굉장히 바쁘게 바꾸게 됐어요. 수출을 염두에 둔 시점에 IK는 사용하는 곳들이 제법 있다 보니 브랜드 등록이 안 되더라고요. 사용하고 싶다면 큰돈을 내고 구입해야 했는데, 그럴 만한 기업은 아니다 보니까 브랜드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차였죠. 그러다 해외에서 스노우맨 반응이 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출을 검토하게 됐어요. 근데 1세대 버전은 안전 인증이나 전기적인 특성이 한국에 맞추어져 있어서 국내 사용만 가능한 제품이거든요. 수출을 위해 스노우맨 1세대가 나오고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 2세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모든 부분을 리뉴얼한 2세대를 준비하면서 수출을 위해 브랜드명도 빠르게 수정해야 했어요. 신속하게 고민한 끝에 일광전구의 영문명인 ‘ILKWANG LIGHTING’에서 앞의 네 자만 남겨 ILKW로 정하게 되었어요. 한글로는 여전히 일광전구로 부르고 있고, 영문 표기만 달리하는 것으로 로고를 새로 디자인해서 수출하기 시작했어요.
스노우맨 1세대 때만 해도 염두에 두지 않던 수출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여러 매체에서 일광전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표현하던데, 디렉터님이 생각하시는 전성기에 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2의 전성기는 스노우맨으로 큰 관심을 받고 조명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때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스노우맨은 제 주변 사람들만 해도 거의 다 가지고 있고, 특히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지금도 그 인기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고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수출에 대한 니즈도 많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락이 오고 강연도 하게 되는 걸 보면 제2의 전성기가 맞긴 맞구나 싶어요.
대화 초반에 ‘이렇게 오랫동안 일광전구랑 함께할 줄 몰랐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신제품은 계속 개발 중이고, 일광전구와는 앞으로도 함께할 거라고 봐요. 그러나 언제 이 관계가 끝날지 모른다고는 늘 생각하고 있죠. 사실 저는 외부 협업자이기 때문에 경영자 입장에선 언제든 더 좋은 안이 생각날 수 있고, 제 작업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거든요. 그런 위험 부담이 있는 위치이기에 더욱 기대에 충족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게 돼요.
위험 부담이 있다고 하셨지만 끈끈한 신뢰로 이루어진 관계 같아 보여요.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서로 설득하고, 시도하고, 나아가는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제 디자인 스튜디오도 운영해 나가야 하니까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쉽게 그만둘 수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라는 마음 덕분이었어요. 이 악물고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면서 덤빈 게 10년이란 세월을 만든 거죠. 무엇보다 일광전구가 저를 단순한 의뢰 업체로 생각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 커요. 클라이언트한테 디자인 스튜디오가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의뢰한 것을 발전시켜서 더 좋은 안을 제안해도 여러 이유로 퇴화한 디자인이 출시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협업이 가능한 건 처음부터 신뢰를 꾸준히 쌓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초기부터 잘된 국내외 브랜드 사례를 공부해서 일광전구에 제안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갔어요. 일광전구가 확신이 없을 때도 반드시 맞다는 결과를 만들어 내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인정받으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사실 한 번 변화를 만들고 멈춰 있으면 ‘권순만 없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정체되지 않도록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거죠.
‘끝을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는데요. 디렉터님이 생각하는 끝은 어떤 모습이에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는 거요. 그런 의미에서 모마에 들어간 게 굉장히 긍정적이죠. 인프라, 역사성, 기술 같은 측면에선 아직 유럽보다 월등히 잘할 순 없을 거예요. 하지만 머지않게 ‘아시아에서 가장 잘하는 조명 회사’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아주 많은 것이 대체될 거란 이야기가 있어요. 디렉터님은 조명의 수명이 언제까지일거라고 생각하세요?
조명은 영원할 거라고 봐요. 원래는 일정량의 밝은 빛을 내려면 최소한의 사이즈라는 게 있었지만 요즘은 그 최소한이라는 게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조명 기구 역시 그에 맞게 발전하며 존재할 거예요. 또한 더 멋진 오브제를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는 이상 조명은 살아남을거예요. 저는 아직도 조명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언젠가 조명과 어우러질 가구 디자인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일광전구를 더 널리 알리고, 더욱 근사하고 품질 좋은 전구와 조명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노력해 보려고요. 더 먼 곳에서 만나게 될 일광전구의 그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