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에 놓인 꽃

The Dream is Around You

“엄마 꿈은 뭐야?” 대화 끝에 이어진 질문에 엄마는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에 답이라도 하듯 머뭇거렸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와 대학을 갓 졸업한 동생, 퇴직 날짜를 받아놓은 아빠. 어쩌면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게 될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다.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함에 골몰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쉬이 떠올리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오히려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일각의 침묵이 흐르고, 엄마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얼굴이 밝아졌다.

“네 아빠 퇴직하면 전원주택에서 살아볼까?”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온 몸에 맥이 탁 풀렸다. 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일을 그만둬야 했던 엄마는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부쩍 늙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바쁜 생활 속에서 ‘꿈’이나 ‘자아현실’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들은 미처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달려온 세월 동안 엄마가 ‘꿈’이라고 여겨온 건 일종의 목표 같은 것들이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흔히들 말하는 ‘인생 제2막’, 잊고 있던 당신만의 ‘무엇’이었다. 전원주택은 절대 그것이 될 수 없었다. 어떤 바람이나 미래 계획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몇번을 다시 생각해도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때의 충격은 결혼이라는 헤비급 펀치를 맞는 동안 잊히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고, 나는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졌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생일, 우리는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묻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곤란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과거를 캐묻는 짓궂은 연인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엄마는 그때처럼 놀라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번쯤 파리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림도 그리고 싶고.”

결혼하기 전,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했었다. 나는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당신의 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잃어버린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문득 프랑스 여가수 파트리샤 카스Patricia Kaas의 노래를 읊조리던 엄마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하굣길에 나를 태운 차 안에서 나지막이 흥얼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한번쯤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젠가 함께 파리에 가겠다고.

3월의 파리는 유난히 추웠다. 겨울이 지나간 것도, 봄이 온 것도 아니어서 ‘계절’은 이 낯선 도시에만 출몰하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도착할 때부터 창밖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어느새 눈보라로 바뀌어 있었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파리의 첫인상은 휘슬러Whistler의 작품처럼 온통 무채색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한겨울에 태어난 엄마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다. 우리는 무성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잰 걸음으로 골목 어귀를 돌고 또 돌았다. 자신의 원룸을 빌려주기로 한 호스트 파브리스Fabrice와의 통화는 조용한 골목을 격양된 내 목소리로 가득 메웠다. 그는 끊임없이 숙소의 위치를 설명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식 영어로 말하는 나와 프랑스식 영어로 말하는 그는 분명 같은 언어임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득 얼마 전 읽은 소설 《부다페스트》의 구절이 떠올랐다. ‘낯선 말을 배우려 하는 사람을 놀리는 건 금물이다.’ 이 교활한 남자가 불어를 영어인 척 떠들면서 애타는 이방인을 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안락한 불이 켜진 집 창가에서 곤경에 빠진 날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어두운 거리의 상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엄마는 계속 괜찮다고 말했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슈퍼마켓 이름을 겨우 알아들은 파브리스가 도착했을 때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찾아 다니느라 가죽점퍼가 망가졌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숙소는 계속 서성이던 골목 바로 건너편에 있었고,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말쑥한 외모를 지닌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게 보일러 사용법 따위를 설명하다가 곁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는 특유의 상냥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답하곤 했는데, 기껏해야 어설픈 영어로 ‘예스’라고 하거나 한국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어느 상황, 어느 누구 앞에서도 침착하고 다정한 엄마의 성격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통했다(나는 이런 부분을 전혀 닮지 못했다). 어쨌든 서로 행복한 결말이었다. 그는 기분 좋게 집 열쇠를 넘겨주었고, 나는 현금을 건네주었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그를 여행이 끝날 때까지 보지 못했다.

다음 날도 계속되는 눈보라를 뚫고 가까이 있는 갤러리 비비안Gallerie Vivienne으로 향했다. 이곳을 비롯한 파리의 파사주Passage들은 복잡한 건물 사이 골목에 지붕을 얹은 공간으로 19세기 파리의 상권을 이끌었다. 고전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상점들 사이로 쭉 뻗은 복도를 거닐고 있노라니 거친 눈보라도, 무채색의 유령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레스토랑과 꽃집, 카페가 즐비한 가운데 ‘Librairie’라고 쓰인 반가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고서점의 뒷문으로 들어서자 마침내 차가운 무성영화가 끝나고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의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동그란 안경을 쓴 주인아저씨가 켜켜이 쌓인 책상 위로 머리를 내밀고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는데, 나는 그것을 유연하게 받아 넘기지 못하고 속으로 꿀꺽 삼켜 버렸다. 머쓱한 미소만 짓고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벽으로 눈을 돌렸다.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소설 《마담 보바리》와 이웃나라 작가들의 번역본이 보였다.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되감아 보듯 눈으로 책등을 쓰다듬다가《Paris》라고 크게 적힌 두툼한 책을 꺼냈다. 반질반질한 고서 목록은 아니었지만 파리의 곳곳을 130 131그려 넣은 알록달록한 일러스트에 매료되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주인아저씨가 아름다운 책이라며 서문을 펼치고, 그 안에 휘갈긴 서명을 가르쳤다. ‘장콕토Jean Coctea’.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던 영화감독이 추천하는 이 책은,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도시의 곳곳을 소개해놓은 여행기였다. 더욱이 책 제목이 ‘Paris tel qu’on l’aime’란다. 사전을 찾아보니 ‘있는 그대로 좋은 파리’ 정도로 해석되었다. 영어도, 불어도 알지 못하는 엄마는 책장 사이에서 연신 종이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뿌연 책 먼지와 정체 모를 향수 냄새가 적절하게 섞인 이 낭만적인 공간에서 엄마는 한없이 상기된 뺨을 가진 소녀 같았다.

“엄마, 파리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 없어?”

“처녀 시절에 뮤지컬 <노트르담의 꼽추>를 봤어. 흑백 필름으로 성당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앞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했어. 그런데 내용보다 채소와 꽃이 가득하던 성당 뒤뜰이 제일 기억에 남네, 지금도 그대로일까?”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떼쓰는 애처럼 파리 전경을 보기 위해 버스 2층에 올라가자고 종용했다. 여전히 추운 날씨였기에 그곳에 앉는 승객은 엄마와 나뿐이었다. 엄청난 바람에 결국 목도리로 둘둘 말아 양쪽 눈만 내놓았다. 그래도 신이 났다. 발 아래 놓인 파리가 신기해서 자꾸만 눈을 껌벅거렸다. 시테Cite 섬에 위치한 성당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고, 성인과 순교자들의 모습을 빼곡하게 조각한 파사드Facade 앞에는 850주년을 맞아 공사가 한창이었다. 파리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8개의 종을 소리가 맑은 새 종으로 교체한다는 소식과 함께 전망대 설치로 매우 분주했다. 우리는 조용히 내부로 들어섰다. 어수선한 바깥과는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졌다. 커다란 장미 문양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 아래, 미사 준비를 하는 사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말없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를 위해 기도했고, 그 내용을 들려주곤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지금,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저 종소리

그리운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네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신 엄마의 치마

알 수 없는 설렘은 일어나 내 가슴 뛰게 했지

엄마와 성당에 그 따듯한 손을 잡고

내 맘은 풍선처럼 부는 바람 속에 어쩔 줄 모르네

곱게 쓴 미사보 손때 묻은 묵주

야윈 두 손을 모아 엄만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셨을까?

종치는 아저씨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본

종탑꼭대기 난 잊을 수가 없네

엄마와 성당에

성당을 나와 가파른 길 내려오면

언제나 그 자리엔 키 작은 걸인

엄마는 가만히 준비했던 것을 꺼내

그 걸인에게 건네주시며 그 하얀 미소

엄마와 성당에

– 조동익 <엄마와 성당에>

장미창 너머로 가면 뒤뜰이 나온다고 했다. 화려한 파사드나 경건한 본당과는 달리 인적이 드문 뒤뜰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엄마가 말한 채소나 꽃들은 없었지만 작은 울타리 안으로 잔디와 풀 포기가 자라있었다. 우리는 아까와는 반대로 밖에서 장미창을 바라보며 서 있었는데 바로 꼽추가 서 있던 자리라고 했다. 공원에서 잠시 앉아있다가 내가 짜놓은 빡빡한 일정에 따라 다시 움직였다. 영화에 나와 유명세를 탄 초록색 간판의 서점에 들러 한참을 구경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에서 생선구이를 먹었다. 엄마가 미소 지을 때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추운 날씨에 계속 걸어 다니느라 지친 기색이 비치면 조마조마해졌다. 꽉 찬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무심코 던진 말에 작은 다툼이 생겼다.

이제 엄마 나이에는 호텔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어지는 것 같아.”

“그건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여행이잖아. 누구나 다 묵는 호텔방 말고 실제로 파리 사람들이 사는 집에서 잠도 자고, 음식도 해먹는 게 더 의미 있는 거야.”

“호텔에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도 많고 늦은 시간에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긴 조금 외롭지 않니?”

“엄마를 위해 온 여행인데,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해줬으면 좋잖아.”

“너랑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하고 즐거워.”

엄마는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괜히 서운해졌다. 애초에 이 여행을 준비했던 이유라든지, 경제적인 타격을 무릅쓰고 감행한 용기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여행, 춥고 힘든 날씨에 무작정 걷기만 하는 여행을 통해 엄마는 과연 얼마나 자신의 꿈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대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달래보려던 엄마도 울었다.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에, 우리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결국 앓아 누웠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온몸에 힘이 없고 어젯밤 흘린 눈물로 얼굴이 잔뜩 부었다. 엄마는 간단히 먹을 것을 사온다고 했다. 같이 가자고 하는 나를 만류하고 하얀 문밖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마켓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제대로 돈 계산을 할 수 있을지, 길을 헷갈리는 건 아닌지, 동양인을 노리는 소매치기에게 위협을 당하는 건 아닌지. 이런 생각이 무색할 만큼 능숙하게 장을 보고 돌아온 엄마는 과일이 싸고 풍성하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가 이내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엄마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 조금은 느슨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뿌연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선명해졌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돌아다닌 건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던 거다. 우리는 오래된 가게들을 구경하며 파리의 분위기에 취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샹젤리제 거리와 에펠탑은 동경했던 것만큼 멋지지 않았고, 그곳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다시 좁은 골목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몇 가지 샀다.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그곳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한 건 장미꽃을 살포시 잡은 손 모양의 책갈피였다. 평소 묵주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엄마는 묵주가 로사리오Rosario, 즉 ‘장미 다발’이라는 뜻임을 알고 있느냐며 책갈피를 매만졌다. 꿈을 갖는다는 건, 어쩌면 꽃 한송이를 잡고 있는 여인의 마음 같은 것일 테다. 가까스로 손에 넣었나 싶다가도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사라질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 그래서 더 간절하고, 알 듯 모를 듯 언저리를 맴돌게 되는 마음. 시들어가는 꽃처럼 처연한 엄마의 꿈은 어디 있는 걸까…. 우리는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양파와 감자를 푹 끓인 스튜를 먹으러 갔다. 이제 특별한 행선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따뜻한 스튜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해졌다. 엄마는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가게를 가리켰다. 서툰 그림을 몇 점 내놓은 것을 보니 가게라기보다 개인 작업실과 같은 공간이었다.

“저런 공간이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겠지?”

“유진이가 미술을 전공한 건 엄마의 손재주를 닮아서야. 돌아가면 한번 그려보자.”

엄마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작은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잘 할 줄 모르는데…’를 되뇌는 엄마에게 입바른 말을 해주었다. 몽마르뜨 언덕의 화가들처럼 그저 자유롭게 그리면 된다고. 중요한 건 열정이라고. 며칠 뒤 엄마가 수줍은 표정으로 그림을 한 점 들고 왔다. 학원에 걸려있는 어느 화가의 작품을 보고 그렸는데, 너무 어둡고 쓸쓸해 보여서 색을 바꿨다고 했다. 한번도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원근법이나 명암 처리 같은 것을 꽤 잘 해내서 강사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취미반에 등록한 지 단 열흘 만에 완성해 낸 엄마의 그림 앞에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시들어버린 꽃도, 잡을 수 없는 꿈도 아니었다.

클뤼니미술관

MUSEE DE CLUNY

주소. 6 places Paul painleve 75005

Paris, 지하철 10호선 Cluny-Sorbonne

시간. 9:15 ~ 17:45 (매주 화요일 휴관)

소르본 지역을 서성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클뤼니미술관은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미술관보다 더 오래 머무른 곳이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중세 전문 미술관인 이곳은 오래된 작은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클뤼니수도원 수도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르네상스 이전의 궁정과 수도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일각수를 가진 귀부인>이라는 태피스트리가 있다. 1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이 등장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밖에도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품, 성물들이 전시돼 있는 방과 방 사이를 오가다 보면 오래된 중세 저택에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 복잡한 관중 속에서 헤매이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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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오혜진